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맨 우들스 (Lucky Man Woodles)

by 남킹


서장: 잿빛 세상의 시작 (Prologue: The Dawn of an Ashen World)

전쟁의 포화는 대지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승리라는 허울 좋은 단어가 아니었다. 승리는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고, 그 의미조차 퇴색된 지 오래였다. 잿빛으로 침전된 하늘 아래, 황폐함만이 뼈대만 남은 문명의 잔해 더미 위에서 스러지지 않는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때 수십억을 헤아리던 인간의 수는 급격히 줄어, 이제는 아득한 옛 전설 속의 희미한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로 희귀해졌다. 문명의 심장이었던 도시는 무너진 기억의 거대한 무덤처럼 파괴되었고, 그 폐허 위에는 오직 침묵과 절망만이 유령처럼 배회했다. 강철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자동차들은 시간의 녹을 뒤집어쓴 채 길 위에서 버려진 고철 덩어리로 전락했고, 한때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던 아스팔트 도로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무장한 자연의 거침없는 반격 앞에 처참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름 모를 잡초와 맹렬한 기세의 덩굴식물들이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나와, 흉물스러운 폐허를 녹색의 수의처럼 뒤덮어갔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핏빛으로 물든 모래바람이 영겁의 시간처럼 끝없이 불어와, 인류가 남긴 미약한 흔적마저 모조리 지워버릴 듯 위협적으로 휘몰아쳤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탁한 황색 비는 메마른 땅 위에 잠시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켰다가 스러졌지만, 그것은 더 이상 대지에 생명을 베푸는 축복의 단비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입자, 치명적인 방사능을 머금은 그것은 차라리 죽음의 전령이 뿌려대는 저주의 세례에 가까웠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독, 방사능으로 질식해가고 있었다. 한때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던 바다는 검고 탁한 죽음의 액체로 변질되어, 해안선을 따라 시선을 던지면 끝없이 밀려온 물고기들의 허연 배가 모래사장을 뒤덮어 섬뜩한 카펫을 이루었다. 죽음은 부패를 낳았고, 그 지독한 악취는 바람을 타고 대륙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살아남은 모든 생명의 코를 마비시켰다. 세상은 이제, 그 어떤 참혹한 지옥도를 펼쳐놓아도 부족할 만큼의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고통스러운 생존, 그 자체뿐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과 번영을 까맣게 잊은 채, 현재의 고통 속에서 내일조차 기약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연명할 뿐이었다. 희망은 사치였고, 꿈은 망각의 대상이었다.

<릴리안 나리(Lillian Nari)>의 <호모 사피엔스 기록(The Homo Sapiens Chronicle)> <대멸종 편(The Great Extinction Volume)> 제1장 9절: "인류의 오만과 탐욕이 빚어낸 이 거대한 비극 앞에, 우주는 그저 침묵으로 답할 뿐이었다. 그들의 신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구원은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되었다. 이것은 냉정한 기록이자, 처절한 반성의 서곡이다."

제 1장: 꿈과 현실의 아스라한 경계에서 (Chapter 1: On the Evanescent Border of Dream and Reality)

우들스의 하루는 언제나 혼돈스러운 꿈의 심연으로부터, 무거운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의식의 수면 위로 힘겹게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꿈은 시간의 축이 뒤틀리고 왜곡된, 초현실적인 모자이크와 같았다. 아련한 과거와 냉혹한 현재, 덧없이 스러지는 상상과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같은 기억들이 아무런 질서 없이 뒤섞여, 형태 없는 감정의 파편들만이 안개처럼 부유하는 혼돈의 바다였다. 감각은 때로 칼날처럼 날카롭게 살아 숨 쉬었지만, 그 꿈에는 어떠한 일관된 서사도, 명확한 줄거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한 평온의 순간과, 격렬한 불안과 사무치는 그리움의 거대한 파도가 쉴 새 없이 번갈아 밀려왔다. 그 파도 속에서 그는 익사 직전의 난파선 조각처럼 허우적거렸다.

'아, 이것이… 꿈이로구나.' 그 희미한 자각의 찰나가 현실로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치 깊고 어두운 물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 끝에 필사적으로 수면을 뚫고 솟아오르는 물고기처럼, 그는 의식의 세계로 힘겹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 전환은 결코 부드럽거나 안락한 과정이 아니었다. 방광을 찢을 듯 예리하게 파고드는 생리적 고통,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늙고 지친 세포들이 보내는 나른하고도 끈질긴 저항, 그리고 태양마저 인공으로 대체된 이 잿빛 지상에서 또다시 무의미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이 복잡하게 뒤엉켜, 그는 종종 차가운 관 속처럼 느껴지는 침대 안에 누운 채 수십 분, 때로는 몇 시간을 망설이곤 했다. 그 망설임 속에서, 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무심하게 흘러내렸다.

갈등과 망각의 기묘한 공존. 현실과 비현실의 희미한 테두리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의식의 표류. 그리고 예고 없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을 꿰뚫는, 죽은 아내에 대한 강렬하고도 사무치는 향수. 이 모든 감정의 혼란과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를 마침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게 하는 것은 언제나 후각의 기억, 바로 향기였다. 그날 아침도 어김없었다.

오래된, 그러나 놀랍도록 생생하고도 달콤쌉싸름한 커피 향이 그의 콧구멍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오직 그의 기억 저장고 가장 깊숙한 곳에 봉인된 향기였지만, 그에게는 주변의 어떤 냄새보다도 더 강렬하고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아련하고도 그리운 향기를 따라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침대 옆에 실비아가 서 있었다. 푸른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그녀의 존재는 방 안을 부유하는 미세한 먼지 입자들 사이로 가볍게 떨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의 발밑은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흔들렸다.

실비아는 그녀의 짙고 푸른 눈동자로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폭풍 전야의 태평양 심해처럼 깊고 신비로웠으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연민,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슬픈 체념을 담고 있는 듯했다. 우들스는 순간 그 깊은 눈 속에서 자신의 지치고 메마른 영혼이, 거울처럼 남김없이 비춰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가, 이내 차가운 현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그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 그의 외로움을 달래고 일상을 보조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의 산물일 뿐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상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존재에서 일종의 위안을, 혹은 위안과 닮은 감정을 느끼곤 했다.

"며칠이나 주무셨는지 짐작이나 하세요, 우들스 씨?" 그녀의 목소리는 실제 여성의 음성보다 한 톤 낮게, 그리고 약간의 기계적인 울림이 섞여 설정되어 있었다. 우들스는 그 차분하고 부드러운 저음을 선호했다. 마치 숙련된 연주자가 첼로를 켜듯, 그의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는 듯한 안정감이 있었다.

"이틀인가…?" 며칠 동안 사용하지 않은 성대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그가 간신히 물었다.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폐가의 녹슨 경첩처럼 삐걱거렸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희미한, 거의 감지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푸른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중력을 거스르듯 허공에서 부드러운 물결을 그리며 우아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비현실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 마치 심해의 발광 해초가 느리게 춤추는 듯한 광경이었다.

"나흘이에요. 정확히 나흘 하고도 여섯 시간. 꼬박 죽은 듯이 잠만 주무셨어요. 당신…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프로그래밍된 걱정 이상의 무언가, 어쩌면 인간의 감정과 유사한 미묘한 떨림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물론 그것 또한 정교한 알고리즘의 결과일 터였다.

그는 천천히, 뻣뻣하게 굳은 목을 돌려 방의 맞은편 구석,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떠 있는 홀로워치를 응시했다. 반투명한 실비아의 형상 너머로, 낮은 경고음과 함께 시스템 상태를 알리는 메시지가 깜박이고 있었다. 선명하고도 차가운 붉은색 숫자가 공중에 떠올라 그의 흐릿한 시선을 사로잡았다.

2166년 7월 11일. 오후 11시 44분.

방 안의 조명이 서서히,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부드럽고 은은하게 밝아왔다. 눈부심에 익숙해지자 주변의 모든 것이 점차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낡고 투박한 가구들, 벽에 걸린 낡은 액자 속 아내의 홀로그램 사진 – 그녀는 여전히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따뜻하고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이제 영원히 멈춰버린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옷가지들, 그리고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약병들. 모든 것이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잠든 사이 소리 없이 흘러간 시간의 무게, 혹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그러나 감지할 수 있는 변화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실비아가 사라졌다. 마치 맡겨진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그녀의 푸른 형상이 수많은 빛의 입자로 분해되어 희미한 잔상을 남기며 공기 중으로 덧없이 흩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봄날의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혹은 새벽녘의 안개가 햇살에 스러지듯 덧없고 아름다웠다.

그녀가 사라진 빈자리를 멍하니 응시하며, 그는 오랫동안 실비아를, 그리고 그녀가 채워주었던 그 찰나의 온기와 대화의 순간을 생각했다. 홀로그램이 사라진 공간은 다시금 텅 빈,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채워졌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깊고 철저하게 혼자인지를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불면의 밤이 깊어질수록, 죽은 아내 아이리스에 대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인공 태양은 매일 아침 7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떠올라 세상을 기계적으로 비추지만, 그의 마음속 태양은 이미 오래전에 빛을 잃고 차갑게 꺼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는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만년설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창문의 가려진 틈새로, 인공 태양이 쏘아대는 강렬하고도 집요한, 어딘지 모르게 적대적인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그의 피곤한 몸뚱이를 갉아먹듯 파고들었다. 눈꺼풀 안쪽을 물들이는 붉은 빛이 마침내 그의 의식을 현실의 얕은 수면으로 완전히 끌어올렸다. 그러나 현실과 생각의 경계는 여전히 안개처럼 모호했고, 감각은 낯설고 무뎌져 있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그의 육체는 이미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의 풍파를 견뎌왔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외형적인 노화는 상당히 억제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깊이 지쳐 있었고, 마치 오래된 양피지처럼 바스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최근 며칠 동안, 아니 어쩌면 몇 주 동안, 기억의 미로 속에서 헝클어진 무질서로 새겨진 과거의 차이나타운을 헤매고 다녔다. 오래된, 닳고 닳은 홀로리코더에 담긴 희미한 추억처럼, 그의 기억 속에서 그 거리의 모습이 흐릿하게,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좁고 구불구불하며 축축한 골목길, 현란하고 퇴폐적인 붉은색과 금색으로 뒤덮인 네온사인 간판들, 광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파편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를 안개처럼 짙게 뒤덮었던 뜨거운 수증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국적인 향신료가 뒤섞인 독특하고도 강렬한 냄새. 그 냄새는 때로 구역질을 유발했지만, 동시에 묘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 기억 속 거리를,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정처 없이 헤매며, 거칠게 제조된 '구오롱스(Guolongs)'를 찾아다녔다. 4세대 메탐페타민 계열의 강력하고도 치명적인 합성 마약. 그것만이 이 지독한 불면과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존재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망각이라는 달콤한 평화를 선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가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은 대부분 이 구오롱스를 구하는 데 소리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당연하게도, 약효가 강해질수록 환각은 더욱 길고 깊어졌으며, 망각의 심연은 더욱 아득해졌다. 어떤 날은 자신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의식이 짙은 안개처럼 흐릿해지고, 기억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파편화되어 흩어지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 그 순간들 속에서 그는 잠시나마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종종 자조적으로, 거의 절망에 가까운 체념으로 생각했다. 또렷한 인식이 돌아오는 순간, 그의 시간은 어김없이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사무치는 슬픔, 그리고 존재의 허무함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구오롱스가 만들어내는 달콤하고도 위험한 망각은, 적어도 그 참혹한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의 유일하고도 마지막 도피처였다.

그는 이제 기억 속에서도 흔적조차 희미해진 그 시절의 거리와 골목, 밤을 밝히던 낡은 가스등과 귓가를 스치던 축축한 바람, 길가에 위태롭게 늘어선 이름 모를 나무들과 바람에 펄럭이던 빛바랜 걸개들의 이미지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애썼다. 기억의 가장 깊숙한 끄트머리까지 샅샅이 훑으며, 그때 맡았던 바다의 비릿한 내음과 디젤 엔진의 매캐한 향기를 다시 한번 느껴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가, 이제는 오직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희미하고도 왜곡된 환영이 되어버렸다. 마치 신기루처럼,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애틋하고도 아련한 풍경과 감각들은, 수많은 상실과 깊은 절망, 그리고 약물로 인해 구부러지고 왜곡된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현실은 그가 붙잡으려는 과거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혹하며, 용서가 없었다.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멸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고, 그가 사랑하고 기억했던 모든 것은 차가운 회색 먼지가 되어 영겁의 시간 속에 흔적 없이 떠내려갔다.

그는 눈을 감은 듯 뜬 듯, 세상을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몽롱하고도 위태로운 상태로 그날,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그녀, 아이리스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그 순간의 자신을, 어쩌면 그는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때의 자신에게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불확실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미래라는 것이 어렴풋이 존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사랑이 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텅 빈 껍데기만이 남아 과거의 잔영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유령, 과거에 매몰된 망령이었다.

제 2장: 밤의 도시, 빛과 그림자의 교향곡 (Chapter 2: Symphony of Night City, Light and Shadow)

칠월의 밤바람은 짙고도 향긋한, 어딘지 모르게 야생적인 풀냄새를 실어 날랐다. 그것은 잿빛 폐허 속에서도 자연이 인간의 무관심과 끊임없는 파괴를 딛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숨 쉬고 있다는 명백하고도 장엄한 증거였다. 그 강인하고도 원초적인 생명력의 향기에 이끌리듯, 우들스는 천천히, 삐걱거리는 관절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낡은 창문을 신경질적인 마찰음과 함께 끝까지 열어젖혔다. 오래된 금속 창틀은 해풍에 섞인 습기와 염분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흉하게 녹슬어 있었고, 열 때마다 마치 고통스러운 비명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그 거슬리는 소리마저도 싫지 않았다. 그것은 적어도 이 숨 막히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세계가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몇 안 되는 작고도 소중한 증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은 차고 넘쳤다. 인공 조명이 빚어내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마치 거대한 신기루 같은 현대 문명의 환상이었다.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밤하늘을 캔버스 삼아 건물 외벽에 현란하고도 자극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투사하며 변화했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분주히 오가는 공중 택시들은 밤의 장막 위에 빛의 궤적을 수놓으며 마치 반딧불이 떼처럼 반짝였다. 그러나 그 눈부시고도 현란한 빛의 향연 위로, 하늘은 별 하나 없이 텅 빈, 깊고 막막한 검은색일 뿐이었다. 사실, 반짝이는 별들이 보석처럼 총총히 박힌 진짜 밤하늘은 이제 오래된 디지털 영상이나 박물관의 기록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아득하고도 그리운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대멸종 이전, 인류가 아직 하늘을 자유롭게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었던 시대의 풍경. 이미 한 세기가 훌쩍 넘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유리잔에 브랜디를 따랐다. 호박색의 진하고도 깊은 액체가 유리의 벽을 타고 무게감 있게, 마치 농축된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것 또한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거의 죄악에 가까운 사치였다. 천연 발효 과정을 거친 진짜 알코올은 이제 극소수의 특권층만이 은밀하고도 과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값비싼 사치품이 된 지 오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과 향, 심지어 취기마저도 화학적으로 흉내 낸 값싼 합성 대체품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우들스는 그의 위험하고도 비밀스러운 직업 덕분에 가끔 이런 작고도 강렬한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목숨을 건 거래의 대가였다.

창문을 활짝 열자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던 해충들이 빛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을 걱정할 새도 없이, 그의 방 천장에 달린 낡고 깜빡거리는 형광등에는 순식간에 온갖 종류의 날벌레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정신없이 맴돌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기괴한 형태의 그림자들이 광원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대멸종 이후, 포유류를 비롯한 수많은 고등 생명체가 절멸의 길을 걸었지만, 곤충들은 놀라운 적응력과 번식력으로 살아남아 오히려 그 세력을 확장하며 번성했다. 그들은 포식자의 부재와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몸집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강력한 독성에 대한 내성을 갖추었으며, 심지어 높은 수치의 방사능 속에서도 생존하고 번식하는 끔찍한 법을 터득했다.

그들은 이제 지상에 몇 안 되는 인간 거주 지역을 밤낮으로 온통 새까맣게 뒤덮으며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곳, 남태평양의 심장부에 위치한, 과거 폴리네시아라고 불렸던 지역에 건설된 배들의 도시(City of Ships)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들의 도시'라는 이름은 결코 시적인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대륙 대부분이 치명적인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해수면이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면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망망대해를 떠돌던 버려진 거대한 선박들을 필사적으로 끌어모아 서로 굵은 밧줄과 녹슨 강철 케이블로 위태롭게 엮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건설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생존을 위한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시도였고,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불안정하고 위태롭지만, 그곳은 분명 살아있는 도시였다.

그는 잠시, 벽에 부착된 푸른빛의 살충광 스위치에 손을 뻗을까 망설이다가 이내 관두었다. 형광등 불빛 주위를 필사적으로, 거의 광적으로 맴도는 저 미물들에게서 일종의 불쌍함, 혹은 연민과 비슷한 기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는 종말 앞에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애처로움.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자기 위안적인,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직 그런 여린 감정이 한 조각이나마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 고맙고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수많은 인간의 삶을, 때로는 영혼까지 무참히 소멸시켜 온 그로서는, 어떤 형태의 생명이든 불필요하게 해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과 깊은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만약 그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인간성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무의미한 살상이 그의 손에 의해 차갑고 무감각하게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곤 했다.

밤바람이 낡은 커튼 자락을 부드럽게 흔들며 방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숭숭, 하고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가 깊은 고요함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속옷 차림이었지만, 밤바람에서 그다지 한기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의 몸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왔지만, 여전히 혹독한 훈련과 끊임없는 임무 수행으로 강철처럼 단련되어 단단했다. 근육량은 전성기에 비해 조금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위험하고도 고독한 직업을 수행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계속 창문을 열어 두기로 결정했다. 벌레들은 성가시고 혐오스러웠지만, 창문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밤의 공기와 도시의 희미한 소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바람의 감촉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이 폐쇄되고도 갑갑한 방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아주 작은 해방감이었다.

그가 묵고 있는 방은 '피닉스 라이징(Phoenix Rising)'이라는 다소 거창하고도 아이러니한 이름의 호텔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지상 기반 건물 중 하나였다. 그 이름은 불사조가 잿더미 속에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나듯, 인류가 대멸종이라는 참혹하고도 절망적인 시련을 딛고 살아남아 다시 한번 문명의 불꽃을 피워 올리리라는 간절한 희망과 염원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우들스에게 그 거창하고도 비장한 이름은 그저 공허하고 과장된, 현실과 동떨어진 상징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인류는 살아남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영광스럽고 위대한 재탄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끝없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존재론적 허무 속에서 벌이는 필사적이고도 처절한 발버둥에 가까웠다.

이 호텔은 땅 위에 견고하게 세워진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였지만, 그 아래 펼쳐진 배들의 도시는 태양이 비추는 낮 동안에는 혼란과 무질서, 폭력과 빈곤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도시를 구성하는 선박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목적으로 건조된 것들이 뒤섞인 거대한 고철의 집합체였다. 거대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낡은 화물선,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대양을 누볐던 호화 여객선,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녹슬어버린 퇴역 군함, 검은 기름을 가득 채웠던 거대한 유조선, 심지어는 대멸종 이전 시대의 사치와 향락을 상징했던 낡고 부식된 크루즈 선박들까지. 그들은 각자의 녹슨 과거를 마치 훈장처럼, 혹은 벗어날 수 없는 멍에처럼 간직한 채, 기이하고도 불안정한 모습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새로운 도시의 기형적인 일부가 되었다. 땜질하듯 이어붙인 녹슨 철판 통로와 임시 가건물들이 배들 사이를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연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내장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밤이 되면, 깊고 너그러운 어둠이 그 모든 혼돈과 추함, 절망과 폭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낮 동안 도시를 지배했던 인간들 사이의 끊임없는 반목과 치졸한 폭력, 혼란과 갈등, 죽음과 절망의 짙은 그림자들이 검은 장막 뒤로 잠시 몸을 숨겼다. 마치 지쳐버린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며 짧은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추악함과 고통은 단지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지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고, 다만 그 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을 뿐이었다.

그는 창가에 서서 저 아래, 아득히 먼 곳에서 깨알처럼 반짝이는 불빛들을 무심하고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마치 검은 벨벳 천 위에 흩뿌려진 값싼 유리 조각처럼, 혹은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길 잃은 별들처럼 아련하고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밤이 선사하는 이 멋지고도 쓸쓸한 파노라마 속에서, 그의 뺨을 살포시 훑고 지나가는 서늘하고도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그는 비로소 아주 잠시나마, 찰나의 순간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어둠 속에 모든 가난과 추함, 죄스러움과 고통이 숨겨진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아주 잠시의 휴식이나, 갓 구운 맛있는 빵 한 조각을 베어 물며 느끼는 찰나의 행복처럼 소중하고도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래, 어쩌면 이 순간만이 그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그리고 동시에 죽어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일지도 몰랐다.

그는 창가 옆에 놓인 낡고 삐걱거리는, 쿠션이 다 꺼진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도시의 야경을 말없이, 하염없이 감상했다. 인공 조명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고도 현란한 빛의 패턴, 거대한 배들의 육중하고도 위압적인 윤곽을 따라 이어지는 희미한 조명의 선들, 그리고 그 사이로 칠흑처럼 검게 흐르는 바닷물의 어둡고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실루엣.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기계 생명체가 느리고도 깊게, 고통스럽게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도시는 살아있었다. 비록 그 심장이 차가운 강철과 녹슨 기계로 만들어졌고, 그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검고 탁한 기름이라 할지라도, 도시는 분명 자신만의 기괴하고도 처절한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들린 유리잔을 들어 어둠 속에서 살짝 흔들었다. 잔 속의 호박색 액체가 창밖의 희미한 불빛을 반사하며 매혹적이고도 위험하게 춤을 추었다. 그는 한 모금을 조용히, 거의 경건하게 목으로 넘겼다. 알코올의 강렬하고도 짜릿한 쓰라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텅 빈 속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고도 씁쓸한, 자조적인 미소가 맺혔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 덧없고도 허무한 찰나만큼은, 그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감각을,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꺼져가는 불씨에 마지막으로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위태롭고도 절박한 감각이었다.

제 3장: 일곱 번째 영혼, 그리고 영원의 무게 (Chapter 3: The Seventh Soul, and the Weight of Eternity)

그는 천천히, 거의 무의식적인 움직임으로 방 중앙으로 걸어가, 메신텔(MessinTel)에 기록된 새로운 지령을 확인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에는 오랜 습관에서 비롯된 군더더기 없는, 냉정한 효율성이 배어 있었다. 마치 잘 조율된 기계의 부품처럼, 그의 몸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방 가운데 허공에 떠 있는 푸른빛의 홀로그램 화면이 그의 지문 인식과 홍채 스캔을 동시에, 거의 즉각적으로 거치자 낮은 기계음과 함께 부드럽게 활성화되었다. 익숙하고도 차가운 인터페이스가 그의 시야 가득 펼쳐졌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이 변함없는, 지독하리만치 고풍스러운 화면을 마주해 왔다. 놀랍게도,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22세기 초반, 즉 2100년대 초반의 구식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의도적인 복고풍, 혹은 시스템 개발자의 기벽일지도 몰랐다. 빠르게 변화하고 소멸하는 세상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일종의 기묘한 안정감을, 혹은 냉소적인 체념을 주었다.

지령의 내용은 극도로 간결하고 함축적이었다. 마치 암호문처럼, 거의 모든 핵심 정보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다중 암호화 체계로 철저하게 보호되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해독하는 데 꼬박 몇 분, 때로는 몇 시간을 집중해야 했다. 그의 뇌리에 깊숙이 이식된 신경망 인터페이스와 연결된 해독 임플란트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작동하며 암호의 두꺼운 벽을 하나씩 허물어갔다. 지구 시간을 기준으로 약 8개월 만에, 그의 일곱 번째 제거 대상이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타겟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노바크(Elizabeth Novak)'. 현재 추정 나이 153세. 현 위치는 태양계 제3번 외곽 식민지 서클, 통칭 '타이탄 웨스트(Titan West)'. 그녀는 그곳에 위치한 최고 수준의 유전자 연구소 '프로메테우스 랩(Prometheus Lab)'의 수장이자, 인류의 오랜 숙원인 불멸 기술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어쩌면 인류의 미래를 쥔 인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그녀는 그의 손에 의해 이 세상에서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할 제거 대상이 되었다.

홀로그램 시계는 막 자정을 넘겨 2166년 7월 12일 00시 0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77번째 생일까지는 정확히 17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태양계의 세 번째 식민지,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에 건설된 거대한 돔형 서클 도시에서 외둥이(Singleton), 즉 복제되지 않은 단일 개체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인 타이탄 서클 기준으로는 여전히 혈기 왕성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취급받을 나이였지만, 폭력과 배신, 죽음이 일상처럼 넘쳐나는 이곳 태양계 제1 섹터(지구 및 근방 우주 정거장 포함)에서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존재, 혹은 죽음의 신마저 비껴가는 저주받은 행운아로 여겨지며 '럭키맨(Lucky Man)'이라는 다소 냉소적이고도 경외심이 담긴 별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럭키맨 우들스. 그의 본명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이 별칭은 이제 암흑가의 살아있는 전설, 혹은 실체 없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그 존재 자체를 확인한 이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설령 그를 만났다고 해도, 그 사실을 다른 이에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를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의 손에 의해 존재 자체가, 기억과 기록을 포함한 모든 흔적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는 마치 깊은 밤 그림자 속에 숨어 희미하게 흔들리는 아지랑이처럼, 뚜렷한 실체가 없으면서도 막연한 공포와 섬뜩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칼날, 소리 없는 죽음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본명은 존재했다. 제롬 르 제주스 데 샹(Jerome Le Jesus des Champs). '샹(Champs)'은 그가 태어난 곳, 중립지역의 버려진 기형 아기 집단소 출신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은 성이었다. 대멸종 이후 극심한 혼란기에, 유전자 변형이나 복제 과정의 예측 불가능한 오류로 인해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특별 관리 시설에서 양육되었다. 그들은 일반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고,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었으며, 대부분 사회의 가장 어둡고 험하며 위험한 일을 맡도록 운명지어졌다. '제롬(Jerome)'은 그가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그에 대해, 마치 꿈결처럼 아련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곤 했다. 대멸종 이전 시대의 위대한 이상주의자이자 과학자였으며, 인류를 임박한 파멸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바쳐 노력했던 인물이라고. 그러나 그의 숭고한 노력은 결국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무력하게 실패로 돌아갔고, 인류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제주스(Jesus)'는 그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그의 삶에 가장 큰 비극이 닥쳤던 그 해에,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덧붙인 것이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까지 끊임없이,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끝없이 펼쳐진 푸른 풀들과 수정처럼 맑은 강이 흘렀다는 그녀의 고향 땅을 떠올리며 선택한 이름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순수와 뿌리를 찾고, 자신의 공허하고도 무의미한 존재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서툴지만 간절한, 거의 필사적인 시도였다. 이름에 담긴 그 성스럽고도 무거운 무게만큼, 그는 자신의 피로 얼룩진 삶에도 어떤 숭고함이나 구원, 혹은 최소한의 목적이라도 깃들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고향 땅의 푸른 초원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낙원의 이미지를 그리워했다. 대멸종 직후의 혼란기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거의 납치되듯 끌려와, 희망이라고는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하고 절망적인 타이탄의 지하 탄광 거주 지역에서 40년도 채 되지 않는 짧고도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힘겹게, 거의 속삭이듯 내뱉은 단 두 마디, "푸른… 들판…"이었다. 우들스는 그 마지막 말에 담긴 형언할 수 없는 의미를 오랫동안, 수십 년 동안 곱씹었다. 그것은 단순히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향수였을까, 아니면 죽음 너머에서 그녀가 마주하게 될 평화롭고 아름다운 안식의 세계에 대한 마지막 희미한 희망의 속삭임이었을까? 그는 아마 영원히 그 답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녀는 이제 곱디고운, 하얀 유골 가루가 되어, 그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작고 차가운 원통형 펜던트, '두퍼스(Dupers)' 안에 고이 안치되어 있었다. 두퍼스는 단순한 휴대용 납골함이 아니었다. 고인의 유해를 극저온 상태로 보존하는 동시에, 생전의 기억 데이터, 목소리 샘플, 심지어는 3차원 홀로그램 이미지까지 저장하여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자, 이 시대의 가장 슬픈 발명품 중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마치 부적처럼, 혹은 자신의 심장 일부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어머니의 물리적인 유해와 함께, 그녀의 디지털화된 일부가 여전히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이 차갑고 외로운, 신조차 버린 듯한 세상에서 그를 지탱해주는 유일하고도 희미한 위안이었다.

그는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라도, 그녀가 태어났다는 그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에 어머니의 유해를 뿌려줄 생각이다.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이자, 그의 가슴 깊이 송곳처럼 박힌 상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믿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직 요원하고도 불가능에 가까운 꿈일 뿐이었다. 그녀가 죽은 지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그녀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고향 땅은 여전히 치명적인 고밀도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분류되어 접근 자체가 금지된 상태였다.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이 발 디딜 수 없는 죽음의 땅, 즉, 인간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곳에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이 떠나간 자리.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도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인류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자연에게 치유와 회복, 그리고 번성의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다.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며 강인하고도 기괴한 생명력을 얻은 새로운 종의 식물들이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를 뒤덮어 녹색과 핏빛, 그리고 검은색이 뒤섞인 기묘한 카펫을 펼쳤고, 방사능의 영향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변형된 돌연변이 동물들이 그 기이하고도 위험한 푸른 낙원 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그는 가끔 위성이나 무인 탐사 드론이 보내온 그곳의 홀로그램 영상을 넋을 잃고, 거의 황홀경에 빠진 채 바라보곤 했다. 치명적인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지만, 인간의 파괴적인 간섭이 사라진 그 땅은 눈부시게 황홀하고도 섬뜩한, 원시적인 광경을 선사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세계가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그리고 숭고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람과 햇빛, 그리고 변이된 자연만이 공존하는 땅은, 그 어떤 인공적인 정원이나 예술 작품보다도 언제나 더 깊고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그는 문득,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자신의 세포들을 느끼며, 어머니의 유해가 담긴 차가운 두퍼스를 가슴에 안고, 그 기이한 푸른 풀밭 위에 누워 마지막 숨을 조용히, 평화롭게 내쉬는 상상. 그것은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최후였다.

죽음. 한때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이자 풀리지 않는 영원한 신비였던 그것은, 이제 눈부신 기술의 발전 앞에서 너무나 시시하고 하찮은, 심지어 선택 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다. 죽음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개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선택의 문제로 전락했다. 질병은 언제든지 개인 맞춤형 유전자 치료나 정교한 나노봇 시술로 손쉽게 고칠 수 있었고, 노화되거나 손상된 장기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완벽한 복제 장기나 한층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인공 장기로 간단하게 교체할 수 있게 되었다. 심장이 멎으면 새로운 바이오-인공 심장으로 바꾸고, 폐가 기능을 상실하면 최첨단 나노-인공 폐를 이식하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인간 정신의 본거지이자 영혼의 좌소라 여겨졌던 뇌조차도, 기억과 의식을 보존하고 전송하는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면서 부분적인 수리와 데이터 백업, 심지어는 의식의 디지털 전송 및 다른 육체로의 이식까지 가능해졌다. 죽음은 더 이상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지의 공포가 아니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혹은 '지불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특히 영생에 가까운 삶을 보장받은 극소수의 특권층에게 더욱 고민스럽고 절망적인 것은, 이 잠재적으로 무한히 길어진 인생을 과연 어떻게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막막함과 존재론적 권태였다. 죽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꼭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당위성에 수많은 철학적 의문부호와 깊은 허무감만을 남겼다. 한때 죽음이라는 유한성이 있었기에 더욱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삶의 가치, 사랑의 열정, 예술의 숭고한 낭만은 이제 빛바랜 고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미하고도 고풍스러운 감성이 되었다. 셰익스피어와 괴테, 톨스토이와 헤밍웨이의 위대한 작품들은, 죽음의 의미가 퇴색되고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현대의 독자들에게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깊은 감동과 절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수 세기, 아니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의식과 문명을 형성해왔던 '한정된 시간'이라는 근본적인 개념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우들스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예정해 두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반드시 명확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냉엄하고도 불가피한 현실을, 그의 나이 예순아홉 살 때,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처럼 강렬하게, 그의 존재를 송두리째 뒤흔든 격렬한 깨달음 속에서 인지했다. 어느 날 밤, 독한 합성 알코올에 취해 타이탄 서클 외곽의 황량한 인공 해변, 차가운 플라스틱 모래 위에 누워 인공 별빛으로 가득한 가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문득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반복되고 있는지를 처절하게 깨달았다.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결국 언젠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흥미와 열정, 심지어 감정마저 잃고 깊은 권태와 무기력, 그리고 존재론적 절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죽음, 혹은 끝나지 않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삶의 지속은, 살아가는 개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유지될 수 있다.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삶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험난할지라도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에 그 삶의 목적이라는 가느다란 끈이, 아내 아이리스의 죽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단절되었음을 느꼈고, 그러한 영혼의 공백 상태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더욱 깊어지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차가운 목소리는 단호하고도 냉정했다. 사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는 이제 단지 관성적으로, 혹은 직업적인 의무감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정처 없이 부유하는 우주 먼지처럼, 그저 시간의 거대한 강물 위를 목적 없이, 의미 없이 표류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들스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어둠 속에서 마치 죽어가는 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을 무감각하고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아래, 복잡하게 얽힌 배들의 미로 속 어딘가에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혹은 어쩌면 불행하게도, 아직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간직한 사람들. 그는 아주 잠시 그들의 순진함과 열정을 부러워했지만, 동시에 깊고 서늘한 연민을 느꼈다. 언젠가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깊은 존재론적 공허와 절망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영원이라는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독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모든 영혼을 잠식해 들어갈 터였다.

그는 지령을 받고, 그것을 수행한다. 그의 직업은 인류가 서로를 해치고 죽이기 시작한 태초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매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본능적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다. 그는 청부 살인자, 킬러다. 동족의 생명을 끊는 일. 그것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정교하며, 동시에 가장 혐오스럽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직업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법과 질서를 세운 이래로, 항상 어둠 속에서 돈을 받고 다른 이의 생명을, 때로는 영혼까지 거두는 자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우들스는 일반적인 킬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단순히 육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존재 자체, 즉 영혼과 기억, 그리고 존재했던 모든 흔적을 이 우주에서 완전히 소멸시킨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을 담아 '고스트 킬러(Ghost Killer)'라고 불렀다.

신종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대멸종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한 불멸 기술 덕분에 새롭게 등장한, 극도로 특수하고도 위험한 전문 직종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직업을 알게 되면 으레 이런 순진한, 혹은 어리석은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그냥 킬러와 본질적인 차이가 뭐지? 결국 죽이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표면적인 목표는 같다. 대상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영구적으로 지우는 것.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 그리고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어렵고 복잡하며, 정교하고 치밀해야 했다. 그것은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파괴, 혹은 완벽한 소멸의 기술이었다.

아마겟돈이라 불렸던 대멸종의 끔찍한 참화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는, 이제 역설적으로 거의 죽지 않아도 되는, 혹은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과학 기술은 폐허 속에서도 숱한 난관과 윤리적 논쟁을 극복하며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인간에게 잠재적인, 혹은 조건적인 불멸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불멸이 과연 축복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위장된 저주인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할 단계는 아니었다. 이 '라이브이머전스(LiveImmergence)'라 불리는, 개인의 의식과 기억을 포함한 모든 생체 정보를 완벽하게 복제하고 동기화하는 기술이 상용화된 것은 이제 겨우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엄청난 혜택을 온전히 누리는 이도 사실상 극소수의 최상위 부유층과 절대적인 권력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직은 막대한 자본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자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죽음 보험', 즉 영원한 삶에 대한 티켓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의 선배 격인 고대의 킬러들은 비교적 편하고 간단하며, 어쩌면 낭만적이기까지 한 직업을 가졌었다. 총이나 칼, 혹은 독과 같은 원시적이고도 직접적인 도구로, 목표물의 심장이나 뇌와 같은 치명적인 급소를 정확히 가격하거나 파괴하면 그걸로 임무는 깔끔하게 끝나는, 단순 명료한 게임이었다. 이 얼마나 수고롭지 않고 효율적이며, 때로는 예술적이기까지 한 직업이었던가! 표적이 정해지면 그저 적절한 때와 장소를 골라 은밀하게 잠입하여, 아무런 방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표적을 향해, '빵!' 하고 방아쇠 한 번 당기거나, '휙!' 하고 칼을 휘두르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니 말이다. 고작 한 번의 격발, 한 번의 칼날 휘두름으로 한 생명을 소멸시키고, 그 대가로 두둑한 돈이나 명예를 얻는 것. 단순하고 명료하며, 때로는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위험하게 얽혀갔고, 인간은 생존 본능과 끝없는 기술 발전 속에서 지나치게 영악하고 교활해졌으며, 과학은 정말이지 숨 돌릴 틈도 없이 무서운, 거의 공포스러운 속도로 발전했다. 이제 물리적인 죽음은 더 이상 영구적인 소멸이나 존재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불편함, 혹은 매우 값비싼 수리 과정, 심지어는 새로운 육체로 갈아타는 일종의 업그레이드에 불과하게 되었다. 숙련된 바이오-테크니션과 최첨단 의료 시설, 그리고 충분한 자금과 정치적 영향력만 있다면, 거의 모든 종류의 신체적 손상은 완벽하게, 심지어 이전보다 더 젊고 건강한 상태로 복구될 수 있었다. 심지어 뇌가 심하게 손상되거나 완전히 파괴되더라도, 전 세계 곳곳의 안전하고 은밀한 데이터 뱅크에 분산 저장된 개인의 유전 정보와 평생 동안 축적된 기억 데이터는 언제든 완벽한 복제인간(Clone)을,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그가 아무리 강력한 무기와 잔혹한 수단을 동원하여 타겟의 육체를 산산조각 내거나 흔적도 없이 기화시켜 버린다 해도, 타겟의 DNA 정보가 담긴 아주 작은 세포 조각 단 하나, 예를 들어 피부 세포 하나나 머리카락 한 올, 심지어는 침 한 방울만 남아있다면, 연구소에서는 얼마든지 그를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복제해낼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마저도 필요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타겟을 강력한 휴대용 플라즈마 병기인 파이어둔(Firedune)으로 흔적도 없이 완전히 기화시켜 버린다 해도, 이미 그 타겟과 100% 동일한 유전자와 기억, 심지어 감정까지 공유하는 복제 쌍둥이가 세상 어딘가에, 혹은 태양계 어딘가에 최소한 한 명 이상, 많게는 수십 명까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원본 타겟이 사망하는 순간,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동면 상태에 있던 그 쌍둥이 형제 혹은 자매, 혹은 또 다른 복제본은 즉시 <라이브이머전스(LiveImmergence)> 상태로 활성화된다. 즉, 하나의 타겟을 죽이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또 다른 타겟을 깨어나게 하여 결과적으로 2배, 혹은 그 이상의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는 셈이었다. 그것은 마치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았다.

라이브이머전스. 그것은 부유층과 권력층이 죽음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한 궁극적이고도 이기적인 보험 시스템이었다. 미리 여러 명, 혹은 수십 명의 완벽한 복제 쌍둥이를 만들어 안전하고도 비밀스러운 시설에 극저온 동면 상태로 보관해두고, 그중 하나(원본 또는 다른 복제본)가 사고나 질병, 혹은 살해로 인해 사망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감지하여 즉시 다른 복제인간 중 하나를 깨워 활성화시키는 방식이었다. 마치 컴퓨터 시스템의 실시간 백업 및 복구처럼, 혹은 체스 게임에서 하나의 말이 잡히면 다른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깨어난 복제인간은 외형적으로 원본과 완벽하게 동일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양자 신경망 동기화 기술을 통해 사망 직전까지 원본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과 경험, 심지어 미묘한 감정의 파동까지 거의 완벽하게 공유받았다. 그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다시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깨어난 복제본들은 곧바로 다른 살아있는 복제본들과 실시간 동기화(Real-time Synchronization)를 시작한다. 즉, 각자의 몸을 통해 얻는 모든 새로운 기억과 경험, 감각 정보를 초고속 양자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통합한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지어 지구나 중립지역, 그리고 태양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7개의 주요 식민지 서클 사이에 있다 해도, 이 동기화 과정에는 단 1나노초의 지연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초광속 통신 기술과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 이 경이로운 기술 덕분에, 한 복제본의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경 활동 정보가 실시간으로 다른 모든 복제본에게 전송되고 통합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몸은 여러 개지만, 그들의 의식과 영혼, 그리고 자아는 사실상 하나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이론적으로 영생은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이나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그러나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현실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고스트 킬러의 임무는 결코 쉽거나 간단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제거 행위를 훨씬 뛰어넘는, 존재론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소멸 작업이었다. 목표는 타겟의 현재 육체뿐만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혹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모든 복제본, 안전하게 보관된 모든 유전자 정보와 기억 백업 데이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하고 유지하는 동기화 시스템 네트워크까지 완벽하게 찾아내어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한 존재가 이 우주에 남긴 모든 물리적, 디지털적, 심지어 개념적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소멸(Annihilation)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정보력과 초인적인 해킹 능력, 최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깊고도 방대한 이해, 정교하고도 치밀한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철 같은 끈기와 얼음처럼 냉철한 판단력을 요구했다.

우들스는 기형(畸形)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남들과 달랐다. 신체적인 기형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기형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를 독특하고 희귀하며, 동시에 고독한 존재로 만들었고, 그에게 고스트 킬러로서의 타고난 재능, 혹은 벗어날 수 없는 저주를 부여했다. 그는 식민지 서클에서 약 1만분의 1, 혹은 그보다 더 낮은 극히 희귀한 확률로 태어난다는 외둥이(Singleton)였다. 복제 쌍둥이나 다중 개체가 아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홀몸으로 태어난 인간. 제너루스(Generus) DNA 혁신과 보편화된 유전자 조작 및 인공 배양 기술 이후, 대부분의 인조인간 및 유전자 편집 인간들은 안전과 효율성, 그리고 존재의 연속성을 위해 복수의 동일한 개체, 즉 쌍둥이나 세쌍둥이, 심지어 네쌍둥이 형태로 태어났다. 이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지어 영혼의 미세한 파장까지 정확히 같은 존재로서, 말하자면 4개, 혹은 6개, 8개의 눈으로 세상을 동시에 지켜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2개 혹은 3개, 4개의 뇌는 각각 독립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면서도 동시에 2배 혹은 3배, 4배의 경험을 축적하고, 끊임없는 실시간 교차 동기화를 통해 마치 하나의 거대한 통합된 개체처럼 사고하고 인식하며 존재한다. 하지만 기형적 존재인 외둥이는 이러한 영혼의 교감과 자아의 확장을 나눌 대상이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복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그것은 단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외형만 같은 '다른' 인간일 뿐, 진정한 의미의 선천적이고 완전한 동기화된 자아 공유는 불가능했다.

그 결과, 우들스는 철저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혼자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가장 깊은 생각과 은밀한 기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공유하고 이해해 줄 쌍둥이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상 속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외로운 섬과 같았고, 그것은 그를 견딜 수 없는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독특하고도 독립적인, 날카로운 관점을 부여했다. 그는 동기화된 쌍둥이들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집단 무의식의 제약이나 상호 영향력, 그리고 집단 히스테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의 생각은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었고, 그의 경험은 누구와도 온전히 공유되지 않는 고유하고도 순수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누구보다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시스템의 감시망이나 예측 모델에서 벗어난, 통제 불가능한 변수, 즉 와일드카드였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행한 첫 번째 살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유일한, 그리고 정부에 의해 비밀리에 만들어져 동면 상태로 보관되고 있던 그의 복제본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 복제본은 그가 20대 후반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그의 특수한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정부 산하 비밀 기관에 의해 그의 동의 없이 만들어져 극저온 동면 상태로 보관되고 있었다. 만약 그 복제본이 계속 존재했더라면, 그는 완전한 의미의 외둥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는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가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하기를, 마치 고대의 신처럼 홀로 존재하기를 갈망했다. 그 당시 그의 마음과 영혼은 이미 죽은 아내, 아이리스에 대한 견딜 수 없는 그리움과 사무치는 상실감, 그리고 세상을 향한 깊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타이탄 서클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운명처럼 만나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에 빠졌고, 29년이라는 짧지 않은, 그러나 영원처럼 느껴졌던 시간 동안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의 전부가 되어 함께 살았다. 그녀는 타이탄 서클에서 발생한 예기치 않은 반정부 폭동 사태에 휘말려, 그의 눈앞에서 너무나 허무하고도 잔인하게 목숨을 잃었고, 더욱 비극적이고도 절망적인 것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그녀의 모든 복제본과 백업 데이터마저 동시에, 완벽하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라이브이머전스 시스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우들스는 그것을 '우주의 잔인한 농담' 혹은 '시스템의 치명적이고 악의적인 오류'라고 불렀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삶에서, 그리고 이 우주에서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은 곧 끓어오르는 분노와 깊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녀의 상실은 그의 몸과 영혼에 수천 개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돋아나, 그를 매 순간 끊임없이 찔러대고 고문했다. 그는 온몸이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고슴도치처럼, 혹은 상처 입은 야수처럼 변해갔다. 그런 고통스럽고도 혐오스러운 자신의 존재와, 그 존재가 남긴 모든 희미한 흔적마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버리는 것. 그것만이 그의 황폐한 삶에 남은 유일한 목적이자 마지막 열망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가 수행하는 모든 임무는, 사실상 자신의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종의 길고도 고통스러운 전위 행위(前衛 行爲)이자 자살 의식이었다. 그는 매번 임무 속에서, 목표물의 소멸과 함께 자신의 소멸을 갈망하며, 죽음을 찾아 헤매는 고독하고도 처절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77년이라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무의미해진 시대에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그는 수많은 죽음의 위기와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넘기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아니면 오히려, 지독하게 운이 나쁘게도? 그는 때때로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축복인지 아니면 끝나지 않는 잔인한 저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잠을 자고(비록 강력한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생각하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음'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와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아이리스가 죽던 그날 함께 죽었는지도 몰랐다. 지금 살아 숨 쉬는 것은 그저 텅 빈 껍데기, 혹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자동인형에 불과할지도.

럭키맨 우들스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서늘하고도 축축한 밤바람 속에서, 다가올 임무를 위한 무기와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마치 숙련된 외과 의사처럼, 혹은 장인의 손길처럼 정확하고 빨랐으며, 한 치의 망설임이나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 수십 년간 반복된 살인과 생존, 그리고 도피의 경험이 그의 근육 기억 속에, 그리고 영혼 깊숙한 곳에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먼저 허리에 찰, 머리카락보다 가늘지만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정교한 모노 필라멘트 엣지의 레이저 나이프와, 가시거리 내의 모든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EMP 수류탄, 그리고 대상의 내부 장기를 강력한 음파 진동으로 파열시키는 치명적인 진동 총(Vibro-Gun)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리고 대상의 뇌파를 교란시켜 라이브이머전스 동기화 시스템 접속을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휴대용 고출력 뇌파 교란기(Neural Disruptor)의 배터리 잔량과 출력 레벨을 확인했다. 모든 장비는 그의 냉정하고도 숙련된 손길 아래 완벽한 상태로 정비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임무의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가장 핵심적인 무기, 특수 제작된 초소형 반물질 폭탄, '고스트 봄(Ghost Bomb)'을 조심스럽게, 거의 경건한 태도로 확인했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력을 훨씬 뛰어넘어, 강력한 국소적 전자기 펄스와 치명적인 데이터 파괴 바이러스를 동시에 방출하여 타겟의 모든 물리적, 디지털적 흔적, 즉 현재의 육체는 물론, 잠재적인 복제본 활성화 신호와 동기화 시스템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까지 완벽하게 파괴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고스트 킬러를 위한 궁극의 도구, 영혼을 지우는 열쇠였다.

방 안은 깊고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오직 그의 낮고 규칙적인,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한 호흡 소리와, 차가운 금속성 무기와 장비를 점검하며 내는 섬뜩하고도 건조한 마찰음만이 짙은 정적을 갈랐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형광등 불빛 주위를 미친 듯이 맴도는 날벌레들의 희미하고도 처절한 날갯짓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항성 주위를 필사적으로 공전하는 작고도 하찮은 행성들처럼, 덧없고 위험한 빛을 향해 끊임없이, 본능적으로 맴돌고 있었다. 우들스는 잠시 그 미물들의 부질없고도 애처로운 움직임을 무표정하게, 거의 공감 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자신의 다가올 임무에 모든 정신과 감각을 집중했다.

새로운 표적, 엘리자베스 노바크. 새로운 임무, 그녀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소멸. 그리고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마침내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가 오랫동안 갈망하고 또 두려워해온 자신의 완전한 죽음을 맞이할 마지막 기회. 우들스는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담담하게, 혹은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며, 조용히 모든 준비를 마쳤다. '럭키맨'이라는 별명은 그의 파란만장하고도 비극적인 삶을 생각할 때 너무나 잔인하고도 통렬한 아이러니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불행하고 저주받은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그렇게 불렀고, 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혹은 그 이름에 대한 처절한 반항처럼,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는 또 다른 영혼을 사냥하고, 동시에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파멸시키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차갑게, 그러나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제 4장: 죽음의 미학, 혹은 소멸의 기술 (Chapter 4: The Aesthetics of Death, or The Art of Annihilation)

우들스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어떤 고상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의식적으로 노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그것은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냉혹한 직업이었고, 이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이고도 어쩔 수 없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식에는 분명 그만의 독특하고도 섬뜩한 미학적 요소, 혹은 얼음처럼 차갑고도 완벽한 효율성이 존재했다. 그는 불필요한 고통이나 잔혹함, 그리고 어떠한 감정의 개입도 극도로 혐오했으며, 항상 목표를 최대한 깔끔하고 신속하며 조용하게 처리하여 어떠한 물리적, 디지털적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그것은 제거 대상에 대한 일말의 존중이나 연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엄격하고도 강박적인 직업적 프라이드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그의 병적인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흔적 없는 소멸, 완전한 삭제, 그것이 그의 방식이자 그의 존재 이유였다.

그가 그날 밤, 타이탄 웨스트(Titan West)로 향하는 비좁고도 차가운 전용 고속 셔틀의 진동하는 좌석에 몸을 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이미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기묘하게 고요하고 평온했다. 다가올 임무는 표면적으로 단순 명료했지만, 그 이면에는 극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목표물, 엘리자베스 노바크를 찾아내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물리적, 디지털적, 심지어 개념적 흔적까지, 즉 현재의 육체와 잠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복제본들, 그리고 그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모든 백업 데이터와 동기화 시스템 네트워크까지 완벽하게 파괴하여, 그녀의 영혼을 이 우주에서, 그리고 모든 가능한 차원에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 지령서에 암호처럼 적힌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실제 작업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하며, 단 한 번의 실수나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마치 외줄 타기와 같은 정교하고도 치밀한 작전이었다.

셔틀은 칠흑 같은, 별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우주의 심연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가르며, 눈이 멀 듯한 엄청난 속도로 토성의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나아갔다. 창밖으로 펼쳐진 우주는 여전히 변함없이 깊고 광활했으며, 절대적인 침묵과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멀리서 마치 먼지처럼 희미하게 반짝이는 이름 모를 별들은 차갑고도 무심한, 영원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우들스는 문득, 저 별들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무관심이 사무치게 부럽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덧없고도 하찮은 감정과 끝없는 고통, 존재의 불안과 죽음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저 영겁의 시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빛을 발하며 존재하는 순수하고도 완전한 존재.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이 그토록 갈망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불멸, 혹은 완전한 평화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씁쓸하고도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타이탄 웨스트는 토성의 두껍고 메탄으로 가득 찬 대기층 아래, 거대한 티타늄 합금 돔 구조물 안에 건설된, 태양계에서 가장 진보되고도 비밀스러운 연구 시설이 밀집된 최첨단 식민지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인류의 가장 뛰어나고도 야심찬 두뇌들이 은밀하게 모여 생명 연장의 꿈, 즉 완전한 불멸의 비밀을 풀기 위한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유전자 복제와 장기 교체, 나노 기술을 이용한 세포 재생 기술을 통해 물리적인 노화와 대부분의 질병을 거의 정복하여 '사실상의' 불멸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많은 제약과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생명 연장이나 육체의 보존을 넘어선, 모든 물리적, 시간적, 공간적 제약과 우주의 엔트로피 법칙마저 뛰어넘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불멸, 즉 신(神)에 가까운 존재로의 궁극적인 진화였다. 그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자 가장 위험한 야망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노바크는 바로 그 위험하고도 야심 찬, 어쩌면 신성모독적이기까지 한 연구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녀는 인간 DNA 복제 및 안정화 기술과 양자 신경망 동기화 및 의식 전송 기술 분야에서 수많은 혁신적이고도 경이로운 업적을 이룬, 살아있는 전설이자 천재적인 개척자였다. 그녀의 연구 덕분에, 적어도 일부 극소수의 부유층과 절대 권력층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이고도 공평했던 운명을 극복하고 영원에 가까운, 혹은 그렇게 착각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인류의 구원자, 혹은 새로운 신처럼 보이는 그녀가 왜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거 대상이 되었는지는, 우들스 역시 알 수 없었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임무는 명령을 받고 그것을 기계처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지, 그 배경이나 이유, 혹은 도덕적 정당성을 묻고 파헤치는 것은 그의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불필요하고도 위험한 행위였다. 의뢰인의 비밀은 신성불가침이었고, 그는 그저 어둠 속의 도구일 뿐이었다.

셔틀이 타이탄 웨스트의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한 도킹 베이에 거의 소리 없이, 유령처럼 부드럽게 착륙했을 때, 우들스는 이미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얼굴 골격과 피부톤, 머리카락 색깔과 홍채 패턴은 물론, 지문과 성문(聲紋), 심지어 미세한 DNA 마커와 생체 리듬까지 정교하게 변조된 상태였다. 그는 이제 '리처드 콜린스(Richard Collins)'라는 이름의, 학계에서 명망 높은 중년의 생화학자이자, 노바크 박사의 비밀 연구팀에 새로 초빙되어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객원 연구원이었다. 그의 위조된 신분 정보는 타이탄 웨스트의 철통같은 중앙 보안 시스템에 이미 며칠 전에 완벽하게 등록되어 있었으며, 어떠한 정밀 검증 절차를 거치더라도 의심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위조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최첨단 위장 기술이 결합된,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완벽한 위장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프로메테우스 연구 단지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의 최첨단 다중 보안 시스템으로 철통같이 무장되어 있었다. 입구의 게이트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부 곳곳, 복도와 엘리베이터, 모든 출입문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수많은 센서와 스캐너가 촘촘하게 설치되어, 방문객의 얼굴 형상과 골격 구조, 망막 패턴과 정맥 분포, 음성 파형과 발음 특성, 고유한 DNA 염기 서열과 미토콘드리아 흔적, 심지어는 미세한 심장 박동 리듬과 뇌파 패턴, 그리고 걸음걸이의 미세한 특징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다. 그러나 우들스는 마치 그림자처럼, 혹은 시스템의 허점을 꿰뚫어 보는 유령처럼, 그 모든 감시와 검증의 장벽을 차례차례,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했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종류의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거나 교묘하게 속이는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를 익히고 연마해왔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오랜 경험과 철저한 사전 준비, 그리고 그의 타고난 동물적인 직감과 얼음처럼 냉정한 침착함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노바크 박사의 개인 연구실은 연구 단지 내에서도 가장 깊숙하고도 은밀하며, 최고 등급의 보안 레벨로 설정된 중앙 코어 섹션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우들스는 마치 거대한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복도와 통로, 그리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각 복도와 구역은 서로 다른 보안 레벨과 접근 권한으로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었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상위 레벨의 생체 인증 절차와 암호 해독을 거쳐야 했다. 우들스는 조금의 초조함이나 망설임도 내비치지 않고, 놀라운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하며 미리 계산된, 정확한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멈춤 없이 나아갔다.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그것은 공포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극도로 고조된 집중력과 임무 수행 직전의 아드레날린 분비 때문이었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고, 이 순간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노바크 박사의 연구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우들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주 짧게,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뱀처럼 신속하고도 냉정하게 살폈다. 복도는 인적 없이 싸늘하게 조용했고, 오직 낮은 기계음과 공기 정화 시스템의 희미한 바람 소리만이 감돌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의 어스름으로 향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이미 개인 숙소나 휴게실로 돌아가 지친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노바크 박사는 달랐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거의 광적인 워커홀릭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자정을 넘어서도 연구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정보는 이미 그의 정보망을 통해 입수된 상태였다. 그녀에게 시간은 무의미하거나, 혹은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우들스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연구실 문에 부착된 매끄러운 통신 패널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오랜 친구를 방문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잠시 후, 문이 압축 공기가 빠지는 듯한 미세한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엘리자베스 노바크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가 서류와 영상을 통해 확인했던 것보다 훨씬 젊고, 생기 있어 보였다. 서류상의 실제 나이는 153세였지만, 그녀의 외모는 마치 30대 초반의, 지성과 활기가 넘치는 매력적인 여성처럼 보였다. 길고 윤기 나는 짙은 검은 머리, 날카로운 지성과 깊은 호기심으로 별처럼 반짝이는 깊고 매혹적인 갈색 눈동자,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고 매끄러운 도자기 같은 피부. 그것은 그녀 자신이 개발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킨 최첨단 항노화 기술과 개인 맞춤형 유전자 치료의 경이로운 결과물이자, 그녀의 혁명적인 연구가 가져다준 가장 확실하고도 눈부신 증거였다. 그녀 자신이 바로 불멸의 살아있는 광고판이었다.

"콜린스 박사님이시군요," 그녀가 부드럽지만 명료하고,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약간의 피곤함과 함께, 새로운 동료 연구원에 대한 지적인 기대감과 희미한 경계심이 섬세하게 어려 있었다.

"늦은 시간에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노바크 박사님." 우들스가 완벽하게 위장된 리처드 콜린스의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차분한 학자풍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정중하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 톤과 발음, 미세한 호흡 패턴까지도 실제 콜린스 박사의 방대한 음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모방된 것이었다.

노바크 박사는 희미한, 거의 알아차리기 힘든 미소를 지으며 그를 연구실 안으로 정중하게 초대했다. 연구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하고 정교하며, 때로는 위협적으로까지 보이는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에는 복잡한 3차원 유전자 서열과 다차원 분자 구조 모델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홀로그램으로 떠다녔고, 방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뇌를 극저온 상태에서 정밀하게 스캔하고 의식 데이터를 추출, 저장, 복제, 전송할 수 있는 거대한 은빛 원통형 장치, '퀀텀 싱크로나이제이션 탱크(Quantum Synchronization Tank)'가 낮은 기계음과 함께 푸른빛을 발하며 위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에도 최신형 극초고속 DNA 시퀀서, 양자 얽힘 기반 초광속 통신 장비, 자율형 나노봇 제어 콘솔 등, 인류 과학 기술의 정수이자 미래가 집약된 듯한, 경외감과 동시에 섬뜩함을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지이자, 동시에 오래된 죽음의 종말을 고하는 장소였다.

"자, 콜린스 박사님. 저와 어떤 흥미롭고도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셔서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예고 없이 저를 찾아오셨나요? 혹시… 우리의 공동 연구에 어떤 새로운 돌파구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노바크 박사가 자신의 복잡한 연구용 콘솔 앞에 우아하게 앉으며, 여전히 호기심과 약간의 의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콘솔 위에서 가볍게 춤추고 있었다.

우들스는 잠시 그녀를 말없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지성과 깊은 통찰력, 그리고 강한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두뇌 중 하나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위대하고도 논쟁적인 과학자를,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이 존재를 영원히,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기 위해 이곳에 서 있었다. 이 얼마나 지독하고도 아이러니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실," 우들스가 천천히,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리처드 콜린스의 것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억양은 이전과는 미묘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 있었다. 마치 잘 조율된 악기의 현이 갑자기 다른 음을 내는 것처럼. "제가 오늘 밤, 박사님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진짜 이유는..." 그는 마치 마술사처럼, 재킷 안주머니에서 은색의 작고 매끄러운 원통형 장치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것은 그가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온, 휴대용 고출력 뇌파 교란기(Neural Disruptor)였다. 어떠한 물리적 접촉 없이도 반경 수 미터 내의 모든 생체 뇌파 활동과 신경망 통신을 교란하고 차단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 차갑고 불길한 장치를 본 순간, 노바크 박사의 지적인 눈이 순간적으로, 아주 미세하게 커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와 지적인 기대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얼음처럼 차갑고 예리한 경계심과 냉철한 분석의 빛이 대신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가 자신이 기다리던 콜린스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손에 든 작은 장치의 끔찍한 용도를 거의 즉각적으로,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그녀의 반응 속도는 천재 과학자답게, 혹은 오랜 시간 위험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답게 놀랍도록 빨랐고 침착했다.

"당신은... 콜린스 박사가 아니군요." 그녀가 떨림 없이, 침착하지만 동시에 단호하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람이나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지적인 호기심과 눈앞의 불가해한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냉철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흥미로운 실험 대상을 만난 연구자처럼.

"맞습니다, 박사님." 우들스가 마침내 자신의 본래 목소리로, 낮고 차분하며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공허하고 서늘했다. "제 이름은 우들스입니다. 본명은 제롬 르 제주스 데 샹.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럭키맨'이라고 부릅니다."

'럭키맨'. 그 불길하고도 전설적인 별명을 듣는 순간, 노바크 박사의 지적인 얼굴에 찰나의, 그러나 분명한 인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암흑가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그 이름의 의미와 그 뒤에 숨겨진 섬뜩한 진실을, 적어도 소문으로는 알고 있었다. "고스트 킬러..." 그녀가 거의 속삭이듯, 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당신이 바로 그, 실존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전설 속의 고스트 킬러였군요.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일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경외감과 함께 약간의 실망감, 혹은 깊은 체념 같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우들스는 말없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감정 없이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깊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 엘리자베스 노바크 박사님은… 유감스럽지만, 제 새로운 타겟입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뇌파 교란기의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눌렀다. 장치에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그러나 신경계에는 치명적인 강력한 저주파 파동이 파문처럼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바크 박사의 섬세하고 복잡한 뇌 활동 패턴을 교란하고, 그녀의 의식이나 기억 데이터가 외부 네트워크, 즉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다른 복제본이나 비밀 백업 시스템으로 긴급 전송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의 영혼을 이 연약한 육체 안에, 이 작은 연구실 안에 완벽하게 가두는 첫 번째 단계였다.

"흥미롭군요." 노바크 박사가 교란기의 보이지 않는 공격과 그로 인한 미세한 신경계의 이상 반응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랍도록, 거의 초인적으로 침착하게 말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어설프게 저항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과학적 현상을 관찰하는 냉정한 연구자처럼, 자신의 임박한 죽음이라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저를… 저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려 하는 걸까요? 제 연구가 그들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걸까요? 아니면... 단순히 저의 성공에 대한 시기심이나 두려움 때문일까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지적인 호기심과 탐구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과학자였다.

"그것은 제가 알 필요도 없고, 솔직히 말해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입니다, 박사님." 우들스가 얼음처럼 냉정하고도 단호하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 임무는 단지 당신이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서, 그리고 모든 가능한 현실에서 완전히, 영원히 지우는 것뿐입니다. 그 외의 것은 제 소관이 아니며, 저의 관심사도 아닙니다."

노바크 박사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녀는 마치 복잡하고도 풀리지 않는 매혹적인 수학 문제를 접한 것처럼, 자신의 눈앞에 닥친 절대적인 죽음 앞에서조차 냉철하고 분석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렇군요," 그녀가 마침내, 약간의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 같은 어둠 속의 존재는, 제 연구가 인류에게, 그리고 어쩌면 우주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나요? 저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거나 질병을 정복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죽음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제약을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불멸, 영원하고도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당신 같은 고독하고 불행한 존재도 그 혜택을 누리게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연민과 함께,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불멸이라..." 우들스가 그 거창하고도 허황된 단어를 마치 독처럼 곱씹으며 나지막이, 거의 경멸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고도 냉소적인 회의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염세적인 냉소가 짙게 배어 있었다. "박사님은 그것이 정말 인류에게 축복이라고, 구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끝나지 않는 권태와 무의미한 고통, 그리고 존재론적 절망을 선사하는 가장 잔인한 저주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질문은 그녀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노바크 박사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도 서글퍼 보이는, 거의 비극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축복이죠. 죽음은 극복되어야 할 질병일 뿐입니다, 우들스 씨.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정복해야 할 마지막 남은 장애물이죠. 우리는 이미 물리적인 한계와 생물학적 제약을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낡고 연약한 육체와, 우주의 무자비한 물리 법칙, 그리고 시간이라는 폭군에 묶여 있어요. 제 연구는 바로 그 마지막 남은 속박마저 끊어내려는, 인류가 신이 되기 위한 진화의 다음 단계를 향한 위대하고도 필연적인 시도입니다." 그녀의 눈빛은 광신도의 그것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당신이 오늘 밤, 이곳에서 저에 의해 제거되어야만 하는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우들스가 그녀의 열정적인 말을 차갑게 받으며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누군가는, 혹은 어떤 거대한 세력은, 인류가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신성한 경계가 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군요. 혹은, 당신의 그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기술이 가져올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그들은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독점하고 싶어 하거나."

노바크 박사는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혹은 허탈한 듯 짧고도 쓴웃음을 터뜨렸다. "그럴지도 모르죠. 인간의 어리석은 두려움과 근시안적인 편협함은 언제나 위대한 진보의 발목을 잡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누구든, 어떤 의도를 가졌든, 이미 너무 늦었어요." 그녀의 눈빛이 다시 한번 강렬하고도 섬뜩하게 빛났다. "제 핵심 연구는 이미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이론은 완벽하게 정립되었고, 핵심 프로토콜과 데이터는 전 우주의 가장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곳에 수십, 수백 개로 분산 저장되어 있어요. 설령 제가 오늘 여기서 당신의 손에 의해 이 육체가 소멸된다 해도, 제 의지와 지식을 이을 또 다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완성시킬 겁니다. 불멸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고,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이것은… 역사의 필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패배감보다는 오히려 승리자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우들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차갑고도 날카로운, 푸른빛을 발하는 고주파 레이저 나이프를 아주 천천히, 거의 의식적으로 꺼내 들었다. 칼날이 활성화되며 내는 낮고도 섬뜩한 진동음이 연구실의 팽팽한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 "...저는 아마도, 그들도 차례차례, 하나씩 찾아가 제거해야 할 운명이겠군요. 제 일이란…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메말라 있었지만, 그 안에는 피할 수 없는 지독한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듯한 깊은 체념과, 동시에 맡겨진 임무를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완수하겠다는 흔들림 없는, 강철 같은 결의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죽음의 미학은 이제, 소멸의 기술로, 그리고 그의 손으로 완성될 참이었다. 그의 눈에는 오직 목표물, 그리고 그 목표물의 완전한 소멸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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