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by 남킹

남자

물안개가 도시의 동맥을 따라 희미하게 흐르는 이른 새벽, 비는 한 영혼이 다른 영혼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듯, 그렇게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빌린 낡은 여관의 창문은 밤새 빗물에 씻겨 눅눅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창문을 통해 흘러드는 빛은 이미 여러 겹의 구름에 의해 걸러지고, 도시의 높은 빌딩들에 의해 부서진 끝에, 마침내 힘을 잃고 한 줌의 잿빛 먼지처럼 방 안을 부유했다. 그 희미한 빛의 입자들이 그녀의 잠든 얼굴 위로 고요히 내려앉아, 마치 엷은 베일처럼 그녀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곧 사라질 그 미약한 온기를 마지막으로 느끼고 싶어,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른 숨소리는 방 안의 유일한 생명의 증거처럼 빗소리와 뒤섞여 나직하게 울렸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잠든 새의 깃털을 건드리듯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 손끝에서 전해진 미세한 압력과 온기가 그녀의 무의식 속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수면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파문과도 같았다.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깨달음의 동심원이 그녀의 감긴 눈꺼풀 아래에서 서서히 번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깊고 어두운 물 밑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내 손길에 의해 현실이라는 얕은 여울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 꿈의 잔상에 젖어 있는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지난밤의 온기와 기억이 빚어낸, 세상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순수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찰나의 평화는, 마치 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새벽 서리처럼, 깨어난 현실의 중력을 감지하자마자 미묘한 경직으로 변해갔다. 그녀의 눈썹이 잘게 떨렸고, 입가에 머물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어떤 위로나 변명, 혹은 무의미한 약속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혹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더 이상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동인형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그것은 수백, 수천 번 반복된 행위가 만들어낸 기계적인 정교함이었다. 출근이라는, 우리 앞의 거대하고 불가피한 의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늦겠어."

그녀의 목소리는 잠기운과 현실의 삭막함이 뒤섞여, 젖은 솜처럼 낮고 무겁게 울렸다. 그 한마디에는 체념과 피로, 그리고 우리 관계의 일시적인 성격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모두 담겨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나의 대답, 나의 동의, 나의 체념을 대신했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흩어진 옷가지를 집어 드는 동안, 나는 시트 위에 남은 그녀의 희미한 체온을 느꼈다. 그 온기는 금세 눅눅한 아침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질 것이었다. 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마치 숙련된 장인이 그러하듯 분주하고 정교하게 어젯밤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잠이 부족해 생긴 눈가의 옅은 그늘, 격렬했던 감정의 잔해, 그리고 어쩌면 나에 대한 희미한 기억까지도 파운데이션과 파우더 아래 겹겹이 묻혀갔다. 그녀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사회가 요구하는 단정한 직장인의 가면을 꼼꼼하게 덧씌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마치 채찍처럼 세차게 유리창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빗물은 바깥 풍경을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거칠게 일그러뜨렸다. 익숙했던 도시의 윤곽은 흐릿한 색채의 조합으로 변했고, 세상 전부가 거대한 수조 속에 잠겨 아주 느리고 몽롱하게 요동치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그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화장대 앞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소리 없는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와 그녀 사이에는, 이 빗물이 가득한 도시 전체만큼이나 깊고 서늘한 거리가 존재했다.

그녀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섰다. 단 한 번의 뒤돌아봄도, 의미 없는 작별의 말도 없었다. 그것이 우리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서로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는, 도시의 익명성에 기댄 채 잠시 서로의 외로움을 빌려 쓰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히고, 그녀가 복도를 걸어가는 또각이는 구두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마저 잦아들자, 여관방의 침묵은 갑자기 밀도를 더하며 끈적한 액체처럼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공간 속에서 나의 존재만이 선명하게 부유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침묵의 무게를 견디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낡은 수도꼭지를 틀자, 쇠가 긁히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뜨거운 물줄기가 세면대와 타일 바닥 위로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그 격렬한 소리는 방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나는 옷을 벗고 차가운 타일의 감촉을 느끼며 뜨거운 물줄기 아래 섰다. 수압에 밀려 붉어진 피부 위로, 나는 어젯밤의 잔해들을 아무런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씻어냈다. 아직 피부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녀의 살내음, 서로의 고독을 위로하듯 뒤섞였던 우리의 체온, 공기 중에 부유하다 소멸된 감미로운 속삭임들. 그 모든 것이 하얀 비누 거품과 함께 뒤엉켜 하수구의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영원히 사라져갔다. 그것은 정화의 의식이자, 망각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뜨거운 김이 서려 뿌옇게 변한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면도 크림을 턱과 뺨에 발랐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서늘한 칼날이 피부 위를 미끄러지며 밤새 자라난 수염과 함께 지난밤의 일부를 잘라냈다. 거울 속, 김 서린 표면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내 눈동자는 여전히 무언가를 집요하게 찾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삶의 조각인지, 아니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기루에 대한 갈망인지, 나 자신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칼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처럼, 익숙하고 서늘한 공허함만이 피부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느릿하고 의무적인 동작으로 옷을 챙겨 입고, 하룻밤의 짧은 역사가 담긴 낡은 가죽 가방을 꾸렸다. 구겨진 셔츠, 몇 권의 책, 그리고 어젯밤 우리가 함께 마셨던 와인의 코르크 마개. 나는 그것을 무심코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체크아웃을 위해 내려간 여관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낡은 소파와 먼지 쌓인 인조 식물, 그리고 벽에 걸린 색 바랜 풍경화가 이 공간의 시간을 박제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무료하게 신문을 넘기던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은 이 거대하고 무심한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카드키를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익명의 그림자 중 하나에 불과했음을 다시 한번 통렬하게 실감했다. 이름도, 사연도, 기억도 남기지 않는,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묵직한 여관의 유리문을 밀고 나서자, 빗줄기는 여전히 도시의 지붕과 아스팔트 위를 성실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이른 아침의 도시는, 흠뻑 젖은 잿빛 솜이불처럼 무겁고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인적이 끊긴 좁은 골목길, 움푹 팬 아스팔트 위에는 밤새 내린 빗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었고, 그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무한한 생성과 소멸의 작은 우주와도 같았다. 아주 멀리서, 마치 다른 세계의 소리인 양 희미하게 첫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젖은 노면을 미끄러지듯 가르는 자동차 타이어의 마찰음,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비를 피하는 참새들의 불안한 지저귐 같은, 도시의 사소한 소음들이 거대한 빗소리 교향곡에 섞여 몽환적인 배경음악처럼 낮게 깔렸다. 모든 것이 지독하게 일상적이었기에, 오히려 모든 것이 꿈처럼 생경하게 다가왔다.

나는 목적지 없이 빗속을 걸었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인공적인 백색광은 회색빛 아침 공기를 더욱 창백하고 병적으로 만들었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자, 냉장고 모터 소리와 바코드 스캐너의 기계음이 나를 맞았다. 진열대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김밥 한 줄과 가장 매운맛의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극적인 맛이라도 있어야 무감각해진 미각을 깨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 옆에 산처럼 쌓여 있는 싸구려 투명 비닐우산을 하나 더 계산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우산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사는 행위로 이 눅눅한 아침에 작은 변화라도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 손에는 내용물이 희미하게 비치는 하얀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막 펼쳐든 새 우산을, 그리고 입에는 막 불을 붙인 담배를 물고 편의점을 나섰다. 담배 끝이 빗물에 젖을까 조심하며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첫 모금의 거친 니코틴이 폐부 깊숙이 날카롭게 스며들자, 안개처럼 희미했던 현실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예리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씁쓸한 맛과 함께 찾아온 짧고 명료한 각성. 비에 흠뻑 젖은 도로는 밤새 꺼지지 않고 빛나던 도시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들을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부수어 어지럽게 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짓궂은 장난처럼 수천, 수만 개의 깨진 거울 조각들을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흩뿌려 놓은 듯했다. 붉고, 푸르고, 노란 빛의 파편들이 내 발밑에서 위태롭게 일렁이며 혼란스러운 춤을 추었다. 그 현란한 아름다움은 어딘가 병적이고 위태로워 보였다.

어느덧 익숙한 학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건물 입구에서 새벽 특강을 마친 학생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강의실 문을 박차고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젊은 얼굴에는 두어 시간의 고된 자습과 강의를 견뎌냈다는 작은 해방감과,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는 은밀한 우월감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차가운 책상 앞에 앉아 쏟아지는 잠과 싸우고,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며 이른 새벽의 시간을 견뎌낸 스스로의 의지력에 대한 뿌듯함이 그들의 지친 얼굴 위로 희미한 빛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마치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라는 거대한 적과 매일 아침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어린 전사들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앳되지만 수면 부족으로 어딘가 지쳐 보이는 낯익은 얼굴 몇몇이 나를 발견하고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눈빛에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이른 아침에 마주친 것에 대한 약간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팝송 가사 해석반, 비평적 에세이 작문반, 그리고 영화 리뷰반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문장의 구조와 은유의 힘, 그리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에 대해 가르쳤지만, 정작 내 자신의 삶은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 학원 수업을 마치고 곧장 자신의 몸만 한 무거운 가방을 멘 채 각자의 학교로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기나긴 학교 수업과 보충 학습이 끝나고 해가 지면, 다시 이곳, 혹은 또 다른 학원으로 돌아와 새벽까지 이어지는, 지칠 줄 모르는 공부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릴 것이다. 그들의 삶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나는 그들의 치열하고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아무런 의미도, 영향도 줄 수 없는 무심한 여행자처럼 느껴졌다.

"안녕."

나는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내 목소리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조차 불확실했다. 마치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의 말은 공기 중에 힘없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내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이미 다음 목적지인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젖은 땅을 힘껏 박차고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젊음 특유의, 그러나 어딘가 절박하고 처절해 보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저토록 필사적으로 달리는 것일까.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 나는, 그들의 모습이 회색 아침의 비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잠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저토록 뜨겁고 순수한 열정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더 강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아직 삶의 진짜 무게에 온전히 짓눌려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혹은, 나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미래'나 '희망' 같은 무언가에 대한 절실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차갑게 맴돌다, 이내 빗물처럼 힘없이 식어갔다.

비는 마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에서 산 저렴한 비닐우산은 거센 빗줄기를 이기지 못하고 가느다란 빗물을 안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우산살은 위태롭게 흔들렸고, 양쪽 어깨가 서서히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옷 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불쾌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여전히 느릿하게, 마치 시간이 멈춘 수중 도시를 걷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내디뎠다.

그때였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두꺼운 구름 뒤편에서 힘겹게 솟아오르던 아침 햇살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찰나의 빛은 도시의 높은 빌딩 유리창들에 어지럽게 반사되며 순간적으로 눈이 멀 듯한 눈부신 섬광을 만들어냈다. 잿빛 도시 전체가 한순간 거대한 보석처럼 빛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영원하지 않았다. 태양은 이내 다시 짙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도시는 원래의 무채색으로 돌아왔다.

덧없이 피었다 지는 그 찰나의, 의미 없는 아름다움.

어쩌면 이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의 연속, 이 붙잡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덧없는 아름다움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이 숨 막히는 회색 도시 속에서 숨 쉬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실체 없는 생각이 희미한 빛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젖은 담배를 아스팔트 위에 버리고, 다시 빗속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여자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시 숨을 죽인 새벽의 틈새였다. 여관의 낡고 뒤틀린 나무 문은, 닫히는 순간마다 길고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마치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수많은 이별과 재회의 순간을 묵묵히 지켜본 노인의 마지막 한숨처럼. 문을 등지고 복도로 나서는 순간, 밤새도록 창틈으로 스며들어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그의 살내음과 희미한 담배 연기, 그리고 우리의 뒤엉킨 체온이 만든 미지근한 공기의 세계가 등 뒤에서 완벽히 차단되었다. 그 대신, 복도 끝 창문에서 밀려 들어온, 비를 잔뜩 머금은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마치 축축한 비단보처럼 내 얼굴과 맨살 위를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감싸 안았다. 그것은 세상 밖의 공기였고, 이제 다시 혼자가 된 나의 현실이었다.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시계의 야광 바늘은 아직 충분히 이른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회사의 첫 업무가 시작되기까지는 두 시간 남짓,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은 마치 안개처럼 막연하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쫓기듯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어젯밤, 그와 함께 이 낯선 동네를 처음 헤매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매캐한 매연과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 그리고 무수한 익명의 발걸음들로 가득 찬 대로변 대신, 그 이면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던 좁고 비교적 고요한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어쩌면 어젯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의 잔상이, 희미한 온기처럼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기대와 함께였다.

하늘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젖은 가죽처럼 낮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잿빛의 표면으로부터, 어느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가느다란 빗방울이 실처럼, 혹은 부서지는 먼지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뺨에 닿아도 차가움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고 미미했지만, 마치 비밀스러운 속삭임처럼, 그것은 분명한 시작이었다. 골목길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수록 빗줄기는 점차 밀도를 더하며 그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먼지가 아니었다. 가늘지만 분명한 선이 되어 하늘과 땅을 잇고 있었고, 내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아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마치 길 잃은 짐승의 난폭한 울부짖음 같은 돌풍이 불어왔다. 좁은 골목은 그 돌풍의 경로가 되어주었고, 바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휘젓고 지나가며 잠들어 있던 모든 것들을 깨웠다. 길바닥에 버려져 바싹 말라 있던 늙은 가로수의 잎사귀들과, 누군가의 사연을 품은 채 구겨진 편지지,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돌던 가벼운 비닐봉지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것은 짧고 혼란스러운 군무였다. 생명 없는 것들이 잠시 생명을 얻은 듯 허공에서 뒤엉키고 부딪히며 소용돌이쳤고, 그 광경은 도시의 무심함 속에 숨겨진 작은 비극처럼, 혹은 부조리한 축제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혼돈의 춤을 바라보았다. 저 부유하는 것들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까.

바람이 잦아들자, 공중의 것들은 다시 힘없이 제자리로, 혹은 새로운 자리로 흩어져 내렸다. 나는 가방 속에서 작은 접이식 양산을 꺼내 펼쳤다. ‘펑’ 하는 작은 파열음과 함께, 짙은 남색의 양산이 내 머리 위에서 자신만의 작은 지붕을 만들어냈다. 양산 천 위로 토독, 토독, 규칙적으로 부딪히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복잡한 소음들을 차단해 주는 순수하고 명료한 리듬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듣는 태아처럼, 혹은 고요한 사원의 낭랑한 풍경 소리처럼, 그 빗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듯한 깊은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 작은 지붕 아래에서, 잠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골목길의 끝은 갑작스럽게 대로변의 소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좁고 아늑했던 골목의 정취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거대한 도시의 아침이 그 압도적인 풍경을 드러냈다. 도로는 밤새 내린 비와 새로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이미 번들거리는 검은 강물처럼 변해 있었다. 수많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빌딩의 불빛들이 그 검은 수면 위에서 길게 번지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거대한 인상파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갑작스러운 비에 당황하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거나, 근처 건물의 처마 밑으로 황급히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의 어깨는 속절없이 젖어가고 있었다.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는 빗속에서 더욱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워졌고, 타이어가 물웅덩이를 가르며 내는 ‘솨아아’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고막을 자극했다. 회색빛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도시의 아침은, 굵어지는 빗줄기와 함께 점점 더 빠르고 혼란스러운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듯, 남색 양산 아래에서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인파를 헤쳐 나갔다. 모두가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목적지의 설렘보다는 일상의 의무감과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 속에서, 나 역시 그 익명의 군중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마침내 매일 아침 나의 종착지가 되는, 익숙하고 거대한 회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통유리로 마감된 건물 외벽은 비에 젖어 주변 풍경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고, 마치 거대한 수정 기둥처럼 차갑고 무심하게 서 있었다. 그 거대한 유리문 너머로,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하나의 거대한 개미굴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개미들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익숙하고 체계적이었다. 출근 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무심한 표정으로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습관처럼 탕비실로 향해 자신의 머그잔에 커피를 내리고, 그리고 밤사이 새롭게 도착한 이메일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일 하루의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그들의 모습. 매일 보아오던 그 풍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을 객석에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정해진 역할을,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면, 나 역시 저 무대 위로 올라가 나의 배역을 연기해야만 하리라.

회사 정문의 육중한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미련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나마, 짙은 먹구름이 순간적으로 찢어진 틈새로 파란 하늘의 조각이 엿보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찰나의 순간이었고, 너무나도 작은 조각이었지만, 절망의 색으로 가득 찬 잿빛 하늘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코발트블루였다. 어쩌면 오후에는 이 지긋지긋한 비가 그치고, 모든 것을 소독하듯 환한 해가 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조심스럽게 싹을 틔웠다.

그 파란 하늘 조각을 마음에 담은 채, 나는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빗물과 도시의 매연이 섞인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관방의 그를, 어쩌면 여전히 낡은 침대에 누워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듯 깊고 공허한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는 않았지만, 내 모든 존재가 그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예상대로, 바람 소리와 빗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익숙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슴 한편이 시리게 아려왔지만, 그것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이라도, 그가 나의 이 무수한 부름들 중 단 하나에라도 답할 날이 오리라고, 혹은 내가 더 이상 그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지 않게 될, 그런 무심한 평온의 날이 오리라고 막연히 믿어보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구원이리라. 희망과 체념이 뒤섞인 기묘한 평온 속에서, 나는 차가운 회전문의 금속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안으로 밀고 들어섰다.

회전문을 통과하는 짧은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시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바깥세상의 비와 바람은 희미한 배경음이 되었고, 건물 내부의 인공적인 공기와 정제된 소음이 나를 맞았다.

비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세차게, 마치 하늘의 모든 슬픔을 쏟아내려는 듯이 내렸다. 도시는 그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듯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더러운 것들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고, 묵은 먼지들은 씻겨 내려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하루가, 저마다의 고독과 희망을 품은 인간들의 도시 위에 조용히,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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