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엄마 이야기
학교 폭력에 대한 이슈가 아이의 모교를 둘러싸고 있어서 마음이 착찹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룸메이트와 갈등을 겪는 사례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는 반응이다. 다만 나처럼 평민출신(?) 민사고생을 둔 부모들이 가늠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세계가 있었구나, 뒤돌아보니 나도 학폭을 입에 올렸던 경험이 있다.
기숙사 호수와 룸메이트가 적혀진 안내표가 걸렸다. 입학하고나서 행정반 별로 학부모 단톡이 만들어 졌고, 또 별도로 기숙사 룸메이트 엄마방도 만들어 졌다. 중학교때까지는 아주 활발하게 엄마들이 단톡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했었는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민사고 학부모단톡방은 아주 조용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나는 이미 짜여진 개인적인 친분관계들이 강남엄마들 중심으로 형성된 경우 알길이 없고, 지방출신이나 나 처럼 해외출신들은 그저 허공을 맴돌듯 기웃거리며 정보를 얻을 뿐이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는게 내가 아니니, 섭섭할것도 질투가 날일도 아니다. 다행히 민사고 아이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다.
덕고관 입소 준비물 안내가 학부모 단톡에 올라왔다. 생전 처음 보내는 기숙사라서 당황스럽고 뭘 어떻게 준비할지 설레고 긴장되고 즐겁기도 했다. 입학식 한달전에 입소였으니, 국내에 남편과 내가 함께 머물렀던 일주일 정도, 생필품을 사고, 짐도 넣어주고, 하루를 시간내서 1학년 엄마모임도 강남에서 가졌다.
기숙사 준비물중에서 신경썼던것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1. 침구 : 이불, 패드, 베게, 베게커버 여분
2. 의자구매 : 학교에서 단체로 의자를 구매한다, 기숙사에는 책상까지만 제공된다. 그런데 좋은 의자를 사고 졸업때 두고 왔으니 후배들이 잘 쓰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후배들은 선배가 두고간 의자를 잘 찾아보면 비싸게 주고 사지 않아도 될듯하다.
3. 프린터 : 이건 사주라고 해서 사줬는데, 공동 프린터가 있을텐데 왜 사라고 했는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중에 하나다. 물론 언제 사라졌는지 졸업할때 없었다.
4. 스탠드 : 신경써서 구입해야할 품목, 늦게까지 공부하니까 아주 좋은걸로 사주는게 좋다.
5. 목욕타올 : 각 반마다 신청을 받아서 단체로 구입한다. 민사고 프린트를 하고, 학년과 이름까지 새겨서. 집에 아직도 안쓴 민사고 타올이 20장은 더 있다.
6. 목욕,세제,비누,치약 등등 : 안사도 된다, 애들이 소사휴게소를 거의 매주 드나들기때문에, 거기 편의점에서 사서 쓰도록 하자.
7. 자질구레한 학용품 : 수십자루씩 연필, 펜, 지우개 등등 사보냈는데, 물건 아까운줄 모르고 쓰고 잃어버리고 해서, 괜히 사보냈다 싶었다. 필요하면 직접 택배로 사서 쓰도록 하는게 좋다.
8. 간식 : 간식도 부모님들이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장면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데, 왠걸 소사 휴게소에서 맨날 사먹으니 간식대는 일은 필요가 없다.
9. 왠만한거는 다 택배로 그때그때 사서 쓰고, 입소할때는 침구와 교복안에 입을 면티, 실내복, 슬리퍼, 운동화 2-3켤레 정도면 끝.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많이 부딪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숙사내 학폭사건들을 보면서 학생들 사이의 갈등은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이며, 학원내에서 판단하고 반성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사안을 해결하는 방식에 동의한다. 단, 현안은 사법권력을 가진 부모의 개입이 학생의 반성을 막았고, 때문에 해당 학생도 비난을 받게 되는것 같다.
토론에 익숙한 아이들은 수시로 논쟁을 한다. 민사고 아이들은 모든 과목에서 토론을 하고, 교실 안팎에서 논쟁을 벌인다. 욕설도 배우고, 비난하고 비난받으며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그들의 또래문화를 공유한다. 특히 극단적일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독서력에서 왔다고 할수도 있고, 어나더 레벨의 학습수준에 따른 조숙함에서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토론이 생활인 학교 분위기에서 그들에게 정치적 색깔을 갖고, 아집을 부리거나 무리를 지어 논쟁을 이어가는것은 일상 생활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어른들이 하는 그것의 수준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을 웃돌아 가끔은 놀라고, 아들과 이야기 하면서도 성인들과 대화하는 이상의 논쟁을하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기 일쑤다. 그 아이들이 배워가는건 우리들이 해 오던 어른들의 방식이다. 일상용어라고 언급될만도 하다. 성인이 된 우리는 가려쓰는 용어인가? 편견은 인간진화의 원동력이되었다. 편견을 가지고, 편견을 부수고 수정하고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읽었다. 이미 화석화된 정치인들의 입에서 아이들의 논쟁에 핏대를 세워 학교를 향해 교육방식 운운할 자격은 없다. 그들은 입은 깨끗한가? 우리는, 어른들은 이미 굳어져 버렸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떤 것이 성숙한 토론과 논쟁의 방식인지 배워가는 과정이 아닌가.
대화의 대부분이 비속어인 십대들의 문화를 아는지. 민사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를것이 없다. 그들도 너무도 똑같은 대한민국 십대들이었고, 말로 친구에게 상처를 줬던 큰 잘못을 저질렀다. 스승에게 호된 꾸짖음을 받고, 사과하는 방법을 배우고, 벌을 받고, 다시 친구가 되어 어울리면서 스스로 성찰할 시간을 막은건 그들보다 훨씬 모자란 부모의 경솔함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서, 민사고에서 많은 경험을 한것에 감사하게 느끼고, 모교와 동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글을 보니 애잔했다. 따끔하게 회초리를 들어 야단쳐서 가르쳤으면 되었을 문제였다.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면 그 누구의 자식도 욕할 수 없는 입장이 됨을 부모라면 공감하기 때문에, 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고, 부모는 크게 사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미숙했고, 진화중이었지만, 그 부모는 자격상실이다.
두번 정도 기숙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1학년 쯤, 기숙사 방에서 취사가 금지되어 있는데, 6명이 생활하는 방에서 모두가 몰래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아들 혼자 안먹겠다고 버티다가 따돌림을 당했고, 욕설에 모욕적인 말을 듣고 분개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 엄마에게 정중하게 의논했고, 한번도 학폭같은거 신청해본적 없지만, 이번에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사태는 우리들 선에서 잘 해결 되었고, 그 아이도 다른 무리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던 차라 같은 고민을 하던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애들 잘 키웁시다로 마무리했었다. 아이들을 서로 사과하고 불법 취사문제는 학생법정에서는 걸로 해결을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번은 수능을 끝내고 약 1개월반 정도의 공백기에 벌어진 음주사건이었다. 아들이 또래보다 한살이 많았던 터라, 주류구입이 가능했던 이유로 셔틀로 이용(?)당했던 사건이었다. 학교측에서 공식 이메일이 왔고, 우리 부부는 따끔하게 처벌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들은 그동안 모아둔 봉사점수를 모두 사용했고, 추가로 스페셜 트레이닝 ( 인근 산을 등반하는 벌이라고 들었다. 선생님이 인솔하는 건데 아주 좋은 처벌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등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고, 생기부 등에서 기록이 남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다. 다행히 주류반입한 벌만 인정되었고, 음주사실은 해당되지 않아서 선처를 해주신듯 했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를 매 학기 교체한다. 새롭게 룸메가 정해지면 일정 기간을 두고 사전, 사후로 이의 신청을 받아서 최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방을 정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란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소중한 경험이고 큰 배움이었다. 대학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은, 이번 입소때는 혼자 가방 하나 들쳐메고, 이불 한채만 택배로 보내달라는게 다였다. 룸메이트와도 아주 잘 맞추며 지낸다고, 일전에는 화장실 세제와 표백제, 섬유린스를 사들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신나했다.
곧 비전 트립이 재개될 걸로 본다.
이맘때쯤 4-5월 미국으로 9박10일의 수학여행을 떠난다. 다음 편에는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리더로 활동하는 민사고 선배들을 만나러 갔던 비전트립 기록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많은 에피소드를 보유한 건 아니지만 소중한 추억을 더듬고 싶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민사고는 아이들만의 민사고가 아닌 부모에게도 특별한 학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