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고스티넬리의 육신이 지중해의 푸른 무덤 속으로 사라졌을 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혼에서 일어난 연금술은 단순한 슬픔의 승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혼돈의 원재료를 상실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통제권을 획득한 창조주의 차가운 희열이었고 현실의 필멸자를 제물로 바쳐 문학 제단 위에 불멸의 신성을 조각하려는 피그말리온적 광기의 최종 단계였다. 그의 코르크 방은 한 인간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여 허구의 인물에게 수혈하는 잔인한 실험실이 되었다. 그는 ‘알베르틴’이라는 이름의 골렘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알프레드의 웃음과 거짓말을 프루스트 자신의 질투와 집착이라는 피로 반죽하여 그는 가장 매혹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의 화신을 빚어내고 있었다.
이 섬뜩하고 숭고한 창조 작업에 몰두하던 그에게 외부 세계의 굉음은 처음에는 성가신 소음처럼 들렸다.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 그것은 먼 발칸 반도의 비극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총성은 19세기 유럽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이 붕괴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 러시아의 총동원령 독일의 선전포고. 마침내 8월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벨 에포크 시대의 마지막 무도회는 끝났고 유럽은 ‘대전쟁’이라 불릴 살육의 축제 속으로 돌진했다. 마르셀이 그의 소설 속에서 그토록 집요하게 해부하려 했던 사교계 인물들이 이제 조국의 명예라는 숭고한 명분 아래 전선으로 향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베르트랑 드 페늘롱의 편지는 이제 더 이상 문학과 예술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진흙과 피와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인 참호 속 생지옥을 증언하는 기록이 되어 날아왔다. 마르셀은 그 편지들을 읽으며 지독한 무력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그의 세대는 역사라는 용광로 속에서 운명을 시험받는데 그는 이 코르크 방이라는 안전한 자궁 속에 숨어 잃어버린 과거의 그림자들과 씨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병약함은 이제 역사라는 심판대 앞에서 그를 ‘부적격자’로 낙인찍는 수치스러운 징표가 되었다.
전쟁은 파리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남자들이 사라진 거리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넘쳐났고 밤이 되면 등화관제로 도시는 중세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는 사람들의 신경을 찢어놓았다. 모든 가치가 전쟁이라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척도 아래 재편성되는 이 거대한 혼돈 속에서 그의 예술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자기 회의의 심연 속에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과업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발견했다. 바로 이 야만적인 파괴의 시대이기에 더욱더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 섬세하고 덧없는 문명의 가치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신성한 의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글쓰기는 이제 개인적인 구원을 넘어선 하나의 문명사적 저항이 되었다. 그는 포탄이 건물을 파괴하듯 시간이 인간의 기억을 파괴하는 엔트로피에 맞서 언어라는 방주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 방주 안에 그는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모든 영혼의 조각들을 담아 다가올 미지의 세대로 실어 날라야만 했다.
그의 삶은 이제 문자 그대로 ‘죽음과의 경주’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유럽 문명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죽음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병든 육체를 시시각각 좀먹어 들어오는 개인적인 죽음이 그를 협공했다. 그는 밤과 낮의 구분을 완전히 포기했다. 세상이 잠든 깊은 밤 약물의 힘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며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썼다. 그의 침대는 더 이상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그의 육신이라는 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관의 야전 침대였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그 자체로 전쟁과도 같았다. 그는 먼저 떠오르는 생각의 용암을 원고지 위에 쏟아낸 다음 수십 번이고 문장을 고치고 단어를 바꾸고 문단을 재배치했다. 그의 원고는 수많은 수정과 첨삭의 흔적이 뒤덮인 전장의 지도 같았다. 그는 원고지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를 채워 넣었고 여백이 부족해지면 종잇조각을 아교로 이어 붙였다. 이 ‘파페롤’이라 불리는 종이 날개들은 마치 그의 생각이 증식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산호초처럼 보였다.
이 광적인 작업은 그의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갔다. 그의 유일한 연료는 진한 커피와 각성제 아드레날린 주사뿐이었다. 그의 육체는 서서히 정신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만을 남긴 채 말라갔다. 그의 피부는 양피지처럼 창백해졌고 눈은 두개골 안으로 깊숙이 함몰되어 비정상적인 열기로 불타올랐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예술을 위한 마지막이자 가장 비극적인 제물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1913년 그는 대작의 첫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를 탈고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문예지였던 ‘누벨 르뷔 프랑세즈’에 원고를 보냈다. 앙드레 지드와 같은 젊고 진보적인 문인들이 그의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냉혹한 거절 통보였다. 지드를 포함한 편집위원회는 그의 원고를 ‘이해할 수 없고 산만하며 출판할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고 판결했다. 이 거절은 그에게 총탄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절망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그는 마지막 오기를 발견했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책이 나왔을 때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고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문학이 아닌 생존으로 옮겨갔다. 그의 책은 서점 구석에서 먼지만 쌓인 채 잊혀 가는 듯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불안한 평화가 찾아왔을 때에도 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코르크 방에 갇힌 채 죽음과 경주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1919년의 어느 날 기적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그의 두 번째 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심사 과정에서 레옹 도데와 같은 소수의 심사위원들이 그의 작품이 지닌 혁명적인 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프루스트의 소설이 시간과 기억 인간 의식의 본질 자체를 탐구하는 전례 없는 문학적 실험임을 간파했다. 격렬한 논쟁 끝에 마침내 마르셀 프루스트가 공쿠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을 뿐이다. 그는 승리했다. 죽음과의 경주에서 그리고 세상의 몰이해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갈망했던 문학적 영광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이 승리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그의 육체라는 전장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공쿠르상은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대성당을 완공해야 한다는 절박하고 숭고한 사명감을 다시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진정한 경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의 앞에는 아직도 광활하고 험준한 영토가 펼쳐져 있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채권자가 그의 영혼을 압류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만 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다시 펜을 들었다. 그의 마지막 경주는 이제 막 가장 치열한 구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