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에 관하여
사랑은 약속이며, 사랑은 한번 주어지면 결코 잊을 수도 사라지지도 않는 선물이다.
- 존 레넌
어느 날 막둥이가 종이를 내밀었다.
불쑥불쑥 편지를 건네는 츤데레 막둥이라
"우와 편지 고마워~"하며 받으려고 하니 멈칫한다.
"이건 편지가 아니고 약속통장이야. 엄마가 약속 잘 지키면 내가 도장을 찍어줄 거야. 10개 모으면 선물도 있어"하며 씩 웃는 막둥이.
"뭐야~ 엄마 설레잖아~ 그럼 앞으로 이쁜 말 많이 해서 도장 받아야겠네."
이렇게 막둥이에게 약속통장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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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침대에서 뒤엉켜 자던 우리 가족
이사를 핑계로 삼 남매 잠자리 독립을 시켜 편하게 숙면 좀 취해보고 싶었다.
각자 원하는 침대를 고르고 혼자서 자보겠다며 호기롭게 약속한 삼 남매.
첫날은 엄마를 찾지 않고 자는 삼 남매에게 감동하였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7살 꼬맹이들이
"물 먹고 싶어요."
"쉬 마려워요."
하며 쉴 새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도 내고 타일러도 보고 협상도 해보았지만, 결론은 혼자 자는 게 무섭다는 아이들.
마음 약한 엄마는 '지금까지 엄마 품에서 자던 아이들이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지'라는 생각에 하루씩 돌아가며 아이들 침대에서 함께하기로 했다.
10살 넘은 첫째 아이는 "난 괜찮아요" 할 줄 알았지만, 순서를 정하는 가위바위보에 제일 적극적인 걸 보면 첫째 아이도 아직 어린아이구나 싶었다.
'한 달이면 적응하겠지!' 했지만 일 년 넘게 매일 밤 3개의 침대를 돌아가며 잠을 청하고 있다.
막둥이 침대에서 자는 날이었다.
막둥이는 자기랑 반대로 누워 자기 발을 엄마가 만지작만지작 해줘야 잘 잔다.
그걸 알고 반대로 누웠는데 갑자기 아니란다.
오늘은 자기가 그쪽이니 나보고 다시 고쳐 누우란다.
내심 '요놈이 나를 놀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막둥이의 말을 들어주면 지는 거라는 아이 같은 유치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반대로 누우면 될 것을 아이를 이겨보겠다고 막둥이와 대치 아닌 대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막둥이는 손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9살이지만 손 빠는 버릇이 있는 막둥이는 속상할 때면 더욱 심해진다.
아차 싶었다.
'엄마 말 연습, 엄마 말 연습' 마음속으로 중얼중얼해 보았다.
'엄마 말 연습'하는 엄마인데 이러면 안 되지!
긍정, 인정, 다정의 말하는 엄마로 변해라 얍!
두 손을 잡고
"우리 막둥이 잠이 안 오는구나! (인정하기)
그럴 수 있어. (공감해 주기)
그래도 엄마는 우리 막둥이가 손을 안 빨고 잘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격려하기)"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연습한 말을 차근차근 쏟아놓고 뽀뽀를 해주었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드르렁드르렁”코 고는 소리
설마 하는 마음에 막둥이 얼굴을 부비부비해보았지만, 미동도 없이 곤히 잠이 들었다.
미라클!
다음날 막둥이에게 약속통장을 당당하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 이쁜 말 한다고 약속한 거 지켰으니깐 도장 찍어줘!"
"무슨 말?"
"어제 엄마가 잘 때~" 어쩌고저쩌고 있는 대로 생색을 냈다.
근데 돌아오는 대답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리고 이미 9개 찍어줬으니깐 이젠 안 찍어줄 건데."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엉 그냥 그래. 선물을 알려줄 수가 없거든. ~"
선물을 기대하라더니 선물을 알려 줄 수가 없어서 마지막 도장을 못 찍어주겠다는 알 수 없는 막둥이의 말.
'약속은 지켜야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랬구나, 네 맘이 그랬구나"로 급하게 마무리했다.
난 말 연습하는 엄마니깐.
“막둥아. 근데, 그러니깐. 엄마는. 선물이. 정말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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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대체 약속통장은 언제 만기가 되는 거냐는 채근에 막둥이는 이렇게 화답했다.
“그건 2022년도 통장이야! 다시 만들어줄게!”
넌 진정한 '밀당의 고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