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들 (The New Gods)

by 남킹


1656년 겨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라인 강이 얼어붙은 프랑크푸르트는 다시 한번 제국의 심장이 되어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들이 새로운 로마 왕, 즉 차기 황제를 선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8년 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제국의회였다. 도시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선제후들의 숙소와 회의장 주변은 보이지 않는 외교전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요한 폰 로젠탈은 이제 마흔을 넘긴 중견 외교관이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의 이상주의 대신, 수많은 협상과 밀담 속에서 단련된 신중함과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전권대사로서, 이번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황제의 목표는 명확했다. 그의 아들 레오폴트를 차기 황제로 선출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위 세습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과거였다면 거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을 선거였다. 그러나 베스트팔렌 조약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제국의 제후들은 이제 ‘황제와 제국을 적대하지 않는 한’ 독자적인 외교권을 가진 사실상의 주권 군주가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황제의 신하가 아니라, 그의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다. 특히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3대 선제후 대주교들은 프랑스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라인 동맹’을 결성,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에 공공연히 맞서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신의 종이 아니라, 프랑스 왕의 종입니다.” 요한은 황제에게 보내는 비밀 보고서에 썼다. “그들은 오스트리아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이교도인 터키인과도 손을 잡을 자들입니다.”

이번 선거의 가장 강력한 변수는 단연 프랑스였다. 리슐리외의 뒤를 이은 재상, 추기경 마자랭은 베스트팔렌 조약의 ‘보증인’을 자처하며, 독일 문제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시는 제국을 통합하여 프랑스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제국의 분열을 영구화하는 것이었다.

마자랭은 이번 선거에 합스부르크 출신이 아닌, 바이에른의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를 새로운 황제로 내세우려 했다. 그는 막대한 뇌물과 교묘한 약속으로 선제후들을 회유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모든 선술집과 살롱은 그의 첩자들이 뿌리는 돈과 정보로 넘쳐났다.

요한은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는 매일 밤 선제후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황제의 약속과 위협을 전달했다.

“프랑스의 달콤한 말에 속지 마십시오. 그들은 독일의 자유를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독일을 자신들의 전쟁터로 만들려는 늑대들일 뿐입니다. 합스부르크만이 제국을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보루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선제후들은 더 이상 ‘제국의 영광’이나 ‘가톨릭 신앙’ 같은 낡은 명분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은 오직 계산뿐이었다.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의 영지에 더 많은 영토와 관세 수입을 가져다줄 것인가. 어느 쪽이 자신의 주권을 더 존중해줄 것인가.

요한은 깨달았다. 30년 전쟁은 신의 시대를 끝냈다. 이제 유럽을 지배하는 새로운 신들이 있었다. 그것은 ‘국가 이성(Raison d'État)’,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그리고 ‘국경(Border)’이라는 이름의, 감정도 자비도 없는 차가운 신들이었다. 이 새로운 신들의 제단 위에서, 외교관들은 잉크를 피처럼 흘리며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선거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몇 달간의 지루한 협상과 암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1657년 4월, 황제 페르디난트 3세가 빈에서 급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위는 이제 공석이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5세기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마자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프랑스의 젊은 왕 루이 14세를 직접 황제 후보로 내세우는 대담한 카드까지 만지작거렸다. 제국은 와해 직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요한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마지막 외교적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가장 강력한 개신교 선제후인 브란덴부르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 접근했다. ‘대선제후(Great Elector)’라 불리기 시작한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신의 영지를 강력한 군사 국가로 키워내고 있는 야심만만한 현실주의자였다.

요한은 그에게 합스부르크의 전통적인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이익을 제안했다.

“선제후 전하, 프랑스가 제국의 황제 선거를 좌지우지하게 놔두실 겁니까? 바이에른의 꼭두각시 황제가 들어선다면, 제국은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이 될 것입니다. 이는 전하께서 애써 이룩하신 북독일에서의 패권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나 낡은 원한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독일인으로서, 독일의 미래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당시 전쟁 중이던 스웨덴으로부터 폴란드의 주권을 인정받는 문제에서, 합스부르크가 외교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그것은 결정적인 한 수였다. 실리를 중시하는 대선제후는 결국 프랑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합스부르크의 젊은 레오폴트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지지를 시작으로, 다른 선제후들도 대세에 따르기 시작했다.

1658년 7월, 1년이 넘는 공위 기간 끝에, 마침내 레오폴트 1세가 새로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었다. 합스부르크는 간신히 제위를 지켜냈다. 요한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승리감 대신 깊은 허무함이 남았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베스트팔렌 조약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것은 평화 조약이 아니라, 독일 땅을 무대로 외세가 합법적으로 개입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든, 영구적인 분쟁의 씨앗이었다. 제국은 살아남았지만, 그것은 수많은 내부의 왕들과 외부의 주인들을 섬겨야 하는, 이름뿐인 유령 제국일 뿐이었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빈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요한은 30년 전 자신이 뮌스터에서 꿈꾸었던 ‘이성과 관용의 시대’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순진했던 젊은 서기는 이제 죽고 없었다. 그의 자리에는 새로운 신들의 냉혹한 논리를 섬기는, 지친 외교관만이 남아 있었다.

1657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평화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았다. 독일 땅의 총성이 멎었을 때, 북방에서는 새로운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스웨덴의 새로운 왕, 칼 10세 구스타브는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에 불타는 전쟁광이었다. 그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약해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했다. ‘대홍수(Potop)’라 불리는 이 침공은 폴란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가 되었다.

스웨덴 군대는 파죽지세로 바르샤바와 크라쿠프를 점령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의 저항은 꺾이지 않았다. 그들은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를 기치로 내걸고, 가톨릭 신앙의 이름 아래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다.

이 북방의 전쟁은 곧 독일의 유령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자석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용병들이 새로운 전쟁터를 찾아 북쪽으로 향했다. 그들에게는 국적도, 신앙도 중요하지 않았다. 더 많은 급료와 약탈의 기회를 약속하는 군주가 그들의 새로운 주인이었다. 한때 제국군으로 싸웠던 독일인 용병이 이제는 스웨덴 군의 일원이 되어 폴란드 마을을 불태웠고, 과거 스웨덴 군으로 복무했던 스코틀랜드 용병이 이제는 폴란드 귀족의 사병이 되어 스웨덴 군과 싸웠다.

전쟁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병사들은 상품이었고, 지휘관들은 그 상품을 거래하는 상인이었다. 30년 전쟁이 낳은 가장 끔찍한 유산, 즉 전쟁의 산업화는 그렇게 다른 땅에서 그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 혼란의 한복판에, 야쿠프의 옛 동료였던 ‘숲의 형제들’의 리더, 칼이 있었다.

독일에서 평화가 찾아온 후, 칼과 그의 부하들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숲에서 나와 사회에 적응하려 했지만, 평화로운 세상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전과자이자 이방인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 즉 싸우는 일을 찾아 북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브란덴부르크의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군대에 고용되었다.

칼은 이제 정식 장교가 되어, 수백 명의 병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숲속의 의적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 대선제후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깊은 괴리감을 느꼈다.

어느 겨울날, 그의 부대는 바르샤바 근교의 한 작은 마을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애꾸눈의 남자였다. 30년 전쟁 시절, 야쿠프의 마을을 위협했던 바로 그 용병이었다. 그는 이제 스웨덴 군의 하사관이 되어 있었다.

두 남자는 서로를 알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적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말이 아닌, 오직 강철의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날 오후 벌어진 작은 교전에서, 칼은 애꾸눈 남자를 자신의 칼로 베었다. 남자는 죽어가면서, 피 섞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결국… 우리 같은 놈들의 끝은 다 똑같군….”

칼은 그의 시신을 눈밭에 묻어주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전쟁은 대체 언제 끝나는가. 독일에서의 전쟁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은 단지 장소와 이름만 바꾼 채,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는 죽음의 춤처럼. 그는 자신이 그 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령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1658년, 야쿠프의 마을

야쿠프의 마을은 기적처럼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 세계의 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마을은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고, 그들만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다.

루카스는 이제 스물네 살의 청년으로, 마을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지혜와 자신만의 결단력으로 마을을 이끌었다. 그는 마을 주변에 높은 목책을 세우고,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자체적인 민병대를 조직했다. 그는 다시는 외부의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느 날, 마을에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군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엄격한 표정을 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이름으로 파견된, ‘반종교개혁 위원회’ 소속의 예수회 사제들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주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였다. 보헤미아는 여전히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지였고, 황제는 이 땅을 완전한 가톨릭 영토로 만들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제들은 마을 광장에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마테오 신부는 단호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황제 폐하의 칙령에 따라, 이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거룩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해야 한다. 개종을 거부하는 자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이 땅에서 추방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특정 교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은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그들만의 소박한 신앙 방식이 있었다. 강요된 개종은 그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였다.

한 노인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신부님, 우리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선량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황제 폐하께 세금을 바치고,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소박한 믿음마저 빼앗아가려 하십니까?”

마테오 신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육체의 순종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혼의 완전한 순종만이 그대들을 구원할 것이다. 황제 폐하의 영토에, 이단의 독버섯이 자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다. 순종인가, 아니면 추방인가.”

그날 밤, 마을 회의가 열렸다.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늙은 세대는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다시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루카스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30년간 싸워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루카스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것은 바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권리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굴복한다면, 우리는 다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노예가 아니라, 영혼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굴복할 수 없습니다.”

야쿠프는 아들의 모습을 자랑스러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아들이 자신과는 다른, 싸우는 세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루카스는 마을을 대표하여 마테오 신부 앞에 섰다.

“신부님, 우리는 개종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방식으로 신을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답입니다.”

마테오 신부는 그의 말을 듣고 분노하는 대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젊은이로군. 그대들의 ‘땅’이라고? 이 땅의 모든 것은 신의 대리인이신 황제 폐하의 것이다. 그대들은 곧 그대들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예수회 사제들은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위협을 남기고 갔다. 마을 위에는 다시 한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쟁은 총과 칼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십자가와 법전이 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야쿠프는 그날 밤, 자신의 연대기에 새로운 불안을 기록했다.

‘전쟁이 끝나자, 새로운 신들이 찾아왔다. 하나는 국가라는 이름의 신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이라는 이름의 신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려 한다. 우리는 총칼의 위협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영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전쟁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을 것이다. 오직 버티는 자와 굴복하는 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루카스가 젊은이들과 함께, 마을 목책을 더욱 높이 쌓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제국의 질서에 맞서고 있었다. 야쿠프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이번에야말로, 신이 부디 침묵하지 않기를. 이 작은 마을의 용감한 영혼들을 지켜주시기를.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신은 이미 오래전에 이 땅을 떠났다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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