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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Oct 24. 2024

비다의 눈 #11

삶과 죽음의 노래 1권

사피엔티아               


타뉼로가 인공지능 시대에서 최고의 기업가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에 있었다. 그 중심에는 '파벨예언서'라 불리는,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신비로운 자료가 있었다. 이 예언서는 다가올 세상의 맥을 집어내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단순히 타고 넘는 것을 넘어, 그 파도를 직접 만들어가는 기업가가 되었다.     
타뉼로가 이끈 최초의 혁명은 ‘신경망 기반의 의식 전달’이었다. 사람의 뇌파와 생각을 직접 디지털로 변환하여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더 이상 사람들을 의자 앞에 앉혀 놓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게 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만으로도 데이터를 교환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심지어 창조물들을 즉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타뉼로는 이를 통해 인류의 소통 방식을 완전히 혁신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물었다.     
그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자율 학습형 경제 생태계’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경제 활동을 분석하고 예측할 뿐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여 더 나은 경제 구조를 설계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AI는 예측과 학습을 거듭하며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인간의 필요를 미리 파악해 최적의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생태계는 자연스레 타뉼로의 기업들을 세계의 경제 중심에 서게 했고, 사람들은 그의 시스템을 통해 불필요한 경쟁과 낭비를 줄이며,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이룩한 또 하나의 업적은 ‘양자컴퓨팅 기반의 문제 해결’이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수년 걸릴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타뉼로는 이를 활용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생명공학, 물리학, 그리고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인 발견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의 과학자와 연구원들이 그의 양자컴퓨팅 클러스터를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그의 기업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했다.     
타뉼로의 또 하나의 비전은 ‘생체 AI 융합’이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에 융합되어, 질병을 치료하거나 신체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은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고, 노화조차도 극복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경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미래를 본 자이며, 그것을 현실로 만든 기업가였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집념을 가지고 기술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 이유는 오직 하나, ‘아마겟돈 전쟁’을 막기 위함이었다. 타뉼로는 종말 예언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자기 삶을 그것에 바쳤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자원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대한 돈, 최첨단 기술, 그리고 최신 정보. 이것이 그가 이룩한 모든 혁명의 진정한 이유였다.      
그가 개발한 자율 학습형 경제 시스템, 신경망 기반 의식 전달, 생체 AI 융합 기술 모두는, 사실상 인류를 구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와 검’이었다. 인류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은 이미 자신만큼이나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보를 조작하고, 기술을 악용하여 세상을 통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타뉼로는 그들보다 한발 앞서가야 했고, 그들을 이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쟁을 막는 자, 전쟁을 준비하는 자와 같다.’라는 말처럼, 타뉼로는 필사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며 전쟁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타뉼로의 가장 큰 공포는, 그가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파벨예언서가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쟁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러므로 타뉼로의 삶은 치열한 전투 그 자체였다.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며, 동시에 내면의 두려움과 맞서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이 곧 전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국제 사회가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경제적 패권과 자원, 영토를 둘러싼 분쟁들이 곳곳에서 피어올랐고, 각국의 지도자들은 한층 더 과격하고 배타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다. 서로를 향한 의심과 증오가 가득 찬 대화는 더 이상 협상이 아닌 폭력으로 치닫고 있었다.      
타뉼로는 그때 이미 종말의 그림자를 감지했다. 그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투 로봇과 첨단 무기 시스템에 모든 자금을 쏟아부었다. 타뉼로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완전 자동화된 전투 기계를 설계했다. 그러나 단순한 무기만으로는 전쟁의 흐름을 뒤집을 수 없었다.      
타뉼로의 진정한 계획은 그 너머에 있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기술과 융합하여,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려 했다. 그는 ‘리카르도’라는 한 사형수를 선택했다. 타뉼로는 리카르도가 가진 범죄자 적 본능과 냉혹함을 거꾸로 이용하려 했다. 타뉼로는 이탈리아 정부와 은밀히 협상했다. 그 결과, 한 달 동안 리카르도를 자신의 비밀 연구소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곳에서 리카르도의 모든 기억, 감정, 생각들이 ‘디지털 신경망’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리카르도는 자신의 기억이 파편처럼 분리되고, 다시 조립되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던 순간의 냄새, 감정, 그리고 그때 느꼈던 묘한 쾌감조차도 데이터로 변환되었다. 그의 내면에 감춰진 모든 어둠과 폭력성까지도 피할 수 없었다.      
이 디지털화된 정신은 인공지능 서버로 옮겨졌고, 리카르도는 그 안에서 ‘도메니코’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AI 전쟁 시스템에 융합되었다. 그는 전투 전략의 최전선에 배치될 수 있는 인공지능 전투 로봇의 뇌, 또는 다가올 전쟁에서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고 조종할 수 있는 ‘디지털 군사 리더’로 설계되었다.      
이듬해 예지수가 연구소에 합류했다. 그를 중심으로 연구원들은 단계적으로 점점 더 정교하고 강력한 전투 로봇 시리즈를 내놓았다. 
수백 개의 센서를 통해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이를 회피하는 능력이 독보적인 아우구리움(Augurium) 시리즈, 적의 심리와 전술 패턴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프라에몬티움(Praemontium) 시리즈, 전술적 변형 능력과 맞춤형 전투에 탁월한 카수스(Casus) 시리즈, 하나의 독립적인 전투 유닛일 뿐 아니라, 전장에서 다른 로봇들과 통신하고 조율하며, 전장의 모든 요소를 실시간으로 통합하여 총체적 전략을 만들어내는 넥서스(Nexus) 시리즈, 잔혹할 정도로 효율적인 전투 기법을 구사하고, 적의 생존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치명적인 공격을 쏟아붓기로 악명높은 타나투스(Thanatus) 시리즈, 그리고 이 모든 기술과 혁신을 모두 결합한 최고의 전투 로봇 아이기스(Aegis) 시리즈가 탄생했다.     
- 릴리안 나리의 <참회록> 중 -               

예지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여러 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응시하며, 손가락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카타콤의 함정에 대한 정보는 워낙 희귀했기에, 그는 온라인 깊숙이 파고들어 조각난 자료들을 모아야 했다. 그는 포럼과 학술 논문, 고고학 보고서들을 검색하며, 주의 깊게 그것들을 분류하고, 서로 다른 기록을 교차 검증하며, 미로를 풀어내듯 함정의 설계도와 원리를 하나하나 파악해나갔다.     

마침내 한 자료에서 눈에 띄는 기록을 발견했다. 카타콤의 지하 설계도를 담은 희귀한 문서였다. 이 자료는 오래전에 사라진 탐험대가 남긴 것이었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기록한 내용들이었다. 지수는 화면에 떠오른 설계도를 확대했다. 지도에는 함정의 위치와 발동 메커니즘, 위험한 장치의 구체적인 묘사까지도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 숨겨진 고대의 덫들은 치밀한 설계와 함께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수렁처럼 보였다. 그가 자료를 정리하며 또 다른 문서를 열었을 때, 그 속에는 함정이 작동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기계 구조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지수는 전자펜으로 그 구조의 핵심을 표시했다.      

마침내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카타콤 그 자체였다. 거대한 함정의 미로가 머릿속에서 펼쳐지듯, 그 모든 복잡한 메커니즘과 위협적인 덫이 좀 더 친숙해졌다. 그가 이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정보들이 실제로 침투조가 마주할 함정과 얼마나 일치하는가였다. 예지수는 모니터에서 침투조의 실시간 영상을 주시하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 순간, 갑작스레 화면에서 위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 대원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함정을 건드리려는 순간이었다. 예지수는 재빠르게 그들에게 경고했다.      

"거기서 멈춰!"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바로 앞에 발판이 있어. 밟으면 천장에서 화살이 날아올 거야."     

침투조는 예지수의 말에 즉각 반응했다. 그들은 발판을 조심스럽게 피해 앞으로 나아갔고, 함정을 완벽하게 회피했다. 예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가 쌓아온 정보와 그들의 대응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그는 한층 더 확신에 차 있었다. 카타콤의 벽과 천장, 바닥에는 오래된 비밀이 깃들어 있었고, 그 비밀은 불길한 함정으로 그들의 앞길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갑자기 앞장서던 대원이 땅을 디디는 순간,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멈춰!" 대장의 외침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발밑에 있는 석판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지수는 숨을 죽이며 대원의 위치와 지하도의 구조를 면밀히 살폈다. 지수는 차분하게 단말기를 조작했다. 모니터에선 함정의 구조가 해체되어 하나씩 드러났고, 숨겨진 해결책들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거기서 15도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그리고 손을 뻗어 벽의 틈을 짚어."      

한 대원이 지시에 따라 손을 벽에 얹는 순간, 틈 사이에서 작은 돌이 툭 튀어나왔다. 곧이어 천장에서 떨어지려던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삐걱대며 멈추었다.     

"함정 해제 완료." 예지수는 짧게 숨을 내쉬며 다음 경로를 탐색했다.      

침투조가 조금 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벽에서 미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대장은 재빨리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게 했다. 그가 바닥에 시선을 내리자, 얇은 선이 바닥을 가로지르며 드러나 있었다.      

"함정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천장에서는 흙먼지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자, 그들 머리 위엔 무수한 쇠사슬들이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발걸음을 내디딘다면 이 사슬들이 천장에서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선 신중해야 해," 지수는 다시 한번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한 명씩, 발 디디는 곳을 확실히 보고 가." 대원들은 한 명씩, 숨을 죽인 채 바닥의 선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카타콤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의 앞길은 더욱 음습하고 복잡한 함정들로 뒤엉켜 있었다. 침투조는 숨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카타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순간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좁은 통로 앞에 빛이 어른거리는 구덩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덩이의 어둠 속에는 뾰족한 철창이 깔려 있었고,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그곳으로 떨어져 즉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이 구덩이 위로 이어진 다리 같은 구조물은 허술해 보였다. 한번 잘못 움직이면 그들은 그대로 아래로 추락할 것이었다. 지수는 다시 침착하게 모니터를 살폈다.      

"구덩이 아래쪽을 봐. 거기 양쪽에 철문이 보일 거야. 그 철문을 열 수 있다면 다리를 고정할 수 있어." 대원들은 지수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 양쪽을 자세히 관찰했다. 구덩이 안쪽으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손잡이가 보였다. 대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것을 당기자, 철문이 열리며 다리가 고정되었다. 그들은 한 명씩 안전하게 구덩이를 넘었다.     

침투조가 카타콤의 심연을 더 깊이 파고들자,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천장은 낮아지고,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좁은 통로를 지나가던 중, 바닥 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돌벽이 이동하며 그들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양쪽 벽이 서서히 좁아지고 있었다.     

"이건 압축함정이야!" 지수는 경고하듯 외쳤다.      

"속도를 올려! 이 함정은 단시간 내에 모두를 압사시킬 거야!"     

침투조는 즉시 통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지만, 그 속도에 맞춰 벽도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지수는 바쁘게 여러 모니터를 살폈다. 그리고 통로 끝에 있는 기계 장치를 멈출 수 있는 패널을 찾아냈다.      

"저기 앞에 문이 있어. 문을 열면 함정을 멈출 수 있어!" 한 대원이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패널을 열었고, 벽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가까스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카타콤의 속삭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 앞에는 고요한 연못처럼 보이는 얕은 물이 펼쳐져 있었다. 물속은 맑고 고요했지만, 그 아래에는 미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원 하나가 발을 디디려 하자, 예지수는 즉시 경고했다.      

"멈춰! 저 물속에는 독극물이 섞여 있어. 그 물에 닿으면 끝장이야."     

그는 재빨리 모니터를 통해 대안을 찾아냈다.      

"저 앞에 있는 기둥을 조작하면 물을 빼낼 수 있어."      

대원들은 신속하게 물가를 돌아 기둥으로 접근했다. 물 아래에서 으스스한 빛이 일렁거렸고, 그들이 레버를 당기자 물은 천천히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드러났고, 그들은 마침내 안전하게 물을 건널 수 있었다.     

침투조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예상치 못한 넓은 방이었다. 이 방은 카타콤의 다른 공간과는 달리 기이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벽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먼지 한 점 없는 바닥은 어딘가 차갑고 음산했다. 방 안에 퍼진 정적은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멈춘 순간, 공기는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예지수는 모니터 너머로 방을 주시하며 뭔가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원들은 침묵 속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바닥이 요동쳤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덫이 작동하며 바닥에서 커다란 그물이 튀어나왔다. 그물은 거대한 파도처럼 위로 솟아올라, 그들을 무자비하게 휘감아 포획했다.      

"덫이다!" 한 대원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물은 그들의 몸을 옭아맸고, 그들은 꼼짝없이 그물 속에 갇혀버렸다. 그물은 강철 섬유로 짜져 있었고, 그 어떤 무기도 소용없을 만큼 단단했다. 그들은 몸을 비틀며 탈출하려 했지만, 모든 움직임은 그물에 더욱 깊이 얽히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그 후에 찾아왔다.      

그물에 갇힌 침투조 대원들은 절박하게 몸부림쳤다. 그들은 각자 손에 들린 무기를 움켜쥔 채, 그물의 촘촘한 줄기를 끊으려 안간힘을 썼다. 전투용 나이프가 반짝이며 그물에 닿았고, 레이저 절단기마저 날카롭게 그물을 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그물은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전투 로봇들은 금속 팔과 강철 집게를 이용해 그물을 파괴하려 했으나,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물은 더 단단히 몸을 감쌌다. 로봇의 메카닉 팔이 힘차게 움직일 때마다 그물은 더욱더 강하게 조여들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기계가 갑작스럽게 멈췄다.     

순간, 강력한 자기장이 방 안을 휘감으며 모든 전자 장비들이 먹통이 되어 버렸다. 대원들이 사용하던 총은 무기력하게 쇳덩이가 되었고, 로봇들의 붉게 빛나던 눈은 갑자기 꺼졌다. 자기장이 방 안을 가득 채운 채, 모든 전자장치는 마치 깊은 수면에 빠진 듯한 침묵 속에 잠겼다. 대원들은 이제 어떤 탈출도 기대할 수 없었다. 무기와 기술이 더 이상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얼마 뒤 사방에서,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처음엔 환영처럼 보였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들의 형체는 어둠과 한 몸인 듯했다. 하지만 이내 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완전 무장을 한 지하인들이었다. 그들은 낡고 허름한 군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흙과 검은 얼룩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들의 눈은 날카롭고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지하인들은 조용히 침투조를 둘러싸며 서서히 좁혀왔다. 그들의 총구는 모두 침투조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방 안에는 깊고 묵직한 침묵이 감돌았다. 침투조는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분명 고대의 폐허 속에서 함정만을 상대하리라 생각했지, 생존자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지수 역시 모니터 앞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며 말문이 막혔다.     

침투조의 리더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우린 너희를 공격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자신도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하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침투조를 겨눈 채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맹목적인 적대감이 서려 있었고, 침투조가 어떤 의도가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예지수는 모니터를 통해 지하인들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들의 외형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처음에 그들이 카타콤 깊숙이 숨어 사는 샤크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화면 속에 드러난 이들은 분명 인간이었다.      

‘샤크라가 아니라 인간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니….’ 지수는 한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의 머릿속엔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왜 사는 거지?’      

그러나 지금은 그 의문을 풀 시간이 없었다. 예지수는 지하인들과의 대화가 절실했다. 그들이 적대적인 의도로 무기를 겨눈 상태에서 침투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통이 필요했다. 지수는 재빨리 스피커 시스템을 조작해 자신의 목소리를 현장으로 연결했다. 그가 사용할 언어는 당연히 이탈리아어였다.      

모니터 앞에서 침착하게 마이크를 켠 그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바다 건너 세르펜티아에서 왔다. 당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의 공허한 공간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무장한 지하인들 사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방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고, 침투조의 대원들은 숨을 죽이며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지하인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해 보였으며, 눈빛에는 묘한 결단력이 서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래, 잘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날카로웠다.      

"너희들이 이곳에 침투할 때부터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지수는 그 말을 듣고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는 이곳이 폐허라고 믿었고, 그저 함정만이 그들을 막을 거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지하인은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너희 나라가 악명 높은 해적 소굴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경멸과 조소가 섞여 있었다.      

예지수는 긴장감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지만, 이번에는 더욱 간절했다.      

"우리는 너희를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상의 샤크라를 물리치기 위해 왔다. 너희와 싸울 의도는 없다. 그러니, 너희 지도자와 협상하고 싶다!"      

잠깐 방 안에는 고요가 흘렀다. 침투조 대원들은 여전히 그물에 갇힌 채 버둥거렸고, 지하인들은 무표정하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곧 깨졌다. 앞서 나섰던 지하인 대장은 예지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들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는 방 안에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고, 침투조의 대원들조차 예상치 못한 반응에 몸을 굳혔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천천히 대답했다.      

"샤크라를 물리치고 나면? 그 후에는? 안 봐도 뻔한 일이지." 그의 목소리는 냉소적이었고, 얼굴엔 경멸이 서려 있었다.      

"그다음은 당연히 우리 차례겠지. 우릴 잡아서 당연히 노예로 삼겠지. 아니면, 너희들 식탁에 오르겠지. 안 그런가?"     

그의 말은 비수처럼 지수의 가슴을 찔렀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하인의 예측은 정확했고,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수는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르펜티아인들이 샤크라를 물리치고 나면, 결국 이 지하인들 역시 또 하나의 위협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이용할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지수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미 세르펜티아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민족이 정복되고, 노예로 전락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수는 자신이 더 이상 정직하게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모니터 앞에서 침묵했다. 방 안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이 요청은 이제 지수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였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지하인 대장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우리도 살기가 넉넉하지 않다. 우리 지하인들조차 자원을 겨우 유지하고 있으니, 포로를 먹이고 돌볼 여유는 없다." 그의 말은 현실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생존을 위해 자신들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침입자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여기서 즉결 심판을 하도록 하겠다." 대장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크로폴리스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포그나르의 진정한 영웅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도메니코 대통령을 대리하여 너희들에게 선고한다." 그의 음성은 마치 판결문을 읽는 듯 장엄했고, 지하의 어둠 속에 서늘하게 퍼져나갔다.     

"너희는 신성한 땅에 무장한 채 무단으로 침입한 죄로 반역죄를 선고받는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하인 병사들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대장은 마지막으로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 반역죄는 즉시 집행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그 순간, 예지수는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메니코 대통령이라고 하셨나?"      

대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지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혹시 그분의 본명이 리카르도 벨라피오레가 아닌가?" 그가 말을 마치자 방 안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대장은 지수의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가? 어느새 우리 위대하신 지도자님의 명성이 너희들 야만인들에게까지 퍼졌단 말인가?"     

지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를 너희 대통령에게 소개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형제다."     

대장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분의 형제들은 모두 살해당했어, 이미 오래전에."     

그러나 지수는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사피엔티아의 형제고, 그분 또한 사피엔티아 소속이야."     

대장은 점점 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희들이 죽기 싫어서 별의별 거짓말을 다 꾸며내고 있구나.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아. 우리 대통령께서는 지금 너무 바쁘다. 너희 같은 해적 나부랭이를 만날 이유도 없으시지."     

그러자 지수는 더욱 간절하게 외쳤다.      

"적을 죽이기 전에, 살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라!"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장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뭔가 찔린 듯한 표정이 잠시 드러났다. 그는 몸을 조금 뒤로 물리며 물었다.      

"아니, 그 말을 어떻게 아는 거냐?"     

지수는 숨을 고르며 결연하게 말했다.      

"내 형제가 입버릇처럼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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