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by 남킹

남자

방 안을 감돌던 희미한 푸른 기운이 새벽의 장막처럼 걷히자, 멈춰 있던 사물들이 저마다의 윤곽을 되찾으며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어김없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해는 떠올랐다. 나는 눈을 뜬 채, 그러나 세상의 모든 움직임으로부터 분리된 듯 누워, 한동안 텅 빈 시선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여름 아침의 햇살은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춤추게 하며 방 안을 느릿느릿 점령해 들어왔다. 그 빛줄기는 마치 낡은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필름처럼, 아득하게 멀어진 그 시절의 기억들을 스크린 위에 아련하게 투사했다.

어젯밤, 얕은 잠의 수면 아래를 부유하던 꿈의 잔해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살갗에 시리도록 스며들던 마루 널판의 냉기, 골방 깊숙한 곳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정체 모를 하얀 연기의 몽환적인 흐름. 제삿날이면 어김없이 마루를 가득 메우던 어른들의 낮고 불분명한 구시렁거림, 그 소리들 틈에서 남몰래 삼켜야 했던, 사무치도록 절망스러운 그리움의 메아리.

문득 장면은 바뀌어, 뾰족한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던 숲 속,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왔던 짧고 강렬한 환희의 섬광. 코듀로이 남방 자락과 짙은 머릿결을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는 어떤 미련도 없이 돌아선다. 너무 하얘서 오히려 창백해 보이는 살결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되어 기나긴 여정으로 이어졌던 관계는, 예고 없이 필름이 끊기듯 단절된다. 부재가 역설적으로 빚어낸,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인력. 모든 기억의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머릿속을 부유하며 어지럽게 맴돌았다.

기억의 편린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혼란스럽게 반복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여전히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래된 천장은 세월의 때가 얼룩덜룩 배어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어김없이 곰팡이가 허옇게 군락을 이루어, 마치 폐허의 천장화처럼 음습한 아름다움마저 자아냈다. 오직 천장만을 본다면, 이곳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버려진 폐가라 해도 믿을 만큼 황량했다.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앉아 갈라진 천장의 미세한 틈새로, 어쩌면 우리 가족이 애써 숨겨왔던, 혹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희미한 한숨처럼 새어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곳은, 나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청소년기 대부분이 응축된 방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줄곧 비어 있었다. 사실상 막냇동생 정수가 있긴 했지만, 그는 유년기 대부분을 근처에 사는 이모 댁에서 보냈다. 이모는 우리 시장 바닥에서는 보기 드물게 부유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빈 방은, 곧 바퀴벌레들의 왕국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방역 덕분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에는 밤에 불을 끄기가 무섭게 그들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푸덕거리는 날갯짓 소리는 밤의 정적을 깨뜨렸고, 그들은 온 방 안을 제집처럼 밤새도록 활보했다. 그들의 반질거리는 까만 몸체가 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의 유물처럼 기이하고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때로는 잠든 내 팔 위로 슬그머니 기어오르던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이, 현실과 악몽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허물어뜨리곤 했다.

낡고 허름한 3층짜리 연립 아파트 2층, 가장 끝에 자리한 우리 집은 시끌벅적한 시장통 한복판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다. 그 지리적 특성 탓인지 유난히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주인을 잃고 떠도는 길고양이들이 들끓기로 악명이 높았다. 건물 자체가 시장의 일부처럼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있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생동감 넘치는 소음과 우리 집 안의 무거운 침묵 사이, 그 어딘가에 고립된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이곤 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상가 번영 위원회에서는 마치 중요한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몇 차례씩 집 안팎으로 살충제와 쥐약을 대대적으로 살포했다. 계절의 변화보다 더 명확하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우리 동네만의 잔인하고도 익숙한 의식이었다.

살충제를 집안 구석구석 뿌린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끔찍한 광경과 마주해야 했다. 거실, 부엌, 큰방, 작은방 할 것 없이 온 집안 바닥에 크고 작은 바퀴벌레들이 수없이 나뒹굴었다. 어떤 놈들은 허망하게 등을 바닥에 대고 가느다란 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고, 또 어떤 놈들은 벽 모서리나 가구 틈새에 몸을 웅크린 채 이미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면 나와 형은, 마치 마당의 낙엽을 쓸어 담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빗자루를 가져와 그것들을 쓱쓱 쓸어 담아 휴지통에 버리곤 했다.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그 풍경이 타인의 눈에는 얼마나 기괴하고 섬뜩하게 비칠지, 그 시절의 우리는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워낙 지겹도록 봐 온 광경이라, 새삼 화들짝 놀라며 슬리퍼를 들고 끝까지 추격하여 처단할 만큼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 때문에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비위가 뒤틀리지도 않았다. 다만, 밥상 위의 밥이나 국그릇 속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가끔 잠결에 이불을 들추다 손바닥만 한 거대한 놈과 눈이 마주치면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는 듯한 서늘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 이내 우리의 무감각한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망각되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을 둘러싼 모든 고통과 슬픔, 부조리함이 그런 식으로 무던하게 흡수되고 잊혀 갔는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제법 가깝게 지내던 동기와 후배 몇몇이 여름휴가를 빌미 삼아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경비를 절약하려는 가난한 대학생의 심정으로, 우리 집에 며칠 머물면서 인근의 유명 해수욕장들을 둘러볼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집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애써 감추려 했지만 역력히 드러나는 불편함과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못했다. 시장에서 밀려드는 정제되지 않은 소음과 온갖 잡다한 냄새의 향연, 좁고 어두컴컴한 계단, 그리고 마침내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설명하기 힘든 우리 집 특유의 눅눅하고 침체된 공기. 결국 그들은 하룻밤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 마치 도망치듯 허둥지둥 짐을 싸서 떠나 버렸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그들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거대한 바퀴벌레를, 심지어 날개까지 푸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난생 처음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문득,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깨달았다. 내게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이 기괴한 일상이, 타인에게는 얼마나 큰 공포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비단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을 둘러싼 많은 부분들이 그러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쥐약은 우리 집이 있는 층의 계단과 복도는 물론이고, 시장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온갖 골목길과 하수구 구멍 주변까지, 쥐가 지나다닐 법한 모든 경로에 촘촘하게 뿌려졌다. 마치 잔인한 만찬을 베풀기라도 하듯, 옥수수나 빵 부스러기 같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알록달록한 색깔의 독극물이 곳곳에 놓였다. 쥐약을 뿌린 다음 날 아침이면, 시장 골목 곳곳에서는 마치 개와 고양이들이 처절한 2차 세계대전이라도 치른 듯, 혀를 길게 내밀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정작 이 잔혹극의 주인공이어야 할 쥐들의 사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마지막 고통의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어둡고 은밀한 은신처로 돌아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변한 집조차 없이 시장 바닥을 떠돌던 개와 고양이들에게는, 죽음의 순간조차 안식처를 찾을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김없이 시장 끝자락에 임시 컨테이너 건물로 세워진 상가 번영회 사무실 앞에서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바로 죽은 동물들의 주인들이 나타나 번영회 측에 변상을 요구하며 거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이 언쟁은 너무나 반복적이어서 거의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누구도 그 과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였다. 동물의 주인들 역시 대부분 이곳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영세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는 오랜 시간 형성된, 가난과 고단함을 공유하는 이들 특유의 암묵적인 연대감 혹은 체념 같은 것이 존재했다.

더욱이 그들이 키우던 개나 고양이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 온 것이 아니었다. 시장통에서 알음알음으로 새끼 한두 마리를 얻어다가, 가게 마루 밑 구석에 낡은 담요 한 장 깔아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전부였다. 먹이 역시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나 팔다 남은 생선 대가리 따위가 고작이었다. 그런 식으로 키운 미물이라 해도, 매일같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꼬리를 치던 존재가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순간적인 상실감과 허전함이 앞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 뿐이었다. 그 격렬했던 감정도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희미해지고, 그들은 다시 예전의 고단한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죽음조차 삶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부분, 혹은 피할 수 없는 풍경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경계가 이토록 희미하고 무뎌진 장소가 또 있을까.

채소 가게를 하던 우리 집 개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 마리나 짧은 생을 허망하게 마감했다. 한 마리는 쥐약 중독으로, 다른 한 마리는 새벽 배달을 나온 시장 트럭에 치여, 그리고 마지막 녀석은 다시 쥐약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물론, 우리 역시 단 한 푼의 변상도 받지 못했다. 아니, 요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시장의 불문율이었으니까.

특히 마지막으로 죽은 개는, 정수가 열 살 무렵 친어머니의 품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우리 집으로 와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았던 대상이었다. 그 작고 복슬복슬한 하얀 털뭉치는 정수에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새롭게 편입된 가정에서 유일하게 조건 없는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 개의 허망한 죽음이 찾아온 날은, 공교롭게도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듯 찌는 듯이 더웠던 한여름, 증조할아버지의 제사가 있던 바로 그날이었다.

제삿날이 다가올수록 집 안의 공기는 미묘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졌다. 그것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들에게 그날은 풍성한 용돈과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는 축제인 동시에, 아버지의 예측 불가능한 기분과 어머니의 침묵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시험과도 같은 날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전국 팔도의 공사 현장을 마치 한량처럼 떠돌아다녔다. 훤칠한 인물에 멀끔한 허우대, 그리고 이 고향 바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학원까지 졸업한 식견을 갖춘 그는, 그러나 타고난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과부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급기야는 우리와 배다른 동생까지 뜻하지 않게 얻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종손이라는 무거운 위치 때문인지, 조상님들의 제사만큼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하러 집으로 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낡은 문틀에 몸을 기대어 멀리 골목 어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그 마른 등 뒤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설렘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아주 오래되어 닳고 닳아버린 의무감, 혹은 깊은 체념의 그림자만이 어른거릴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와 우리 형제가 일 년 동안 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은 추석과 설날 명절, 그리고 할아버지, 증조부모, 고조부모님의 제삿날, 이렇게 딱 정해진 날들과 간혹 공사 현장이 이 도시 근처에서 벌어질 때뿐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한동안 텅 비어 있던 우리 형제들의 주머니는 금세 두둑해졌다. 그는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식들을 불러 모아, 여행 가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동전 주머니를 마룻바닥에 쏟아놓고는, 한 움큼씩 손으로 퍼서 우리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다. 아버지의 투박한 손아귀에서 동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때의 그 차갑고 경쾌한 금속성 소리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늘 허기져 있던 우리의 감정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유일한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이상하리만치 잔돈으로 물건값을 치르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껌 한 통을 살 때조차 늘 천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런 기벽 덕분에 그의 낡은 여행용 가방에는 항상 온갖 종류의 잔돈들이 묵직하게 쌓여 있었고, 그 돈들은 고스란히 우리 형제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와 닿는 동전들의 차가운 감촉, 그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를 대신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실체였다. 때때로 나는 그 동전들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 동전들이 아버지의 손을 거쳐 갔을 전국의 수많은 낯선 장소들, 그가 스쳐 지나갔을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끝까지 감추고 싶었을 그의 또 다른 삶의 비밀스러운 흔적들까지도.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삿날이면 서울 및 경기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네 명의 삼촌들과 세 명의 고모들이 속속 도착했고, 그들이 올 때마다 우리들의 주머니는 점점 더 풍족해졌다. 작은 삼촌은 늘 돈 봉투를 건네기 전에 우리의 이마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며 애정을 표현했고, 둘째 고모는 어디서 구했는지 항상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십 원짜리 동전만을 골라 우리 손에 쥐여주는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촌들까지 북적거리며 함께 오는 날이면, 우리는 그렇게 모인 용돈을 밑천 삼아 구멍가게에서 알록달록한 얼음과자를 하나씩 입에 물고 동네 만화방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문방구에서 플라스틱 조립식 로봇이나 비행기를 사 와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접착제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조립에 열중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제사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신호는, 어머니가 가게 뒤편의 낡은 창고에서 먼지 쌓인 자동차 타이어만 한 거대한 프라이팬과 산더미 같은 접시들, 그리고 놋쇠 제기 용품들을 힘겹게 꺼내면서부터였다. 그 육중한 무쇠 솥뚜껑 같은 팬을 들어 올릴 때마다, 어머니의 가느다란 팔뚝에는 굵은 핏줄이 힘겹게 불거져 올랐다. 돌이켜보면, 그 위태롭고 고단해 보이는 모습 속에 어쩌면 우리 가족의 삶 전체가 응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미리 삼촌들이 우편환으로 부쳐준 돈을 우체국에서 찾아, 우리 형제들을 앞세우고 이 도시에서 가장 크고 번잡한 수산물 시장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제법 먼 거리였다.

수산물 시장으로 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모험과도 같았다. 첫 번째 버스에서는 늘 창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 형제간에 사소하지만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고, 두 번째 버스를 탈 때쯤이면 이미 지친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나 비릿하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가장 먼저 우리를 강렬하게 맞이했다. 그곳은 한낮의 태양 아래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선 비늘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상인들의 우렁찬 함성, 그리고 물건을 고르는 거친 손길들이 뒤엉켜 혼돈과 활기가 넘쳐나는 거대한 생명의 장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새벽 경매에서 올라온 제수용 생선 중에서 유독 크고 실한 놈들만 골라 값을 치렀는데, 이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고집에서 비롯된 관행이었다. 아버지의 또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버릇이라면, 바로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의 크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었다. 마치 작은 생선을 올리는 것은 조상님들께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어른 머리통만 한 대왕 문어와 어린아이 키만 한 길이의 민어, 그리고 가장 큰 제사용 접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넓적한 도미를 고집하셨다. 여기에는 어떤 경건한 종교적 신념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한 아버지의 완고한 집착만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 제사는, 평소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부재를 만회하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잠시나마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버스 안을 온통 비린내로 진동시키며, 낑낑거리며 무거운 생선 꾸러미들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곧 받게 될 두둑한 용돈과 제삿날의 특별한 음식들에 대한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나의 마음만은 이미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머릿속으로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조립식 장난감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느라 사실 힘든 줄도 몰랐다. 생선을 감싼 축축한 신문지 위로 비린 물이 배어 나와 손가락 끝이 쩍쩍 달라붙는 불쾌한 감촉마저도, 그날만큼은 즐거운 축제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나에게 제삿날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축제 기간과 다름없었다. 생선 외의 제수용품들은 모두 우리 동네 시장에서 해결했다. 나물에 쓸 채소야 당연히 우리 가게에서 그냥 가져오면 되었고, 과일은 바로 옆집 청과물 가게에서 사 오는데, 그 가게의 주인이 바로 나의 이모였다. 이모는 제사 며칠 전부터 유난히 크고 싱싱한 과일들을 따로 빼놓았다가, 어머니에게 거의 원가나 다름없는 헐값으로 넘겨주곤 했다. 때로는 아예 선물이라며 그냥 안겨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굳어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고마움과 동시에 차마 숨길 수 없는 자존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아주 미세한 떨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채소 가게도 아주 오래전에는 이모의 과일 가게 자리였다. 이모는 처녀 시절부터 일찌감치 독립하여 이곳 시장통에서 과일 장사 하나로 잔뼈가 굵은, 그야말로 터줏대감과 같은 존재였다. 장사 수완도 뛰어났고, 과묵한 어머니와는 달리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는 붙임성 덕분에, 처음 두 평 남짓한 작은 좌판으로 시작했던 가게는 이제 스무 배도 넘게 확장되었다. 게다가 콩나물 공장과 어묵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지금의 이모부를 만나면서, 이모는 명실상부 우리 시장의 최고 갑부 반열에 올랐다. 이모의 가게는 사시사철 형형색색의 탐스러운 과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과일들이 뿜어내는 달콤하고 향긋한 내음이 골목 끝까지 퍼져나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반면 우리 가게는 언제나 그 옆에서 초라하고 조용했다. 진열된 채소들은 주인의 마음을 닮은 듯 소리 없이 시들어갔고, 어머니도 그 시든 채소들처럼 말이 없었다.

반대로, 물질적인 부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유흥과 풍류에만 집착하던 아버지는 전국 팔도를 정처 없이 떠돌며 두 집 살림, 혹은 세 집 살림까지 살다 보니,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귀한 토지며 번듯한 집이며 심지어는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선산까지, 결국 곶감 빼 먹듯 야금야금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한때 이 지역에서 가장 너른 과수원을 소유했던 유서 깊은 집안이, 이제는 시장 한구석의 비좁고 허름한 채소 가게로 초라하게 쪼그라든 것이다. 그러자 평생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하고 살아온, 무뚝뚝하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였지만, 당장 어린 자식들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별수 없이 친동생인 이모의 가게 한 귀퉁이를 빌려 장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씨 고운 이모는 임대료 한 푼 받지 않고 자신의 가게 귀퉁이를 선뜻 잘라서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장사에 필요한 선반이나 저울, 각종 집기들까지 아낌없이 제공해 주었다. 더욱이 장사에는 영 소질이 없는 곰 같은 어머니에게 손님을 대하는 법부터 물건을 떼어오는 요령까지 여러 가지 노하우를 옆에서 살뜰히 가르쳐 준 덕분에, 어머니는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시장 바닥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작은 간판도 하나 내걸었는데, 첫째 아들인 형의 이름을 따 <인수네 야채 상회>라고 지었다. 비바람에 색이 바랜 그 낡은 간판은, 유난히 날씨가 흐린 날이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어둡고 침침한 시장 골목 안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증명하는 표지판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장으로 향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시간이 되면 마치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하셨다. 시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밤새 약간 시들었을지도 모를 채소들을 가지런히 매만져 진열하고, 시든 잎사귀는 하나하나 정성껏 손으로 떼어내며 하루의 장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지만, 장사는 늘 시원찮았다. 어쩌면 채소들이 주인의 마음에 드리워진 깊은 슬픔을 닮아, 사람들의 눈에도 유난히 생기 없고 시들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이었다. 유난히 숨 막히게 덥던 여름날. 증조할아버지의 제사가 있던 날. 어머니는 어린 정수에게 가게를 평소보다 일찌감치 맡기고, 오랜만에 시골에서 올라온 막내 고모와 함께 집에서 제사 음식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부엌에서는 쉴 새 없이 식칼이 도마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와 기름에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 커다란 솥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고, 찬방에는 벌써 색색의 고운 나물들이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 제사상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 고모는 언제나 그랬듯이 특유의 쾌활하고 큰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집안의 분위기를 띄웠고, 그 해맑은 웃음소리가 어머니의 굳게 닫힌 표정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미리 상가 번영회에서 쥐약을 놓는 날이라는 공지를 들었던 정수는, 아침부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보물 1호인 하얀 강아지를 예의 주시하며 가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손님들이 유독 많이 몰려들었고, 정수는 어머니를 대신해 채소를 다듬고 저울에 무게를 달아 값을 계산하느라 잠시 정신이 팔렸다. 바로 그 짧은 순간, 흰 털뭉치 같던 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으로 가게를 뛰쳐나가 미친 듯이 개를 찾아 헤맸고, 다행히 정말로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시장 골목 어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고 했다. 온통 짧고 새하얀 털로 뒤덮인 그 개는, 주인을 발견하자 반가움에 꼬리를 파르르 힘차게 흔들며 정수에게 달려왔고,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게 평상 밑에 마련된 자신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쏙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1분 남짓 흘렀을까. 갑자기 평상 밑에서부터 기묘하고 섬뜩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소리는 점점 격렬해지며 낮은 평상의 나무 천장을 쿵쾅거리고 미친 듯이 부딪히는 격렬한 몸부림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듣고 옆 가게에 있던 이모가 황급히 달려왔다. 이모는 그 끔찍한 광경을 차마 어린 정수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듯, 다급하게 정수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그의 손목을 잡아끌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눈치 빠른 이모부가 이미 숨이 끊어진 개를 조용히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모부는 정수가 그토록 애원하며 묻는 데도, 개를 묻은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끝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아주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 근처라고만 막연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먼 훗날, 나는 어머니와 이모가 무심코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날의 숨겨진 진실을 얼핏 엿듣게 되었다. 이모부가 죽은 개를 손수레에 싣고 시장 뒤편의 야산으로 향하던 중, 마침 그 길목에서 개장수를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버릴 것이라면 자기에게 달라고 개장수가 청했고, 이모부는 별생각 없이 그러라고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 개장수의 커다란 포대 자루 안에는 이미 그날 아침 쥐약 때문에 죽은 다른 개와 고양이 몇 마리가 담겨 있었고, 그의 아들로 보이는 어린 소년 역시 작은 포대기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아버지를 뒤따르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 개장수 부자는 언제부터인가, 귀신같이 쥐약을 살포하는 날을 용케 알고는 그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시장 주변에 나타나 죽은 동물들을 수거해 간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생계 수단이었으리라.

여자

회사라는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회색빛 고치와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매일 똑같은 실을, 그러나 결코 보이지 않는 실을 뽑아내며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것은 체념이라는 이름의 명주실이었고, 권태라는 이름의 무명실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분간되지 않는 날들의 연속. 때로는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필름이 끊어진 채 같은 장면만을 끝없이 반복 상영하는 고장 난 영사기처럼, 무력감의 심연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나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약속된 파멸의 전주곡처럼, 기계적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가 고요를 찢었다. 나는 부유하는 의식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간신히 눈을 떴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밤의 장막 저편에서 건너온 꿈의 잔해들이 아직 눈가에 어른거렸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나는 유령처럼 침대에서 빠져나와 샤워 부스로 몸을 옮겼다. 뜨거운 물줄기가 밤새도록 굳어 있던 근육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것은 마치 축축하고 차가운 묘석 위에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과도 같았다. 수증기가 자욱한 욕실 안에서, 물줄기는 밤새 쌓인 피로의 표피를 씻어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은 찰나의 기만에 불과했다. 영혼의 가장 깊은 지층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권태의 퇴적암까지 씻어내지는 못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김 서린 거울 속의 나는 흐릿한 유령, 존재의 윤곽이 불분명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일곱 시 이십 분,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어김없이 도시를 감싸 안은 잿빛 안개가 시야를 흐렸다. 그것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이 도시의 영혼 그 자체인 듯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결을 억누르고, 색채를 빨아들이며, 존재의 무게를 짓누르는 거대한 회색의 압력이었다. 계절의 변화는 그 회색빛의 농도만을 미묘하게 바꿀 뿐이었다. 겨울이면 창백한 흰빛이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봄이면 황사의 누런빛이 더해졌으며, 여름이면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섞인 메마른 황톳빛이 숨을 막히게 했다. 가을조차도, 그 찬란하다는 단풍의 색채는 이 회색의 필터를 거치면 채도를 잃고 바래버린 사진처럼 보였다. 나는 그 변화 없는 풍경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숨을 쉰다기보다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에 무력하게 떠밀려 표류하는 부유물과 같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삶은 생존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언제나 거대한 압력솥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삶의 전선으로 떠밀려 나온 익명의 군중 속에서, 나는 하나의 부품처럼 끼어 흔들렸다. 그들의 피로와 초조함, 희미한 희망과 깊은 절망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탁한 공기가 열차 안을 가득 메웠다. 마주 선 두 남자가 암묵적인 합의라도 한 듯 어깨를 살짝 기울여 만든 미세한 틈. 그 비좁은 공간 속에서 나는 구겨진 책을 펼쳐 들었다. 다음 역까지 불과 몇 분.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줄이라도 더 읽어 내려 애썼지만, 활자는 의미를 잃고 눈앞에서 흩어지는 먼지처럼 부유했다. 대신 지하철 바퀴가 선로 위를 구르는 둔탁한 진동과, 주변 사람들의 날숨과 들숨이 뒤섞인 후텁지근한 공기만이 고막을 어지럽혔다. 책 속의 세계는 아득히 멀고, 현실의 무게는 살갗에 와 닿을 듯 너무도 가까웠다.

내가 근무하는 빌딩은 도시의 다른 건물들처럼 바둑판 위의 돌처럼 정확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변함없을 것이다. 네모난 창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무미건조한 패턴. 그 창문들은 마치 수많은 감시의 눈처럼, 혹은 수많은 절망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 역시 그 풍경의 일부처럼 생기 없이 굳어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공허한 눈빛. 문득,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우리의 세포는 매 순간 죽고 새롭게 태어난다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논리적으로 어제의 내가 아닐 터였다. 그러나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존재인가? 이 지독한 반복성 속에서 변화란 과연 가능한가?’ 세포의 생물학적 교체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공허와 권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단단하게 응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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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현수는 일종의 예외, 혹은 견고한 회색빛 세계에 난 가느다란 균열과 같은 존재였다. 주말이 되면 나는 마치 오랜 순례자처럼, 약속처럼 그에게 향했다.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이름 없는 모텔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은 세상의 시간과 법칙이 잠시 정지하는, 우리 둘만의 작은 섬이었다. 그곳의 공기는 언제나 불가사의한 온기로 가득했다. 창문은 아침이면 눈부신 햇살을 방 안 가득 쏟아냈지만, 정작 나는 두꺼운 이불 속에 고치처럼 몸을 말고 그 찬란한 빛을 외면했다. 세상의 빛은 나에게 구원이 아니라, 나의 어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잔인한 조명일 뿐이었다. 현수의 품 안에서만 나는 비로소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세상에 갇혀 있다는 감각.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수 역시 깊이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이 바로 그 증거였으니까. 그는 나처럼 세상을 극단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소모되고 있다는 무력감을 공유했다. 하지만 나는 그 감각을 훨씬 더 극단적으로,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이 세계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임시적인 공간,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고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만들어야 할 그 '고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여 나비로 변태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막막한 불확실성이 나의 내면을 끊임없이 흔들었고, 그 내적 동요는 종종 예측 불가능한 외적 행동으로 표출되곤 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나른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모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팔을 베고 누워, 나는 앨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나의 나체 사진들이 수북이 꽂혀 있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누드를 넘어선, 때로는 기괴하고 도발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자세의 연속이었다. 깊은 숲속에서 나무의 정령처럼, 거친 바위 위에서 풍화된 자연의 일부처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포세이돈의 딸처럼, 때로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고독한 수행자처럼. 그 사진들은 단순한 자기 과시나 노출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추구하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는 내 나름의 철학적 실천처럼 보였다. 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는 나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벗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나의 몸은 각각의 풍경 속에서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때로는 나무의 뒤틀린 가지처럼, 때로는 바위의 거친 표면의 연장선처럼, 때로는 파도의 부드러운 곡선처럼 보였다. 그것은 에로티시즘을 넘어선, 어떤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나의 육체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자연이 나의 영혼의 일부가 되는 듯한 신비로운 합일의 순간들이 그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난 사실 나체주의자로 살고 싶었어. 옷이나 집, 소유 같은 모든 사회적 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원시적인 세상에서 말이야."

나의 고백에 현수는 사진들을 잠자코 넘겨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경이로움과 약간의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급진적인 아나키즘에 빠지게 된 거야?" 현수가 마침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오래전부터." 나는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아득한 시간의 거리가 느껴졌다.

"오래전? 너무 모호한 대답인데."

"어릴 땐 말이야, 지독한 소유욕에 사로잡힌 이기주의자였어.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지. 인형 하나, 크레파스 한 자루까지도 내 영역을 침범하는 걸 용납 못 했어. 내 방은 나만의 왕국이었고, 그 안의 모든 것은 나의 신민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거야.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짓인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그런 완전한 자유의 상태에 미친 듯이 끌리기 시작했지."

아마도 나는 작은 공주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견고해 보였던 경계가 실은 얼마나 허구적이고 덧없는 것인지를 깨달은 순간, 나는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전복시키며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소유에서 해방으로, 집착에서 초탈로, 구속에서 자유로.

"너는 어때?" 내가 물었다.

"뭐가?" 현수가 되물었다.

"뭐, 아무거나. 네 삶은 어떻냐고?"

"아무것도…." 그의 대답은 허공에 흩어졌다.

"그게 뭐야? 너도 모호한데." 나는 킥킥거렸다. 그의 모호함 속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나를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고독을 두려워하는구나, 너?"

그의 날카로운 직관에 순간 숨을 멈췄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어. 이 세상에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그것이 고독의 다른 이름일 테니까."

"그럼 너는?" 그는 반문했다.

"나? 나는 두려움 같은 건 없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두렵지 않은데?"

"내 자신이 내가 상대해야 할 가장 두려운 존재거든. 그러니 세상에 그보다 더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아주 간단해. 자기 자신과 끝없이, 아주 격렬하게 싸우다 보면, 세상의 다른 모든 두려움들은 시시하고 하찮게 보이게 되거든. 내 안의 악마와 매일 밤 레슬링을 한다고 생각해 봐. 바깥세상의 괴물 따위는 귀여워 보일걸."

"끝없는 싸움이라니." 현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연민과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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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우리는 모텔의 작은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발아래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땅 위에 쏟아진 별자리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밤공기는 서늘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은 희미한 배경음악 같았다.

"넌 날 두려워하지? 그렇지?" 나는 문득 물었다.

"두려워한다고?" 그는 의외의 질문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래, 두려워하고 있잖아. 내가 너무 강렬하다고 느끼지 않아? 때로는 너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거나, 너의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것 같아서 불안하지 않아?" 나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확신에 찬 단호함 대신,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불안의 떨림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낯설면서도 어딘가 연민을 자아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확실히 강렬했다. 나의 존재감,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경한 에너지, 세상을 향한 나의 불타는 듯한 분노는 때때로 그를 압도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는 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방인이었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했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놀라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넌 …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불시착한 존재 같아. 네가 보여주는 세계, 네가 살아가는 방식은... 때론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야."

그의 대답에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는 다른 차원에서 왔어.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그 차원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장난기 없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뿐이지."

"그렇다면 이 세계는 대체 뭐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 현실은?"

"고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애벌레야. 아직 날개가 돋지 않은 미숙한 존재들이지. 그리고 이 세계는 우리가 더 완전한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고치일 뿐이야. 그 변화의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끔찍하게 느껴지기까지 해.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나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야. 고통 없이 아름다운 날갯짓은 불가능해. 단지 나는, 내가 애벌레라는 사실, 내가 지금 고치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애벌레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고치 속에서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잖아. 그게 나와 그들의 유일한 차이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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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호수로 향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점차 회색빛을 벗고 푸른빛을 더해갔다. 단조로운 건물들이 뜸해지고, 그 자리를 이름 모를 들꽃과 무성한 나무들이 채웠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통과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해 질 녘, 잔잔한 호수의 수면은 거대한 거울처럼 노을에 물든 하늘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주황색과 분홍색, 보라색이 뒤섞인 하늘의 색채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광경에 매혹되어,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투명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나를 따라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그것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상쾌한 종류의 차가움이었다. 내 몸과 마음을 짓누르던 모든 긴장과 불안, 회색 도시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물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장난치고, 웃고, 서로를 뒤쫓았다. 맑은 웃음소리가 고요한 호수 위로 투명하게 울려 퍼졌고, 그것은 천사의 노랫소리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오직 우리의 웃음소리와 물소리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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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밤하늘에 하나둘씩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물에서 나와 축축한 몸 그대로 호숫가 풀밭 위에 나란히 누웠다. 밤바람이 젖은 피부에 스치자 제법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불쾌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지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생한 현존감을 일깨워주는 감각이었다.

"저 별들을 봐," 나는 하늘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별들도 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 우리는 단지 그것들을 제대로 볼 줄 모를 뿐이야."

현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밤하늘의 별들은 정말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별들이 그제야 본래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넌 종종 별을 보니?" 내가 물었다. 현수는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수많은 별들이 담겨 있었다.

"매일 밤, 나는 별들과 대화해. 그들은 내가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들이야.“

나는 독백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때때로… 뼈저린 소외감을 느껴. 이 세계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어딘가 내가 있어야 할 진짜 장소는 여기가 아니라는 강한 느낌이 들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아직 애벌레의 껍질을 완전히 벗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그날 밤, 차가운 밤이슬을 맞으며 호숫가 풀밭 위에서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의 몸은 신기하게도 따뜻했고, 숨결은 깊고 고른 리듬을 유지했다. 그것은 광활한 우주의 숨결과 고요히 동조된 듯한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내 머리 위로는 검은 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별들이 침묵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의 짧고 덧없는 만남을 말없이 지켜보는 무수한 우주의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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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육체적인 끌림이나 지적인 호기심을 넘어선, 깊은 영혼의 교감으로 발전해 나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기묘한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나의 격렬함 속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꼈고, 나는 그의 고요함 속에서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호수에서의 하룻밤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낡은 우리를 씻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여전히 나는 회색빛 도시의 고치 안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고치에 작은 창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그 창을 통해 별빛이 스며들었고, 나는 더 이상 완전한 어둠 속에 혼자가 아니었다. 현수라는 존재, 그리고 그와 함께한 호수에서의 기억은 나의 내면에 자리한 작은 별이 되어,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비춰줄 것이었다. 변태의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나는 이제 고통스러운 기다림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이 고치를 찢고 날아오를 그날을, 나는 고요히, 그리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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