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시간

by 남킹

공쿠르상이라는 세속의 월계관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쇠락해가는 육신 위에서 그의 유한성을 더욱 잔인하게 각인시키는 역설적인 징표가 되었다. 세상의 인정이라는 소음은 그의 코르크 방의 견고한 침묵마저 뚫고 들어와 내면세계의 고요한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는 잠시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그 기쁨은 짧고 기만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대화 상대가 미래의 독자들이며 유일한 구원은 이 작품의 완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삶의 마지막 3년은 시간이라는 가장 무자비한 채권자와 벌이는 최후의 처절한 협상이었다. 그의 육체는 더 이상 그의 의지가 거주하는 온전한 성전이 아니었다. 붕괴 직전의 영토처럼 여기저기서 통제 불가능한 반란의 징후들이 터져 나왔다. 폐는 눅눅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지하 감옥처럼 변해 있었다. 기관지염과 폐렴이 그의 생명의 마지막 보루를 위협했다. 숨을 쉴 때마다 흉곽 안에서 녹슨 기계의 톱니바퀴가 마찰하는 듯한 고통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화 기관은 모든 기능을 포기했다. 음식은 영양이 아니라 고통을 유발하는 이물질에 불과했다. 그의 유일한 식량은 차가운 카페오레와 아이스크림 몇 숟갈뿐이었다. 그의 몸은 스스로의 근육과 지방을 태워 정신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끔찍한 자기 잠식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의 눈은 두개골의 텅 빈 안와 속에서 마지막 생명의 불꽃처럼 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육체적인 붕괴와 정확히 반비례하여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명징하게 깨어 있었다. 죽음이 육체의 문턱까지 다가왔을 때 그는 오히려 삶의 본질을 가장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특권적인 시점을 획득한 듯했다. 그의 과업은 이미 발굴된 수만 페이지의 원고 파편들을 하나의 완벽하고 통일된 건축물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서로 맞물리며 거대한 원형의 구조를 이루는 하나의 유기적인 대성당이 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직소 퍼즐을 맞추듯 수천 개의 ‘파페롤’을 펼쳐놓고 각각의 조각이 들어가야 할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비밀스러운 주제의 네트워크가 가장 완벽한 대위법적 조화를 이루도록 전체 악보를 재편곡했다. 이 작업은 혼돈에 최종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신적인 행위였다. 그의 삶의 모든 경험이 결국 이 거대한 문학적 설계도 안에서 자신의 필연적인 자리를 찾게 됨을 발견했다. 그의 고통은 이 대성당을 떠받치는 가장 견고한 주춧돌이 되었고 그의 사랑은 성당의 벽을 장식하는 가장 화려하고 비극적인 프레스코화가 되었다.

1922년 10월 그의 폐부에 주둔하던 마지막 적이 총공세를 시작했다. 폐렴이었다. 의사는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하는 그에게 경고했지만 프루스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남은 모든 에너지를 마지막 원고 교정에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의 침실은 임종을 앞둔 병실이자 가장 치열한 문학적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이 되었다. 그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갇힌 여자』의 교정쇄를 한 단어 한 단어 확인했다.

그의 마지막 며칠은 현실과 환각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하나의 거대한 프루스트적인 문장이 되었다. 그는 때때로 셀레스트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입맞춤을 청했다. 알프레드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었고 샤를뤼스 남작의 오만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가 창조한 모든 인물들이 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침대 주위로 모여드는 듯했다. 그들은 더 이상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였다.

11월 18일 새벽 그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졌다. 생명이라는 기계가 마침내 작동을 멈추기 전의 마지막 헐떡임이었다. 그의 가슴이 몇 차례 격렬하게 솟아올랐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의 눈은 크게 뜨여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었다.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 그의 육체적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작품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의 마지막 권 『되찾은 시간』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이 된 화자는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그곳에서 세월의 무자비한 힘에 의해 흉하게 늙어버린 과거의 지인들을 만나며 절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가 서재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발이 안뜰의 들쭉날쭉한 포석에 걸려 비틀거린다. 바로 그 순간 마들렌의 기적이 다시 한번 일어난다. 그 불균등한 감각은 오래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느꼈던 똑같은 감각을 일깨우고 베네치아의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그의 현재 속으로 되살아난다. 이어서 냅킨 소리 찻숟가락 소리 같은 사소한 감각들이 연쇄적으로 과거의 다른 순간들을 그의 내부에서 부활시킨다.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우리 외부가 아닌 내부의 비의지적인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며 우연한 감각적 계시를 통해 언제든 현재 속에서 ‘되찾아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되찾아진 시간이야말로 시간의 파괴적인 힘을 넘어서는 유일한 영원이며 이 영원을 언어라는 형태로 포착하여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주어진 유일한 의미이자 구원이라는 것을. 화자는 마침내 결심한다. 이 모든 것을 책으로 써야만 한다고. 그의 삶의 모든 고통과 사랑 환멸이 결국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책의 마지막 단어는 ‘시간(Temps)’이다. 그의 책의 첫 문장은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로 시작된다. 그의 작품은 완벽한 원을 그리며 닫힌다.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인 뱀 우로보로스처럼. 그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서의 영원한 삶의 시작이었다.

코르크 방의 침묵 속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육체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제 막 자신의 작품이라는 거대한 대성당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시간은 더 이상 그를 파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되찾은 시간 속에서 살게 될 것이었다. 그의 위대한 경주는 끝났고 그는 마침내 승리했다.

<끝>

12.jpg
110.jpg


keyword
이전 09화죽음과의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