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구와 필섭
현구의 유년 시절은, 대부분 범죄자가 그렇듯 불행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머니는 직장 생활이라고는 단 하루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늘 풍족했다. 아버지의 재력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호텔,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중견 건설사와 화장품 회사를 소유한 재벌이었다. 게다가 전국에 뿌려놓은 땅만 해도 웬만한 소도시에 맞먹는 크기였다.
하지만 현구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는 않았다. 그는 첩의 자식이었다. 그것도 세 번째 첩이었다. 유난히 아들 자식욕이 강했던 아버지는, 본처에서 네 명, 세 명의 첩에서 다섯 명, 모두 아홉의 아들을 두었다. 그의 이름에서 대략 짐작하듯이, 그의 이름, 현구는 항렬인 현과 아홉 번째 자식을 의미하는 구를 합친 거였다. 즉, 현구의 이복형들은 현일, 현이, 현삼, 현사, 현오, 현육, 현칠, 현팔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쯤, 어둠이 짙게 깔리면 조용히 나타나, 이른 아침 연기처럼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가 오는 날은, 어머니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목욕탕 다녀오기부터 시작하여 미용실 가서 머리 다듬기, 시장에 가서 고급 식자재 구입하기, 집 안 대청소까지 끝나면 상다리가 휠 정도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고 고급 위스키를 준비한 다음, 장롱 깊숙이 어머니가 소중히 간직한, 야사시한 속옷을 입고 그 위에 빛깔 나는 정장을 걸친 다음 마지막 화룡점정, 짙은 화장을 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긴장하기는 현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마치 황제와 신하의 관계에서 느끼는 그런 어려움이었다. 부자지간에 느끼는 애틋함 혹은 동질감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구의 기억에 남은 아버지는 늘 노인이었다. 어머니가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처음 만난 아버지는 이미 쉰다섯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첫사랑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끝 사랑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의 행동 패턴은 늘 비슷했다.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쳐나갈 듯이 아버지에게 안기고, 정성을 다해 저녁상과 술상을 내온 다음, 갖은 애교로 아버지를 흐뭇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현구였다. 어머니는 서랍에 곱게 접어놓은 현구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아버지에게 조용히 내민다. 어머니가 학수고대하던 순간. 그러면 아버지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술잔을 내려놓은 다음, 돋보기안경을 꺼내 걸치고는 아들의 성적표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다. 어머니와 현구는 아버지의 표정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곧 터져 나올 행복감을 준비한다.
이윽고 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성적은 올 수. 당연히 전교 1등. 선생님이 친필로 적어놓은 행동 특성 또한 칭찬 일색. 한마디로 완벽한 생활기록부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구를 한번 쳐다보고는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른다.
“현구야, 이리 와바라.”
황제의 부름에 신하는 조용히 그의 품에 안긴다. 그 순간, 감격에 겨운 후궁은 턱을 달달 떨면서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황제의 한 말씀.
“내 닮은 아들은 니 밖에 없다!”
어머니의 눈에서 폭포처럼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삶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유산 서열은 꼴찌지만, 그래서 애초에 아버지 기업을 물려받을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적어도 아버지의 내면에 자리 잡은 첫 번째 아들은 현구가 되는 것.
아버지는 이윽고 품에 꼭 안은 아들을 풀어주며 다시 한번 온화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현구야, 니는 꼭 서울대 법대 가야한데이. 알겠제?”
현구와 어머니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현구는 꼭 검사가 돼야 한데이. 그래야 내가 당한 설움, 울분…. 우리 아들이 깨끗이 갚아 줄기다. 암. 그렇고말고.”
현구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끊임없이 조폭 연루설에 휘말려, 수시로 검찰청에 끌려갔다. 그리고 조카뻘 되는 새파란 검사들에게 반백의 아버지는 반말과 쌍욕을 무더기로 얻어먹으며 문초당하곤 했다. 그러므로 현구의 세상에는, 대학은 딱 하나, 서울대뿐이었고 학과도 딱 하나, 법대뿐이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 알딸딸하게 된 아버지는 드디어 재떨이를 찾는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재떨이를 대령하고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다음 아버지 입에 살포시 꽂아준다. 아버지의 입과 코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현구는 독한 연기에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막히지만, 꾹 참는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지만 익숙한 듯,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윽고 상을 물린다. 어머니는 커피와 과일을 대령한다. 아버지는, 볼록한 배를 가차 없이 누르고 있던 벨트를 푼 다음, 느긋한 자세로 바꾼 다음,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그리고 현구를 보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현구야! 니는 참말로 아버지 잘 만난기다!”
현구는 이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질 아버지의 말도 무엇인지 안다.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의 자랑. 아버지의 성공 신화가 다시 한번 펼쳐질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재력가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를 아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것이다. 현구는 아버지의 스토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재밌다고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척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아이가. 집에 머슴만 해도 열 명이 넘었다. 우리 할배가 밟고 댕기는 땅이 모두 우리꺼였다. 참말로. 참 어이가 없어서…. 그 많고 많던 재산을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현구 너거 할아버지가 몽땅 말아 묵었다 아이가.”
현구의 할아버지 조덕삼은 노름과 술, 계집질에 미쳐 있었다. 일찍이 그의 나이 열여섯에 장가는 갔지만 본처는 남 보듯이 하고는 허구헌날 기생집에서 노름패들과 어울려 다니며 친목질을 하고 다녔다. 장기가 지나가는 부녀자 희롱이고 취미가 소작농들 협박하여 돈 뜯고 두드려 패는 거였다. 하지만 마을에서 조덕삼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청년들은 조덕삼에게 직, 간접적으로 은혜를 받지 않은 이가 드물었고, 관청이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소위 공무 집행을 하는 이들 중, 조덕삼의 돈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마을의 황제요 폭군이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었을까? 조덕삼의 패악질도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 되었을 때, 딱 멈추고 말았다. 병이 그를 붙잡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이 들어 손가락질하나 까닥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누구는 술병이라고 했고 누구는 성병이라고 했다. 병명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그가 천벌을 받았다는 거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현구야! 차라리 그때 너거 할아버지가 그냥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우리 아버지를 두고두고 원망하지는 않았을 게다. 참말로…. 우리 아버지는 그냥 악마 그 자체인기라…. 죽을 때도 그냥 죽지 않고 끝까지 악마 짓을 했으니….”
조덕삼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하였다. 의식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가까운 중소 도시 종합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그를 진료하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족과 친지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내 연명치료를 하면서 살릴 가능성을 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를 어떻게 그곳까지 보내는가였다. 그때는, 해방 직후, 무척 가난한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응급 차량의 시설이 잘 갖추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이런 제안을 했다. 사천 비행장에서 수송기로 가자고.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기겁했다. 평생 비행기라고는 듣도 보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비행기를 전세 내 서울까지 환자를 실어 나르는 비용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결국, 이 제안이 그나마 조덕삼이 전 재산을 노름에 탕진하고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던 선산을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즉, 완전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서울로 간 조덕삼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했고 북한군 탱크가 쏜 포격 한방에 병동이 무너져 내리며 건물더미에 깔려 그 자리에서 죽었다.
조덕삼이 유일하게 잘한 짓이라고는 영특한 외아들을 두었다는 거였다. 바로 현구의 아버지 조필섭. 그는 똑똑할 뿐만 아니라 잘생겼고 키도 또래보다 한 뼘이나 더 컸다. 게다가 운동 신경도 남달랐다. 그는 씨름 광팬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로 벌여 놓은 사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씨름은 꼭 빠지지 않고 챙겨 보았다. 그가 이렇게 씨름에 빠지게 된 시점은 그가 막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였다.
“현구야! 너거 아버지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더 크고 덩치도 훨씬 좋았지만, 몸매는 날씬했거든…. 그러니까 씨름 체급으로 보면 가장 낮은 태백급(80kg 이하) 이었지….”
현구는 이제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조필섭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었다. 해방과 한국 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지혜와 끈기로 헤쳐 나가 결국 오늘날 재계의 빛나는 별이 되기까지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다시 한번 현구의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때, 너거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 우리 마을에 매년 오월 단오가 되면 씨름판이 열리곤 했지.”
조덕삼 또한 씨름을 좋아했다. 허구헌날 세상 나쁜 짓을 다 하고 돌아다녀도 씨름판이 열릴 때쯤이면, 한없이 선량한 지주로 변신하여, 자신의 농장에서 가장 크고 튼실한 황소 한 마리를 끌고 나와 대회 우승자 포상으로 내놓곤 하였다. 그러니 필섭은, 어릴 때부터 씨름이 벌어지는 마을 한복판 광장에 마련한 임시 단상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조덕삼 옆에서 늘 시합을 구경하곤 하였다. 그리고 조덕삼은 경기가 끝나면, 항상 우승자를 자기 집으로 초청해 몇 날 며칠 동안 산해진미를 제공하고 함께 어울려 기생집에도 데려가곤 하였으니, 결국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젊은이는 모두 조덕삼을 깍듯이 모셨다. 필섭이 어릴 때부터 씨름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해, 필섭이 학생 신분으로 처음으로 씨름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그만 우승까지 하고 만 것이었다. 그는 대회 참가자 중 가장 어리고 몸무게도 가장 가벼웠으니, 그의 우승은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조차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결승전에서 맞붙은 상대 선수는 120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거구였다. 그런 그를 놀라운 기술로 때기장을 쳤으니 관중들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현구야, 내가 그때 결승에서 상대방 샅바를 바싹 당겼을 때 무슨 생각이 든 줄 아니? 무슨 생각이 들었냐 카며는…. 벽. 그래 한마디로 꿈쩍도 하지 않는 벽 같았어.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힘의 차이를 느꼈지. 하지만 씨름은 힘으로 하는 운동이 절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 상대방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씨름인 건지.”
필섭은 담배가 다시 당기는지 재떨이를 찾는다. 회한에 젖은 아버지는 마치 그 시절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내가 그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 현구야. 이 말은 꼭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힘에 부치는 일이 생겨도 어딘가에는 빠져나갈 방법이 있기 마련이라는 거. 이거야말로 내가 아버지로서 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인생 선물이다. 알겠니?”
현구와 어머니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 집터. 그래, 현구야, 우리 집터가 보통 집터가 아니다. 내가 그전에도 말했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이만기 마을인기라. 이만기가 누군지는 알제? 대한민국 최고의 씨름 장사. 그러니 내가 돈 벌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게 우리 선산 <조남산> 다시 매입하고 두 번째 한 일이 뭐겠노? 우리 집터. 폐허가 된 채 완전히 버려진 그 집터 다시 사서 깨끗하게 복원시킨 거 아니겠나.”
아버지는 자신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과 성과를 곱씹으며 자부심이 가득한 연기를 허공에 날린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자식이 열둘, 그중에 아들이 아홉이지만 절대 장남에게 선산을 넘겨줄 생각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에게 줄 거야. 그리고 현구야, 명심해라. 니가 서울대 법대 졸업하고 사법고시만 붙어라! 그러면 선산은 자동으로 니꺼다. 알겠나?”
어머니의 입이 귀에 걸렸다.
‘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필섭의 기적 같은 놀라운 우승.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약간의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결승에서 패한 장사는 이미 지난 3년 동안 내리 우승을 거머쥔 베테랑 선수였다. 즉, 힘이나 기술에서 신인에게 밀릴 턱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승에서 맞붙은 상대가 이 대회 후원자의 아들이니 시합에 임하면서 난처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 악착같이 이겨야겠다는 다짐을 못 하였거나 시합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필섭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또 그만큼 행운이 그를 따르고 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운은 이것 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다음의 행운에 비하면 이번 행운은 극히 작은 것에 불과했다.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행운. 그것은 그의 인생을 바꾸고 세상의 난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거였다. 그리고 그 행운은 마을의 외곽, 작은 공터에 초라한 교회가 세워지면서 시작하였다.
그 교회를 세운 이는 미국의 선교사 폴 오스터였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선교 활동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기껏해야 동네 조무래기들이 과자 얻어먹으러 교회에 한 번씩 오곤 할 뿐이었다. 고민에 빠진 폴. 그는 동네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 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무성영화를 생각했다. 영사기가 필요했다. 그는 수개월에 걸쳐 여러 군데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중고 영사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선교사는 교회 한쪽 벽면에 대형 천 걸개를 설치하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매일 밤 웃음꽃이 만발한 축제가 펼쳐졌다. 그동안 텅 빈 교회에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폴은 갑자기 쏟아진 주민들의 관심에 눈코 떨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그를 도울 듬직한 조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즈음,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중에 눈에 확 띄는 이가 있었다. 다른 이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 준수한 외모까지…. 한눈에 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선교사는 그가 이번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필섭 학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마디로 마을의 슈퍼스타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 조덕삼과는 정반대로 어딜 가던지 환영받았고 어딜 가던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동네 처녀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게다가 그는 총명하고 착하기까지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조덕삼 같은 악질 아버지한테서 필섭 같은 저런 멋진 아들이 태어날 수 있는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고 수군대곤 하였다.
폴은 그런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가 자신과 함께한다면 선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필섭이 영사기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그는 영사기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모든 것에 대한 지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폴은 필섭을 불러 영사기 운전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영사기 운전과 관리를 전적으로 그에게 일임했다. 이제 매일 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는 신나게 교회를 달려가 영사기를 돌렸다. 그렇게 시작한 선교사와의 인연. 그는 점점 깊이 교회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국 문화에 빠져든 거였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흘렀다. 그 사이 필섭은 폴과 영어로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영어에 통달한 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그에게 훗날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필섭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봄, 조덕삼은 중병으로 드러누웠다가 서울로 이송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비교적 부산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필섭은 수없이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바라보며 입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영어 실력을 알아본 군 관계자는 그를 미군 통역사로 발령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전쟁 기간 내내 미군 사령관실에서 통역병으로서 특혜를 누렸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의 특혜는 계속 이어졌다. 평택 미군 기지에서 통역사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꿀 보직이었다. 적어도 굶주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하나만 해도 큰 행운이었다.
전쟁의 끝은 참혹했다. 부서진 건물들과 폐허가 된 거리, 여전히 공포에 젖은 사람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이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하루하루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필섭이 머무는 영내는 딴 세상이었다. 본국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보급품과 위문품으로 처치 곤란할 지경이었다. 영리한 필섭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우선, 수려한 외모와 탁월한 말솜씨로 인맥과 친분을 쌓아갔다. 처음에는 위관급 장교부터 그리고 영관급, 장성급 장교까지 차츰차츰 범위를 넓혔다.
그즈음, 미군 기지 근처에 작은 상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부분 초라하고 열악하기까지 한 가게들이지만 그는 허투루 보지 않았다. 작은 가게가 모여 골목 시장이 되고 골목과 골목이 모여 재래시장으로 커지면서 주변에 식당과 미군식 바, 레스토랑, 클럽, 영화관, 의류점, 미용실, 이발소, 환전소, 잡화상 등이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우선 식당과 식료품점, 잡화상을 주목했다.
그는, 미군들이 쓰다가 버리는 혹은 쓰지도 않고 그냥 갖다 버리는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 물건들을 근처 잡화상에 헐값으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버려진 미군 전투 식량들 – 고기와 야채, 과일 통조림, 비스킷, 초콜릿, 껌, 커피 등등 - 을 식료품점과 식당에 싸게 팔았다. 그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일정 금액은 그의 상관들에게 상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그가 몇 년 동안 벌어들인 돈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그는 고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그의 친지, 친구, 지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지인 중에는 예전 조덕삼의 똘마니들도 있었다.
필섭은 시장 주변의 가게 중 그다지 벌이가 시원치 않은 것들을 헐값에 매입하여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임대료도 받지 않았고, 아이템 선정부터 판매 전략까지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도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시장 상점들을 점령한 그는 어느새 시장 점포 절반을 소유한 큰 손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는 이 정도로 만족할 그릇이 아니었다. 그는 통역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그가 늘 눈독 들이고 있던, 미군 전용 클럽과 바를 사들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조덕삼의 졸개들을 모두 끌어들였다.
이것이 필섭의 빛이자 그림자였다. 빛이라면 이후, 굵직굵직한 클럽을 인수하며, 유명 개그맨을 섭외해 TV 광고까지 만들고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킨 그야말로 클럽의 제왕으로 군림하였다면, 그림자에는 그가 그렇게도 증오하던 아버지, 조덕삼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양아치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끊임없는 조폭 연루설에 시달리고 결국 그로 인해 파멸로 이어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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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섭이 서울로 그의 터전을 옮긴 것은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였다. 그는 이번에도 서울 사대문 안 큰 시장 상가와 작은 공장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는 잠실 지역 땅들도 사들였다. 정치권에도 연줄이 닿아있던 그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도시 확장 계획에 과감하게 선점을 하였다. 그는 한마디로 돈 냄새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맡았다.
그가 구매한 것 중에는 식용유 공장도 있었는데, 하루는 공장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오일 케이크>가 그냥 버려지는 것을 본 그는, 즉시 뒷산 언덕에 자리 잡은 돼지 농장을 찾아가 무료로 찌꺼기를 넘겼다. 며칠 뒤 농장 주인은 공장에 찾아와 오일 케이크를 더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료가 아니었다. 그는 돈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는 폐가를 수리하여 아예 돼지 농장을 만들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필섭은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굴착기, 크레인, 로더, 덤프트럭, 불도저, 압축기, 크러셔 심지어 터널 굴착기까지 서둘러 구입하고 중장비 임대 회사를 차렸다. 그의 예상대로 회사 장비는 1970년대 내내 쉴 새 없이 그에게 막대한 돈을 안겨다 주었다. 그는 중장비 임대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 나가 구간별 현장 소장까지 맡았는데, 어느 날 산과 언덕을 깎으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흙이 그냥 버려지는 것을 보고는 즉시, 공사장 근처 마을 이장을 찾아갔다. 그는 흙 샘플을 한 움큼 쥐고는 이장에게 보여주면서 이 흙의 비옥도, 구조와 질감, 유기물 함량 등등, 마치 흙 박사인 양 능숙한 솜씨로 그를 구워삶아 흙을 팔았다. 그가 이렇게 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의 고향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수박 재배지였기 때문이었다. 수박은 토성에 따라 생육과 과의 품질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작물이므로 흙의 품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농사꾼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다. 어린 필섭도 할아버지를 따라 늘 수박밭을 함께 거닐면서 할아버지가 한 움큼 쥔 흙의 상태를 설명할 때마다 눈여겨보고 귀담아듣곤 하였다.
아무튼 필섭은 행운과 함께 그의 탁월한 비즈니스 안목이 더해져, 그의 아버지가 홀라당 말아 먹었던 재산의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의 맏아들 조현일이 항공사 사업에 뛰어들어 몽땅 말아먹을 때까지는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