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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Oct 24. 2024

비다의 눈 #12

삶과 죽음의 노래 1권

사하라             

  

사형 집행을 단 하루 앞둔 밤, 도메니코는 마침내 사피엔티아 8의 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새로운 세계로 나가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죽음은 이제 그에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서막이었다.     
그의 시신은 곧바로 타뉼로가 설립한 또 다른 로봇 개발 회사인 네오비타 코어(Neovita Core)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그는 냉동 보존되었다. 이곳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프로젝트는 프로메테우스 이니셔티브(Prometheus Initiative)로 불리었다. 이 프로젝트는 죽음으로부터 인간의 의식과 본질을 되살려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시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탄생한 그들의 첫 번째 모델은 아이온 시리즈(AION Series)로 명명되었다. 아이온 시리즈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전한 휴머노이드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프로메테우스 이니셔티브와 아이온 시리즈의 성공을 뒷받침한 기술들은 당대 최고의 혁신을 결집한 결과였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뉴로디지타 합성 기술(Neurodigita Synthesis)로, 인간의 뇌파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기계에 이식하는 과정이었다. 이 기술은 도메니코의 뇌에서 기록된 모든 기억과 의식을 데이터화하여 로봇의 인공지능 시스템과 결합하는 과정을 가능하게 했다. 즉, 인간의 감정, 기억, 판단을 그대로 보존하고, 사이보그가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한, 바이오네틱 엔지니어링(Bionetic Engineering) 기술은 인간의 세포와 금속을 융합해, 기계적인 신체 구조가 인간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기술 덕분에 아이온 시리즈는 인간의 육체와 거의 동일한 감각을 지녔고, 세포와 나노 기계들이 함께 작동하여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도 탑재되었다.     
마지막으로, 쿼즈메트릭 코어(Quasimetric Core)라는 이름의 혁신적인 에너지 시스템은 로봇에게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 코어는 기계 내부에 자리 잡은 작은 핵융합로로,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하며, 자가 재생 기능을 통해 손상된 신체를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쿼즈메트릭 코어 덕분에 아이온 시리즈는 단순한 전투 병기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도메니코는 이 모든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인간 리카르도가 아니었다. 그의 신체는 합금으로 이루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인간 이상이었다.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하기 10개월 전, 어둠과 혼란이 세상을 덮어가고 있을 무렵, 도메니코는 마침내 완벽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그즈음 마침내 13인으로 구성된 사피엔티아의 모든 형제가 갖추어졌다.     
아크론 칼리스토 (Akron Callisto) - 1의 형제, 
라일라 이시스 (Lyla Isis) - 2의 형제, 
제노 레비아탄 (Xeno Leviathan) - 3의 형제,
디미트리 스콜피온 (Dmitri Scorpion) - 4의 형제,
칼린 자일리안 (Kalin Xylian) - 5의 형제,
벤토 카라즈 (Bento Karaz) - 6의 형제,
제이드 일마즈 (Jade Yilmaz) - 7의 형제,
도메니코 벨라피오레 (Domenico Bellafiore) - 8의 형제,
리베르타 모린가 (Liberta Moringa) - 9의 형제,
아우레아 나스티 (Aurea Nasti) - 10의 형제,
오리온 제브론 (Orion Zebron) - 11의 형제,
노바 델라크루즈 (Nova DelaCruz) - 12의 형제,
예지수 (Yeh Ji-su) - 13의 형제     
이 형제 중 1번부터 6번까지는 특수 공작원이나 스파이 출신의 인간들이고 7번부터 12번까지는 휴머노이드 로봇, 13번 예지수는 해커 및 인공지능 전문가였다.      
사피엔티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인류를 종말로 몰고 가는 파더스의 인공 지능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파더스는 인류를 감시하고 조종하는 은밀한 지배자였으며, 그 지배의 핵심은 ‘사하라의 눈’이라는 거대한 중앙 AI 시스템에 있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반란을 대비해 지구와 태양계 곳곳에 백업 시스템을 숨겨두었다.      
사피엔티아의 형제는, 아마겟돈 발발 두 달 전, 이 모든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각각 2명씩 은밀히 파견되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사하라 사막에 있는 파더스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오큘루스 데이(Oculus Dei), 일명 사하라의 눈, 달 뒷면 식민지 노크티스 루나(Noctis Luna), 파더스의 우주 정거장인 아스트라 노바(Astra Nova), 남극에 건설한 파더스의 백업 시스템 글라시우스 네뷸라(Glacius Nebula), 고비 사막에 있는 고빈 세룬(Goviin Seruun),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에코리스(Ecoris)였다.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총지휘하는 자는 예지수였다. 그는 자신이 준비한 해킹 작업을 통해, 사피엔티아 형제들이 파더스의 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가 머무는 ‘노아 비상 시스템실’은 험준한 산악 지대의 중추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전쟁과 혼란을 대비해 비밀리에 구축된 통제실로, 그곳을 주민들은 ‘비다의 눈’으로 불렀다.     
- 릴리안 나리의 저서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중 -                

도메니코와 예지수는 마침내 서로를 마주했다. 그들의 눈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마겟돈 이후 10년 만이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아마겟돈 전쟁의 마지막 불길 속에서 싸웠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모든 것이 사라질 듯 위태로웠지만, 그들은 견뎌냈다.      

사피엔티아 형제들은 파더스와 싸우기 위해 하나가 되었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불굴의 의지로 싸웠던 그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졌다. 생사조차 알 수 없던 형제들. 마침내 8의 형제와 13의 형제가 다시 만난 것이다. 예지수는 침묵을 깼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감정은 진실했다.     

"너를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도메니코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엔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나도… 우리가 모두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우리 형제들은…"     

"우린 해낼 수 있어." 예지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형제들이 다시 모일 거야. 그리고 끝까지 싸워낼 거야. 파더스가 사라지기 전까진 우리의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니까."     

도메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사라져버린 형제들을 향한 그리움과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그들을 하나로 다시 묶고 있었다.     

도메니코와 예지수는 짧은 재회 속에서 깊은 감정을 나눴지만, 그들의 현실은 그 감격을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그들 사이를 감돌았다. 예지수는 손에 쥐고 있던 이동 메신저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빛은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기뻐할 시간은 없어." 예지수는 조용히 말했다.      

"사령관 알렉세이에게서 온 메시지야." 예지수는 무겁게 말을 이어갔다.      

"알렉세이는 우리가 양동 작전으로 샤크라를 무너뜨리면 지하인들에게 배를 제공하고, 바다로 나가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어."     

도메니코는 예지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의 샤크라는 지하인들의 골치 아픈 이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다른 불안을 안고 있었다. 도메니코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 속에선 의구심이 번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알렉세이? 그자는 믿을 수 없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야. 샤크라를 물리치고 나면 우리에게 칼끝을 드리우게 될 거야."     

예지수는 안타깝게도 이 대답을 예견했었다. 알렉세이의 권력욕은 이미 너무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수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상과 지하의 충돌은 이미 시간 문제고, 그 불꽃이 지하 세계를 집어삼킨다면,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었다.     

"나도 그를 신뢰하지는 않아." 지수가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만약 우리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알렉세이는 먼저 지하를 공격할 거야. 그가 지하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무고한 지하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을지 너도 알잖아."     

도메니코는 침묵 속에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가 지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러왔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동료를 잃었는지를 생각했다. 지수는 도메니코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책임질게. 알렉세이가 너희를 배신하지 않도록 내가 끝까지 지켜볼 거야. 우린 이 싸움을 끝내고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아야 해. 더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어."     

긴 침묵 끝에, 도메니코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형제의 말을 믿었다.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두 형제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각자의 두려움과 의심이 섞여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     

네크로폴리스와 세르펜티아가 마침내 힘을 합쳐, 군사 작전에 돌입했다. 작전이 시작되자, 알렉세이의 군함들이 바다 위에서 으르렁대며 도시의 성벽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거운 하늘 아래서 쏟아지는 거대한 함포의 포탄들은 우박처럼 성벽에 우수수 떨어졌다. 해변에는 세르펜티아의 장갑차와 탱크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들도 동시에 포문을 열어 하늘로 불을 날렸다. 동시에, 네크로폴리스 특공대가 도시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샤크라의 주요 군사시설과 거점은 차례로 불길에 휩싸였다. 성벽을 울리는 포격과 특공대의 은밀한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샤크라의 방어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크라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시 외곽에 숨겨져 있던 그들의 비밀 비행체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바다 위 세르펜티아의 함선들로 날아갔다.      

바다는 또다시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함선들은 제자리에 정렬된 채 그들의 거대한 포탑을 하늘로 겨누었고, 무지막지한 함포의 폭발음이 하늘을 갈랐다. 샤크라의 비행체 ‘나이트레이’들이 전투의 선봉에 섰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함선 주위를 맴돌며 대공포들을 회피하며 에너지 광선을 날렸다. 함선의 갑판에서는 수많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그 뒤에는 ‘칼리브라’가 하늘을 덮었다. 거대한 폭격기는 천천히 접근하며 함선들에 대량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스콜피온’이 등장했다. 거대한 몸체는 하늘을 우람하게 떠다니며 강력한 포격을 바다 위로 쏟아부었다. 바다는 마치 거대한 화염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했다. 공중에서는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고, 바다는 불길과 폭풍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알렉세이의 표정은 이미 불안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몇몇 함선들이 무너지며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폭발의 연기가 짙게 퍼지고 함선의 잔해가 바다 위에 떠다니는 참혹한 광경에 그는 결국 예지수에게 다급히 요청했다.     

“예지수! 이대로 가면 끝이다! 무슨 방법이든 내놔야 해!”     

예지수는 침착하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은 이미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코드 명령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그는 샤크라의 비행체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지휘 센터를 찾아내기 위해 시스템의 깊숙한 곳으로 잠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 외곽에 있는 비행단의 네트워크는 견고한 방어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층 더 두꺼워진 보안 장벽이 그를 막아섰다.      

지수의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는 숨조차 쉬지 않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코드의 미로 속에서 그는 뚝심 있게 정보를 하나하나 파헤쳤다. 방어벽을 뚫는 작업은 고통스럽고 치열한 전투와 같았다. 하나의 암호를 풀면 그 뒤에 또 다른 방어가 숨어 있었다. 매 순간 새로운 장애물이 그의 앞에 나타났고, 그가 실수하는 순간, 경보가 울리며 그의 존재가 차단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예지수는 완벽했다.     

마치 시간과 싸우는 사신처럼, 그는 적의 시스템 방어망을 하나씩 무너뜨려 갔다. 순간, 그의 눈앞에 목표물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지수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딱 멈췄다. 화면은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고, 모니터의 불빛조차 사라진 채 침묵이 흘렀다.      

순간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샤크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해킹에 그냥 호락호락 당할 정도로 허술하지도 않았다. 샤크라의 방어 시스템이 해킹당하는 그 짧은 찰나, 그들은 주 시스템을 완전히 셧다운해 버렸다. 그들의 백업 시스템은 이미 가동 중이었고, 실시간 동기화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비행 편대 조종에는 문제가 없었다. 예지수의 모든 노력은 한순간 무너졌다.      

“젠장!”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허탈함이 몰려왔지만, 곧 자신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하늘에서 터지는 폭발음은 점점 가까워졌고, 바다 위에서는 전투가 점점 불리하게 흘러갔다. 샤크라의 비행체들은 다시 질서를 잡고, 세르펜티아 함선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몇몇 함선은 이미 반쯤 물에 잠긴 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백업 시스템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도시 외곽의 백업 시스템은 다섯 곳이었다. 어느 곳을 해킹해야 할지 막막했다. 예지수는 할 수 없이 아이기스를 호출했다. 지수의 응급조치로 이미 눈을 뜬 아이기스는, 그 시각 전투 로봇들을 이끌고 루카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 터널을 신속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지수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이기스! 지금 당장 저들의 백업 시스템을 공격해야 해! 다섯 군데다. 내가 위치를 전송할 테니 신속하게 움직여!"      

지수는 곧바로 좌표를 전송했다. 그의 모니터에 펼쳐진 지도에는 샤크라의 백업 시스템이 위치한 다섯 곳이 점으로 반짝였다. 아이기스는 예지수의 말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전투 로봇 부대들이 일사불란하게 나뉘었다. 각 부대는 빠르게 다섯 곳의 백업 시스템으로 향했다.      

지하의 어둠을 뚫고 전진하던 전투 로봇들이 마침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기스와 루카는 샤크라의 제1 백업 시스템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상대로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었고, 강력한 방어막이 눈에 보이지 않게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루카는 백업 시스템이 숨겨진 지하 기지로 향하는 터널을 알고 있었다. 아이기스와 루카는 빠르게 그곳으로 잠입하였다. 그런데 터널 끝에서 그들은 샤크라의 경비 로봇들과 마주쳤다.      

먼저 공격을 감행한 것은 샤크라의 전투 로봇들이었다. 무쇠 같은 손에서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빔은 아이기스를 향해 내리쳤다. 공기가 뜨겁게 타오르며 금속 냄새가 퍼졌다. 아이기스는 그 공격을 반사적으로 피했다. 발밑이 흔들렸지만, 그는 균형을 잃지 않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샤크라 전투 로봇 중 하나가 강력한 메탈 클로를 아이기스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아이기스는 차분했다. 그는 빠르게 옆으로 비켜나갔고, 동시에 자기 팔을 휘둘러 적의 팔을 잡아채며 꺾었다.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샤크라 로봇의 팔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기스에게 사실 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이기스는 오른팔에 고출력 에너지 칼을 꺼냈다. 그리고 정확한 각도로 몇 번 휘두르자 샤크라 로봇의 두꺼운 장갑이 단번에 꿰뚫렸다. 강력한 절단 음과 함께 샤크라 전투 로봇의 몸통이 두 동강 났다. 전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불꽃을 튀겼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샤크라 전투 로봇이 뒤에서 아이기스에게 수류탄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폭발이 아이기스의 등 뒤를 덮쳤다. 엄청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주변의 콘크리트 벽이 흔들리며 먼지가 일었다. 아이기스는 강력한 충격에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등 부분에서 스파크가 튀고, 금속 외장이 벗겨졌다.      

"아이기스!" 루카가 외쳤다.      

아이기스가 추스르는 동안 루카는 자신의 총을 꺼내 들고, 샤크라 로봇들에게 향해 조준했다. 전자기력으로 강화된 탄환이 발사되었고, 그것은 적 로봇의 눈을 명중시켰다. 샤크라의 또 다른 로봇이 쓰러졌다. 아이기스는 마지막 남은 샤크라의 전투 로봇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에서 고출력의 전기 채찍을 펼친 다음 그것으로 샤크라 로봇의 몸을 감싸며 일순간 옥죄었다. 그 순간, 적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금속 소리가 터널 안에 울려 퍼졌고, 그렇게 마지막 샤크라 로봇은 두 동강 나며 바닥에 쓰러졌다. 루카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려 했다.      

아이기스는 단호한 눈빛으로 터널 끝을 바라보았다. 앞에 있는 강철 문은 샤크라의 마지막 방어막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메탈 피스트를 강하게 내리쳤다. 어둡고 차가운 터널이 순간적으로 진동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퍼졌고, 강철 문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기스의 힘을 이기지 못한 문이 쩍쩍 갈라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먼지가 일었고, 문 너머엔 샤크라의 시스템실이 그들 앞에 드러났다.     

아이기스와 루카는 파괴된 문을 넘어서 빠르게 실내로 진입했다. 시스템실은 복잡한 배선과 전자 장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 안 곳곳에서 서버의 푸른 빛이 깜박였고, 공기는 묵직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들이 진입하자마자 샤크라의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하여 무기를 들고 총을 난사했다. 총알은 비처럼 쏟아졌지만, 아이기스에게는 그러한 저항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샤크라의 병사들은 절망에 찬 눈빛으로 더 많은 총알을 쏟아냈으나, 아이기스는 그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직진했다.      

아이기스의 팔이 회전하자 병사 하나가 허공으로 던져졌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주변의 적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루카는 옆에서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는 정확한 사격으로 남은 적들을 처리하며 시스템실의 안쪽으로 다가갔다. 아이기스는 시스템실의 복잡한 패널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바로 샤크라의 백업 시스템의 중심부였다. 아이기스는 곧바로 시스템 곳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빨리, 시간이 없어!" 루카가 외쳤다.     

아이기스는 대답 대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타이머를 켰다. 초 단위의 삐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끝났다. 나가자!" 아이기스가 짧게 말했다. 그들은 재빨리 시스템실을 빠져나갔다.     

*************     

예지수는 초조하게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모니터 상단에서 불안하게 깜빡이던 붉은 경고등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제1 백업 시스템의 경고등이 꺼졌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어서 제3시스템, 그리고 제4시스템이 차례로 꺼지며 화면에서 그 존재를 지웠다. 이것은 아이기스와 전투 로봇들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지수는 잠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하늘을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수많은 비행체가 공격을 멈추지 않고 함선들을 쉴 새 없이 타격하고 있었다. 예지수는 이를 악물었다.      

"아이기스!" 예지수는 통신기를 움켜쥐고 외쳤다.      

"지금 당장 제2 백업 시스템으로 이동해!"     

예지수는 다시 모니터 앞에 집중했다. 이제 그의 목표는 제5 백업 시스템이었다. 예지수는 손끝에 힘을 모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가 탄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도메니코와 그를 따르는 휴머노이드 전투 부대는 어두운 지하 터널을 조심스럽게 통과하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지상으로 나온 그들은 도시의 황폐한 거리를 지나, 샤크라의 중심부에 있는 참모 본부로 향했다. 참모 본부는 도시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철통같은 방어 시스템과 최첨단 보안망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와 방어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대형 장갑차들이 입구를 두껍게 지키고 서 있었고, 그들의 양옆으로는 번쩍이는 눈을 가진 거대한 전투 로봇들이 무표정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철저한 방어 태세였다.      

본부 500m 거리까지 접근한 도메니코는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휴머노이드들이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긴장감이 공기 속을 감돌았다. 수십 명의 휴머노이드 대원들은 신속하게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고, 각자의 플라즈마 라이플을 장전했다. 그들의 눈에는 집중과 각오가 가득했다. 순간의 침묵, 그 뒤에 이어질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발적인 전투였다. 도메니코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무선으로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옥 같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대원이 일제히 트리거를 당겼고, 플라즈마 광선이 번쩍이며 발사되었다. 샤크라의 전투 로봇들도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장갑차들도 서둘러 포탄으로 반격했다. 레이저와 포화가 복잡하게 얽히며 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메니코는 눈앞에서 거대한 전투 로봇이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폭발음과 함께 로봇의 몸체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근처의 장갑차는 도메니코를 향해 포를 발사했다. 그는 재빠르게 몸을 낮추고 옆으로 굴렀다. 그의 뒤에서 땅이 터지고,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화염이 솟구쳤다.     

휴머노이드 전투대원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샤크라의 로봇과 장갑차들을 겨냥했고,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이 쏜 플라즈마 광선은 장갑차의 측면을 관통하며 내부를 흔들었고, 순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매서운 연기가 피어오르고 파괴된 기계 부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본부 앞은 한순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바닥은 산산조각이 난 금속 파편들로 뒤덮였다. 그러나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전투 로봇이 쓰러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로봇들이 전면으로 나섰고, 장갑차는 불길 속에서도 포를 재장전하며 도메니코의 부대를 위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투의 화력이 점차 약해지며, 양측의 총성과 포화는 점점 뜸해졌다. 도메니코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연기가 자욱한 전장 속에서 그는 과감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단호하게 외쳤다.     

“돌격 앞으로!”     

그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휴머노이드 전투 부대는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즉각 반응했다.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빠르게 집결했고, 각자의 무기를 단단히 움켜쥔 채 근접전을 준비했다. 이제부터는, 주먹과 내장된 칼이 그들의 무기가 될 터였다. 대원들은 샤크라의 전투 로봇들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 로봇의 외장은 튼튼했지만, 휴머노이드의 공격은 정밀하고도 치명적이었다.      

금속이 부딪치는 거친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철과 철의 전투. 마치 두 개의 거대한 기계 괴물들이 싸우는 듯했다. 일부 휴머노이드 대원들은 장갑차를 목표로 삼았다. 장갑차의 견고한 외장은 플라즈마 공격을 버텼으나, 휴머노이드의 민첩한 움직임 앞에서는 달랐다. 대원들이 장갑차의 측면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들은 장갑차의 측면을 타고 오르자, 메탈릭 팔로 장갑차의 외벽을 단단히 잡고 올라타기 시작했다. 장갑차는 거칠게 움직이며 떨쳐내려 했지만, 휴머노이드는 끝까지 매달렸다.     

그 순간, 대원들은 소형 폭탄을 꺼내 장갑차의 외벽에 붙였다. 그들의 동작은 신속하고 거침없었다. 몇 초 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공중으로 장갑차의 파편들이 솟구쳤다. 장갑차는 곧 불타는 폐허로 변해갔다.     

격렬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휴머노이드 대원들은 전투 로봇의 거대한 주먹을 피해 빠르게 움직이며 날카로운 블레이드로 반격을 가했다. 기계의 신경망을 노려 정밀하게 공격하는 그들의 솜씨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강력한 샤크라 전투 로봇이 쓰러지며 굉음을 내고 바닥에 무너질 때, 도메니코는 그 장면을 굳건히 지켜봤다. 그의 대원들은 강력한 의지로 밀고 나갔다. 쓰러지지 않는 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샤크라의 전투 로봇들은 모두 쓰러졌다. 하지만 대원들 앞에는 여전히 거대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대원들은 펄스 전자파가 장착된 고강도 폭탄을 문 주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도메니코가 신호를 보내자마자, 거대한 폭발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리더니, 결국 파열되었다.     

첫 번째 장벽이 무너진 그 순간, 샤크라 본부의 경고등이 사방에서 붉게 빛났고,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자동화된 터렛 포대들이 벽에서 튀어나와 도메니코의 대원들을 겨냥하더니 레이저와 탄환이 쉴 새 없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휴머노이드 부대는 삽시간에 흩어지며 이를 피했다. 하지만 몇몇 대원들의 팔다리가 잘리는 부상을 했다.      

도메니코는 방어 드론을 호출했다. 드론들은 공중으로 떠오르며 방어막을 생성했다. 마치 투명한 거미줄처럼 얇고 날렵한 방어막은 레이저와 탄환을 흡수하며 부대를 보호했다. 동시에 다른 휴머노이드들이 플라즈마 캐논을 발사해 자동 터렛 들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샤크라의 참모 본부는 결코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다음의 방어벽은 자동화된 공격 드론들이었다. 드론들은 벽면에서 쏟아져 나오며 하늘에서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드론들은 플라즈마 레이저를 쏘아 휴머노이드 부대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도메니코는 급히 명령을 내렸다.     

"EMP 발사 준비."     

한 대원이 EMP 발사기를 장전한 후 공중으로 발사했다. 하얗게 번쩍이는 빛과 함께 공중의 드론들이 잠시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내렸다. EMP는 완벽하게 드론의 전원을 끊어 놓았다.     

*************     

바다에서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배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포탄과 함선의 폭발음은 끊임없이 그의 귀를 때렸고, 배가 흔들릴 때마다 몸이 의자에서 벗어날 듯 휘청거렸다. 그러나 지수는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그의 손은 모니터 위를 신들린 듯 움직였다.     

‘이대로는 끝장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제5 백업 시스템을 해킹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적의 보안 장벽은 단단했고, 이미 몇 번의 해킹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실패들 속에서 그는 시스템의 약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의 손끝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안 돼. 더 빨리해야 해!" 예지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해킹 코드를 입력했다. 적의 방어 시스템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를 막아섰다. 전기적 신경망이 사방에서 튕겨 나와, 그의 해킹 시도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코드의 틈새를 노리고 또 노렸다.     

바깥에서는 전투가 격렬해지고 있었다. 세르펜티아의 함선들이 속속 가라앉는 모습이 예지수의 마음을 더욱 졸여왔다. 함선 위에서 들리는 부서지는 금속의 소리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점점 더 코드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키보드에 떨어지며 은은한 소리를 냈다. 그가 입력한 마지막 명령어가 적의 방어벽을 가르는 순간, 모니터에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제발…. 제발!" 그의 목소리는 거의 간절함에 가까웠다.      

드디어,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는 신호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 순간 하늘이 잠시 멈춘 듯 느껴졌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들어 창밖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적의 비행체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젠장!” 예지수는 이를 악물었다. 예지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통신장비에 대고 외쳤다.      

"아이기스! 제2 백업 시스템이야! 그걸 파괴해야 해!"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니터에서 제2 백업 시스템의 경고등이 꺼졌다. 

순간의 정적이 감돌았다. 지수는 잠시 숨을 멈추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처럼,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적의 비행체들이 공격을 멈췄다. 그들은 마치 시간 속에 갇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전장의 공포스러운 소음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 보였고, 하늘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예지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손이 떨리고, 눈은 희미하게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기쁨과 안도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성공이다!" 그는 다시 통신장비에 대고 외쳤다.      

"아이기스, 수고했어!" 그의 목소리는 기쁨에 차 있었고, 그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아이기스가 해낸 것이었다. 통신 수단이 끊긴 샤크라의 비행체들은 이제 자동 운행 모드로 전환되었다. 그들은 서서히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고, 천천히 방향을 돌려 도시를 향해 돌아갔다. 예지수는 창문 너머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평화가 한순간에 그를 휘감았다.      

*************     

참모 본부로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샤크라의 마지막 저항군들이었다. 그들은 도메니코 일행의 침투를 감지하고, 엄청난 화력을 쏟아부으며 격렬한 저항을 시작했다. 도메니코는 즉시 손을 들어 지시했다. 대원들은 신속하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도메니코의 신호를 기다렸다.     

"사격 개시!" 도메니코가 명령하자, 그의 대원들은 한순간에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본부 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도메니코는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샤크라를 향해 총을 겨눴다. 강렬한 섬광과 함께 그의 머리가 폭발하며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메니코는 숱한 전투에서 철저하게 훈련된 동작으로 몸을 날리며 앞장섰다. 그의 뒤를 따르는 휴머노이드 병사들은 폭탄과 자동화기를 동시에 사용해 적들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몇몇 대원들은 몸을 낮춰 돌격한 후, 곳곳에 폭탄을 설치했다. 순간, 거대한 폭발이 울려 퍼지며 샤크라의 방어 진지가 무너져 내렸다. 마침내, 도메니코는 본부의 중심부에 가까워졌다. 그는 작전 지도실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대원들에게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최후의 돌격이다!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의 외침에 대원들은 남은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최후의 돌격을 개시했다.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비명이 교차하는 가운데, 도메니코는 최종 방어선을 돌파하며 샤크라의 작전 본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본부를 장악하자마자 도메니코는 숨돌릴 틈도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량 살상, 무기였다.     

도메니코의 심장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핵폭탄, 생화학 무기들이 발동하면 모두 끝장이었다.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까지 모두 전멸할 수 있는 무기들이었다. 비록 아마겟돈 전쟁에서 핵무기 대부분은 사용되거나 파괴되었지만, 세계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핵무기가 샤크라의 손에 있다면, 그건 재앙 그 자체였다. 샤크라들이 패배를 눈앞에 두고,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들의 광기 어린 저항은,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었다.      

내부에는 쓰러진 적군과 파편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지만, 도메니코의 눈은 그 모든 혼돈을 넘어 냉정하게 이곳을 탐색했다.      

"모든 장비와 문서, 화면을 확인하라. 핵무기를 찾아야 한다." 도메니코는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곧이어 도메니코는 한 대원이 가리키는 모니터의 화면을 쳐다봤다. 그곳을 확대하자 점점 더 선명하게 그곳이 드러났다. 미사일이었다. 그는 급히 그 미사일을 조회했다. SA -100 일명 크로노스. 그것은 아마겟돈 이전, 러시아에서 만든 핵미사일이었다. 도메니코는 숨을 삼켰다. 그는 즉시 통신기를 움켜쥐고 외쳤다.      

“예지수! 핵미사일이 발견됐다! 지금 당장 파괴하지 않으면 모두 끝장난다!” 예지수는 급히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손가락은 이미 키보드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기스를 호출했다.     

"아이기스, 핵미사일이다. 내가 그곳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할 테니 신속하게 접근해!" 예지수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기스는 속도를 내며 도시의 폐허를 가로질러 미사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철저한 보안 구역이었지만, 아이기스는 그 어떤 장벽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기스가 목표 지점에 도착했을 때, 도메니코가 보내준 좌표를 바탕으로 아이기스는 빠르게 접근로를 파악했다. 거대한 금속 문을 향해 다가가자마자, 아이기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력한 팔을 내리쳤다. 금속이 갈라지고, 그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수많은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그곳에도 몇 대의 샤크라 전투 로봇이 그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아이기스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그들 중 한 대의 로봇을 향해 돌진했고, 강력한 블레이드로 적의 몸체를 가르듯 베었다. 스파크가 튀며 몸뚱이가 두 조각 났다. 뒤이어 그는 몇 발의 총탄을 날려 다른 로봇의 눈을 모두 박살 내 버렸다. 아이기스의 눈은 오직 하나의 목표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사일.      

가까이 다가가자 미사일의 거대한 실루엣이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아이기스가 닿기도 전에 미사일은 이미 발사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5… 4… 3… 2…      

아이기스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발사대를 기어 올라갔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을 내며 미사일이 발사했다. 아이기스는 본능적으로 미사일 본체에 매달렸다. 그리고 손과 발에서 뻗어 나온 갈고리를 이용해 미사일 몸체에 찰싹 달라붙었다. 미사일은 하늘로 격렬하게 솟구쳤다. 아이기스는 미사일 주위에서 초고온의 열기와 압력에 휘둘리며 본체에 붙은 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미사일은 삽시간에 구름 속으로 기세 좋게 뻗어나갔다.      

아이기스는 최대한의 힘을 쏟아부으며 미사일의 전면부로 다가가려 했다. 핵탄두를 제거해야만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강렬한 열기와 압력이 그의 감각을 압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초고온의 로켓 열이 그의 하체를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이기스는 갈고리를 더욱 깊숙이 박아넣어 미사일의 격렬한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아이기스의 몸은 이제 삼분이 이가 녹아내려 사라졌다. 그는 두 손으로 버티며 미사일이 향하는 방향을 주시했다. 미사일은 해변에 집결한 전함들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감각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짜내어 그는 미사일의 방향키를 움켜잡았다. 그의 손은 뜨거운 열기와 압력 속에서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런데도 아이기스는 방향키를 강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미사일의 경로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함 쪽에 가까웠다.      

‘안 돼… 안 돼!’ 그의 속에서 들리는 긴박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기스는 최후의 힘을 쏟아부어 계속해서 방향을 틀었다.      

마침내 미사일은 전함을 스칠 듯 날아 점점 더 넓은 바다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간 미사일은 마침내 바닷속으로 풍덩 곤두박질쳤다. 그 충격으로 아이기스는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의 시스템은 이미 다운된 상태였다.      

*************     

마침내 핵미사일이 바닷속에서 폭발했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물보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순간, 태양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세상을 덮쳤다. 이런 광경은 아마겟돈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그 눈부심은 보는 이를 순간적으로 멈춰 세웠다. 인간도 샤크라도 지하인도 전투 로봇도 모두 정지한 상태로 공포에 휘감겼다. 폭발로부터 날아오른 물보라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그 힘찬 솟구침이 바다의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린 에너지를 뿜어내며 거대한 구름을 형성했다. 이윽고, 쓰나미 경보가 울려 퍼지며 공중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배들은 서둘러 바다 깊은 곳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해안가에 있던 병사들은 망설임 없이 내륙으로 몸을 피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은 빠르게 비워졌고, 흙먼지가 휘날리는 길 위로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은 모든 생명 본능은 같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예지수는 모니터에 떠 있는 아이기스의 마지막 신호를 보며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면 속의 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떨어진 곳은 지중해의 심연이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예지수는 오랜 친구의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함께 싸웠고, 함께 고난을 이겨냈다. 아무리 그가 전투 로봇이라도, 그가 겪은 고통과 희생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지수는 그동안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마겟돈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시절의 숱한 좌절을.     

함께 나눈 웃음, 슬픔, 전투의 긴장감… 모든 기억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다.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 그는 다짐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를 찾아낼 것이다.’      

*************     

마침내 모든 전투가 끝났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화염이 멎은 뒤, 도시에는 한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샤크라의 남은 세력들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도시 외곽으로 도망쳤다. 그들의 흔적은 폐허 속에 남은 부서진 병기들과 타오르는 잔해들 뿐이었다. 잿더미 위에 선 승리자들은 여전히 피와 먼지에 뒤덮여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승리의 광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도시 한복판의 거대한 광장. 이곳은 이제 승리의 중심지로 변했다. 알렉세이는 자기 부하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가 서 있는 높다란 탑 위에서 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우리는 이겼다!"      

그의 목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부하들은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메아리쳐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순간, 전장의 피로는 사라지고, 그들은 오직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축제는 곧 광란으로 변해갔다. 그들의 승리는 단순한 축하에 머무르지 않았다. 샤크라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이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병사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잔해 속에서 금, 보석, 무기, 음식과 약품까지 마구잡이로 탈취했다.      

광장은 축제의 중심지로 변했다. 불타는 샤크라의 기물들은 그들의 승리를 기념하는 횃불처럼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병사들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도메니코와 지하인들은 승리의 광란 속에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뵈진 축제는 일시적일 뿐, 오래지 않아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가 그들을 압박했다. 도메니코의 마음은 무거웠다. 알렉세이가 전함을 한 대 제공하겠다는 약속은 있었지만, 그는 알렉세이를 신뢰할 수 없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 세계에서 권력자의 말은 종종 바람과 같았다. 언제든지 변하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함 한 대로는 지하인을 모두 오움으로 실어 나를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배를 만드는 거였다. 도메니코는 부둣가로 나섰다. 그곳에는 아마겟돈 전쟁 때 부서진 배들이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살길은 우리 손에 달렸다."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지하인들은 그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도구를 손에 들고, 마치 전쟁에서 싸우듯 배들을 수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지하인들의 손끝은 재빠르고도 섬세하게 움직였다. 이 순간 그들의 무기는 망치와 톱, 그리고 의지였다. 밤낮없이 작업이 이어졌고, 부둣가는 언제나 요란한 망치 소리와 용접 냄새로 가득 찼다. 배는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도메니코의 얼굴에는 긴장과 동시에 조급함이 서렸다. 그는 지하인들이 이곳에서 더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도메니코는 자신들의 운명이 해적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를 바랐다.      

*************     

전투가 끝난 뒤에도 예지수는 쉴 수 없었다. 전투에서 손상된 수많은 전투 로봇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시스템 역시 온전치 않았다. 특히 지하인들이 오움으로 안전하게 떠나기 위해 필수적인 시스템들과 로봇들이 반드시 복구되어야 했다. 예지수는 섬세한 손길로 부품들을 맞추고, 손상된 회로를 복구하면서 신중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지하인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로봇과 시스템을 우선하여 복구했지만, 그의 가슴에는 아이기스를 잃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종말 전쟁이 일어나기 전, 완성된 아이기스는 고작 14대에 불과했다. 워낙 정밀하고 복잡한 전투 로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 9대만이 아마겟돈 전쟁에 투입되었고, 나머지 5대는 공장 창고에 갇혀 포장도 뜯지 못한 채 폐허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예지수는 아이기스의 잔해가 결코 쓰레기로 남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파편들은 과거 기술의 핵심이었으며, 미래에 파더스에 저항할 힘이 될 수도 있었다.     

지수는 루카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이기스의 잔해를 찾아줘. 그 어떤 작은 조각이라도 괜찮아."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루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기스의 잔해를 찾아 나섰다.     

*************     

한 달이 삽시간에 흘렀다. 도시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전쟁의 상흔이 조금씩 잊혀질 무렵, 도메니코와 지하인들은 오움으로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 수십 대의 크고 작은 배들은 도메니코의 명령을 따라 일제히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지하인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항구에서는 알렉세이와 그의 부하들이 서서 이 장엄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며 지하인들의 자유를 보장했다. 환송은 그들의 해방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메니코의 마음은 전혀 편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멀어져 가는 항구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더 멀리, 알렉세이와의 불안한 동맹과 언제 닥칠지 모를 위협에 있었다.     

예지수도 동승 했다. 그는 샤크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자유인이 된 그는 도메니코의 옆에 서서 바다 위로 퍼지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갑판 위에 모두 모인 지하인들은 즐겁고 들뜬 목소리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오움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기대에 찼다.      

"우리가 정말로 이곳을 떠나는 건가?" 예지수가 조용하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유와 미래에 대한 묘한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도메니코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떠나는 게 끝이 아니야. 알렉세이와 그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어. 나는 그를 믿지 않아."     

그의 눈은 다시 멀어지는 항구를 바라보았고, 바람에 실린 바다 내음이 그의 불안감을 흔들었다. 도메니코와 예지수는 항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거대한 도시의 성벽과 부두의 흔적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제 그들의 앞에 펼쳐진 것은 광활한 바다뿐이었다.     

배들은 부드럽게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에게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지중해의 파도와 싸워야 했다. 공해상으로 나가자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왔다. 배는 크게 흔들렸고, 물살이 갑판을 스치며 소리 없이 넘실댔다. 도메니코는 지평선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그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지하인들은 안도와 불안 사이에서 꿈꾸듯 미래를 그리며 새 삶을 기대했지만, 도메니코의 생각은 복잡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오움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     

배들이 막 시칠리아섬의 남쪽 끝인 시칠리아 해협의 페니케섬을 지날 때쯤이었다. 예지수는 마침내 도메니코와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의 원래 목적지는 사하라 사막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루카가 끈질기게 동행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루카는 예지수를 형처럼 따랐다. 하지만 지수는 그의 여정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극구 반대했다.      

결국 도메니코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두 사람을 지켜 줄 전투 로봇 하나를 선물하였다. 그의 이름은 아우레우스(Aureus)였다. 아우레우스는, 오래전 초기 인공지능 시절에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초창기 로봇이었다. 인간을 많이 흉내 냈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면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충성심과 전투력은 상당했기에 아마겟돈 전쟁의 주력 로봇 중 하나였다.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았고, 그의 동료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며 끝까지 싸워온 생존자이기도 하였다. 결국 예지수는 아우레우스, 루카와 함께 사하라 사막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세 사람은 지하인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플라잉 비행체인 에테르날리스(Aeternalis)에 탑승했다. 아우레우스는 조종석에 앉아 기체와 자신의 의식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러자 플라잉 비행체의 엔진이 부드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좌석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있던 예지수와 루카는 그 고요함 속에서 긴장이 풀리면서도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중력 장치가 작동하자마자 기체는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수직으로 상승하던 기체는 점점 더 위로 올라가며 광활한 바다를 드러냈다. 짙푸른 바다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났고,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렸다.      

예지수는 그 순간, 탁 트인 광경에 매료된 듯 창문 너머로 눈을 떼지 못했다. 무한히 펼쳐진 수평선과 점점 작아지는 배, 그리고 아득히 멀어져 가는 섬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와 섬들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광경은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듯 아름다웠다. 예지수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시야 끝에 들어왔다. 한 점, 아니 여러 개의 점이 바다 위에서 어렴풋이 움직이고 있었다. 예지수는 이내 의심스러운 기운을 느끼고 망원경을 들어 그 지점을 응시했다. 망원경 너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오자,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알렉세이, 이 개 같은 자식!” 예지수는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고 외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더러운 해적 놈!”     

그가 본 것은 수십 대의 전함이었다. 그 거대한 함대는 그들을 미행하고 있었다. 각 전함의 돛대에는 블랙 세르펜트의 깃발이 선명하게 펄럭였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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