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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는 매일 밤 감사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신대

'감사'에 관하여

by 우아옹


세상에 감사를 표하는 이의 행동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라 브뤼에르



항상 행복이 최우선이었다.

아쉽게도 코로나 시대에 다둥이 육아를 하면서 회사 복직을 감행한 나는 어떤 것이 행복인지 점점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이 말했다.

'너 뭐 하고 있는 거니?'


뒤돌아 보았으나 내 마음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지하 100층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내 마음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지하 101층에 내려가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라는 삶이 무서워졌다.

그래도 엄마니깐, 책임감 빼면 남는 게 없는 엄마니깐.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당장 바꿔야 했다. 근데 뭐부터 바꿔야 하지?


Secret 감사일기


“감사일기를 써보자”

어떤 끌어당김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냥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지하 100층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젠 우리 아이들도 올라오게 해야 해”






녀석들에게 “자~ 우리 오늘부터 감사한 마음을 이야기해보자 "하면 씨알도 안 먹힌다.

이럴 땐 비장의 무기 산타할아버지를 소환하면 된다.


“애들아, 산타할아버지는 매일 밤 감사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신대”


이미 산타의 존재를 파악한 11살 첫째 아이는 시큰둥하다.

그러나 산타할아버지가 사는 곳을 지구본에서 찾고 있는 8살 녀석들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난다.

첫째 아이에게 ‘제발’이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니 눈치 챙기고 눈을 찡긋하며 모른 척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가며 감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 집 번호표는 무조건 가위바위보다.

다둥이집에 번호표가 없다는 건 상상불가다.


쫑알쫑알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다 감사하다며 이야기하는 녀석들과는 달리 자기는 감사한 일이 없다며 “없음”으로 일관하는 사춘기 직전의 첫째 아이.

몇 주가 지나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감사의 마음이 ‘냥코 대작전에서 원하는 보상이 나와서’, ‘엄마가 게임을 하게 해 주셔서’등 온통 게임 관련된 내용이다.

괜찮다.

뭐든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는 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라는 걸 내가 경험해 봤으니깐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번호표도 뽑기 전에 말했다.

“엄마, 오늘은 감사한 게 2개 있어요. 게임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엄마가 감사한 이야기를 하자고 얘기해줘서 감사해요”

이야기하고 후다닥 이불로 쏙 들어가 얼굴을 가리는 첫째 아이와 가위바위보도 안 하고 먼저 말하는 게 어디 있냐며 투덜거리는 녀석들


눈물이 나왔다. 주책맞게.

다행이다.

불을 끄고 있어서.


“그렇게 얘기해줘서 엄마도 감사해”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께서 어른 아이인 나에게도 선물을 주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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