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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왜 침묵했는가: 731부대와 미국의 거래

by 남킹


서론: 만주, 침묵의 동토(凍土)와 기억의 심연

만주(滿洲)의 광막한 설원, 그곳은 시간이 박제된 듯한 영겁의 공간이다. 겨울이면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 대지를 지배하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워버리며 인간의 존재를 한낱 미미한 점으로 환원시킨다. 하얼빈 남쪽 25킬로미터 지점, 핑팡(平房)이라 불리는 이 지리적 좌표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류가 스스로의 존엄을 향해 가한 가장 참혹한 배반의 현장이자, 역사적 정의가 어떻게 냉전의 지정학적 거래 속에서 증발될 수 있었는지를 증언하는 묵시록적 폐허다. 바로 이곳에 관동군 방역급수부 본부, 통칭 731부대라는 악마적 이성의 전초기지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2025년 개봉한 자오린산 감독의 영화 <731>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혹은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증언과 자료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이 동토의 심연을 응시하고자 한다. 이 응시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복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니체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고 경고했던 바로 그 실존적 행위다. 731의 심연은 인간 이성의 도구적 전락,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반인륜적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은폐하고 거래한 거대 권력의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글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고통을 통렬히 토로하며, 그들의 피가 얼어붙은 이 땅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탐색하는 변증법적 여정이 될 것이다.

1. ‘마루타(丸太)’: 존재의 해체와 언어적 학살

모든 대학살의 서곡은 언제나 대상의 비인간화(dehumanization)에서 시작된다. 나치가 유대인을 ‘해충(Vermin)’으로 명명했듯, 일본 제국주의는 731부대의 실험 대상을 ‘마루타(丸太)’, 즉 ‘통나무’라 칭했다. 이 명명 행위는 단순한 은어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박탈하고 생명체를 단지 실험 재료라는 사물성(thingness)으로 격하시키는 언어적 학살이었다. 한때 이름과 가족, 꿈과 기억을 가졌던 존엄한 개체들은 이제 그저 수량을 헤아리는 단위로 전락했다.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심지어 연합군 포로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광기에 포획된 이들은 ‘통나무’라는 기표 아래에서 그들의 인간성이 거세당했다.

이곳에서 자행된 실험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잔혹의 극점을 남김없이 전시했다. 이는 의학적 호기심이라는 미명 아래 포장되었으나, 그 본질은 가장 효율적인 대량 살상 방법론을 구축하기 위한 순수한 악의의 발현이었다.

동상 실험은 그 대표적인 예다. 혹한의 만주 벌판에 마루타들을 나체로 세워두고, 차가운 물을 끼얹으며 인공적으로 동상을 유발했다. 얼어붙어 괴사 직전에 이른 팔다리를 막대기로 두드려 통나무처럼 딱딱한 소리가 나는지를 확인하는 행위는 이미 인간에 대한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물의 물성을 측정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후 해동 과정에서 가해지는 끔찍한 고통, 근육과 뼈가 피부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은 철저히 기록되었으나, 그 기록 어디에도 피험자의 신음이나 절규는 데이터로 변환되지 않았다. 고통은 오직 생리학적 반응의 수치로만 존재했다.

생체 해부(Vivisection)는 731의 광기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마취 없이,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열어 장기의 변화를 관찰했다. 페스트균이나 콜레라균을 주입한 뒤, 세균이 신체 내부에서 어떻게 퍼져나가며 조직을 파괴하는지를 시시각각으로 확인하기 위해 희생자들은 산 채로 해부대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의식을 잃지 않은 희생자들의 눈에 비친 것은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자신의 내장을 꺼내 무게를 재고 토론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인간이라는 종(種) 전체에 대한 근원적인 모독이었다. 이곳에서 의학은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기술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 정교하게 설계하는 파괴의 공학으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세균 무기 성능 실험을 위해 마루타들을 들판의 말뚝에 묶어놓고 페스트균이 담긴 도자기 폭탄을 터뜨렸으며, 고압의 진공실에 가두어 인체가 어떻게 파열되는지를 관찰했다. 바닷물을 혈액 대신 주입하거나, 위를 절제하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하는 등의 실험들은 그 목적조차 불분명한, 순수한 가학적 호기심의 산물로 보인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보며 통찰했던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은 731부대에서 ‘악의 전문성’으로 변모했다. 교토제국대학을 비롯한 일본 최고의 학부 출신 엘리트 의사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혹은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자기기만 아래, 인간을 통나무처럼 다루는 일에 복무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메스는 생명을 향한 경외심이 아닌, 데이터에 대한 탐욕으로 번득였다.

이 비극의 심연 속에는 수많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이기수, 한성진, 고창률, 김성서… 이들의 이름은 ‘특별 이송’이라는 행정 절차 아래 731부대의 희생자 명단에 기록되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의 고귀한 투쟁은 제국주의의 가장 어두운 실험실에서 참혹한 죽음으로 마감되었다. 그들의 고통은 민족 해방 투쟁사에 새겨진 가장 깊고 시린 상흔이다.

2. 이성의 배반과 책임의 부재: 괴물이 된 엘리트들

731부대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그 범죄의 주체들이 광신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성과 전문성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육군 중장은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수재였으며, 부대에는 각 대학에서 파견된 최고의 의학자,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국가를 위한 방역 연구’ 혹은 ‘성전(聖戰)의 승리를 위한 과학적 기여’라는 대의명분으로 합리화했다.

이는 이성이 그 자체로 선(善)을 담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 목적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는 도구로 전락할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스 베버가 우려했던 근대성의 ‘철창(iron cage)’은 핑팡의 실험실에서 가장 잔혹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압도할 때,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731부대의 의사들은 마루타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했고, 이 논문들은 버젓이 일본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로 인정받았다. 이는 일본 군부뿐만 아니라 일본 의학계 전체가 이 반인륜적 범죄의 공범이었음을 증명하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다.

더욱 통탄할 사실은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한 단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만주로 진격해오자 이시이 시로와 부대 지휘부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남은 마루타들은 청산가스로 ‘정리’되었고, 방대한 시설은 폭파되었다. 그들은 오직 수년간의 인체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만을 챙겨 일본으로 유유히 도주했다.

전후, 인류는 나치 전범들을 뉘른베르크 법정에 세워 ‘인도에 반한 죄’를 물었다. 그러나 동양의 아우슈비츠였던 731부대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처벌을 면했다. 여기에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류의 정의를 배반한 미국의 추악한 거래가 있었다. 미 육군 생물학전 연구소는 731부대가 인체 실험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독점하는 대가로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부대 관계자 전원에게 전범 기소를 면제해주는 ‘면책 특권’을 부여했다.

미 국방부에 제출된 샌더스 중령의 보고서는 이러한 야합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정보는 우리 쪽 연구소에서는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체 실험은 양심의 가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를 총액 25만 엔 정도로 얻었다… 스스로 이런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천, 수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가로 얻어진 피 묻은 데이터는 고작 25만 엔과 전범들의 자유와 맞바꿔졌다. 정의는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헐값에 팔려나갔고, 희생자들의 원혼은 그렇게 또 한 번 유린당했다.

이 거래의 결과는 참담했다. 731부대의 ‘엘리트’들은 일본 사회로 돌아와 아무런 처벌 없이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다. 일본 녹십자와 같은 대기업의 창립자가 되거나, 유수의 대학 학장, 의학계의 권위자로 행세하며 부와 명예를 누렸다. 이는 희생자들에 대한 두 번째 살인이었다. 역사의 심판이 부재한 곳에서 가해자는 존경받는 시민으로 둔갑하고, 피해자의 고통은 망각의 강으로 떠밀려갔다. 소련이 하바롭스크에서 일부 부대원들을 재판에 회부했으나, 이마저도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은 1956년 일소 국교 정상화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결국 731부대의 죄악은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책임을 묻지 못한 채, 역사의 미제(未濟)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3.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 투쟁과 역사적 의미

망각은 권력의 오랜 통치술이다. 가해자는 망각을 통해 죄책감을 덜고, 방관자는 망각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기억은 존재의 마지막 보루이자, 빼앗긴 존엄을 되찾기 위한 유일한 무기다. 731부대의 진실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1980년대 모리무라 세이치의 논픽션 『악마의 포식』을 통해서였다. 이후 수많은 증언과 자료 발굴, 그리고 하얼빈 핑팡구에 세워진 ‘침화일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 등을 통해 망각에 대한 끈질긴 저항이 이어져 왔다.

2025년 영화 <731>의 개봉일이 만주사변 발발일인 9월 18일로 맞춰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기억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잊혀가는 역사를 현재로 소환하고, 과거의 고통을 오늘의 문제로 공론화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히 과거사를 들추어 반일 감정을 고취하려는 국수주의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731부대의 비극이 단지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에 가한 폭력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731부대가 우리에게 남긴 역사적 의미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다.

첫째, 그것은 근대 이성과 과학 기술의 양면성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경고다. 계몽주의 이래 인류 진보의 동력으로 칭송받던 과학과 이성이 국가주의, 제국주의와 결합할 때,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파괴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731부대의 실험실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신화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논증이다.

둘째, 731부대는 역사적 정의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일깨운다. 승전국의 이해관계와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731부대의 전쟁 범죄는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거래되었다. 이는 정의가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가해자의 시혜적 사과나 승전국의 정치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연대하여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셋째, 731의 기억은 오늘날 동아시아에 만연한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일본의 일부 우익 세력은 여전히 731부대의 만행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려 시도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731’이라는 숫자가 적힌 훈련기에 올라 엄지를 치켜세운 사진은 이러한 퇴행적 역사 인식을 상징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러한 역사 부정에 맞서 731의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은 과거를 올바로 직시하고, 그 토대 위에서 건강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업이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뜻있는 일본의 양심 세력이 연대하여 731의 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심판하는 행위를 넘어, 미래의 비극을 예방하는 인류사적 책무다.

결론: 동토의 핏자국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만주의 설원으로 돌아가자. 하얼빈 핑팡의 폐허 위로 오늘도 눈은 내리고, 시간의 더께는 쌓여간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그 땅에 스며든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와 눈물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다. 그들의 침묵의 절규는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올라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너희는 정의가 패배한 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731부대의 이야기는 과거에 갇힌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야만성, 권력의 부패, 진실을 향한 투쟁이라는 영원한 테마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서사다. 중국의 택시 기사가 일본인 승객에게 하차를 요구하고, 식당의 손님이 일본인 가족에게 731부대에 대해 묻는다는 일화는,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현재적인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풍경이다. 이러한 개인적 분노의 표출을 넘어, 우리는 이 비극을 어떻게 성숙한 역사적 교훈으로 승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가해자의 책임을 끝까지 묻되, 복수와 증오의 악순환에 갇히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고 연대하되,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추구하되, 그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길이다.

시인 윤동주가 차가운 간수들의 감방에서 고뇌했듯,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기에 인간이다. 731부대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은 우리 안의 괴물을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을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 얼어붙은 핑팡의 동토 위에 스며든 한국인과 중국인의 피는, 우리에게 망각과의 전쟁을 멈추지 말라고, 그리하여 다시는 이 땅에 ‘마루타’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명령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준엄한 역사적, 윤리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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