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결심

by 남킹


1. 인생의 전환점, 회색 도시의 불현듯한 각성

인생이란 때로 예측 불가능한 강물처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어떤 날은 잔잔히 흘러가다가도, 또 어떤 날은 거센 물살로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는다. 내게 그 격류가 찾아온 것은, 서른다섯, 삶의 지도를 펼쳐놓고 딱 절반쯤 걸어왔다고 자위하던 무렵이었다. 늘 그렇듯 회색빛으로 잠에서 깨어난 서울의 아침, 사람들에 떠밀려 몸을 실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였다. 뿌연 창밖으로 속절없이 스쳐 지나가는 무채색의 건물들과 잿빛 하늘. 그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진 풍경 속에서, 문득 섬광 같은 깨달음이 심장을 관통했다. 인생은 덧없이 짧고, 그 찰나 같은 시간마저 의미 없는 관성의 궤도를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냉엄한 진실. 그것은 차가운 얼음송곳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엘리베이터의 상승 버튼을 누르고, 빽빽하게 들어찬 타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느껴졌다. 좁은 상자 안, 숫자가 바뀌는 표시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온 삼십오 년의 궤적을 더듬었다. 빛바랜 앨범처럼 펼쳐지는 기억들. 대학 졸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뛰어든 취업 전선, 그리고 그 후로 10년 넘게 이어진 회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로서의 삶.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맞춰 기계적으로 눈을 뜨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 도장을 찍고,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면 다시 짐짝처럼 지하철에 실려 퇴근하는 일상. 주말이면 잠시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휴식을 취하고, 다시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굴레. 이런 삶이 앞으로 20년, 30년, 어쩌면 기력이 다해 은퇴하는 그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예감은 숨 막히는 절망감으로 다가왔다. 쳇바퀴 속 다람쥐와 다를 바 없는 내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사 온 소주 두 병을 앞에 두고 나는 밤늦도록 홀로 독백을 이어갔다. 싸구려 술기운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자, 억눌렸던 질문들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지금 이 순간 내 남은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틀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아야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술잔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나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숙취로 깨질 듯한 두통 속에서도 내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생애 가장 무모하고도 중대한 결심이 심장에서부터 뜨겁게 차올랐다. 이 삶이 다하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고 사랑하는 단 한 가지에, 내 모든 시간과 열정을 걸어보기로.

결심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했다. 나는 벽에 가장 큰 종이를 찾아 붙이고, 검은색 마커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 삼십오 년간 내게 크고 작은 기쁨과 위안을 주었던 모든 것들을, 마치 고해성사하듯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게임, 축구, 낚시, 여자, 영화, 술, 당구, 춤, 여행, 맛집

열 개의 단어가 하얀 종이 위에 나열되었다. 그것들은 내 젊음의 조각들이자,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던 벗들이었다. 종이를 앞에 두고 나는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각 단어에 깃든 의미와 감정의 무게를 신중하게 가늠했다. 어떤 것이 내게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는가? 어떤 것이 피상적인 즐거움을 넘어, 내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깊은 울림을 주었는가? 그리고 하나씩, 미련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덜 절실하고 덜 본질적인 항목들을 지워나갔다. 신중하고도 고통스러운 가지치기의 과정이었다.

게임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도피처였지만, 가상의 세계 속 성취가 진정한 나를 대변하지는 못했다. 축구는 땀 흘리며 친구들과 부대끼는 즐거움, 그 유대감의 매개체로서 의미 있었지만, 경기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라기엔 부족했다. 낚시는 고요한 자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선사했지만, 그 정적인 평화만으로 내 역동적인 갈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영화, 술, 당구는 삶의 여백을 채우는 소소한 유희였을 뿐, 내 영혼 깊은 곳을 진정으로 건드리지는 못했다. 춤은 아주 가끔, 특별한 날에만 허락되는 일탈과 같은 기쁨이었고, 여행은 늘 가슴 설레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자주 떠나지 못하는 값비싼 사치였다. 맛집 탐방은 혀끝을 감도는 순간적인 쾌락을 선사했지만,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깊은 충족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침내, 종이 위에는 단 하나의 단어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여자’. 아니, 조금 더 정확하고 본질적인 표현을 찾는다면, 그것은 ‘사랑’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만큼 깊이 사랑받기를 갈망해왔다. 타인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 그 속에서 피어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나답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이 주는 가슴 뛰는 설렘, 서로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탐험하며 알아가는 과정의 짜릿한 흥분, 마침내 두 마음이 하나로 포개지는 순간의 벅찬 희열과 충만감. 그것이야말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가 인생을 걸고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였다.

그래서 나는 장엄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25년, 내 나이 예순의 문턱에 다다를 때까지, 오롯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여정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인생의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다채로운 사랑의 경험으로 수놓고,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자양분 삼아 남은 노년을 평온하게 보내리라.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이왕이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여성들과 만나고 사랑하며 그들의 문화와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이들과 나누는 사랑은 내 삶을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냉혹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매력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온 행운아도 아니었다. 연봉은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평범한 중산층 월급쟁이에 불과했고, 내세울 만한 특별한 재능이나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이런 내가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사랑을 찾아 나선다는 꿈은, 밤하늘의 별을 따려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허황되게 느껴졌다. 통장 잔고는 초라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포기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열망이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나는 그 벽을 넘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즉 직업이 필요했다. 나는 곧바로 해외 취업 관련 웹사이트들을 샅샅이 뒤지며, 국경과 문화를 넘어 보편적으로 수요가 있는 직종들을 조사했다. 마치 보물 지도 속 숨겨진 단서를 찾듯, 가능성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갔다.

며칠 밤낮으로 이어진 집요한 검색과 분석 끝에, 나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네 가지 직업군을 추려냈다.

프로그래밍, 건설, 여행, 식당

이 네 가지 선택지를 놓고, 나는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는 냉정한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었다.

프로그래밍: 차가운 모니터 불빛 아래, 복잡한 코드와 밤새 씨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논리와 수학적 사고가 필수적인 이 분야는, 감성과 직관에 더 의존하는 내 천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대학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C 학점을 간신히 넘겼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타고난 기질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이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건설: 뜨거운 태양 아래, 혹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육체적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일.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 외에는 변변한 운동조차 하지 않았던 내 저질 체력으로는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 자명했다. 고된 노동은 내 몸을 금방 녹초로 만들고, 꿈을 향한 의지마저 꺾어버릴 것이다.

여행: 여행 가이드가 되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모습. 표면적으로는 로맨틱하고 매력적으로 들렸지만, 현실은 달랐다. 심각한 방향 감각 상실, 즉 길치에 가까운 내가 타인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낯선 도시의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내가? 자칫하면 고객과 함께 길 위에서 조난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비명횡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내게 남은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선택지는 식당, 즉 요리였다. 음식은 전 세계인의 공통 언어이자 필수 요소였고, 기술만 있다면 어디서든 환영받을 수 있는 분야였다.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에는 분명 ‘사랑’과 통하는 따스함과 교감이 있었다.

2. 새로운 시작을 위한 담금질, 칼과 언어의 연마

결정이 서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한 옷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했고, 부장님께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내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으며, 회의 시간에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던 순간들이 잦았다는 것을. 동료들은 송별회라며 저녁에 술 한잔을 사주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그들은 진심으로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주었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는 축하와 함께 숨길 수 없는 염려와 일말의 동정이 뒤섞여 있었다. ‘저 친구, 현실의 벽에 부딪혀 또 금방 지쳐 돌아오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듯한 미묘한 표정들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염려 어린 시선도 나의 확고한 결심을 흔들지는 못했다. 다음 날, 나는 퇴직금을 정산받아 그 돈으로 곧장 요리학원과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마치 새로운 군대에 입대하는 신병처럼, 비장한 마음이었다. 요리학원은 미식의 거리로 이름난 서울 신사동의 유명한 곳을 선택했고, 영어학원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집 근처의 소규모 회화 전문 학원을 골랐다. 하루 일과는 숨 쉴 틈 없이 빡빡하게 돌아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요리 실습과 이론 수업에 매달렸고,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원어민 강사와 영어 회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백종원,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등 국내외 유명 셰프들의 요리 프로그램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그들의 기술과 철학을 흡수하려 애썼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복습과 예습을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요리 수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섬세한 기술을 요구했다. 무거운 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부터 시작해, 미세한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감각, 신선한 재료를 한눈에 알아보는 안목, 수많은 레시피를 암기하고 응용하는 창의력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밤, 허름한 나의 작은 원룸 주방은 나만의 연습장이 되었다. 서툰 칼질에 손가락에는 늘 반창고가 두세 개씩 붙어 있었고, 팔뚝은 뜨거운 기름이나 끓는 물에 데어 붉은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육체적인 고통조차 새로운 삶을 향한 치열한 도전의 훈장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그 아픔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영어는 요리보다 더 큰 산이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십 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시험을 위한 암기식 공부였을 뿐, 실제로 외국인 앞에서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하려니 혀가 굳어버리는 듯했다.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와 문장들이 뒤죽박죽 엉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원어민 강사의 친절한 미소 앞에서도 더듬거리고 얼굴을 붉히는 내 모습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교실 문을 두드렸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더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했고,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Hello, My name is…”를 겨우 내뱉던 수준에서, 점차 더듬거리면서나마 자기소개를 하고, 간단한 일상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느리지만 분명한 성장이었다.

그렇게 땀과 눈물, 그리고 약간의 피로 얼룩진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마침내 나는 한식, 일식,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모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시험장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나오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종이 증명서가 아니었다. 내 인생 2막을 여는 열쇠이자,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첫 번째 성취였다. 영어 실력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유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외국에 나가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생활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했다. 자신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제 남은 관문은 단 하나, 해외 취업이었다. 나는 지난 10년간 회사에서 갈고 닦았던 문서 작성 능력을 총동원하여, 정성스럽게 한글과 영문 이력서를 만들었다. 비록 실무 경력은 전무했지만, 짧은 기간 안에 취득한 세 개의 조리 자격증과 요리에 대한 나의 불타는 열정, 그리고 내 성격의 장점들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포장하려 노력했다. ‘성실하며 근면함(Diligent and Hardworking)’, ‘빠른 학습 능력(Fast Learner)’, ‘유연한 사고방식(Flexible Mindset)’, ‘긍정적인 태도(Positive Attitude)’ 등, 다소 상투적이지만 진심을 담은 문구들로 이력서의 빈칸을 채워나갔다. 사진은 가장 자신감 넘치고 호감 가는 표정으로 찍은 것을 골라 붙였다.

그리고 나는 마치 전 세계를 향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 이력서를 온라인으로 발송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 식당들이었다. 미국의 뉴욕과 LA부터 유럽의 파리, 런던, 로마, 아시아의 도쿄, 방콕, 싱가포르, 심지어 낯선 이름의 아프리카와 남미 도시들에 있는 한인 식당까지. 구글 맵과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져 찾아낸 모든 식당에 가리지 않고 이력서 메일을 보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메일을 보내면서, 동시에 틈틈이 여러 종류의 데이팅 앱과 국제 언어 교환 및 채팅 앱들을 다운로드하여 그 기능과 특징을 연구했다. 다양한 앱들 중에서 사용자 수, 평판, 인터페이스 등을 고려하여 가장 유망해 보이는 데이팅 앱 3개와 채팅 앱 5개를 최종적으로 선별했다. 사랑을 찾기 위한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가장 먼저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 수신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받은 편지함에는 대부분 자동 응답 메일이나 정중하지만 차가운 거절의 메시지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록 긍정적인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마음을 좀먹기 시작했다. ‘역시 내 결정이 너무 성급하고 무모했던 것일까?’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이 결국 헛된 꿈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들이 밤마다 잠 못 이루게 했다. 퇴직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기계적으로 메일함을 새로고침 하던 나의 눈에, 낯선 발신자 이름이 들어왔다.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에 위치한 한인 식당에서의 답장이었다. 기적처럼 느껴졌다. ‘할매 식당’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그곳은,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다. 메일의 내용은 지극히 간결하고 담백했다.

“귀하의 이력서 잘 검토했습니다. 요리 경력은 부족해 보이지만, 글에서 열정이 느껴지는군요. 마침 주방 보조 한 자리가 비어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메일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폴란드라니… 솔직히 말해 내가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동유럽 어딘가에 있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위대한 피아니스트 쇼팽의 고향이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어붙을 것 같던 내 꿈을 향한 길 위에 마침내 첫 번째 문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답장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전화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다행히 한국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 사장님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차분하고 인자했다. 그녀는 내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들을 던졌다. 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굳이 먼 타국에서 요리 일을 하려 하는지, 실제 요리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최소한 얼마나 오래 일할 생각인지 등. 나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특히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다는 내 꿈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짧지만 진심이 오간 인터뷰 끝에,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하셨다. 제시된 급여는 솔직히 한국에서의 연봉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지만, 숙식이 제공된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 폴란드에서 실무 경력을 쌓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즉시 수락 의사를 밝혔고,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출국하겠다고 약속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나는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2주 후 출발하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냈다. 서울(인천)을 출발하여 모스크바를 경유, 최종 목적지인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가는 다소 고된 여정의 노선이었다. 경유 시간이 길어 총 비행시간은 꽤 길었지만, 직항편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했기에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남은 2주 동안, 나는 인터넷과 도서관을 통해 폴란드의 역사, 문화, 기본적인 생활 정보들을 부지런히 공부했다. 꼭 필요한 짐들만 추려 커다란 캐리어 두 개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가족들과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대부분은 나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걱정과 우려가 담긴 말들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염려 속에서도, 나의 결심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미지의 땅 폴란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D-Day. 출국의 날이 밝았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게이트 앞에 서서,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동시에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를 여는 장엄한 시작이었다.

3. 낯선 땅에서의 첫걸음, 브로츠와프의 공기와 사람들

기나긴 비행과 지루한 모스크바 공항에서의 경유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국내선으로 환승하여 브로츠와프 코페르니쿠스 공항에 발을 디딘 것은 해 질 녘, 늦은 오후였다. 며칠 밤낮 설쳤던 탓에 온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낯선 공기와 풍경이 주는 설렘이 피로를 압도했다. 느릿느릿 진행되는 입국 심사와 수하물 찾는 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공항 도착 홀로 나서자, 예상했던 대로 한 젊은 백인 남성이 다소 엉성한 한글로 <할매 식당>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남?" 그가 짧고 무뚝뚝하게, 그러나 어딘가 부드러운 구석이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발음은 약간 어눌했지만 알아들을 만했다.

"예. 맞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로우!" 그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영어와 한국어가 묘하게 뒤섞인 한마디를 던지고는 내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번쩍 들어 능숙하게 끌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망설임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이었다. 마치 이 일을 수백 번은 해본 사람처럼, 복잡한 공항 홀과 세관 구역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주차장으로 거침없이 향했다. 나는 그의 빠른 걸음을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브로츠와프의 하늘은 붉은빛과 짙은 보라색이 환상적으로 뒤섞인 황홀한 황혼의 색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초가을 저녁의 서늘하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낯설게 얼굴을 스쳤다.

넓게 펼쳐진 야외 주차장에는 온갖 종류의 차들이 듬성듬성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더니, 마치 우리가 비밀 작전이라도 수행하는 은행 강도들처럼, 재빨리 낡은 승용차의 트렁크를 열고 내 짐을 휙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내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시늉을 하고는 자신은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가 시동을 걸자, 차 안에는 예상외로 잔잔하고 서정적인 클래식 음악이 낮게 흘러나왔다.

차는 공항 부지를 벗어나 포장 상태가 좋은 도로를 따라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폴란드의 풍경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동유럽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넓게 뻗은 도로와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고풍스러운 중세 양식의 첨탑과 붉은 벽돌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운전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기... 혹시... Do you speak English?"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는 운전 중에 잠시 나를 곁눈질하더니,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는 명백한 의사 표시였다. 나는 당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스마트폰의 구글 번역기를 꺼내 들었다. 러시아어, 폴란드어, 심지어 우크라이나어까지 동원하여 몇 마디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그는 번역기 화면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 속에서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낯선 도시의 풍경만을 말없이 바라보며 약 30분을 달려야 했다. 클래식 음악만이 우리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이름은 이반(Ivan)이었고, 폴란드의 이웃 나라인 벨라루스에서 온 청년이었다. 그는 ‘할매 식당’에서 도시락 배달, 식자재 구매 및 운반, 그리고 가끔 주방 보조 역할까지 담당하는 멀티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식당에 합류한 지 불과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그는 아무런 예고나 설명 없이 홀연히 식당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가 단속에 걸렸다는 소문도 돌았고,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실은 사장님 외에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한동안 식당 운영에 작은 혼란을 야기했다.

이반이 운전하는 차는 브로츠와프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점차 공장 지대와 오래된 창고 건물들이 늘어선 도시의 변두리로 보이는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차가 멈춰 선 곳은, 그런 삭막한 풍경 속에 다소 뜬금없이 자리한 2층짜리 독립 건물 앞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할매 식당’이라는 정겨운 한글 간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건물의 정면에는, 이곳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I Love Food>라는, 아마도 이전 가게에서 사용했을 법한 낡고 희미한 영문 간판이 형광등 불빛 아래 힘없이 빛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식당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지만, 손님이 없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묘한 적막감과 함께 약간은 휑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꽤 넓은 홀에는 족히 20개는 넘어 보이는 테이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네 명의 여성 직원들이 마감 시간 청소에 한창이었다. 분주하게 바닥을 닦고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그녀들은 모두 동유럽계 슬라브족 여성들로 보였다. 나는 그들의 존재에 약간 놀라면서도, 내심 기대감을 느꼈다. 주방 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커다란 튀김 솥 앞에서 쉴 새 없이 닭을 튀겨내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홀 안 가득 퍼져 있었다.

이반이 내 무거운 짐들을 식당 구석 한쪽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곧장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어색하게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닭을 튀기던 한국인 남성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불을 약하게 줄이고, 기름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닦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저는 송 실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방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일하게 된 김남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며 그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을 맞잡았다.

송 실장은 언뜻 보아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다부진 체격과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가 강인한 인상을 주었지만, 그의 표정은 겉보기와 달리 무뚝뚝함 속에 숨겨진 따뜻함과 연륜이 느껴졌다.

"사장님은 오늘 몸이 좀 안 좋으셔서 일찍 들어가셨어요. 아마 내일 아침에나 뵙게 될 겁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 같이 일할 친구들 간단히 소개해주고, 남주 씨 숙소로 안내해 드릴게요. 피곤하실 텐데."

송 실장은 나를 데리고 다시 홀로 나갔다. 그리고 청소에 열중하던 네 명의 여성 직원들을 잠시 불러 모았다. 그의 목소리에 그녀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자, 여기는 올라(Ola), 크리스티나(Krystyna), 나탈리아(Natalia), 그리고 안나(Anna)예요.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왔습니다. 이쪽은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일하게 될 김남주 씨."

네 명의 여성들은 각기 다른 매력과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올라는 키가 작고 가냘픈 체구에, 짙은 갈색 단발머리와 유난히 크고 맑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앳되어 보이는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올라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키가 크고 글래머러스하며 건강미 넘치는 체형이었다. 밝은 금발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어 올린(하이 포니테일)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탈리아는 언뜻 보아 4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배가 살짝 나온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얼굴은 작고 둥글었으며 특히 웃을 때 깊게 패이는 눈가의 주름과 함께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매가 무척 매력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안나는 네 명 중 가장 연장자로, 거의 할머니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연세가 지긋해 보였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과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강인함과 위엄이 느껴졌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기본적인 영어를 조금씩 구사할 줄 알았고, 나와 짧지만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다. 특히 올라와 크리스티나는 서로의 팔짱을 자연스럽게 끼고 서 있는 모습이 자매처럼 친밀해 보였다. 그들은 새로 온 동양인 남자에게 호기심이 동했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송 실장이 “내일부터 천천히 물어보세요. 이 친구 지금 장시간 비행으로 엄청 피곤할 테니까. 자, 남주 씨, 이제 그만 숙소로 갑시다.”라며 부드럽게 제지했다.

송 실장은 다시 이반에게 눈짓으로 내 짐을 들게 하고, 이번에는 자신의 깔끔한 승용차로 나를 안내했다. 차에 오르자 아까와는 다른 경쾌한 한국 가요가 흘러나왔다. 어느덧 완전히 어둠이 내린 브로츠와프의 밤거리는 낮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아스팔트 도로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간간이 ‘땡땡’거리는 소리와 함께 빨간색 트램(노면전차)이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약 10분 정도 차를 달려, 우리는 제법 현대적으로 보이는 1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지내게 될 거예요. 식당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사장님이 직원 숙소로 마련해 놓으신 곳인데, 9층에 남주 씨 방이 준비되어 있어요." 송 실장이 설명했다.

아파트 1층에는 <Żabka(자브카)>라는 이름의 폴란드 대표 편의점과 아담한 스시 레스토랑, 미용실, 그리고 빵 냄새가 흘러나오는 작은 제과점이 입점해 있어 생활하기에 편리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서 내리니, 긴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출입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송 실장은 902호라고 적힌 문 앞에서 멈춰 서서 내게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이게 남주 씨 방 열쇠예요. 안에는 침대, 책상, 옷장 같은 기본적인 가구랑 생필품은 다 구비되어 있고,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지니까 오늘 밤은 푹 쉬도록 하세요. 내일 아침 새벽 5시까지 식당으로 출근하면 됩니다. 시간 꼭 엄수하시고. 늦지 않게 걸어오면 10분이면 충분해요."

나는 송 실장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열쇠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방은 예상대로 크지는 않았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싱글 사이즈 침대와 작은 책상, 옷장이 한쪽에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는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미니 주방(싱크대, 인덕션, 전자레인지)이 갖춰져 있었다. 특히 최근에 리모델링을 새로 한 듯, 벽지와 바닥, 그리고 가구들 모두가 새것처럼 깨끗하고 산뜻했다.

작지만 아늑하고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방이었다. 무거운 짐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바로 길 건너편 건물에, 선명한 태극 마크와 함께 한글로 ‘한국 식품’이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로 꼬박 15시간 넘게 날아온 머나먼 이국땅 폴란드였지만, 창밖 풍경은 마치 한국의 어느 조용한 중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날 밤, 밀려오는 피로와 시차 적응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날들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 여행의 여독 속에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 펼쳐질 흥미진진한 모험에 대한 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를 미묘하게 들뜨게 만들었다.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인 새벽 4시에 저절로 눈을 떴다. 간단히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뒤, 약속된 시간인 새벽 5시에 맞춰 식당으로 향했다. 나의 공식적인 근무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12시간이었다. 휴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 직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쉬는 시스템이었다. 예전 한국에서의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열악한 근무 환경이었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주방 초보자 신세인 내가 감히 불평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이곳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일 때까지는, 묵묵히 참고 견디며 배우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사방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새벽 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매캐한 매연 대신 맑고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는 2차선 도로와 그 옆으로 나란히 뻗은 트램 철길을 따라,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식당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차량이나 트램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식당 입구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희미한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명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봤던 올라와 크리스티나였다.

나를 발견한 그녀들은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크리스티나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담배 한 개비를 불쑥 내밀었다. 사실 나는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은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맞이하는 첫 근무일 아침, 그것도 매력적인 두 명의 낯선 외국 여인들과 마주한 특별한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없는 흥분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허세가 뒤섞여 나도 모르게 선뜻 그녀가 내민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올라가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켜서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며 일단 살짝, 연기만 빨아들였다. 생각보다 훨씬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다행히 기침도 나지 않았다. 이제 용기를 얻어 조금 더 자신 있게,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세상이 잠시 하얗게 변하는 듯한 강렬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옆에 서 있던 크리스티나 쪽으로 휘청하며 쓰러질 뻔했다.

“아저씨! 오늘 기분이 어때요? 괜찮아요?” 올라는 서툰 영어였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오늘? 최고지! 완전 좋아!” 나는 순간적인 어지러움을 애써 감추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려 보였다.

그러자 그녀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서로를 마주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수하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다. 안정된 삶을 박차고 무작정 외국으로 떠나오기로 한 나의 선택에 대한 엄청난 만족감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벅찬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꿈꿔왔던 환상적인 모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신비롭고 짜릿한 예감이 온몸을 감쌌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첫 외국인 여자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가, 지금 바로 여기, 내 눈앞에 서 있다는 강렬하고도 운명적인 현실을….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지만 왠지 모르게 친밀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각자 담배 한 개비를 사이좋게 나누어 피우고 나서야 비로소 식당 안으로 들어가 그날의 업무를 시작했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송 실장이 내게 부여한 첫 번째 미션은 다름 아닌 달걀 프라이였다. 내 앞에는 30개짜리 계란판이 무려 세 겹으로 쌓여 있었다. 즉, 최소한 90개의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올라는 익숙하다는 듯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용 가스레인지 두 개를 조리대 위에 나란히 놓고 불을 켰다. 그리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녀는 놀랍게도 양손에 달걀을 하나씩 쥐고는 서로 가볍게 부딪혀 껍질을 깬 다음, 마치 마법을 부리듯 능숙하고 정확하게 커다란 프라이팬 위에, 노른자가 정확히 중앙에 오도록 하여 예쁜 동그라미 모양으로 달걀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모두 8개의 달걀을 한 팬에 올려 한꺼번에 굽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현란한 손놀림에 감탄하면서도, 아직 왼손으로는 달걀을 깨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오른손으로 달걀 한 개를 조심스럽게 쥐고 프라이팬의 딱딱한 모서리에 ‘톡’ 하고 부딪친 다음, 최대한 살포시 팬 위에 내용물을 풀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노른자는 터져버리기 일쑤였고, 모양도 제각각 삐뚤빼뚤, 볼품없었다.

나의 서툴고 어설픈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올라와 크리스티나는, 자기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우크라이나어로 빠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크리스티나가 장난스럽게, 혹은 격려하듯이 그녀의 부드러운 한 손을 내 어깨 위에 툭 올려놓았다. 그 예상치 못한 가벼운 스킨십에 나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온몸에 짜릿한 전율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삶의 기쁨과 충만감을 느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것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감정들 속에서 피어나는 생생한 삶의 환희. 나는 이제 막, 내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 챕터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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