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영겁의 모래시계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면, 나의 태초에는 나일의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신의 숨결이었고, 수천 년간 파라오의 무덤을 지켜온 모래의 무게였으며, 대지의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모든 생명의 갈증과 체념이 응축된 존재론적(ontological) 원질(原質)이었다. 나의 시간은, 내가 이 흙먼지 이는 땅에 첫 쟁기질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오롯이 그의 소유였다. 안와르.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마을의 원로이자 나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작은 파라오. 그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시간은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를 통과하는 한낱 미물처럼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삼 년 하고도 꼬박 일곱 달. 그 시간은 인간의 달력으로는 명확히 계측될 수 있는 단위였으나, 나의 실존 안에서는 영겁의 동어반복(tautology)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동쪽 하늘이 아스완의 장밋빛 화강암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나는 오시리스가 두아트(Duat, 사후세계)에서 부활하듯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몸은 밤새 쌓인 피로라는 수의(壽衣)를 걸친 미라와 같았고, 잠은 죽음의 잠정적 유예에 불과했다. 내가 흘린 땀방울은 그대로 증발하여 저 메마르고 무자비한 라(Ra)의 눈동자를 향해 흩어지거나, 혹은 저자의 탐욕스러운 대지로 스며들어 그의 사탕수수밭을 더욱 기름지게 할 뿐이었다. 그 사탕수수 대궁 하나하나가 나의 척추뼈 마디마디와 등가(等價)를 이루고 있음을, 그 달콤한 즙액이 실은 나의 청춘을 착취하여 얻어낸 감미로운 독(毒)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땅을 경작하는 현대판 펠라(Fellah, 이집트 농부)였으며, 나의 노동은 그의 풍요를 위한 끝없는 제물이었다. 마치 고대 신전의 제단 위에서 심장을 꺼내 바치는 아즈텍의 사제처럼, 나는 매일 아침 나의 하루를 그의 번영 앞에 제물로 바쳤다.
안와르, 그는 단순한 지주가 아니었다. 그는 이 작은 세계의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한 절대자였다.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측량하고 가늠했다. 나의 근육이 팽창하는 각도, 쟁기 날이 흙을 파고드는 깊이, 내가 그늘에서 물을 마시는 시간까지도 그의 정신적 저울 위에서 세밀하게 계량되었다. 그가 내뱉는 말은 율법이었고, 그의 침묵은 심판의 예고였다. 내가 햇볕에 청동상처럼 그을린 등줄기를 곧추세우고, 이제는 때가 이르지 않았느냐는 함의를 담아, 그의 딸 자밀라와의 혼인을 간청하는 실존적 투쟁의 눈빛을 보낼 때마다, 그는 늘 같은 선고를 내렸다.
“이 미련한 것아! 혼인이고 뭐고, 꽃이 먼저 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가 말하는 ‘꽃’이란, 나의 노동으로 일군 이 척박한 현실 위에서 피어나야 할 자밀라의 성숙(成熟)이라는 형이상학적 메타포였다.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개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와르 자신이 규정하고 판결하는, 오직 그만이 그 시기를 선언할 수 있는 신탁(神託)과 같은 개념이었다. 나의 청춘을 거름 삼아 그녀가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이 기약 없는 약조는, 고대 덴데라 신전의 천장에 새겨진 해독 불가능한 조디악(Zodiac)처럼 나의 삶을 옭아매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의 궤도에 갇힌 별자리였고, 나의 운명은 그의 해석에 따라 길흉이 결정되었다.
만약 그가 나의 노동의 질을 탓하거나, 혹은 내가 축내는 식량의 양을 문제 삼았다면, 나 역시 항변할 언어를 가졌을 터였다. 그것은 가시적인 현실의 문제이며, 논리와 증거로 반박 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언제나 자밀라의 미성숙이라는, 반박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방패로 내세웠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진리, 시간의 불가역성이라는 절대 명제였다. 나는 그 거대한 진리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힌 채,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무력하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논리는 완벽한 폐쇄회로였고, 나는 그 안에서 영원히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궁의 죄수였다.
이 계약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 아카시아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횟수로나, 나일강이 범람하는 주기로써 기간을 정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강물이 불어나듯, 야자수가 자라듯, 딸이 여인으로 성장하는 그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미래에 나의 모든 것을 걸었으니, 대체 누가 그 성장의 증인이 되며 그 끝을 판가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판결의 주체는 오직 안와르 자신이었고, 그는 동시에 재판관이자 검사이며 배심원이었다. 나는 인간의 성장이란 대지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충실하고 정직한 과정일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가 자라나, 이윽고 꽃을 피우는 그 변증법적(dialectical) 발전 과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영원히 봉오리로만 머물고자 하는 식물도 있다는 것을, 혹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그 개화(開花)가 고의로, 악의적으로 늦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자밀라는 안와르의 손안에서 영원히 피어나지 않는 연꽃 봉오리였고, 나는 그 봉오리를 지키는 무급 파수꾼에 불과했다.
제 2장: 육신의 반란과 언어의 소멸
견딜 수 없는 것은 노동의 고됨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부재가 가져오는 영혼의 풍화작용이었다. 나는 이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유일한 저항으로, 나의 신체를 무기 삼아 태업을 시작했다. 나의 몸은 내가 소유한 유일한 생산수단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언어를 상실한 자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 그것은 자기 파괴를 통한 소극적 전복의 시도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기에 달궈진 모래는 타오르는 지옥의 프라이팬과 같았다. 나는 그 위에 나의 몸을 내던졌다. 밭고랑 사이에 쓰러져 복통을 호소하는 나의 몸짓은, 단순한 꾀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리비도(Libido)가 신체적 증상으로 전이된 히스테리였으며, 언어를 상실한 영혼이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이었다. 내 안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며, 소화되지 못한 분노와 좌절을 게워내는 듯한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다.
나의 퍼포먼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저 멀리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안와르의 형체가, 분노로 가득 찬 실체(實體)가 되어 밭고랑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대지를 울리는 거인의 그것과 같았고, 그의 그림자는 나의 작은 세상을 집어삼키는 불길한 예고였다. 그는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건조하고 단단한, 평생 흙과 씨름해온 그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나 나의 상태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물이 멋대로 작동을 멈춘 것에 대한 주인의 짜증, 기계가 고장 났을 때 기계공이 느끼는 원초적 분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네놈의 게으름이 장기를 뒤트는 병으로 둔갑이라도 했더냐!”
그의 목소리는 채찍처럼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뺨을 후려치는 그의 손은 야자나무 껍질처럼 거칠었고, 그 충격은 나의 두개골을 뒤흔들어 시야를 잠시 암전시켰다. 번쩍이는 별들과 함께, 치아 사이에서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욕설은 이집트의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겁게 나의 존재를 후벼 팠다. 그것은 나의 인격과 존엄을 남김없이 소각시키는 분노의 화염이었다. 나는 그의 발치에서, 벌레처럼 짓밟힌 채, 인간이 언어와 존엄을 박탈당했을 때 오직 육체적 고통만이 유일한 실존의 증명이 됨을 깨달았다. 나의 반란은 그렇게, 한 번의 폭력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그날 오후였다. 이 끝없이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 것은. 점심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온 자밀라의 등장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나 나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말이 없었다. 그저 빵과 대추야자, 약간의 치즈가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나일강의 물결처럼 유려했고, 그녀의 존재는 이 삭막한 현실 속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나를 향한 그녀의 시선에는 언제나 읽어낼 수 없는 심연이 담겨 있었다. 연민인가, 경멸인가, 혹은 단순한 무관심인가.
내가 빵을 뜯어 입에 넣으려던 순간,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모래바람 속에서 발견한 한 송이 사막 장미처럼 예기치 않았고, 나의 고막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만 하다 죽을 건가요?”
그것은 질문의 형식을 띤 명령이었으며, 나태와 체념의 늪에 빠져 있던 나의 의식을 일깨우는 날카로운 채찍질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과 같았고, 그 안에서 나의 비참한 모습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나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자 동시에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인 그녀는, 나의 심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혼인을 시켜달라고 해야죠. 뭘 그리 망설여요.”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감추려는 듯, 서둘러 몸을 돌려 달아났다.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히잡 자락과 가녀린 뒷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욕망의 이름을, 그 욕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했다. 그녀는 나의 잠자던 반역의 신에게 불을 지핀 여사제였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행동을 촉구하는 신의 계시였고, 나의 실존을 걸고 싸워야 할 성전(聖戰)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제 3장: 겁쟁이라는 낙인과 투쟁의 서막
다음 날 아침, 나의 세상은 뒤바뀌어 있었다. 자밀라의 그 한마디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지진과 같았다. 더 이상 나는 순응하는 노예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투사였고, 나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주체였다. 그러나 변화는 내면에서만 요동칠 뿐, 외부로 표출할 용기는 아직 응축되지 않았다. 아침 식사 시간, 안와르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 나는 여전히 침묵하는 객체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자밀라가 보란 듯이 밥상을 내 앞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나를 다그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제의 속삭임과는 달리, 잘 벼린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의 수염을 잡아채지 그랬어요, 이 겁쟁이!”
‘겁쟁이’. 그 단어는 소리굽쇠처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리며 공명했다. 그것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남성성, 나의 존재 가치 전체를 향한 근원적인 탄핵이었다. 한낱 계집에게서 받은 그 모욕의 낙인은, 어제 안와르에게서 받은 육체적 폭력보다 더 깊고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안와르의 폭력은 나를 짐승으로 만들었지만, 자밀라의 멸시는 나를 존재하지 않는 것, 유령 같은 존재로 전락시켰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내려놓았다. 식욕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음식을 넘길 자격조차 박탈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마당의 평상 위에 송장처럼 드러누웠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내 안은 차갑게 식어갔다. 차라리 죽음이 이 치욕보다는 달콤하리라. 나의 이 무기력한 저항은, 그러나 안와르의 분노를 극점으로 이끌었다. 그는 나의 침묵과 무기력을 자신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도전으로 해석했다.
“이놈이 이제는 밥상 앞에서 드러눕기까지 하는구나!”
그의 포효와 함께, 곁에 있던 단단한 대추야자 나뭇가지가 그의 손에 들렸다. 그것은 단순한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권위의 연장이었고, 그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폭력의 도구였다. 그는 그것을 나의 허리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척추를 타고 지옥의 불길 같은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밥으로 가득 찬 위장이 뒤틀리며 신물을 토해낼 것 같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다. 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겁쟁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의 의지를 송두리째 뒤바꾸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울타리 틈새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자밀라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그녀의 눈빛 속에는 공포와 경악, 그리고 기묘한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 시선을 의식한 순간, 나의 고통은 분노로, 나의 인내는 투쟁으로 그 성질을 달리했다. 이것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나의 남성성에 대한 증명이었고, 그녀가 던진 ‘겁쟁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한 실존적 결투였다.
나는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났다.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지고,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오직 하나의 목표, 안와르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의 수염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수염은 하얗게 세어 있었고, 오랜 세월의 지혜와 연륜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단순히 늙은 사내의 체모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억압해 온 모든 시간과 관습, 부당한 권위의 총체적 상징이었다.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에서 노예가 마침내 주인의 권위에 맞서 자의식을 획득하는 순간처럼, 나는 그의 수염을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거친 감촉과 함께, 신성을 모독하는 듯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평생을 군림해 온 작은 파라오가, 그의 땅 위에서, 그의 노예에게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그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다시 기어오르자, 나는 다시 그의 가슴팍을 밀어 넘어뜨렸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다시 밀쳐 버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나는 포효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나를 부려만 먹을 셈이오! 자밀라를 내게 주시오!”
나의 외침은 더 이상 애원이 아닌, 새로운 힘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억압받던 자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 세상에 던지는 최초의 함성이었다. 나는 내가 이기고 있다고 믿었다. 이 투쟁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나의 것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제 4장: 스핑크스의 얼굴, 부조리의 정점
그러나 모든 비극이 그러하듯, 투쟁의 정점에서 전세는 가장 추악하고 기묘한 방식으로 뒤틀렸다. 내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는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가 교활한 뱀처럼 나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의 바짓가랑이 사이, 가장 연약하고 내밀한 부위를 붙잡고 늘어진 것이다. 남성성의 근원이자 가장 치명적인 약점.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나의 세상이 뒤집혔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이전의 매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원초적이고 날카로운 고통이 나의 모든 의지를 마비시켰다. 영웅적 투사는 간데없고, 거세의 공포에 사로잡힌 한 마리의 수컷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어르신! 제발!”이라는 절규는, 내가 방금 쌓아 올린 반역의 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바로 그때였다. 나의 여사제이자 파괴자인 그녀, 자밀라가 어머니와 함께 집 안에서 달려 나온 것은. 나는 찰나의 순간, 그녀가 나의 편에 서서, 이 추악한 희극의 끝을 장식해주리라 믿었다. 그녀가 아버지를 꾸짖고,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리라 기대했다. 그녀는 나의 투쟁의 명분이자 목적이었기에, 그녀의 지지는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달려와 나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녀의 작은 손아귀는 강철 클램프처럼 강했고, 두피가 뽑혀 나가는 듯한 고통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절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논리와 인과율을 파괴하는 혼돈의 선언이었다.
“세상에! 이 짐승만도 못한 자가 내 아버지를 죽이려 하네!”
그녀의 절규와 함께 터져 나온 눈물은,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이었다. 나를 반역으로 이끈 그 입술이, 이제 와 나를 짐승으로 낙인찍고 있었다.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던 그 눈빛이, 이제는 경멸과 혐오로 나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부조리의 무대 한가운데 버려진 광대가 되었다. 이 연극의 각본은 누구의 손에 의해 쓰였는가. 나는 배우였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당한 관객이었는가.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소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과 증오, 순수와 기만, 연민과 잔혹이 뒤섞인 채 나를 조롱하는 스핑크스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아침에는 네 다리, 점심에는 두 다리,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너는 사랑을 위해 싸우는 투사인가, 아니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짐승인가"라는 풀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표정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다시 일어선 안와르가 내리치는 나뭇가지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확인하는 의식(儀式)일 뿐이었다.
피가 흐르고, 나의 저항이 완전히 진압되고, 모든 것이 끝난 뒤, 역설적이게도 안와르는 내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는 나의 터진 머리에 손수 약초를 짓이겨 발라주었다. 그의 손길은 놀랍도록 부드러웠고, 그 안에는 승자의 여유와 기묘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해 평상에 앉히고, 달콤하고 뜨거운 홍차 한 잔을 건네며 속삭였다.
“올가을 추수가 끝나면, 반드시 혼례를 올려주마.”
그것은 이전의 막연한 약속과는 달랐다. ‘올가을 추수’라는 명확한 시점이 명시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약이었다. 나는 그 예상치 못한 온정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만과 순종, 반란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교묘한 회유라는 거대한 순환의 법칙 속으로 내가 다시 완벽하게 편입되었음을 깨달은 자의 허탈한 눈물이었다. 나의 반란은 결국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와르에게 더 견고한 지배의 명분을 주었고, 나에게는 더 확실한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나는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싸웠기 때문에 이 시스템 안에서 더 명확한 위치를 부여받은 것이다.
다시 농기구를 들고 사탕수수밭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육체의 고통은 익숙했고, 미래에 대한 약속은 전보다 확실해졌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자밀라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에 붙들려, 시시포스가 밀어 올리는 바위처럼 무거웠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는가? 아니면 단지 아버지를 시험하기 위해 나를 이용했는가? 혹은 이 모든 것이 그녀와 아버지가 함께 꾸민 정교한 연극이었는가?
나일강은 여전히 침묵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은 수천 년 전 람세스의 전차 바퀴 자국도, 클레오파트라의 눈물도, 그리고 오늘 나의 피와 땀도 모두 똑같은 무심함으로 받아들이며 하구(河口)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나의 영원은 다시 한번, 저 멀리 아득하게 유예되었다. 나는 그 유예된 시간 속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영원히 풀어야 하는 저주받은 오이디푸스가 되어, 끝없이 쟁기질을 계속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