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진 Jul 22. 2023

민사고, 폐교 소문의 내막

답답한 민사고 엄마 이야기 

 민사고가 폐교 결정, 그리고 대안학교 전환이라는 SBS 보도를 보고 이 또한 편협하고도 무지한 일방적 보도라는 답답한 생각에 브런치 글을 올린다. 인트라넷으로 민사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가 엊그제 보도된 민사고의 대안학교 전환에 대한 학교장의 공지문이 있었다. 그리고 언론은 다투어 자사고 존치라는 현 정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 전환을 모색한다는 괘씸(?) 프레임을 씌우며, 또다시 귀족 타령이 나왔다. 



민사고 학비는 비싸지 않다. 누가 일 년 치 원룸 월세 비용, 식비포함에 사립학교 등록금을 계산해서 3천만 원에 가능하다는 건가? 3천만 원을 12로 나누면, 한 달에 250만 원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니 월세, 학원비, 하루평균 3끼 식비를 계산하면 그것만 해도, 얼마인가? 250만 원으로 가능한가? 수업료는 계산에 넣지도 않아도, 월 250만 원이면 방학을 제외하고라도 택도 없는 금액이다. 비교대상은 수도권 자사고 기준이다. 제발 귀족학교 소리 좀 그만하시길 바란다.  



대안학교 모색 시기 


대안학교에 대한 가능성은 지난 정권 때 급작스러운 자사고 폐지 정책이 감행되면서 고려되었던 사안이었다. 민사고가 아닌 다른 전사고 들도 생존을 위해 고려했던 옵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외에 영재학교, 대안형 특성화 고등학교 등등을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인가형 대안학교로의 전환을 검토하던 중에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인가형 대안학교는, 기존학교의 폐교수순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즉, 동시진행이란, 기존학교가 신입생 선발을 중단한 채로 대안학교 설립을 동시 진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학교 설립과 폐교 문제는 교육청 소관이기에 가능성을 문의하던 중, 언론에 노출된 것이다.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민사고가 현 정권의 결정을 무시라도 하듯이 대안학교 모색을 하느냐는 식의 보도가 나오는지 답답하다. 


꼼수라고? 


민사고 대안학교 전환을 고려하는 데에는 2025학년부터 의무화되는 20% 지역인재 선발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의 풀이방식인지 묻고 싶다. 기자들의 기사 작성 방식은 교묘하게 주어를 숨기고, 수동태 문장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필자도 기사작성을 수년간 하면서 '~로 풀이된다', 혹은 '~라는 지적이다'는 식의 문장에 익숙하다. 누가 풀이하고 누가 지적한다는 말인가? 기자는 객관적인 정보를 올바로 수집하고 '풀이' 하길 바란다. 


대안학교 전환을 고려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건학이념의 장애요인이 되어온 자기주도 학습전형, 입학전형의 후기전환, 사회적 배려대상 전형, 일반고 전환을 위한 시행령 폐지 예고, 지역균형 선발 등의 감수의 한계

2. 교과서와 국민 공통 교육과정을 포함한 교육과정의 자율성 확대

3. 민사고가 원하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구성된 교원 확보 


민사고의 건학이념은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다. [각계각층의 지도자 양성학교]라는 앰블럼이 달려있는 민사고 가방은 유명하다.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을 교육하는 학교가 민사고다. 상위권의 입시결과를 내는 학교가 아닌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분야를 발굴하고 심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고, 북돋아주는 학교이고, 전문분야의 일인자들이 교사로 활동하며 교실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서는 방법을 가르친다. 실제로 민사고 졸업생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분야에 소금처럼 빛나는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다. 1학년 1학기 미국으로 미전트립을 갔을 때, 넷플릭스를 견학 가서 현직에 근무 중인 본교 선배들을 만나고, 넷플릭스 측에서 단체 견학을 허락한 건 삼성과 민사고뿐이라고 안내했던 기억이 난다. 


교과과정의 차별성은 민사고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원서 사용은 물론이고, 영어수업이 가능한 교수진이 포진해 있다. 철학과 경제, 정치 관련 선택과목 교재를 대학교재로 사서 보낸 기억이 난다. 총 개설과목은 200개가 넘고 교재로 쓰이는 원서는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 학기 시작 전부터 아마존에서 구입하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공통 교육과정과는 다른 분야이니 각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들의 수강생 수는 네댓 명에서 열명 남짓, 많아야 20명 정도 그것도 모든 학년이 섞인 무학년, 무계열 선택이다. 


석박사 출신의 교수진들은 기본이고, 각 분야의 실질적 전문가에서 평생을 민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외국인 교사까지, 보석 같은 아이들을 세계적 지도자의 씨앗으로 키우려는 선생님들이시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셔야만 한다. 자율적인 교사 임용권과 교과운용의 자율성 역시 현재의 불안한 자사고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학교의 판단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집되어 수업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진다.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이 이미 아니었고, 하나의 질문에 무한개의 답변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은 쓰고 외우는 수업이 아닌 토론과 발표 수업에 익숙해진다. 불안한 자사고 정책은 이런 민사고의 교육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국의 머리 좋은 아이들을 뽑아 서울대에 많이 보내려는 학교 취급을 하는데, 민사고는 서울대 보내는 학교가 아니다. 가려고 해도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서울대에서는 서류만으로 민사고 학생들을 가려내지 못한다. ("그러라 그래")



민사고에 들어가면 서울대에 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민사고에서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서울대에 보내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한다. 민사고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중학교 때 1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아이들이 민사고에 와서 1/3은 평범한 중간정도의 성적을 받고, 1/3의 아이들은 하위권에 꼴찌를 경험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대에 가는 것은 상위 20-30% 정도이고 나머지는 일반고와 입결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러 번 쓴 적이 있다. 아직도 민사고는 서울대 가는 학교라는 헛소문 프레임을 씌우고, 헛된 꿈으로 아이들을 보내려는 학부모는 없길 바란다. 1학년 2학기, 여기가 아니다 싶은 전학생들이 속출한다. 


민사고에 오면 오히려 불리하다. 일반고에서 서울대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민사고에 와서 중 하위권 대학도 떨어진다. 수능은 독학이니 재수를 해야 다음 입시를 도전할 수 있다. 지역선발 전형이나 횡성전형 등 다양한 특별전형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까? 지원 인원이 충족되지 않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들은, 그리고 학부모들은 민사고를 꿈꿀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민사고의 브랜드는 학교의 건학이념, 우수한 교사진,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그보다 앞서, 이곳을 꿈을 꾸는 곳이라고 믿는 학생들과 부모님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결정은 아이와 부모의 선택이다. 민사고에 오고 싶은 아이들은 절실하다. 특별 전형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할 준비가 된 아이들이 오는 곳이다. 



민사고는 대안이 필요하다. 


지난해 코로나 시국이 마침표를 찍으며 학생들이 등교를 하기 시작했고, 오랜 투병에 계셨던 설립자 최명재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교육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면서 고집스럽게 사재를 털어, 회사는 망하더라도 학교는 건재해 야한 다를 부르짖으며, 민족정신을 가진 세계적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교육이념으로 세운 학교는 고인의 애국심, 교육 철학의 발현이었다. 정권의 타깃이 되며 교육정책이 흔들릴 때마다 존폐의 기로를 걸어야 한다면, 100년의 교육대계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꼴찌를 해도 민사고에 오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학교를 뒤 흔들어 놓을 것이 아니라, 왜 인가를 궁금해하고 장점은 배워 나누고 공유하는 본받음이 우선이 아닐까? 


우리 아이가 민사고를 너무너무 원한다는 이메일을 매일 받는다. 나는 신중하게 선택하시라는 조언을 늘 드리고 있고, 섣부른 서울대 꿈은 진작에 버리라고 말씀드린다. 훌륭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도 좋다고 조언드린다. 


학교에 대한 부탁도 덧붙인다.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 150여 명을 선발한 뒤 상위 1/3을 위한 교육에 힘을 쏟는 것만큼 그 이상의 노력이 나머지 2/3의 학생들을 위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자율을 표방하며, 스스로 규제하고, 실패와 절망을 경험하고 회복하는 데에도 학생에게만 맡겨두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개로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글을 기약한다.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은 발전의 징조이다.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내면의 모순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사고를 위한 진정한 대안이 무엇일지 교육당국도, 학교도, 언론도 제대로 해석하고 해법을 찾는데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만 보면 미안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AI 낙관론: 인공지능이 두려운 직장인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