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라이트 블루스 (Daylight Blues)

by 남킹


수정처럼 선명하고 한없이 깊은 푸른 하늘. 티끌 하나, 구름 한 조각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창공이 머리 위로 아득하게 펼쳐졌다. 하루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며 낮게 드리워진 태양빛은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따라 흐르며 세상을 액체 상태의 금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황홀한 빛의 연금술을 바라보며, 지중해의 길고 뜨거웠던 여름이 마침내 작별을 고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며칠 전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바람에는 계절의 문턱을 넘는 미묘한 향취, 즉 가을의 서늘하고도 청량한 약속이 묻어 있었다. 그 서늘한 공기가 맨살에 내려앉아 보이지 않는 손길처럼 부드럽게 간질였고, 머리카락 사이를 장난스럽게 헤집고 지나가는 감촉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순간—두 계절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찰나의 경계—을 더욱 강렬하고 선명하게 내 의식 속에 각인시켰다.

베란다로 발걸음을 옮겨 차가운 금속 손잡이에 손을 얹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햇빛이 가장 강렬하게, 세상을 온통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려는 듯 내리쬐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자, 저 멀리, 마치 망막 위에 맺힌 작은 얼룩처럼, 지중해가 손톱만큼 모습을 드러냈다. 물리적인 거리로는 아득했지만, 내 마음 속 지도에서는 바로 발치에 펼쳐진 듯한, 그 지극히 작은 파란 점. 그 작은 점이 품고 있을 무한한 수평선과 쉼 없이 밀려오는 푸른 물결의 이미지가, 마치 오랜 친구의 목소리처럼, 나를 부르는 듯했다.

여기서부터 다리가 묵직한 납덩이가 될 때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걸어 내려가면—그러니까 소나무 향기 짙은 오솔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내리막을 지나고, 오래된 분수가 희미한 물소리를 내는 작은 광장을 가로지르고, 수 세기 동안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그곳에는 유순하고 너그러운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루할 정도로 잔잔하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한국의 광안리 해수욕장을 열 개쯤 길게 이어 붙인 듯, 끝없이 펼쳐진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 지중해 특유의 유달리 온화하고 부드러운 햇살 아래, 그 고운 모래는 시간과 각도에 따라 때로는 녹아내린 금 조각처럼 황금빛으로, 때로는 잘게 빻은 설탕처럼 은빛으로 반짝였다. 미지근하다고 느껴질 만큼 따스한 수온은, 처음 바닷물에 발을 담글 때 으레 느껴지기 마련인 미세한 온도 차의 충격마저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게다가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만하게 깊어지는 물속은, 마치 대지가 그 품을 바다에게 자연스럽게 내어준 연장선처럼, 나를 아무런 저항 없이 온전히 받아 안아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의 여유와 태양의 에너지를 만끽하는 풍성한 가슴의 유럽 아줌마들이 마치 점묘화처럼 백사장 곳곳에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의 오랜 일광욕으로 건강하게 그을린, 빛바랜 듯한 피부는 따가운 태양 아래서 잘 닦인 청동상처럼 매끄럽게 빛났고, 그들의 거리낌 없고 쾌활한 웃음소리는 나른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실려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호나 애착의 문제를 넘어선, 내 존재의 근원적인 필요였다. 마치 허파가 숨 쉬기 위해 공기를 갈망하듯, 내 영혼은 바다의 그 끝없는 광활함과 깊이를 본능적으로 갈망했다. 나의 의식이 형태를 갖추고 세상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곳 역시, 나지막한 언덕 하나만 넘어서면 언제나 변함없이 푸른 바다가 어머니의 미소처럼 나를 반겨주는 곳이었다. 동해안의 작은 공업도시, 울산의 한적한 마을에서 자란 나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면, 밤새 품었던 어둠을 씻어내고 막 떠오르는 태양 아래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의 장엄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매일의 풍경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문신처럼, 내 뼈와 살 깊숙이 각인되어, 내가 이후 어디를 가든, 어떤 삶을 살든, 내 몸은 본능적으로 바닷물의 짭짤한 냄새와 규칙적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의 리듬을 그리워했다. 비록 생계를 위해, 혹은 운명의 이끌림에 따라 서울과 경기도의 숨 막히는 인파와 소음 속을 전전하고, 심지어는 바다라고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유럽 대륙의 한복판—메마르고 건조한 대륙의 심장부—을 정처 없이 떠돌았지만, 결국 나는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듯, 어김없이 다시 바다 곁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귀환이었다. 길을 잃었던 영혼이 마침내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있어야 할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필연적인 복귀였다.

그러므로 내 안에 바다가 산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내 혈관을 타고 도는 것은 뜨거운 피가 아니라, 태초의 기억을 품은 짭짤한 바닷물이며, 내 심장은 밀물과 썰물의 영원한 리듬에 맞춰 고동치고, 내 폐는 소금기 머금은 청량한 바닷바람으로 채워진다. 숨을 쉴 때마다, 문득문득 존재의 허기처럼 바다의 깊은 향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나는 눈을 감고 내 안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무한한 바다를 가만히 더듬어 찾았다. 그 끝 모를 깊이와 영원과도 같은 평온함을 내 안에서 조심스럽게 길어 올렸다. 그것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의식이자, 메마른 현실을 견디게 하는 생명수였다.

나는 음악을 튼다.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섬세하고 여린 현의 진동이 공기의 미세한 입자들을 타고 방 안에 조심스럽게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주 미약하게,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운 겨울 바다에 발끝을 살짝 담그려는 듯 망설이며. 그러다 점차 그 파동은 용기를 얻어 담대해지고, 그 세력을 넓혀, 마침내는 방 안의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더 나아가 딱딱한 벽을 부드럽게 통과하여, 이 오래된 도시 전체를, 그리고 마침내는 회전하는 이 지구 전체를 거대한 자비심으로 감싸 안으려는 듯한 장엄한 포용력을 갖는다. 특히 바이올린의 애처롭고도 처연한 선율이 공기 중에서 가늘게 떨릴 때면,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나의 가슴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히 조여왔다. 그 음악은 내가 사랑하는 바다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으며, 때로는 격렬한 폭풍우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절대적인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그 음악 속에서 나는 위안을 얻고, 내 안의 바다와 조우했다.

그리고 나는 글을 계속해서 쓴다. 멈추지 않고. 모니터의 하얀 여백 위에 한 문장, 한 문장을 쌓아 올릴 때마다, 언어가 지닌 오묘한 아름다움, 단어와 단어가 만나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그 경이로운 순간에 깊이 빠져든다. 손가락이 자판 위를 유려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마치 밤새 밀려온 파도가 새벽의 모래사장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섬세한 무늬를 남기는 행위와 같았다. 글자들이 하얀 화면 위에서 저마다의 리듬으로 춤을 추었다. 내가 세상에 내놓는 이 미약한 글자들은, 어쩌면 파도가 해변에 남기고 간 덧없는 흔적처럼, 잠시 머물다가 시간의 물결에 씻겨 흔적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한때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 내가 이 글자들을 통해 내 안의 무언가를 표현하려 애썼다는 그 진실만큼은, 영원히 바다의 깊고 푸른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그날 이후, 명확히 언제가 시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날 이후, 나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조용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탓에 시리고 아프도록 뻑뻑한 눈을 힘겹게 비비며, 마치 구원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하얀 모니터의 빛 속으로, 내 안에 안개처럼 흐릿한 끝자락으로만 남아 있는 어제의 감정들과 밤새 뒤엉킨 상념들, 그리고 조각나고 혼재된 기억의 파편들을, 시간이라는 실에 꿰어 나름의 순서대로 나열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 스스로 고안해낸 치유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세상과 타인에게 받은 상처로 얼룩진 영혼이 자기 자신을 가만히 다독이고 달래는 방식. 깊은 밤의 침묵 속에서, 오직 자신과의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은밀한 방식.

타이핑을 하는 내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과거의 기억들이 남긴 그 묵직한 무게가 보이지 않는 짐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익사 직전의 사람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면 위의 공기를 향해 손을 뻗듯, 나는 하얀 화면 위의 문장들을 향해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그 문장들은, 그 단어들은, 나를 절망의 깊은 심연에서 현실이라는 수면 위로 힘겹게 끌어올려 줄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이야기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은 집. 그곳은 마치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듯한, 혹은 세상과는 다른 속도로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공간이었다. 집의 모든 모서리, 문틀, 벽지에는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 흔적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희미해진 기억의 조각이 되어 공간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부엌은 유난히 좁았고, 한쪽 구석에 자리한 연탄 아궁이에서는, 어머니가 불을 지필 때마다 이글거리는 시뻘건 불길 위로 피어오르던 주황색 불꽃의 구진(丘疹)들이 짧고도 찬란한 생을 마감하고 하얀 재로 스러져갔다. 그것은 마치 덧없이 흘러가는 인간의 삶처럼, 찰나의 강렬한 빛을 발하고는 영원한 소멸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불꽃들이었다. 늘 분주했던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그 좁은 부엌에서는,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삐걱거리는 방문과 닳아 움푹 파인 문지방을 넘어서면 작은 마당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사계절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하늘의 다채로운 표정을 아무런 방해 없이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봄이면 하얀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려 꽃비를 만들었고, 여름이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매미 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으며, 가을이면 바람에 실려 온 낙엽들이 마당 위에서 마지막 춤을 추었고, 겨울이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키며 흰 눈송이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품고 있는 단단한 흙바닥 위에는, 어머니가 빗자루로 정성껏 쓸어낸 빗질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빗질 자국을 따라 마당 한쪽 끝으로 가면, 여닫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녹슨 문짝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롭게 매달린 변소가 있었다. 그 변소를 어설프게 에워싼 거친 시멘트 블록 담벼락은, 세상과 집을 나누는 낮은 경계를 제공했다. 담벼락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바짝 붙어 자라던 늙은 구기자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타원형의 푸른 잎들을 나른하게 건들거리며, 그 사이에 숨겨둔 작고 앙증맞은 보라색 꽃들을 수줍게 내보였다. 그 자잘한 꽃들은 마치 누군가의 가슴 깊이 맺힌 슬픔이 응축된 보랏빛 눈물방울처럼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붉은 빛깔의 가느다란 혈관처럼 뻗어 나간 암술과 수술을 따라, 다섯 개의 섬세한 팔(꽃잎)을 하늘을 향해 활짝 펼친 그 작은 꽃. 그 지극히 작고 섬세한 구조 속에는 마치 우주의 심오한 비밀이라도 담겨 있는 듯했다—중심에서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나가는 은하계의 나선 팔을 닮은 듯한 신비로운 형태. 여름이 깊어지면 그 자리에 맺히는 작고 붉은 열매들은, 지독하게 어둡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친 기세로 몰아치는 한여름의 폭풍우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풍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의 영혼을 보는 듯했다. 숨 막힐 듯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끈적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얇은 옷은 불쾌하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잠시 바람이 불어 민소매 속 겨드랑이 아래를 살살거리며 간지럽히고 지나갔고, 하늘에서 미친 듯이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는,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위태롭게 비행하던 이름 모를 새들의 날갯죽지를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했던 격렬한 폭풍우가 지나간 후 찾아온 고요함은 그래서 더욱 깊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심하게 푸른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푸름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마치 깊은 꿈속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종류의 비현실적인 색이었다.

나는 늘 혼자였다. 나의 고독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내 이마에 찍힌 낙인과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내가 세상 물정을 어렴풋이나마 알기 시작할 무렵인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선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떠나던 그날 아침, 그는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반짝이게 닦인 구두를 신고, 낡은 가죽 서류 가방을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 직전, 그는 잠시 몸을 돌려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한 번 쓱 쓰다듬었다—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신체적 접촉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그의 표정을, 그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무정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존재를 증명하던 모든 윤곽은 안개처럼 흐릿해져 갔다. 결국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액자 속에 박제된 채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한 장의 낡은 흑백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나의 세상은 늘 어머니와 나, 단둘뿐이었다. 그녀는 혼자서 두 사람 몫,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내게 쏟아부으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밤이 깊어 온 세상이 잠든 시간까지 낡은 미싱을 쉼 없이 돌리며 나의 학비를 벌었고, 겨울이면 찬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하느라 손등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피가 배어 나왔음에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얼큰한 김치찌개를 끓여주곤 했다. 고된 삶에 지쳐 깊게 파인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는, 나를 볼 때면 언제나 희미하지만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힘겨운 미소 뒤에 감춰진 깊은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철없던 어린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합격하여 집을 떠나게 된 바로 그 해 가을, 어머니는 오랫동안 앓아왔던 지병이 악화되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병원 침대에 앙상하게 누워,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익숙하고 따스했던 온기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느끼며, 나는 이 넓고 낯선 세상에 정말로 나 홀로 남겨졌다는 시린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이후, 나는 문자 그대로 완전한 외톨이가 되었다. 피를 나눈 가족도,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연인도 없이—마치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듯한 완벽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섬과 같은 존재.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사랑, 우정, 성공, 심지어 삶 그 자체까지도—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며 덧없는 것이라고, 나름의 철학적 정의를 내렸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인지를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아프게 깨달아버린 나는, 더 이상 타인과의 감정적인 연결을 추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것은 상처받은 짐승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이었다—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행위.

내 직업은 이러한 나의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고 공고히 만들었다. 그것은 나의 성향에 따른 자발적인 선택이면서도,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나는 프로그래머였다. 인간의 논리와 기계의 언어가 교차하는, 끝없이 펼쳐진 코드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찾으며, 나는 역설적으로 현실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조금씩 끊어내고 있었다. 근무 시간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돌이켜보면,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 아마 하루 평균 15시간쯤은 사무실에서 보낸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컴퓨터를 켜는 것도 나였고, 깊은 밤, 도시의 불빛마저 잠든 시간에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나오는 사람도 항상 나였다. 나는 차가운 모니터 화면에 나의 모든 의식과 정신을 송두리째 쏟아부은 채,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대부분의 나날을 보냈다. 수없이 반복되는 코드의 행과 행 사이, 그 무미건조하고 비인간적인 가상 세계 속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기묘한 위안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한 논리에 따라 움직였고, 결과는 예측 가능했으며, 무엇보다도 모든 변수가 나의 통제하에 있었다. 예측 불가능하고 종종 비논리적인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감정의 격렬한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 0과 1이라는 명확하고 질서정연한 이진법의 세계 속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불안정한 평화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 인위적인 자극들은 결국 내 몸과 정신을 서서히 망가뜨릴 뿐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나는 온갖 그럴듯한 핑계를 미리 준비해두고 교묘하게 그 자리를 피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시끄럽고 불편한 식당 구석에 멍하니 앉아, 조금도 흥미롭지 않고 매번 반복되는 시답잖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을 억지로 들어가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동료들의 의미 없는 큰 웃음소리, 피상적인 신변잡기적 대화,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친목 도모의 분위기—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참기 힘든 고문과도 같았다.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 남아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익히거나, 흥미로운 기술 블로그를 읽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침묵 속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종종 귀에 이어폰을 꽉 틀어막고, 외부 세계의 소음을 차단한 채, 나만의 내밀한 상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음악의 선율을 길잡이 삼아, 나는 잿빛의 단조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무한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귀찮게 하거나 방해하지 않았고, 나에게 어떤 기대나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내가 져야 할 의무나 책임감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완벽한 자유와 안식의 공간이었다. 나는 점차 이러한 나 자신에게 만족하게 되었고, 더 이상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성공과 부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앞을 향해 달려드는 세상의 흐름에서 슬며시 비켜 나와,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걷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 가끔 여자를 만나 육체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그것이 당시 내가 스스로 정의 내린 소박한 행복의 전부였다—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원초적이며, 지극히 즉각적인 만족감의 추구.

그리고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의 끝에, 잠들기 전 컴퓨터 화면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몇 줄 적어 내려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와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점차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의식이자 습관이 되었다. 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 막연한 슬픔, 때로는 단순하지만 떨쳐내기 힘든 강렬한 욕망—을, 아직은 서툴지만 나름대로 명료하고 솔직한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미로와도 같은 내 생각들이 화면 위의 글자로 하나씩 정리되면서, 나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종류의 명료함과 해방감을 경험했다. 그것은 마치 짙은 안갯속을 헤매다 갑자기 환한 빛줄기를 발견한 것과 같은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어느 시점부터 나의 삶은 네 가지 활동으로 압축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기,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글쓰기(일기), 타인의 생각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글 읽기(주로 도서관에서), 그리고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익명의 섹스하기. 이 네 가지 활동 외에는, 내게 진정으로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예를 들어 사회적인 관계 맺기, 직업적인 성공이나 경력 관리, 물질적인 부의 축적 등—을 부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행동들을 제외하고는,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모든 활동들을 의식적으로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외부 세계의 소음과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내 영혼의 깊고 고요한 평화였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것은 단순히 직업의 형태를 바꾸는 것을 넘어선, 나의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한 세상과 나 자신을 향한 조용한 선언이었다. 나는 더 이상 거대한 시스템의 예측 가능한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료들이 기피하는, 장기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지방 파견 근무를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했다. 대도시의 숨 막히는 복잡함과 끊임없는 소음에서 벗어나, 나는 이름 모를 조용한 지방의 작은 마을들에서 예상치 못한 평화와 안식을 찾았다. 창문을 열면 멀리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곳, 밤이면 하늘 가득 쏟아질 듯한 별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곳, 나를 아는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지방 근무를 할 때 나의 유일한 조건은 아주 소박했다. 아무리 작고 허름하더라도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독방을 달라는 것뿐이었다. 외부와 차단된 그 작은 공간은 나에게 세속의 번잡함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성역과도 같았다. 그 문을 닫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때때로 나의 삶을, 단조롭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선율로 고독한 신세계를 연주하는 목관악기에 비유하곤 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미세한 감정의 변주와 사유의 깊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내면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그런 종류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음악.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는 무미건조하고 외로워 보일지 몰라도, 나름의 질서와 평화 속에서 프리랜서라는 달콤한 수혜의 꿀을 25년 동안 조용히 빨아먹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내가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르는 두 개의 상반된 마음—극단적인 쾌락과 깊은 절망, 찰나의 행복과 영원할 것 같은 고통, 예상치 못한 구원과 스스로 자초한 파괴—을 향해 열린 미지의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무거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이름 모를 씨앗처럼 자라나 마침내 거대한 나무가 되어버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깊은 갈망과 현재의 삶에 대한 권태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나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있던 최소한의 사슬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임대 아파트의 계약을 해지했고, 몇 안 되던 가구는 모두 중고로 처분했으며,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낡은 책들마저 가까운 도서관에 기증했다. 내가 새로운 여정을 위해 챙겨간 것은 계절별 옷 몇 벌과 낡은 노트북, 그리고 빛바랜 어머니의 사진 한 장뿐이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거대하고 푸른 대양을 향해, 아무런 미련 없이 훌훌 날아가 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과연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나 자신, 혹은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고독의 심연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게 될까? 그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십이라는 나이에, 미지의 세계를 향해 두렵지만 단호한 첫 발을 내딛었다.

폴란드

늘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서는, 긴장과 설렘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한다. 미지의 경험 앞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의 파동. 바르샤바를 떠나 브로츠와프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의 작은 창문 너머로 내려다본 폴란드의 풍경은,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의 잔재인 획일적이고 무채색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 대신, 내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싱그러운 초록빛 숲과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드넓은 들판, 그리고 그 사이를 은빛 뱀처럼 유유히 가로지르는 강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수정처럼 투명한 햇살이,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손님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광활한 대지 위에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기체가 완전히 멈추자, 둔탁하고 멍멍하게 들려오던 엔진의 쇳소리가 잦아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 위 선반에서 자신의 짐을 꺼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소란스러운 웅성거림. 부산하게 오가는 손놀림. 좁은 통로에서 스쳐 지나가며 마주치는 낯선 이들의 눈빛 속에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길고 불편했던 비행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가벼운 해방감이 공기처럼 떠돌고 있었다.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행위는 항상 이렇게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의 혼합을 동반한다—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은밀한 기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과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동식 트랩을 조심스럽게 내려오자, 예상치 못했던 강렬한 햇볕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내가 오랫동안 익숙했던 한국의 습하고 무더운 여름 햇살과는 질적으로 다른, 건조하면서도 한층 더 선명하고 강렬한 빛이었다. 강한 빛에 절로 찌푸려진 눈살 사이로,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공항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브로츠와프 코페르니쿠스 공항.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혁명적인 지동설을 주장하여 중세 유럽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던 위대한 폴란드 과학자의 이름을 딴 곳. 그 이름에서 나는 어떤 운명적인 상징성을 느꼈다—오랫동안 진리라고 믿어졌던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을 용감하게 뒤엎었던 그의 혁명적인 발견처럼, 어쩌면 나 역시 이곳에서 나 자신의 삶의 중심축을 새롭게 찾아, 기존과는 다른 궤도를 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나는 인천을 출발하여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도착한 후,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이곳 브로츠와프까지 왔다. 꼬박 하루가 넘는 긴 시간이 걸려, 마침내 낯선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 지루하고도 긴 여정 동안, 나는 비행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경한 풍경들을 멍하니 응시하며, 내가 등 뒤에 남겨두고 온 과거와,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와 같은 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는 과연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익숙한 고독이라는 또 다른 가면을 눌러쓰고 살아가게 될까?

공항 출입문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짧게 깎은 까까머리를 한 젊은 청년의 다소 어색하고 수줍은 미소와 마주쳤다. 그는 구겨진 A4 용지 한 장을 가슴 높이로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서툰 필체로 내 한국 이름 '김'이 적혀 있었다. 폴란드 땅에서 마주한 그 한글 글자가 순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색하게 충돌하는 듯한 기묘한 순간이었다.

"킴?"

그의 발음은 서툴고 어색했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교정해주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순간부터, 나는 '김'이라는 과거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킴'이라는 이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스."

나의 대답은 극도로 짧고 간결했다. 아직 영어로 길게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낯선 상황에서의 불필요한 소통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팔로우 미."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무거운 캐리어를 덥석 한 손으로 쥐고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넓고 단단해 보이는 등판에는 벌써 땀이 송골송골 배어 있었다. 나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는, 나를 안내해 줄 사람을 놓치는 것만큼이나 불안하고 두려운 일은 없다. 공항 건물을 완전히 벗어나자, 뜨문뜨문 주차된 차들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도로를 가로질러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처음 맡아보는 낯선 도시의 도로 위로, 어디선가 향긋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감미롭게 속삭이듯 불어왔다. 폴란드의 공기는 내가 숨 쉬던 한국의 공기와는 분명히 달랐다—더 차갑고, 더 건조하며, 더 깨끗하고,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풀과 흙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

갑자기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이 늘 그렇듯, 과도한 긴장감이 내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던 첫사랑, 서툴고 어색했던 첫 관계,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던 첫 직장 출근길,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첫 외국 땅…. 세상의 모든 '처음'에는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가 뒤섞인, 아주 묘하고 강렬한 설렘이다. 내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었고, 긴장한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살아있음을, 내 존재를 강렬하게 느꼈다—마치 오랫동안 깊은 동면 상태에 빠져 있던 내 모든 감각들이 일제히 깨어나 숨 쉬기 시작하는 듯했다.

나는 태어나서 쉰 해 만에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에 와 보았다. 왜 이제야 왔을까. 그동안 나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이토록 넓고 다채로운 세계를 탐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만의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살았던 걸까? 특별히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도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낯선 음식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문화…. 어쩌면 그것은 내 안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세상에 대한 마지막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일 년 전, 나는 오랫동안 나의 정체성이자 피난처였던 프로그래밍이라는 세계를 완전히 떠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었던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필연적인 다음 단계처럼 느껴졌다. 디지털의 추상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머니의 부엌에서 나던 된장찌개 냄새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6개월 뒤, 나는 놀라운 집중력과 타고난 손재주 덕분인지, 한식, 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차례로 모두 취득하였다. 그리고 나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한인 식당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어 나의 이력서를 망설임 없이 보냈다. 마치 망망대해에 유리병 편지를 띄우는 심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도 폴란드에 있는 한 한식당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스카이프를 통해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툰 영어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대화를 이어갔고, 인터뷰 말미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남은 삶을 건, 새로운 시작을 향한 나의 간절한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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