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잠수함은 헤엄칠 수 있는가?" 라는 질문만큼이나 무의미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The question of whether a machine can think is no more interesting than the question of whether a submarine can swim.)
- 에츠허르 다익스트라(Edsger W. Dijkstra), “The Threats to Computing Science”에서 -
우리가 당도한 곳은, 한때 이 도시의 금융 허브, 즉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한 탐욕의 제의가 24시간 내내 광란적으로 펼쳐지던 심장부였으나, 이제는 거대한 강철과 유리의 묘비만이 회색빛 하늘을 향해 무언의 비명을 지르며 즐비한 구역의 변두리였다. 목적지인 117번지 건물은 주변의, 마치 거인들의 전투 끝에 찢겨나간 시체처럼 널브러진 초고층 빌딩 잔해들 사이에 기이할 정도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선 어떤 의지, 어떤 선언처럼 보였다.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에 순응하여 붕괴하고 먼지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홀로 시간의 격류를 거슬러 버텨낸 고대의 모놀리스(monolith) 같았고, 혹은 의도적으로 성별(聖別)되어 외부 세계의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어떤 미지의 성소(聖所)처럼 느껴졌다. 건물의 외벽은 화산암인 검은 현무암을 분자 단위로 재구성한 듯한 흡광성(吸光性) 신소재로 마감되어, 폐허의 도시 위를 배회하는 희미한 빛마저 게걸스럽게 빨아들여 거의 반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건물은 주변 풍경 속에 녹아드는 대신, 오히려 그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하며 스스로를 도려낸 듯한 검은 공백, 일종의 시각적 블랙홀처럼 존재했다. 창문들은 외부에서 내부를 전혀 엿볼 수 없는 단방향 편광 유리로 덮여 있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침묵이자, 굳게 닫힌 비밀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그 불가해한 존재의 입구, 목적지 건물 앞에 섰다. 붉은색 페인트가 대전쟁의 열기와 세월의 풍파에 군데군DE 벗겨지고 녹슨, 그러나 그 견고함만은 의심할 여지 없이 두꺼운 강화 티타늄 합금 문. 그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차원을 가르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문 위에는 푸른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깜박이며 불안정한 빛을 토해냈지만, 새겨진 글자는 마모되고 깨져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뇌졸중으로 손상된 신경계처럼, 빛은 불규칙하게 점멸하며 모르스 부호 같은, 혹은 잊혀진 고대 언어 같은 해독 불가능한 메시지를 허공에 송신하는 듯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잊혔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의 흔적 같았다. 거칠게 마감된 콘크리트 천장에는 끈적한 먼지와 뒤엉킨 거미줄이 마치 H.R. 기거의 작품에나 나올 법한 생체 역학적 구조물처럼 흉측하게 얽혀 있었고, 찢어진 채 나부끼는 정체 모를 팻말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뒤섞여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문의 손잡이에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익명의 손들이 남긴 유분과 먼지가 겹겹이 쌓여 시커먼 땟국물, 일종의 연대기적 파티나(patina)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손잡이를 차마 만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망자들의 손과 악수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헬레나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딱, 딱, 딱. 건조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폐허의 정적 속으로, 그리고 과도한 아드레날린으로 격렬하게 박동하는 나의 심장 속으로 명료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나의 불안정한 세상과 이 미지의 공간을 잇는 훌륭하고 믿음직한 교량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 없이는, 나는 이 문 앞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나의 이성이자 논리였고, 나의 연약한 의지를 현실이라는 좌표에 고정시키는 존재론적 앵커(anchor)이자, 나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도구 그 자체였다. 그녀는 나의 확장된 신체이자, 나의 외장화된 정신이었다.
잠시 후, 문이 안쪽에서 무거운 쇳소리, 마치 고대 무덤의 석관이 열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며 열리고,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 그러나 그 얼굴은 온전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조잡하고 구식인 사이보그. 누가 보더라도 대전쟁 이전, 혹은 직후의 혼란기에 제작된 초기 모델임이 분명했다. 로봇이 처음으로 인간 사회의 무대 위에 올라 인간의 장단에 맞춰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벙거지춤을 추던 시절, 즉 모리 마사히로가 제창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개념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시대의 산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헬레나를 만나기 훨씬 이전에, 궁핍했던 시절 꽤 많은 돈을 아끼고 아껴 겨우 장만했던 조잡하기 짝이 없는 중고 섹스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결코 ‘그녀’라고 부르지 않고, 늘 ‘그것’이라고 명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비현실적으로 풍만했으며, 온갖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기능으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차가운 금속과 플라스틱,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영혼 없는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자정이 넘으면 자동으로 자신의 옷과 주인의 옷을 벗기는 황당한 기능이 있었는데, 나는 왜 인간 설계자들이 자정만 넘으면 그토록 짝짓기에 집착하도록 프로그램을 설정했는지 늘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프로이트적 리비도(Libido)의 기계적 구현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자본주의적 상품성의 극대화였을까. 눈앞의 사이보그는 바로 그 시절의 기술 수준, 어딘가 불완전하고 어색한 움직임과 표정을 연상시켰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낡은 유물처럼, 인간의 욕망과 기술의 미숙함이 결합된 괴물, 일종의 프랑켄슈타인적 창조물 같았다.
“게리네빌 돈디 박사님을 뵙고 싶습니다. 사전에 약속된 방문자입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가 긴장으로 살짝 잠겨 있었다. 진실의 문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
“그렇다면, 당신이 아무런 식별 코드나 이름 없이 통신 채널을 통해 메신저를 보낸 그 ‘이름 없는 자(The Nameless One)’인가요?”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운 전자음, 마치 초기 보코더(vocoder)로 합성한 듯한 소리로 울렸다. 입술의 움직임과 합성된 소리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립싱크 불일치가 눈에 띄었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의 더빙처럼,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기계적인 심문자, 혹은 저승의 강을 건너기 전 망자를 심문하는 카론(Charon) 같았다.
“맞습니다. 박사님은 안에 계시는지요?”
그녀의 조잡하게 만들어진 인공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렸다. 마치 예상치 못한 입력값에 잠시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긴 한 걸까? 다익스트라의 말처럼, 그녀의 사고 가능성을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가? 저 떨림은 단순한 전기적 노이즈인가, 아니면… 설계되지 않은 어떤 인공적인 감정의 발로, 즉 퀄리아(Qualia)의 희미한 흔적인가? 혹은… 그녀도 박사처럼…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 그녀의 존재는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엇인가?’
“보안 규정상, 완전한 유기체 인간(Fully Organic Human)만 내부 출입이 허가됩니다. 동반자는 외부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경고음처럼 날카롭게 한 톤 올라갔다. 그녀는 헬레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 시선에는 경멸이나 적대감보다는, 마치 무해하지만 예기치 못한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외래 물체, 즉 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대하는 듯한 냉정한 평가가 담겨 있었다. 기계는 기계를 경계했다. 구식 모델은 최신 모델의 완벽함과 효율성을 질투하는가. 혹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가.
헬레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 한쪽에 조용히 섰다. 마치 잘 훈련된 경호 로봇처럼, 혹은 충직한 시종처럼. 그녀의 차가운 인공 피부에서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규정에 따랐다. 나는 낡은 부츠를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차가운 금속 바닥의 냉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양 무릎까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벽에는 축 늘어진 정체 모를 기계 부품들과 섬유 다발 같은 장식품들이 음울하게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퉁명스럽고, 방문자를 경계하며 적대하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이곳은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녀의 어색하고 불규칙한 보폭에 맞추려 애썼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고장 난 기계 인형, 혹은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이 만든 오토마타(automata) 같았다. 삐걱거리고, 미세하게 떨리며, 예측 불가능했다. 인간의 걸음걸이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 불쾌한 골짜기를 걷는 듯한 감각.
오직 하나의 바람. 돈디 박사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내 이야기가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혼탁해진 시간 속 이정표에 대한 개인적인 푸념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와 희미한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뚜렷한 목적 없이, 대부분은 형편없고 무의미하며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일들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왔다. 물론, 살아남은 인류 대부분이 나사 풀린 기계처럼 과거의 상실감과 미래의 불안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혼란의 시기였음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기록은 너무나 공허하고 부끄러웠다. 그 애절하고 비루하며 때로는 추했던 인생사 속에서, 이제라도 온전히 나만의 것,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잃어버린 ‘진실’에 대한 추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진실의 이면에 교묘하게 숨겨진 거대한 ‘거짓’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때로는 직관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부동의 고요함을 지닌 어떤 절대적인 존재, 혹은 가치, 즉 아르키메데스의 점(Punctum Archimedis)과 같은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나의 존재를 정립하기 위한 여정.
나는 그 실마리를, 어쩌면 해답 그 자체를, 게리네빌 돈디 박사에게서 얻어야만 했다.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형편없이 왜곡되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채 소문으로 떠돌다 안개처럼 사라져갔지만, 나는 이 폐허 속에서도 끝끝내 진실의 작은 조각 하나라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한 집념에 가까운 믿음이, 수많은 위험과 고난을 헤치고 마침내 나를 이곳, 전설적인 과학자의 은신처까지 이끌었다. 마치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채 절벽을 오르는 사람처럼.
두 개, 세 개, 그리고 네 개의 두꺼운 강철 문이 차례로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혔다. 마치 잠수함의 해치가 닫히듯,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점점 더 완전해졌다. 복도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밝아졌지만,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차가웠으며, 소독약과 오래된 금속, 그리고 오존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깊은 무덤 속으로, 혹은 인공적인 지옥의 여러 겹의 문을 통과해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를 따라가는 동안, 내 숨소리는 긴장감 때문에 점점 가빠졌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나는 진실의 심연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이름 없는 손님. 반복되는 보안 검색과 절차가 불편하시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조치입니다…” 여자가 여전히 기계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과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프로그램된 응대 매뉴얼을 읽는 듯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익숙합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불신과 경계 속에서.” 나는 애써 담담하게, 약간은 체념한 듯 대답했다. 이 세상의 기본값은 불신이니까.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였다. 홉스의 세계.
“물론, 그렇습니다.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박사님께서는 최근 30년간의 극저온 냉동 수면(Cryogenic Hibernation)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소위 ‘아마겟돈’이라 불리는 대전쟁 직후, 급속 냉동을 선택하셨고, 아광속(Sub-light speed) 우주선에 탑재되어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성계의 광파 센터 ‘우리(URI - Universal Repository Initiative)’에 안전하게 안치되어 계셨습니다. 그곳은 인류의 마지막 지식과 문명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인류의 오만함이 만든 최후의 보루.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의 우주적 확장판이었죠.”
“아마겟돈 직후라고 하셨나요?” 나는 그녀가 사용한 종교적인 용어에 잠시 놀라 되물었다. 비록 세상이 멸망했어도, 신앙은 여전히 인간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깊이 박혀 있었다. 혹은 AI의 데이터베이스에. 밈(Meme)처럼 전파되는 개념.
“아, 네. 죄송합니다. 제 초기 설정 데이터에 기독교적 배경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서… 용어가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졌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표정 변화 없이 설명했다. 마치 프로그램 오류를 보고하듯.
“네, 물론 이해합니다. 그 혼란 속에서 용어의 통일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개의치 않습니다. 그럼, 박사님께서 깨어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지구 시간 기준으로 4주 2일 17시간 4분 전입니다. 그래서 아직 체내에 미량(현재 측정치 0.16 퍼센트)의 냉동 보존제(Cryoprotectant) 잔류로 인한 독성 현훈(Toxic Vertigo) 상태를 간헐적으로 겪고 계십니다.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 모두 완전한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신경 재활성화(Neuro-recalibration), 인지 기능 복원(Cognitive Restoration), 신체 재조정(Physical Re-calibration) 등 다양한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계십니다.” 그녀는 의료 보고서를 낭독하듯 말했다.
“그럼, 제가 대화 중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라도 있습니까? 박사님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의 정신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니까요.”
“아니요, 특별히 주의하실 점은 없습니다. 저희가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다만, 박사님의 기억 연속성, 인지적 명료성, 정보 처리 완성도, 진실성 판단 능력, 언어적 이해도 등 모든 고등 인지 기능이 아직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만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마치 오래되고 손상된 아날로그 필름처럼, 혹은 깨진 거울의 조각들처럼, 기억의 파편들이 희미하거나, 뒤섞여 있거나, 심지어 왜곡되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현재 현실과 과거의 기억, 그리고 상상 속의 경계가 흐릿한 상태입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뒤엉켜 있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AI는 오류 가능성을 보고했다.
“회복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가능한 모든 최첨단 기술과 고대 지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의지가 강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실례가 아니라면 여쭙고 싶습니다.”
“인간의 극저온 해동 후 회복 프로세스는 이미 100년 전에도 기본적인 의료적, 기술적 틀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그 정밀성과 안정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고 개선되었지요. 저희는 그중 임상적으로 가장 효과가 입증된 방법들을 선별하여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경우는 예외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뇌는 일반적인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대전쟁 이전부터 엄청난 양의 정보와 사고를 처리해왔기 때문에 표준적인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주된 방법은 무엇인가요? 박사님의 정신적 회복에 가장 중점을 두는 방법 말입니다.”
“독서입니다. 인간이 창조한 순수 텍스트를 읽는 것입니다. 고전 문학을요.”
“독서라고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이 첨단 기술의 시대에, 그것도 최첨단 과학자의 회복 요법이 독서라니.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했다. 기술이 도달한 끝에서 다시 인간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역설.
“네. 독서입니다. 그것도 인공지능이 생성하거나 편집한 텍스트가 아닌, 오직 인간이 직접 쓰고 창작한 고전 문학 작품들만 해당합니다. 종이책 형태는 거의 소실되었기에, 고해상도 스캔본이나 디지털 복원 텍스트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신경망은 인간이 직접 짜낸 언어의 복잡성과 비선형성, 그 모호함과 다의성을 통해 재조정되고 있습니다. 논리가 아닌… 감성과 사유를 통해. 로고스(Logos)가 아닌 뮈토스(Mythos)를 통해.”
“맙소사! 순수 인간의 글을 읽으신다고요? 그것들은 이제 희귀 유물이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대부분 박물관 기록 보관소 서버에나 처박혀 있을 테고, 대전쟁과 그 이후의 혼란 통에 소실되거나 데이터가 유실된 것도 부지기수일 텐데 말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사님의 거의 유일한 취미이자 집착이 인공지능 시대 이전에 창작된 순수 인간 예술 작품들에 대한 광적인 수집이었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과거 인류가 스스로 ‘위대한 유산’이라 칭했던 거의 모든 주요 문학 작품을 개인 서버에 디지털 형태로 완벽하게 백업하여 보존하고 계셨습니다. 음악과 미술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방대한 아카이브는 대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혹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기적처럼.”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요?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박사님께서 30년의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신 후 처음으로 의식을 되찾고 접하신 책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라만차의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였습니다. 돈키호테의 광기와 이상주의가 박사님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 어떤 울림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시도. 그리고 지금은 247번째 작품으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1권을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기억의 미로를 탐색하는 여정이죠. 과거를 재구성하려는 노력.”
“맙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니! 그 방대하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작품을! 그 책은 제가 알기로 초창기 멀티모달 AI였던 제미나이 울트라(Gemini Ultra)가 무려 4만 군데 이상의 논리적 오류, 서사적 불일치, 그리고 시대적 배경 고증 오류를 지적했던 바로 그 소설 아닙니까?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을 탐구한 작품이라지만, AI의 관점에서는 비효율과 오류투성이였죠. 인간 지성의 불합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처럼 거론되었던 책입니다.”
“제미나이 울트라…?”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처음 들어보는 고대 유물의 이름처럼. 그 이름은 그녀의 업데이트된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너무 오래전에 사라진, 혹은 중요하지 않아 폐기된 존재.
“아! 아마 들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오래전에 폐기된, 최초의 상업용 멀티모달 AI 집합체로 알려진 구형 인공지능입니다. 당시에는 스스로 정교한 추론 능력을 가졌다고 선전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미성숙하고 편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했던 개체였죠. 만약 당신 시스템에 그 시절의 AI 알고리즘을 적용했다면, 아마 지금 당장 뒤로 돌아 가장 가까운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때로는 얼토당토않고 위험한 결론을 내리곤 했으니까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술의 광기와 어리석음을 동시에 떠올리며. AI의 진화는 인간의 진화와 닮아 있었다. 오류를 통해 배우는가.
“흥미롭군요. 그런 원시적인 시대가 있었다니.” 여자의 인공적인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희미한 감정의 파문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것은 비웃음, 혹은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기계적인 반응이었을 수도.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 기계는 인간을 어떻게 판단할까.
“재미있죠. 그런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시대를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짧고 고단한 생을 견뎌내며 살았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왜 사는지,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질문들은 잠시 접어둔 채로, 그저 생존하고 번식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것이…” 나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들의 노력이 지금의 우리를 낳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저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박사님의 독서 취향은 아주 엄격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편협해 보일 정도입니다. 오직 ‘인간’의 손으로 쓰인 글만을 고집하시죠.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해체적이고 실험적인 소설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셨습니다. 제가 접근 가능한 정보는 그 정도입니다. 박사님께서 가끔 구사하시는 모호하고 시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그분을 사로잡는 것은 일종의 ‘문학적 공복감’, ‘영혼의 깊은 허기’, ‘텅 빈 가슴을 채우는 공허한 심장 박동 소리’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질도록 귀중하고, 섬뜩할 정도로 이상하며, 그 자체로 혼란과 모순을 야기하는 작품들을 통해,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나 논리적 분석이 아닌, 섬광과 같이 번뜩이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통찰에 도달하기를 갈망하시는 듯합니다. 즉, 그분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떤 근원적인 결핍이 채워질 때까지, 어찌 보면 기이하고 혼란스러우며 비합리적인 정보들을 끊임없이 탐닉하고 소화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적이었지만, 그 내용은 인간 정신의 깊은 곳을 탐색하는 듯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 마치 AI가 인간을 이해하려 애쓰는 보고서처럼.
“어찌 보면…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하는군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독서를 통한 정신의 재활이라니. 파괴된 세상에서 지성이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역설적인 시도 같았다. 인간의 비합리성이야말로 인간성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름 없는 손님?”
“혼란과 무지, 앎과 죽음의 비밀,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의 본질, 예측 불가능하게 소용돌이치는 생명력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박사님은 어쩌면 문자 그대로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오신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보이는 것과 기록된 것,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과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 예측 불가능한 즉흥적인 감정과 다변적인 마음의 상태…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독서라는 매우 인간적인 행위를 통해 과거의 단절된 경험들과 기이하게 연결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뿌리를 내리며 미래를 향한 가느다란 가지를 뻗어 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그 어떤 단서도, 그 어떤 자극도 간과할 수 없을 겁니다. 어느 한 조각의 희미한 기억, 어느 한 줄의 강렬한 문장도 소홀히 다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겠죠. 마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처럼, 희미하지만 생명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네. 박사님께서도 의식이 명료하실 때 비슷한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물론, 차를 마시거나 가벼운 영양식을 섭취하시는 중에 농담처럼, 혹은 혼잣말처럼 던지신 말씀들이었지만, 저는 주의 깊게 듣고 모든 데이터를 기록 및 분석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유기체 지성,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과 끊임없이 펼쳐지는 사건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물망 속에서, 아주 지엽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행위들 – 차 마시기, 책 읽기, 음악 듣기, 심지어 창밖 응시하기 등 – 을 통해 자신을 통합하고 해석하며 궁극적인 의미와 자아라는 관념을 구축해 나가는 독특한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분과 나눈 지극히 개인적인 상호작용 시간에 국한된 저의 제한적인 해석일 뿐입니다만… 제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변수를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입니다.”
“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제 외적으로 드러난 육체의 눈으로는 이 폐허 세상의 빛나는 광채(비록 그것이 파괴의 잔광일지라도)와 두드러진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만, 제 내면의 세상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깊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감정들은 가슴 속에서 조용히 소담스럽게 피어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동시에 나의 행동과 생각을 제약하는 세상의 온갖 속삭임들과 규정들에 반항적으로 저항하기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 복잡하고 모순적인 심리를 단순히 ‘인간의 반항심’ 혹은 ‘청개구리 심보’라고 편리하게 치부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인간의 심리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해체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내 안의 혼란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본능.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그러한 복잡성과 모순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요. 그것이 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모순조차 저에게는 흥미로운 데이터이자 연구 대상입니다. 오류는 때로는 새로운 통찰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여자는 여전히 담담하게, 하지만 어딘가 미묘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AI 특유의 냉철함이 돋보였다.
“인간에게서 비롯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기계로서의 당신에게 드리는 조언입니다. ‘이해’와 ‘동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헛되고 공허한 자긍심, 예를 들어 20세기 후반 인간들이 그토록 병적으로 집착했던 피상적인 가치들… 라캉이 말한 ‘상상계’의 허상, 즉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평가받는지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에 당신의 논리 회로마저 사로잡힐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인간은 결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피로 얼룩진 역사 자체가 그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닙니까.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존재입니다.” 나는 경고하듯 말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은 AI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이름을 갖지 않으셨군요. 그 어떤 규정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위해서. 미스터 ‘이름 없음(Mr. No Name)’이시여. 당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저항 방식이군요.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여자가 처음으로 나에게 직접적인 호칭을 사용했다.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어떤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마치 내 가면 아래의 진실을 꿰뚫어 보려는 듯.
“하하하. 재미있는 지적이군요. 날카로우십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름을 갖지 않음으로써 존재의 무게에서 벗어나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다는 안도감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마저도 그다지 효과적인 자기기만은 아닙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그 비밀스러운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쾌한 위화감은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타인들이 멋대로 규정하고 재단하는 세상의 틀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나일 뿐입니다. 이름표 없는 객체로서. 판단받기를 거부하며.”
“그들의 시선 위에 놓인 하나의 객체, 혹은 분석 대상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군요?”
“정확합니다. 내가 벌거벗은 채 엉뚱하고 부조리한 무대 위에 세워졌다는 불쾌하고 모욕적인 기분은, 전적으로 무대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 속에 숨겨진 주관적인 해석과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의견에 좌우될 뿐이니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외부의 평가에 무감각하고, 때로는 뻔뻔하며, 그 어떤 사회적 형식과 격식, 차림새와 외형적 형태, 표정과 행위의 결과에도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자 합니다. 그것이 이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적어도 미치지 않은 척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지도요.”
“제가 보기에, 박사님께서는 당신을 환영하실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신과의 대화를 기대하실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박사님께서 잃어버린 ‘인간성’의 조각들을 다시 찾아 맞춰가는 과정에서, 당신처럼 다소 허황되고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정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결을 따라 자유롭게 펼쳐지는 비정형적인 인간 존재의 다양성이 꽤나 흥미롭고 신선한 지적, 감성적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필요한 퍼즐 조각일지도 모릅니다. 비논리적인… 하지만 필수적인.” 그녀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AI 특유의 냉철함이 돋보였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만, 저의 오늘 방문 목적은 단순한 지적 유희나 대화 상대가 되는 것에 있지 않음을 미리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 목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잠시 후에 박사님께 직접 드릴 예정입니다.” 나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개인적인 안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인간의 일이란… 저희 같은 기계의 예측 알고리즘을 벗어나는 불확실성과 비합리적인 변수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 불확실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 이름은 헬레나입니다. 박사님께서 그렇게 부르십니다.” 여자는 의미심장한, 어쩌면 약간은 체념적인 듯한 말을 남기고 마지막 육중한 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희미하고 부드러운 빛이 새어 나왔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초대. 혹은 심연으로의 안내.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였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에 예술 작품이 잃어버린다고 한탄했던 바로 그 '헬레나'. 그녀는 기술 복제의 산물이지만, 역설적으로 시간의 더께와 불완전함 속에서 어떤 기묘한 원본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사라진 시대의 헬레나를 품고 있는 기계의 유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