그 소중하고 강력한 선물, 절대 버리지 말길
책을 읽으니까 살 것 같았다. 회사 다니면서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출근길에 책 읽으면서 뻥 뚫린 가슴이, 출근하면 막혔다가. 퇴근길에 다시 책을 펼치면 뚫리는 것이다.
회사에 가면 다 꼴 보기 싫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
술자리에서 내 욕 했다던 저 놈도 싫고, 저놈이 나 욕했다고 나에게 친히 꼰지른 건너편 저 놈도 싫고. 술자리에선 그렇게 신나게 욕해놓고 나한테 또 다정하게 주말에 뭐했냐고 말 거는 심보는 뭔지. 다중인격들인가?
대학생 쿼카와 회사원 쿼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사람들의 의도를 선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동기, 친구들의 의도를 선하게 해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쁘게 해석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이런 경우다. 술 먹으면 개 되는 친구가 또 술을 컨트롤 못해 바닥에 누워있어 일으켜서 택시를 태워서 어찌저찌 집에 보냈다 치자. ‘아 술버릇 진짜 나쁘네’ 하고 분노하며 잠에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와있는 장문의 카톡. 그 친구의 현타 +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가 듬뿍 함유된 장문의 카톡으로 풀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아무리 대학동기가 미워도 그의 마음에 악의가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순수하게 서로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만난 것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가면을 썼는지(물론 좋은 동료들 빼고). 죄다 꼴 보기 싫었다.
쟤는 웃으면서 말하면 못된 말도 예쁘게 들리는 줄 아는지. 수요 없는 스마일을 남발하면서 드러내는 요구사항들은 하나 같이 날 웃게 하지 못했다. 선한 의도로 해석해 보려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 나에게 자기 계발서들은 자꾸 부정적인 감정들을 갖지 말라고 했다.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할 것.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며 말이다. 성숙한 성장마인드셋을 가지고 내 자신의 코치가 되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며 자신에게 더 나은 모습을 가질 것.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 좋은 태도는 좋은 속도를 만들 테니, 먼저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좋은 태도를 가질 것…
자기 계발서의 가르침들은 물론 나를 성장시켰다.
그런데 그 기저에 긍정적인 감정들은 없었다.
날 자극시키고 움직인 건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내가 저 상사의 나이가 되었을 때 후배에게 저런 말을 하진 말아야지, 뒤에서 후배 집안, 가족 뒷담화를 하는 저질은 되지 말아야지, 남 얘기 하는 게 재밌다는 건 지금 내 인생이 재미없다는 증거니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의 반면교사로 나의 감정들을 이용했다.
악의 에너지를 활용하다
‘악’의 감정은 질투, 적대심, 체면, 허영심과 같은 감정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이 가장 혐오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악’의 감정은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 악‘은 선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극성이 다를 뿐,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 <비상식적 성공 법칙>, 간다 마사노리
이 말을 부디 부정적인 감정만을 품고 다녀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대신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악감정을 갖고 있다면, 이는 매우 축복받은 기쁜 일이라는 것을. 그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은 그 강력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축하한다.
당신이 악감정을 가졌다는 것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신은 이제 아무나 알아챌 수 없는, 알아챘다 하더라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써 그 파워를 잃어버리는 ‘악’이라는 최고의 에너지를 선물로 받았다.
평범하고 순했던 (진짜 순둥이 그 자체였다) 악감정을 가지자마자 1년 만에 초고속 부서이동에 성공, 책 50권을 읽고 사람이 바뀌며… 브런치 작가가 된 내가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