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의 귀향

by 남킹


1651년 여름, 보헤미아의 재건된 마을

평화는 들판의 밀처럼 더디게 자라났다. 야쿠프의 마을은 지난 3년간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이루었다. 검게 탔던 밭에서는 다시 푸른 싹이 돋아났고, 무너졌던 집터 위에는 투박하지만 견고한 새집들이 들어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골목길에 울려 퍼졌고, 저녁이면 마을 광장의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전쟁의 끔찍한 기억은 아직 생생했지만, 사람들은 그 기억을 딛고 서서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쿠프는 이제 마을의 존경받는 연장자였다. 그는 글을 알고 장부를 관리할 줄 알았기에, 마을의 대소사를 기록하고 공동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그의 더 중요한 역할은 ‘기억하는 자’였다. 그는 밤이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과 장군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굶주림 속에서 빵 한 조각을 나누었던 이웃의 이야기, 역병 속에서 서로를 간호했던 여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씨앗을 심었던 농부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의 고귀함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아들 루카스는 이제 열일곱 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숲에서 사냥을 하거나 밭에서 땀 흘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전쟁의 아이였지만, 그의 눈에는 아버지가 겪었던 깊은 슬픔 대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세대의 건강한 활기가 넘쳤다. 그는 마을의 젊은이들을 이끌며 무너진 다리를 보수하고, 숲을 개간하여 새로운 경작지를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의 지혜와 자신의 행동력을 결합하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평화가 영원할 것만 같던 어느 맑은 여름날, 그 평화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돌멩이가 던져졌다.

마을 어귀에서 망을 보던 젊은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낯선 자들입니다! 무기를 든… 군인들 같습니다!”

마을은 순식간에 긴장에 휩싸였다. 남자들은 낫과 쇠스랑을 움켜쥐었고,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몸을 숨겼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공포는 사람들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야쿠프는 루카스와 함께 마을 입구로 향했다. 그의 심장은 불안하게 뛰었지만, 그는 이제 마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군대가 아니었다. 스무 명 남짓한, 누더기 군복을 걸친 남자들의 무리였다. 그들의 행색은 비참했지만, 허리에는 녹슨 칼이 채워져 있었고, 어깨에는 낡은 머스킷이 걸려 있었다. 그들의 눈은 굶주린 늑대처럼 번뜩였고, 얼굴에는 전장과 도피 생활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세상에 버려진 유령들이었다. ‘귀향한 자들’이라 불렸지만, 실상은 돌아갈 집도, 가족도, 삶의 방식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애꾸눈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군복은 한때 스웨덴 군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국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해져 있었다.

“우리는 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오.” 남자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저 빵과 잠자리를 구하고 있을 뿐이오. 우리는 황제 폐하와 스웨덴 여왕의 이름으로, 독일의 평화를 위해 싸운 용사들이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그의 말은 정중했지만, 그의 눈빛은 위협적이었다. 그의 손은 칼자루 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루카스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야쿠프가 그의 팔을 잡았다. 야쿠프는 저들의 눈에서, 지난 30년간 수없이 보아왔던 익숙한 감정을 읽었다. 저들은 용사도, 귀향객도 아니었다. 저들은 오직 생존만이 유일한 법이었던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의 규칙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야쿠프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리 마을은 아직 가난하여 많은 것을 대접할 형편이 못 됩니다. 가진 것을 조금 나누어 드릴 테니, 그것을 받으시고 부디 길을 떠나주십시오.”

애꾸눈 남자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나누어 준다고? 우리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피를 흘리는 동안, 당신들 같은 농부들은 땅굴에 숨어 목숨을 부지했지. 이제 와서 우리에게 동냥을 하겠다는 건가? 아니.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마을의 모든 것은, 우리가 흘린 피의 대가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의 부하들이 히죽거리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마을 남자들은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저들은 수십 년간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자들이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마을은 다시 한번 피로 물들 터였다.

바로 그 순간, 루카스가 야쿠프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낫이나 쇠스랑이 아니라, 사냥용 활이 들려 있었다. 그는 애꾸눈 남자의 발 앞 흙바닥에 정확히 화살을 박아 넣었다.

쉭!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애꾸눈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노려보는 젊은 청년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공포가 없었다. 오직 차가운 분노와,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만이 담겨 있었다.

“내 아버지는 당신들이 평화를 위해 싸웠다고 말씀하셨소.” 루카스가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평화를 위협하는 자들처럼 보이는군요. 우리 마을은 당신들이 흘렸다는 피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흘린 땀과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오. 이 빵 한 조각, 이 벽돌 한 장이 모두 그렇소. 당신들이 진정 용사라면, 우리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당신들의 것을 일구시오. 하지만 만약 당신들이 강도라면,”

루카스는 천천히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메겼다. 이번에는 애꾸눈의 심장을 겨누었다. 숲속에서, 루카스의 친구인 젊은 사냥꾼들이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활을 겨누었다.

“강도에게는, 우리 식의 대접을 해드리겠소.”

애꾸눈 남자는 잠시 루카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외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놀라움, 분노, 그리고 어쩌면 아주 약간의 존경심까지. 그는 이 젊은이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 즉 폭력의 언어를 이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결국 손을 들어 부하들을 제지했다.

“…젊은 친구, 오해하지 말게. 우리는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이야.”

그는 바닥에 떨어진 빵과 고기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군. 행운을 비네. 이 험한 세상에서,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말없이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은 패배자의 그것처럼 초라했지만, 야쿠프는 저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저들은 또 다른, 더 약한 먹잇감을 찾아 이 땅을 계속해서 배회할 터였다. 전쟁이 낳은 유령들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루카스를 영웅처럼 둘러쌌다. 그러나 야쿠프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아들의 눈에서, 자신이 평생을 기록해왔던 전쟁의 그림자를 보았다. 루카스는 폭력을 사용하여 평화를 지켜냈다.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야쿠프는 그 선택이 아들의 영혼에 작은 상처를 남겼을까 두려웠다. 이 새로운 시대는,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종류의 용기와 지혜를 요구하고 있었다.

1652년, 스웨덴 스톡홀름

차가운 발트해의 바람이 왕궁의 창문을 두드렸다.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는 이제 스물여섯 살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 구스타브 아돌프의 총명함과, 어머니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변덕스러운 예술가적 기질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그녀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철학자 데카르트를 스승으로 초빙할 만큼 학문에 대한 열정이 깊었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전쟁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그늘과, 여왕이라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늙은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가 서 있었다. 그는 지난 20년간, 위대한 왕의 죽음과 끝없는 전쟁, 그리고 불안정한 평화 속에서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굳건히 지탱해온 거목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거목은 새로운 시대의 바람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폐하, 재정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아뢰어야겠습니다.” 옥센셰르나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우리가 얻은 독일 영토는,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고를 고갈시키고 있사옵니다. 그 땅을 지키기 위한 주둔군 비용이 막대합니다. 또한, 전쟁 동안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한 영지와 연금 때문에, 왕실의 재정은 파산 직전이옵니다.”

크리스티나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새로 들어온 프랑스 희곡집을 넘기고 있었다.

“재상, 그대는 언제나 돈 이야기뿐이군. 예술과 철학이 없는 국가는, 금고만 가득 찬 야만인의 소굴과 무엇이 다르겠소?”

“예술과 철학은 배부른 자들의 사치이옵니다, 폐하! 지금 스웨덴의 농민들은 과도한 세금에 신음하고 있고,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일자리가 없어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독일 문제에 얽매여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내치에 집중해야 할 때이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옥센셰르나는 스웨덴을 북유럽의 강력한 제국으로 만든 실용적인 정치가였지만, 크리스티나는 그 제국의 영광이 얼마나 많은 피와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화려한 궁정 문화와 심오한 지적 토론을 사랑했고, 전쟁과 정치의 지저분한 현실을 경멸했다.

더 깊은 곳에는, 신앙의 문제도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의 독실한 루터파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비밀리에 가톨릭 사제들을 만나 교리를 공부했고, 교황청과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루터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30년 전쟁에 뛰어들었던 구스타브 아돌프의 딸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웨덴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옥센셰르나는 그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여왕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모든 것이, 이 예측 불가능한 젊은 여왕의 손에서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에 시달릴 뿐이었다.

전쟁의 승리는 스웨덴에게 영광과 함께, 감당하기 힘든 짐을 안겨주었다. 제국이 된 스웨덴은 이제 제국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전쟁이 낳은 유령들은, 독일 땅뿐만 아니라 승리자의 궁전에도 출몰하고 있었다.

1654년, 로마

요한 폰 로젠탈은 이제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가장 유능한 외교관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그의 여정은 그를 베스트팔렌에서 유럽의 모든 주요 궁전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제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국가 이성이라는 냉혹한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게임에서 합스부르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능숙하게 말을 움직였다.

그는 지금 로마에 와 있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에게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였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목적은, 최근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가 왕위에서 스스로 물러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로마로 왔다는 소식이었다.

요한은 바티칸의 한 응접실에서, 이제는 여왕이 아닌 ‘알렉산드라’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는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그녀는 더 이상 왕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서인지, 스톡홀름에서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남자처럼 옷을 입고,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며, 고전 철학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내가 왕국을 버렸다고 하지만, 나는 자유를 얻었소, 로젠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아버지는 신앙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지. 하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그 루터파 신앙 속에서, 나는 어떤 구원도 찾을 수 없었소. 그곳에는 교리와 의무만이 있었지, 진정한 지성과 영혼의 자유는 없었소. 나는 보편적인 진리, 즉 가톨릭(Catholic, 보편적이라는 의미) 안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찾은 것이오.”

요한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30년 전쟁은 루터파 신앙을 지키기 위한 스웨덴의 희생으로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상징이었던 인물이,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적으로 규정했던 진영으로 투항해 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거대한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그는 이 사건이 30년 전쟁의 진정한 종결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더 이상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국가와 개인의 이해관계뿐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로마의 숙소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종이 유럽 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스웨덴은 새로운 왕 칼 10세 구스타브 아래에서 안정을 되찾겠지만, 당분간은 내부 문제에 집중하게 될 것이며, 이는 제국에게는 동쪽 국경의 폴란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

보고서를 작성한 뒤, 그는 창밖의 영원의 도시 로마를 내려다보았다. 수천 년의 역사가 잠든 이 도시에서, 30년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도 한낱 스쳐 지나가는 사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 유럽의 지도를 바꾸고,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했으며, 자신의 인생 행로를 결정했다는 것을. 그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문구들을 떠올렸다. 그 문구들은 이제 단순한 잉크 자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와 눈물로 쓰인, 한 시대의 묘비명이었다.

1655년, 야쿠프의 마을

야쿠프의 마을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방앗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작은 교회도 재건되었다. 마을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소금과 철을 구하기 위해, 인근 도시로 작은 상단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루카스는 그 상단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마을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 지도자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지혜와, 숲에서 배운 생존 기술, 그리고 자신만의 용기를 가지고, 위험하지만 새로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루카스가 도시에서 돌아와 아버지에게 작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것은 함부르크에서 인쇄된, ‘독일의 비극에 대한 실질적 묘사(The True Description of the German Tragedy)’라는 제목의 조잡한 삽화집이었다.

야쿠프는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 안에는 그가 지난 수십 년간 직접 목격했던 전쟁의 참상들이, 서투르지만 생생한 목판화로 담겨 있었다. 불타는 마그데부르크, 교수대에 매달린 농부, 서로를 잡아먹는 굶주린 사람들, 그리고 폐허 속을 헤매는 유령 같은 군인들.

그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한 삽화에 시선이 멎었다. 그것은 한 남자가 낡은 짐마차 옆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잿더미가 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림이었다. 그림 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간 곳에, 그래도 희망은 씨앗처럼 남았으니. 살아남은 자의 의무는, 이 비극을 잊지 않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야쿠프는 눈물을 흘렸다. 누가 그렸는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그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평생의 과업을 보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땅의 어딘가에, 자신처럼 이 전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게 경고하려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낡은 연대기를 꺼냈다. 그는 아직 마지막 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무엇을 더 써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펜을 들었다.

‘전쟁이 낳은 유령들은 여전히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어떤 유령은 녹슨 칼을 들고 길 위를 헤매고, 어떤 유령은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궁전을 떠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유령은, 망각이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이 유령이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이 모든 고통을 한낱 옛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날, 전쟁은 반드시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록한다. 나의 아들 루카스를 위해,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이 잿더미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잊지 않겠다고, 어떻게 맹세했는지를.’

그의 기록은 이제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다음 시대에게 보내는, 피로 쓴 유언이 되고 있었다. 유령들의 귀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평화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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