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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옹 Dec 12. 2022

30년지기 친구들을 만나러 갑니다.

'공감'에 관하여

밤 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이다.
말터 벤야민


경춘선 갈매역 4-3 앞에 서있다.

뚜벅뚜벅 30년지기 친구들을 만나로 가는 이다.

셀렌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1박 2일.

아침부터 시작된 삼남매 다툼 소리도 사랑스럽게 들리는 그런 날이다.




진심으로 진지했던 그녀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말괄량이 다섯 여자아이들이 있다.

내년이면 중학생 언니들이 된다는 최고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6학년 여자아이들.

하교 후 그녀들은 매일 아지트로 향했다.

100원짜리 라면 세 봉지를 들고 향하는 아지트는 우리 집이다.

그녀들의 취미생활은 계획 짜기다.

열심히 계획을 짜고 멋들어지게 작성한 종이 고이 들고 동네 문방구에 간다.

라면 다섯 봉지를 안 사고 아껴두었던 거금으로 5장 복사하고, 코딩하여 나눠가지며 깔깔 웃었다.

그녀들의 계획 짜기는 나름 건설적인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결혼  함께 살 집이 필요했으므로 그녀들의 남편 중 한 명은 반드시 건축가여야만 했다.

얼굴, 재력 그딴 건 다 필요 없다.

오직 건축하는 직업을 가지고 그녀들이 함께 살 집을 지을 수만 있다면 남편으로 '오케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했던 그녀들이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면서 전국 여기저기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5년 만에 만난 그녀들

5년 전 그녀들은 눈물의 파티를 해야 했다.

남편 사업 때문에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친구의 통보에 그녀들은 우정 시계를 맞추며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남편과 둘이 떠났던 친구는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안고 5년 만에 한국에 왔다.

그녀들 중 누구 하나 건축가 남편을 가진 친구는 없었다.

그녀들 중 누구 하나 아이들의 나이가 똑같은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만나자마자 매일 만난 것처럼 자기들의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30년 전처럼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30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서로 격려하고 깊게 공감하며 함께 새벽을 맞이했다.



그녀들의 새로운 계획

아이 친구 엄마의 다단계 이야기, 죽을뻔한 출산 이야기, 새로운 나라에서의 선 육아 이야기

그리고 빠지면 서운한 그녀들의 옛이야기

밤새도록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다였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못 볼 친구를 위해 그녀들은 새로운 계획을 짰다.

'우리가 스페인으로 가자!'

먼 타지에서 독박 육아로 아이와 둘이서만 걸어 다니는 친구를 위해 스페인의 작은 골목길을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그녀들은 그렇게 또다시 야무지게 계획을 짜고,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약속을 하며 깔깔 웃었다.


각기 다른 다섯 가지의 삶을 찰떡같이 공감해 줄 수 있는 그녀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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