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의 숨결이 밤의 마지막 흔적처럼 희미하게 흩어지는 새벽녘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미자. 그녀의 이름이었다. 얇은 이불 아래에서 뒤척이는 몸의 곡선이 새벽의 푸른빛을 받아 부드러운 구릉처럼 보였다. 그녀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무언가 웅얼거리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직 꿈의 호수에 잠겨 있는 듯, 현실의 초점을 잡지 못하고 안개처럼 흐렸다. "가야 해," 내가 속삭였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치 무거운 갑옷을 걸치듯 몸을 일으켰다. 출근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처럼 방 안을 맴돌았다.
그녀가 낡은 화장대 앞에서 분주하게 자신을 지워내고 새로운 얼굴을 그리는 동안, 나는 욕실로 향했다. 낡은 여관의 욕실은 타일 틈새마다 시간의 때가 검게 배어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자, 수증기가 뿌옇게 피어오르며 거울 속 내 모습을 흐릿하게 지웠다. 나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물의 온기가 피로에 절은 근육 속으로 스며들며, 지난밤의 열기와 뒤섞였다. 미자의 웃음소리, 그녀의 살 냄새, 그리고 우리의 대화 같지 않던 대화들이 뜨거운 김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었다가 사라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그저 도시의 외로운 섬처럼, 하룻밤의 썰물에 만나 밀물에 헤어지는 존재들이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미자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나는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 창밖은 이미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옷을 입고, 아직 그녀의 체온이 남아있는 침대를 한번 돌아본 뒤 여관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우리의 밤은 완벽하게 과거가 되었다.
조용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새 도시의 상처와 욕망을 감싸주던 어둠이 옅어지고, 그 자리에 회색빛 수채화 같은 풍경이 드러났다. 빗방울들은 소리 없이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아 검은 거울을 만들어냈고, 세상의 모든 빛을 희미하게 반사했다. 인적이 끊긴 골목은 마치 거대한 생물의 뱃속처럼 고요했다. 그 정적을 가르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수정처럼 맑았고, 첫차의 기적 소리는 젖은 공기를 길게 울리며 지나갔다. 간간이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는 웅크린 짐승의 낮은 그르렁거림 같았다. 나는 외투 깃을 세우고, 이 축축하고 서정적인 아침의 풍경 속으로 무심하게 걸어 들어갔다.
----
편의점의 인공적인 불빛은 회색 아침 속에서 유난히 창백하고 날카로웠다. 자동문이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열리자, 온갖 화학적인 냄새와 냉기가 나를 맞았다. 나는 진열대에서 김밥 한 줄과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고독한 아침 식사가 이곳에 집결해 있는 듯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플라스틱 뚜껑 위를 나무젓가락으로 눌러놓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빗줄기는 조금 더 굵어져 있었다. 나는 카운터에 놓인 간이우산을 하나 더 계산했다.
편의점을 나와 처마 밑에 서서, 까칠해진 입에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의 작은 불꽃이 젖은 공기 속에서 위태롭게 타올랐다. 첫 모금의 연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비와 섞이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빗물에 반사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사방으로 부서지며 어지럽게 튀었다. 그것은 마치 내 의식의 파편들처럼 보였다. 규정되지 않고, 소속되지 않고, 그저 순간의 자극에 반응하며 흩어지는 이미지들. 나는 그 혼란스러운 아름다움 속에서 잠시 안도감을 느꼈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버스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에게로 흘러가며 더 큰 물줄기를 만들고, 이내 창밖의 풍경을 왜곡시켰다. 나는 그 일그러진 세상의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불분명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학원 건물 모퉁이를 돌았을 때, 한 무리의 새벽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마치 어두운 탄광에서 막 빠져나온 광부들처럼, 해방의 기쁨과 미묘한 흥분에 들떠 있었다. 치열한 경쟁 시대에 남들보다 한 발짝 더 앞서 나갔다는 만족감일까, 아니면 그저 지긋지긋한 수업이 끝났다는 순수한 환희일까. 삼삼오오 짝을 지은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그림자와 함께 풋풋한 미소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활기찬 대화가 빗소리를 뚫고 내게로 흘러왔다.
낯익은 얼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학원에서 보너스처럼 제공하는 스터디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팝송으로 영어를 배우는 반, 영어 작문반,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반, 시사 영어를 토론하는 반. 그들은 마치 신앙처럼 '자기 계발'이라는 제단에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었다. 출근 전 새벽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퇴근 후 저녁 시간을 또다시 이곳에서 보낼 것이다. 더 나은 미래, 더 높은 연봉, 더 화려한 명함. 그들이 꿈꾸는 것은 명확하고 견고해 보였다. 그 명확함이 때로는 눈물겹게 아름다웠고, 때로는 숨 막히게 어리석어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이 나를 발견하고는 꾸벅, 하고 목례를 했다. 그들의 눈에는 강사에 대한 예의 바른 존중과 함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미묘한 거리감이 서려 있었다. 인사를 마친 그들은 마치 경주마처럼 버스 정류장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1분 1초가 그들에게는 기회비용이었고, 놓쳐서는 안 될 재화였다.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빗속으로 사라지는 저 젊음과 열망의 행렬. 나는 그 행렬의 바깥에 서 있었다.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열망을 이용하여 돈을 벌지만, 결코 그들의 일부가 될 수는 없는, 혹은 되기를 원치 않는 이방인이었다.
----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나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향했다. 두 학생의 집을 방문하여 영어를 가르치는 일, 그것이 나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그들은 각각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인 형제였다.
그 집의 첫인상은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38층, 도시를 발아래 두고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오만한 높이. 고급스러운 자재로 마감된 넓은 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소리 없이 열리면, 눈부시게 빛나는 대리석이 복도처럼 길게 펼쳐진 현관이 나타났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고급 호텔의 로비나 갤러리에 가까웠다.
그들 위로는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스무 살 남짓 되었을까. 나는 그녀의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거실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언제나 유령처럼 조용히 공간을 가로질러 갔다. 무슨 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민머리인 상태였다. 섬세한 두상이 그대로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었고, 고대 유물의 조각상처럼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고 은둔자처럼 지냈다.
시력도 몹시 좋지 않은지, 거실의 대형 TV 화면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은밀한 암호를 해독하려는 듯 렌즈 너머의 픽셀들을 응시하곤 했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기이하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의 깊이를 짐작게 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이 거대하고 화려한 집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섬세한 유리 인형 같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실 벽 중앙, 가장 좋은 자리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 속에서, 그는 선장의 것으로 보이는 멋들어진 흰색 제복을 차려입고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박제된 나비처럼 부자연스러웠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섬처럼 고립되어 보였다. 나는 과외를 하는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그를 집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수개월, 혹은 수년간 망망대해를 누비며 이국의 항구들을 오가는, 그런 거대한 배를 타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부재는 집안 곳곳에 상징처럼 남아 있었다. 거실 벽에는 거대한 바다거북 박제가 금방이라도 헤엄쳐 나갈 듯 생생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불길할 정도로 선명한 붉은색의 새우 박제가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관 입구의 자개 장식장 위에는 유리병 속에 갇힌 정교하기 짝이 없는 범선 모형이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를 항해하는 정복자였지만, 그의 전리품들은 모두 죽거나 갇힌 채로 이 집에 장식되어 있었다. 그는 이 가족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 공간의 유령이었다.
----
아이들의 엄마는 소위 '복부인'으로 통하는 부류의 여성이었다. 그녀에게서는 언제나 자신감과 불안감이 기묘하게 뒤섞인 냄새가 났다. 그녀가 풍기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뿌리가 없어 보이는 분위기, 교양을 가장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투박한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의 압도적인 규모를 보았을 때, 그녀는 부동산 투자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이룬 신흥 귀족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우리 삼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대도시의 변두리, 가난한 동네에서 삼 형제가 모두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는, 자식을 둔 부모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며 일종의 신화처럼 회자되었던 모양이다. 특히나 그녀처럼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건 사람에게, 우리의 성공 신화는 가뭄의 단비처럼 달콤하고 절실하게 들렸을 것이다.
나와 처음 마주 앉은 상담 자리에서, 그녀는 깊고 긴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룩한 놀라운 부에 대해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깊은 절망감을 토로했다. 원인 모를 병으로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방 안에 갇혀버린 딸, 그리고 아무리 비싼 과외 선생을 붙이고 유명 학원에 보내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는 밑바닥 수준의 두 아들.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사람의 독백처럼 들렸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욕망이 마주한 명백한 한계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돈과 학벌이라는 두 개의 견고한 기둥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두 가지는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을 형성하고 고착화시키는 강력한 잣대였다. 그녀는 돈이라는 기둥은 정복했지만, 학벌이라는 또 다른 기둥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미 손에 쥔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마지막 퍼즐 조각, 자식들의 명문대 합격증. 그것이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한스럽고 절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그 마지막 퍼즐을 맞춰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그녀는 거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요. 제발 우리 아들들, 사람만 만들어주세요."
아직 그 실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과외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스물 몇 살의 나에게, 단지 내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맹목에 가까운 신뢰를 보이며 자신의 마지막 희망을 걸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들은 사실,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과외 선생과 유명 학원들을 거쳐온 상태였다. 지금도 여전히 여러 과목의 과외를 동시에 받고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주요 과목마다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배정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지역에서 족집게 강사로 명성을 날리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현직 학교 선생이 몰래 고액 과외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선생들은 저마다 터득한 놀라운 비법과 교수법으로 무장한 채, 정해진 시간에 이 가엾은 형제에게 찾아와 폭격처럼 지식을 쏟아붓고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이룩한 성과라고는 겨우 중하위권 성적을 그나마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마치 값비싼 사료를 끝없이 받아먹지만 살은 찌지 않는 기묘한 가축과도 같았다.
----
내가 짧은 시간 관찰한 바로는, 이 두 학생은 사실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 재능이 학업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를테면 생존 본능과 같은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뇌는, 선생이 앞에서 아무리 열정적으로 새로운 문법 공식을 설명하고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동안에도, 그 설명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제스처'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설명의 중요한 대목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는 기술, 선생이 질문을 던졌을 때 아주 짧고 모호하지만 틀리지는 않은 단답형 대답을 내놓는 순발력,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눈동자는 선생을 향하고 있지만 의식은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도록 하는 고도의 정신 분리 능력.
그 외의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들의 의식은 학교 수업에서든, 과외 수업에서든 조금도 다름없이, 현실 너머의 광활한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드래곤과 싸우거나, 인기 아이돌 가수가 되어 수만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이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시선만이라도 선생을 향하고 있으면,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문제 없이 무사히 통과될 수 있었으니까. 그들은 수년간의 훈련을 통해,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방어 효과를 내는 이 놀라운 생존술을 터득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 자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의 첫 수업은 재앙에 가까웠다. 잔뜩 긴장한 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초보 선생과, 수많은 선생들을 겪어보며 이미 이 세상 모든 종류의 가르침에 무감각해져 버린 나머지 무심하기까지 한 학생들. 그 기묘한 조합은 두 시간 동안 거의 아무런 화학 반응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그들이 거쳐왔던 수많은 선생들과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의 정교한 방어 시스템이 전혀 통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변종의 출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어 문법이나 독해 방법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지시했다. 영어 교과서를 펼쳐놓고, 본문을 소리 내어 읽고, 스스로 해석해보라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옆에 놓인 두꺼운 사전을 직접 찾아보라고.
놀라울 정도로 엉성하고 자신감 없는 그들의 발음만큼이나, 그들이 내놓는 해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주어와 동사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고, 단어의 뜻을 제멋대로 조합하여 새로운 문장을 창조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내가 그 잘못된 해석을 즉각적으로 교정해주거나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사전을 다시 꼼꼼히 뒤져보고, 문맥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만 했다.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불편함이 명백하게 떠올랐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슬어 있던 그들의 뇌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수업 진도는 거북이걸음처럼 느리게 나아갔다.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데 한 시간이 꼬박 걸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생의 도움 없이 오롯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눈앞의 난국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 두 시간은 아마 영겁처럼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아주 짧은 몇 마디의 말만으로 2시간이라는 수업 시간을 비교적 수월하게 채울 수 있었다.
내가 수업 시간 동안 내뱉은 말이라고는,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 “틀렸어.”, 혹은 아주 가끔, 그들이 기적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내놓았을 때 던지는 “음, 조금 나아졌네.”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나는 선생이 아니라, 마치 길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안내자, 혹은 정답을 숨긴 채 힌트조차 주지 않는 스핑크스와도 같았다.
----
그들에게 있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 이상한 선생의 출현은, 그동안 그들이 견고하게 쌓아왔던 수동적인 학습 방식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선생의 설명을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만 했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진 그들은, 틀림없이 수업이 끝난 후 그들의 엄마에게 달려가 새로 온 선생에 대한 온갖 종류의 불평과 험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저 선생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냥 우리끼리 책 읽고 해석하래요', '시간만 때우다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그녀는 처음 몇 주간 나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턱없이 비싼 수강료를 지불하며 용하다는 족집게 강사들을 모셔오고도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던 전례가 있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어쩌면 몇 달 정도는 더 지켜보기로 마음먹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도박사적인 기질이 그 순간 발휘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중간고사 영어 성적이 수직으로 상승한 것이다. 만년 중하위권을 맴돌던 두 아들의 성적표에 찍힌 '상'이라는 글자는, 그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만큼이나 감격스러운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뇌는 근육과 같아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끊임없이 자극하고 훈련하면 발달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사전을 뒤지고, 문장의 구조를 파헤치고, 마침내 정답을 찾아내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뇌는 단련되기 시작했다. 지식은 더 이상 선생의 입에서 나와 귀로 흘러 들어갔다가 사라지는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캐낸 단단한 보석이었고, 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학생 엄마의 나에 대한 신뢰는 이전의 그 어떤 명망 높은 선생들에 대한 것보다 더욱 굳건하고 맹목적으로 변했다. 그녀는 나를 단순한 과외 선생이 아니라, 거의 구원자나 마법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수업 시간은 주 2회에서 3회로 늘어났으며, 수업료 또한 그녀가 먼저 제안하여 대폭 인상되었다. 그녀는 이제 내 교육 방식에 대해 그 어떤 질문도, 토도 달지 않았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정답이고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쉽게 돈을 버는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자가 한 달 동안 아침 일찍 비좁은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해서, 상사의 잔소리와 동료들의 시기심 속에서 온갖 잡무에 시달리며 저녁 늦게까지 일해서 번 돈만큼을, 나는 일주일에 단 세 번, 각각 서너 시간의 과외, 그것도 대부분 침묵으로 채워지는 그 시간을 할애하는 것만으로 벌어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은 여전히 돈과 학벌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미친 듯이 팽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견고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틈새, 즉 부모의 불안과 자식의 무능함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수혜의 꿀을 빨아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점차 이 기생적인 삶의 방식에 만족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안주하게 되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세상의 경쟁에서 슬며시 비켜나왔다. 나는 그저 천천히 걷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리고 가끔, 미자를 만나 섹스하는 것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무대 뒤편에서,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를 구경하며 조용히 와인을 홀짝이는 관객이 된 것만 같았다. 그 안락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여자
여관의 낡은 문을 등지고 섰을 때, 나는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뿌연 새벽의 장막이 걷히지 않은 도시의 아침은 차갑고 축축한 공기로 가득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 만들어내는 정적 속에서, 나는 목적지 없는 걸음을 선택했다. 자동차의 기계음이 범람하는 대로를 피해, 나는 마치 도시의 혈관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잿빛 건물들 사이로 난 길 위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늦추었다. 이른 새벽의 스산함이 나의 존재를 희미하게 지워주는 듯한 기묘한 위안 속에서.
현수는 언제나 나보다 느렸다. 그의 보폭은 마치 시간을 재는 추처럼 일정하고 묵직했다. 그와 함께 걷는 순간이면, 어느새 나는 몇 걸음 앞서 나가 있기 일쑤였다. 무심코 걷다 보면,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강물처럼 멀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다시 나를 스쳐 지나가고, 그의 그림자가 내 앞을 가릴 때쯤에야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그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어야만 하는 운명처럼.
그의 걸음은 일정한 파동을 그리는 바다와 같았고, 나의 걸음은 그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그와의 보조를 맞추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그는 거의 듣기만 했다. 그의 침묵은 깊고 어두운 우물과 같아서 나의 모든 말을 삼켜버렸다. 나는 거의 말만 했다. 그의 침묵을 메우기 위해, 혹은 그 침묵의 벽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기 위해 나의 목소리는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흩어졌다.
희미한 아침 스모그 속으로, 마치 누군가 조심스럽게 뿌리듯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골목 어디선가 잠자고 있던 돌풍이 깨어나 휙휙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와 비닐들이 마치 생명을 얻은 듯 춤을 추었다. 나는 가방에서 양산을 꺼내 펼쳤다. 플라스틱 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머리 위에서 정겹게 울렸다. 톡, 톡, 하는 소리는 마치 어린 시절 듣던 자장가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 전까지 누렸던 그 방의 온기를 필사적으로 되새겼다. 남자는 두 손을 베개 삼아 드러누워 있었다. 그의 단단한 품속에서 숨을 죽인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추위로부터 보호받는 듯한 따스함을 느꼈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나의 뺨을 그의 가슴에 밀착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의 심장 소리와 함께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숨결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존재의 이유와도 같았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그의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사각거리는 이불 속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와 값싼 방향제 냄새가 뒤섞여 몽롱한 향기를 만들어냈다. 그 향기 속에서 나는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이 시간이, 이 공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잔인하게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지나치게 굳은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섰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출근을 서둘렀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삐져나온 흐린 햇살이, 마치 나를 조롱하듯 차가운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거울 속에 비친 그를 보았다. 담배를 문 채, 천장의 한 지점을 무심하게 응시하고 있는 그 남자를.
그는 햇살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놓인 간이소파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채, 그는 마치 무아의 경지에 빠져든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혹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자폐아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혹은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를 만나 행복하다거나 즐거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지독한 에고이즘의 환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린 시절의 나르시시즘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미숙한 소년일 수도.
그는 ‘오늘 하루쯤 병가 내고 나와 더 있는 게 어때?’ 같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나누는 흔한 제안조차 하지 않을, 지구 최후의 인간처럼 보였다. 그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잔인한 거절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걸까?’
‘그의 머릿속에, 단 일 분이라도 나의 존재가 머문 적은 있을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한계점에서, 나는 그의 생각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긴장과 우울이라는 익숙한 공간 속으로 다시 나를 구겨 넣기 위해,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빗방울은 굵어지고 있었다. 바닥은 삽시간에 짙은 색으로 젖어 들었다. 마치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고요함과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오는 듯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자동차 경적 소리도 더욱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여관에서 나왔을까? 아침 먹을 돈은 가지고 다니는 걸까?’
그에게 묻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에 박히기 시작할 때쯤, 나는 이미 회사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잿빛 건물은 거대한 묘비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