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노래 1권
아스널
리카르도가 사형수가 된 해는, 그가 피비린내 나는 마피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문의 원한을 모두 씻어낸 이듬해였다. 그는 총 47건에 달하는 살인사건과 깊이 얽혀 있었다. 그는 계획대로, 차례차례로 적들을 제거했고, 매번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감청 장치가 그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과의 대화, 거래의 순간, 그리고 그의 명령이 담긴 음성들은 조각조각 모여 거대한 진실의 퍼즐을 완성해 갔다. 그가 검은 가죽 의자에서 전화기에 내뱉던 한마디 한마디가 살인 증거로 법정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그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뜻밖에 예지수의 입을 통해서였다.
지수는 해커계의 레전드로 이미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바티칸을 해킹하여 수만 건의 논란이 많았던 문서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서들은 정교하게 필사된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 안에는 교황청 내부의 복잡한 권력관계, 신성한 교리 뒤에 숨겨진 음모, 교회의 재정적 이익을 위한 정치적 결탁 등이 드러나 있었다. 어떤 문서는 특정 교황의 비밀 회의록을 담고 있었는데, 거기엔 마피아와 교황청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적혀 있었다. 그 속엔 여러 마피아 패밀리가 등장했다.
수 세기 동안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리를 통제하고 감추었던 바티칸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비밀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세상의 눈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교회와 마피아의 관계는 성스러운 수도의 벽 안에서 은밀히 벌어진 부패의 상징으로 변해버렸다.
이탈리아 수사 당국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진행되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동원되어 예지수의 흔적을 추적했다. 하지만 지수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었다. 그의 명성답게, 지수는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사이버 수사관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추적할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수를 검찰에 팔아넘긴 것은 고도의 수사 기술도, 첨단 장비도 아니었다. 바로 그의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지수의 천재성에 질투하고 있었다.
타뉼로와 나는 예지수를 주시한 지 오래되었다. 그의 기술, 그의 비범한 지성, 그리고 그가 가진 무모한 도전 정신은 우리 사피엔티아가 찾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켰다. 우리는 그를 우리 조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타뉼로는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려 그의 석방을 계획했고, 나는 직접 그를 만나 설득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처음으로 지수를 감옥에서 만났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여기가 편안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지?" 나는 물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미묘한 긴장을 읽어내려 했지만, 그에게는 불안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살짝 좁혔다.
"리카르도가 나를 보호하고 있거든요."
"리카르도라니… 왜 그가 당신을 보호하지?" 나는 의심스러웠다.
지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확실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바티칸을 해킹하면서 드러낸 것들이 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이 숨기고 있던 것 중 일부는 리카르도에게 중요한 정보였을지도 모르죠. 아마 그게 그가 나를 보호하는 이유일 겁니다. 내가 그에게 고마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지수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 속에는 어떤 미묘한 평화가 있었다.
"이곳은 마치 리카르도가 설정해놓은 성곽 같아요. 바깥의 복잡한 세계보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명확하죠. 오로지 저 자신에게만 신경 쓰면 되죠. 그러니 저를 돕고 싶다면…. 책과 논문을 좀 가져다주세요. 릴리안님. 여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거든요…. 해킹 관련 책은 검열 대상이에요. 그러니 뭐, 인공지능이나 양자역학 같은 내용이면 좋겠어요. 로봇 공학도 괜찮고요."
그날 이후, 타뉼로와 나는 리카르도를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력은 폭력과 공포로 다져졌지만, 그 이면에는 카리스마와 단호한 충성심이 있었다. 그는 자기 가족과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자였다.
타뉼로는 이런 리카르도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리카르도의 잔혹함을 경계할 때, 타뉼로는 한발 더 나아갔다.
"만약 우리가 아마겟돈을 막을 수 없다면," 타뉼로는 나직하게 말했다. "아마겟돈 이후의 삶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의 끝, 그 이후에 남겨진 폐허 속에서 어떤 질서가 필요할지에 대한 그의 사색은 깊고 현실적이었다.
종말 이후의 세상은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절망과 혼돈이 지배할 가능성이 컸다. 폭력과 공포가 모든 곳에 스며들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살아남기 위해 다시금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이다.
"그런 시절을 극복하려면, 리카르도 같은 인물이 필요할지도 몰라. 폭력적일지라도, 그는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치고, 의리가 있으며,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지키려는 단호함이 있어. 그가 가진 폭력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보호와 생존의 수단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리카르도는 종신 가능성 없는 사형수였다.
- 릴리안 나리의 <참회록> 중 -
아이기스는 불길 속에서 벗어났다. 그의 피부는 이제 완전히 타버리고, 금속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곧이어 수십 개의 소형 곤충형 로봇, ‘스팅어’가 나타났다. 이들은 빠르게 날아오르며 신경을 교란하는 음파를 발생시켰고, 동시에 작은 레이저 탄환을 쏘았다. 아이기스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팔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내장된 방패를 펼쳐 스팅어들의 레이저 공격을 막았다. 레이저가 방패에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와 매서운 힘이 전달되었지만 아이기스는 잘 버텼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을 빠른 속도로 기는 지뢰형 로봇 ‘버로워’가 그의 하체를 목표로 몰려들었다. 버로워들은 땅을 뚫고 나와 적의 발밑에서 기습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기계들이었다. 아이기스는 재빠르게 스캐너를 동작시켜 지표면 아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해 주변의 버로워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작은 폭발들이 연달아 터지며, 버로워들의 금속 파편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번에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커다란 구형 전투 로봇, ‘구울러’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로봇은 거대한 바퀴처럼 회전하며 돌진해 오며 여러 발의 플라스마 탄환을 발사하며 접근해왔다. 아이기스는 삐걱거리는 몸이지만 잽싸게 피했다. 그리고 왼손에서 고에너지 전기 충격파를 날렸다. 한순간에 그 거대한 기계는 불길에 휩싸이며 폭발했다.
하지만 곧 아이기스는 자신의 에너지 시스템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전신을 관통하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파워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생존 본능에 따라 급격히 몸을 회전시키며 무서운 속도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금속 발이 전장의 울퉁불퉁한 지면을 강하게 내리칠 때마다 스파크가 튀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스톰레이븐(Stormraven)이라 불리는 고속 공중 전투 장갑차가 급속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샤크라의 정예 부대가 사용하는 장비였다. 스톰레이븐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아이기스를 향해 급강하하며 소형 유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아이기스는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짜내 극도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스톰레이븐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아이기스 바로 옆에 떨어진 미사일의 파괴적인 힘이 지면을 강타하며 화염과 함께 도로가 움푹 파였다.
스톰레이븐은 일격을 놓치자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접은 채 더 빠르게, 낮게 아이기스를 향해 돌진했다. 아이기스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적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아이기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스톰레이븐의 날카로운 금속 꼬리날개에 매달렸다. 스톰레이븐은 거칠게 흔들리며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공중에서 장갑차가 비틀거리는 동안, 아이기스는 전력을 다해 몸체를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강렬한 바람이 그의 몸체를 때렸고, 스톰레이븐의 엔진이 만들어낸 뜨거운 기류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씩 전진했다.
조종석에 앉은 샤크라는 기체를 흔들며 아이기스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러나 아이기스는 장갑차 표면의 틈새에 손을 최대한 끼워 넣으며 버텨냈다. 운전석에 거의 다다른 아이기스는 조종석 캡슐을 손으로 내려쳤다. 충격이 가해지자 처음엔 금이 갔고, 두 번째 타격에 캡슐이 산산이 부서지며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이기스는 샤크라를 바라보며 조종석 안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샤크라는 몸을 낮추고, 순식간에 아이기스에게 덤벼들었다. 좁은 조종석 안에서, 두 전사는 기계적인 반사신경과 야수의 민첩함으로 서로를 공격했다. 샤크라의 날카로운 손톱이 아이기스의 목을 향해 치고 들어왔다. 샤크라의 눈이 분노에 불타올랐다. 그는 인간이었던 시절을 넘어선 초인적인 힘으로 아이기스를 밀어내려 했지만, 아이기스는 버텨냈다. 그 사이 기체는 심하게 요동쳤다.
조종 시스템이 둘의 싸움으로 인해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스톰레이븐의 반중력 추진 장치는 급격한 기울어짐에 반응하듯 경고음을 울렸고, 기체는 지그재그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주변의 공기가 날카로운 금속 소리처럼 기체를 때렸다. 기체 내부에서는 다양한 경고 신호음이 울리며, 스톰레이븐의 시스템이 혼란에 빠졌다.
두 전사는 그 격렬한 요동 속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기체가 갑작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그들의 몸은 벽에 부딪히고, 패널과 제어 장치들이 부서져 날아갔다. 기체가 회전할 때마다 조종석 밖으로 하늘과 지면이 빠르게 교차하며 보였다.
하늘은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였고, 그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며 스톰레이븐을 에워쌌다. 기체는 불안정하게 대기 중을 가로지르며 뒤집혔고, 샤크라는 그 기울어짐을 이용해 아이기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아이기스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샤크라의 공격을 피하며 다시 반격에 나섰다. 스톰레이븐은 그들의 치열한 싸움으로 인해 거의 추락할 듯한 상태였다. 각종 시스템 패널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붉은 경고등이 점등되며 기체의 위태로운 상태를 알렸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아이기스와 샤크라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쓰러뜨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마침내, 스톰레이븐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듯 크게 한 번 요동친 후 급강하를 시작했다. 그 순간, 아이기스는 샤크라의 팔을 잡아 뒤로 비틀었다. 샤크라의 입에서 형언할 수 없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이기스는 그 틈에 샤크라를 거칠게 조종석 밖으로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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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를 선두로 한 네크로폴리스 특수대원들은, 은밀하게 지상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조용했으며, 공기가 얼어붙을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늘은 황혼의 잔광을 담은 듯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밤이 찾아오면 샤크라들이 낮보다 더욱 민첩하고 맹렬하게 그들을 위협에 빠트릴 것이다.
루카는 자기 헬멧 모니터로 주변을 분석하며, 목표 지점인 이블락스 아스널(Evlax Arsenal) 무기고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곳은 도시 내 고립된 시설로, 철벽같은 방어 시스템과 감시망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폴리스 특수 대원들은 지하인 답에 잠입의 명수였다.
루카는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대원들은 무성한 폐허 숲 사이로 흩어져, 신속하게 목표 지점으로 다가갔다. 세찬 바람이 거리의 먼지를 일으키며 그들의 접근을 덮어주었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무기고의 실루엣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쉽게 침투할 수 없는 요새처럼 보였다. 그러나 루카는 그곳의 허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그동안 수도 없이 다녔던, 오래된 배수구가 그들의 진입로였다. 루카는 몸을 낮추고 배수구 덮개를 열며, 무언의 신호로 팀원들을 안내했다. 하나둘씩 그들은 몸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그 어두운 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배수구 안은 축축하고 좁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먼 거리에서 희미하게 전기 소음이 들려왔다. 루카는 작은 스캐너로 앞을 비추며, 장애물이나 위험을 확인했다. 스캐너 화면에 깜박이는 점은 점점 더 목표 지점에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마침내 배수구 끝에 도착한 그들은 천장을 뚫고 무기고 내부로 들어가는 출구를 찾아냈다. 루카는 잠시 멈춰 서서, 천장에 난 좁은 창을 바라봤다. 하늘은 이미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루카는 무기고 진입을 앞두고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이 벽 너머엔 샤크라의 최첨단 무기들이 있었다. 루카는 조용히 손을 들어 팀원들에게 준비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임무는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루카는 무기고 외벽을 따라 걸으며 경보 장치와 전기 패널이 숨겨진 위치를 찾아냈다. 루카의 손끝이 전기 패널을 스칠 때,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의 동료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준비를 마쳤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에도 루카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전자 해킹 장비를 꺼내어 경보 장치에 연결했다. 기계음이 짧게 울렸고, 패널이 점멸하며 전력이 차단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루카의 신호와 함께 팀원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무기고의 경보 시스템은 침묵으로 변했다. 대원들이 재빨리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무기고 내부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긴장감이 공기를 가득 채웠고, 그들의 숨소리조차도 철저히 억제된 상태였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루카는 통신 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몇 번 화면을 스치자, 외부에서 대기 중인 트럭 부대와 연결이 되었다.
"목표 지점에 진입했다. 준비 완료, 대기하라."
무기고를 탈취하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트럭으로 무기들을 실어나가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순간, 짧고 날카로운 드르륵 소리가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루카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고, 동료들도 훈련된 반사신경으로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불빛은 벽과 바닥을 강타하며 불꽃을 만들어냈다.
“샤크라다!” 루카는 짧게 외쳤다. 어둠 속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적들이 보였다.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네크로폴리스 대원들은 훈련된 전술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자동 소총이 짧은 진동을 일으키며, 그들의 손에서 화염을 내뿜었다. 강력한 에너지 탄이 벽을 갈라놓고, 총소리가 뒤섞인 샤크라들의 함성은 무기고 내부를 뒤흔들었다. 샤크라들은 저돌적으로 돌격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루카의 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샤크라의 숫자는 끊임없이 늘어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샤크라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루카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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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추락하는 스톰레이븐의 조종석 안에서, 아이기스는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파괴된 파워 시스템으로 인해 점점 더 무거워져 갔고, 힘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게다가 스톰레이븐의 내부에서 울리는 경고 소음은, 비행 장갑차의 여러 곳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음을 경고했다. 기체의 여러 부분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엔진에서 나오는 불길과 연기가 공중으로 퍼져나가며 그를 둘러싼 주변 공간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아이기스는 비행 장갑차의 추락을 막기 위해 핸들을 힘껏 당겨보았지만, 기체는 아찔하게 회전하며 지면을 향해 빠르게 떨어지기만 했다. 아이기스의 시야는 회전하는 하늘과 지면이 빠르게 교차하며 뒤엉켰고, 조종석의 창 너머로 어두워지고 있는 대지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의 몸도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팔다리가 굳어갔다. 아이기스의 시야는 점차 흐릿해졌다. 그는 핸들을 붙잡은 채, 자신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무력하게 추락하는 스톰레이븐의 너머로 번쩍이는 불빛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기스는 희미한 감각 속에서 그 빛이 지상의 무언가를 비추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대형 무기고였다. 그 순간, 아이기스의 가슴에 차가운 공포가 스며들었다. 무기고라면, 그곳에 떨어지면 아무리 그가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로봇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이기스는 자신이 맞이할 운명을 명확히 직감했다. 그의 내면에 일순간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전쟁터에서 수없이 겪었던 위험, 파괴, 죽음의 위협들이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만큼은 돌이킬 수 없는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체의 요동이 더욱 격렬해지며, 그 아래로 펼쳐진 대형 무기고의 구조물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위로 하늘에 깃든 어둠과 함께 번개처럼 터져 나오는 불빛은, 마치 그를 기다리는 최후의 불길처럼 느껴졌다.
아이기스는 핸들을 움켜쥔 손을 서서히 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아이기스는 눈을 감았다. 그의 시야는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었고,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전사의 심장으로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그가 싸워온 수많은 전투와 위험 속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았던 용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이기스는 무기고로 돌진하는 기체와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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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는 무기고 옆 건물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진동에 일순간 얼어붙었다. 땅이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흔들렸고, 세찬 공기 압력이 그를 휘청이게 하였다. 이어진 폭발음은 하늘을 찢는 천둥 같았고, 그 뒤를 따르는 불길은 마치 지옥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루카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본 방향에서 불길이 거대한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폭발의 중심에서 타오르는 화염은 주변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불길은 순식간에 무기고를 넘어서 샤크라들이 있는 전선까지 퍼져나갔다. 불길 속에서 샤크라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혼란에 빠져 흩어졌고,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도망치려 했다. 일부는 몸에 불이 붙은 채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다른 일부는 남아 있는 병력을 집결시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상황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대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각자 숨을 죽이고 있던 엄폐물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샤크라들을 향해 치명적인 반격을 가했다. 교전의 중심이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혔다. 혼란에 빠진 샤크라들은 자신들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줄줄이 쓰러졌다. 그들의 몸에서 검붉은 피가 튀며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모습이 처참해 보였다.
루카는 마침내 승리를 확신하며 트럭 부대에 호출 신호를 보냈다.
트럭들이 곧이어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하자, 샤크라들을 모두 제압한 대원들은, 고가의 최첨단 무기들만 신속하게 트럭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먼저, 프리즈마틱 레이저 캐논이 있었다. 이 무기는 일정한 에너지를 축적한 후 단 한 번의 발사로 무엇이든 분해할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디지털 탄환 추적 시스템(DTS) 소총이 상자째로 담겨 있었다. 이 소총은 발사된 탄환이 스스로 목표물을 추적하고 적의 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무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값진 무기는 펄스 에너지 자벨린이었다. 이 무기는 투창처럼 생긴 긴 자루에 강력한 펄스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었고, 적에게 던지면 폭발적인 에너지 파동을 일으켜 수 킬로미터 반경 내의 모든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고 기계화된 병력을 파괴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무기들이 있었다. 탈취한 무기들을 트럭에 차곡차곡 실으며 대원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루카와 몇몇 대원들은 다음 무기고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놀랍게도 다양한 전투 로봇이 보관되어 있었다.
강력한 팔에 장착된 대형 클로가 특징인 타이탄 스톰블레이드, 날렵한 디자인과 함께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여 적의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는 것이 특징인 레이저 스프라이트, 두꺼운 장갑으로 덮여 있고, 팔에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 가능한 무기들이 장착된 아머드 제노스, 공중전과 정밀 폭격에 특화된 스트라이크 윙맨까지….
루카와 대원들은 긴장감 속에서 서둘러 움직였다. 시간은 그들의 적이었다. 샤크라들이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여러 종류의 나무 상자들이 신속하게 트럭에 실렸다. 상자 안에는 최첨단 무기들과 전투 로봇들이 들어 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여러 곳의 무기고에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고 폭발음은 공기를 찢듯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매번 폭발이 터질 때마다 땅이 흔들렸고, 그 여파는 루카와 대원들에게조차 느껴졌다.
몇몇 지역에서는 여전히 대원들과 샤크라 사이의 격렬한 교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총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섬광과 함께 날아드는 총알들이 불규칙한 리듬을 그렸다. 대원들은 한 손으로 상자를 나르면서도 언제든지 샤크라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 빨리 움직여!" 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퍼지자, 대원들은 더욱 빠르게 손을 놀렸다. 무기를 실은 트럭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루카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한 번 더 살폈다. 곳곳에 샤크라의 시체와 파괴된 금속 조각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순간, 루카는 불꽃 속에서 움직이는 샤크라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들의 붉은 눈이 무섭게 빛나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상자가 트럭에 실리자, 루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잽싸게 트럭에 몸을 던졌다.
"출발해!"
트럭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머지 대원들도 잽싸게 탑승하며 자리를 잡았다. 트럭은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히 현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샤크라들이 루카가 탄 트럭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조심해, 샤크라들이 몰려온다!" 한 대원이 외쳤다.
총성이 다시 공기를 찢었다. 샤크라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며 트럭을 뒤쫓기 시작한 것이다. 빗발치는 총알이 트럭의 금속 표면을 쉴 새 없이 때렸다. 몇몇 총탄은 타이어 근처에 꽂혀 바닥을 파헤치며 불꽃을 일으켰고, 몇 발은 트럭의 뒤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트럭에 실린 무기 상자들이 요동쳤고, 대원들은 서둘러 몸을 낮추었다.
운전병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비틀었다. 트럭은 거친 지형을 따라 지그재그로 질주하며 총알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샤크라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파란빛을 내뿜는 플라즈마 볼이 트럭을 향해 날아왔다. 에너지가 땅에 닿는 순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루카의 트럭은 가까스로 그 폭발을 피했지만, 충격파는 트럭의 몸체를 뒤흔들었다. 대원들은 트럭에 매달리듯 몸을 붙이고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속도를 더 올려!"
운전병은 악에 받쳐 액셀러레이터를 꾸욱 밟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트럭을 향해 돌진해 왔다. 루카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트럭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폭발의 충격파는 귀를 찢는 듯했고, 대원들의 비명과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함께 얽혀 울려 퍼졌다.
트럭은 수십 바퀴를 공중에서 도는 듯했다. 루카와 대원들, 그리고 모든 무기 상자들이 가차 없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졌다. 루카는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와 대원들은 각자의 궤도로 던져졌다. 한 상자는 폭발의 여파에 의해 완전히 찢어지며 그 안의 무기들이 빛을 반사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대원들의 흐릿한 외침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트럭이 대지로 떨어지며 거대한 소리를 냈고, 그 여파로 지면이 요동쳤다. 루카는 풀숲 속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공중에서 떨어지던 충격이 그의 전신을 마비시킨 듯했다. 몸은 그대로 경사면을 따라 무기력하게 구르더니 늪에 가서야 멈추었다.
그는 멍하니 가만히 누워 있었다. 머릿속은 지진이 난 듯 어지러웠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가슴과 다리에서는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루카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그는 땅을 짚고, 힘겹게 몸을 엉금엉금 움직였다. 손바닥이 돌과 흙에 긁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것조차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마다 쪼개질 것처럼 아팠지만, 루카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경사면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경사면을 오르자,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트럭은 거대한 불꽃 덩어리로 변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대원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부서진 무기 상자들과 파괴된 전투 로봇의 파편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루카는 시야가 흐려지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안쪽 주머니를 뒤적였고, 마침내 비상 호출 패드를 찾았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패드의 비상 호출 버튼을 간신히 눌렀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쳐 갔지만, 그는 점점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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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야는 처음엔 흐릿하게 일렁이다가 조금씩 초점이 맞춰졌다. 곧 그는 자신이 반듯하게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목과 발목이 무언가에 단단히 묶여 있었고, 몸 전체가 묵직한 느낌으로 눌러져 있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려 했으나, 가슴에 남아 있는 통증이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움직이는 무언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독특한 저음이 끊임없이 들렸고 천장에는 붉고 파란색이 섞인 작은 비상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과 기계음이 끊임없이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곧, 그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다가왔다.
"눈을 떴군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루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끊임없는 진동에 익숙한 듯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는 설치된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긴 어딥니까?” 루카는 침묵을 깨고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자신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대원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구급 플라잉입니다. 당신을 구조했어요. 지금 안정 상태입니다. 도착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플라잉 장비는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고, 외부의 긴박한 상황을 알리듯 벽에 난 작은 경고등이 계속 깜빡였다. 그 경고등이 이곳이 적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위험의 한가운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루카는 물었다.
"안타깝지만, 혼자 살아남으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루카의 가슴이 먹먹하게 내려앉았다.
그는 무거운 숨을 내쉬며 동그란 창문을 응시했다.
창밖에는 어둠이 가득했고, 그 어둠은 전장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삼켜버린 듯했다.
루카는 동료들의 명복을 잠시 빌었다.
그때, 그의 시야 한구석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루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놓인 물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전투 로봇이었다. 금속의 몸체는 심하게 스크래치되어 있었고, 곳곳이 찌그러지고 불에 그슬려 있었다.
마치 전장의 잔해처럼 누워있는 그 로봇을 보며 루카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 로봇은… 뭐죠?" 루카가 흐릿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 루카님 근처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많이 손상되었지만, 수리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 실었습니다."
루카는 천천히 로봇을 다시 바라보았다.
찌그러진 피부 사이로 드러난 내부의 복잡한 기계 부품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금속 표면의 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더듬으며 그곳에 새겨진 글자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에셜론 신스테크(Echelon Synthtech)..."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금속판에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지만, 뚜렷하게 느껴졌다.
"Apex 4469b 시리즈….아이기스(Aeg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