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테이블, 같은 고독

by 남킹


1903년 10월의 뮌헨은 젖은 낙엽과 차가운 돌의 냄새를 풍겼다. 이자르 강 위로 안개가 뱀처럼 기어 다녔고, 마차 바퀴와 이제 막 도시의 혈관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 전차의 둔중한 소음은 그 축축한 대기 속에서 한 겹의 솜에 싸인 듯 뭉툭하게 울렸다. 하늘은 오래된 양철통 같은 색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간혹 비치는 희미한 햇살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라 흐린 물웅덩이를 통과한 빛처럼 힘이 없었다. 세상은 온통 회색과 갈색의 미묘한 변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 명료한 것은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란뿐이라고, 스무 살의 프란츠 카프카는 생각했다.

그는 튀르켄슈트라세에 위치한 '카페 슈테파니'의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의 차고 축축한 공기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그를 덮쳤다. 갓 내린 커피의 쓰고 고소한 향기, 시가와 파이프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하고 매캐한 연기, 젖은 외투에서 나는 양털 냄새, 맥주 거품의 시큼한 향,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의 체취가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공기였다. 귀로는 독일어의 딱딱하고 분명한 격론, 웃음소리, 잔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 웨이터가 접시를 나르는 부산한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카프카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듯 그 소음과 냄새의 바다를 헤치고 구석의 작은 원형 테이블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그의 피난처이자 동시에 고문실이었다. 그는 이곳의 익명성을 사랑했다. 누구도 프라하에서 온, 법률가 아버지를 둔 유대인 청년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곳의 활기를 견딜 수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논하고, 예술을 재단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저 목소리들은 그의 존재를 더욱 작고 하찮게 만들었다. 그들의 확신에 찬 언어는 그의 내면에서만 맴도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불안의 언어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는 얇고 긴 손가락으로 외투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감촉.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가 프라하에서 보낸 편지였다. 꺼내어 다시 읽을 필요는 없었다.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이 그의 뇌리에 불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뮌헨 대학의 법학 과정에 대한 네 생각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듯하구나. 안개는 걷히기 마련이지만, 젊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네가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우리 가문에 어울리는 견고한 미래를 설계하기를 바란다. 문학이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인생의 본질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거라. 그것은 장식일 수는 있어도, 결코 집의 기둥이 될 수는 없다..."

'문학이라는 유령.' 아버지는 그렇게 썼다. 카프카에게 문학은 유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피와 살이었고, 그의 숨이었으며, 그를 아침에 눈뜨게 하고 밤에 잠 못 들게 하는 유일한 실체였다. 법학이야말로 거대한 유령이었다. 딱딱한 법전의 활자들, 판례의 논리들, 그것들은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무채색의 유령이었다. 그는 편지를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마치 아버지의 거대하고 권위적인 손을 밀어내는 듯한 몸짓이었다.

웨이터가 다가와 무심한 표정으로 주문을 물었다.

"멜랑주 한 잔."

그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카페의 소음에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웨이터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까딱하고는 돌아섰다.

카프카는 가방에서 낡은 가죽 표지의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잉크. 검고 선명한 액체. 그의 혼돈스러운 내면을 종이 위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유일한 도구.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카페의 소음을 차단하려 애썼다. 그러나 소음은 그의 귓속으로, 머릿속으로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테이블 너머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니체의 '초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망치처럼 그의 신경을 두들겼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장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갑자기, 아무런 맥락 없이.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노트 위에 그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이었다. 딱딱한 등껍질의 감촉, 수많은 다리가 제멋대로 버둥거리는 무력감. 법학을 공부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 아버지의 기대에 짓눌린 자신의 모습이 바로 저 갑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

그는 고개를 들었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무의식적인 몸부림이었다. 그의 시선은 카페 안을 정처 없이 헤맸다. 사람들의 얼굴, 몸짓, 표정들. 그것들은 모두 그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처럼 보였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웃고, 떠들고, 존재할 수 있는가. 그의 시선이 한 테이블에 머물렀다.

창가 근처, 네댓 명이 앉을 수 있는 넉넉한 테이블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와, 그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남매처럼 보였다. 여인은 특히 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평범하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얼굴은 다소 길었고, 콧날은 날카로웠으며, 입매는 단호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 크고 깊은 회색 눈은 놀라울 정도의 지성과 예민함을 담고 있었다. 그 눈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맞은편 남자의 말을 경청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창밖의 안개를 응시했고, 곧이어 옆 테이블 여인의 모자에 달린 깃털 장식을 분석하는 듯했으며, 다시 찻잔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세상을 탐색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듯했다.

카프카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방금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한 기묘한 흥분을 느꼈다. 저 여인의 눈은, 그가 아는 다른 누구의 눈과도 달랐다. 그것은 세상을 단순히 '보는' 눈이 아니라, 세상의 이면을 '읽어내는' 눈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토비, 케임브리지의 학자들은 정말로 독일 관념론이 칸트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스물한 살의 버지니아 스티븐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오빠에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맑았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칼날 같은 예리함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토비가 열변을 토한 케임브리지의 지적 풍토에 대한 이야기가 어딘가 못마땅했다.

토비 스티븐은 누이동생의 지적인 도발을 즐기는 듯,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었고,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밝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버지니아, '끝났다'는 건 너무 단정적인 표현이지. 하지만 헤겔 이후의 철학은, 뭐랄까, 명료함을 잃고 과도한 형이상학적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 건 사실이야. 특히 니체 같은 경우는 철학자라기보다는 거의 시인이나 예언가 취급을 받지."

"바로 그거야!" 버지니아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들은 니체의 언어를 두려워하는 거야. 이성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둘 수 없으니까. 그의 문장은 망치와도 같아.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수고,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라고 강요하지. 그걸 어떻게 얌전한 학술 논문의 각주 안에 집어넣을 수 있겠어? 안개라니, 천만에. 그건 폭풍이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뮌헨의 안개는 그녀에게 철학적 사유의 혼돈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안개 속에서는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변모한다. 현실의 단단한 윤곽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상상력이 스며들 공간이 생긴다. 그녀의 글쓰기가 추구해야 할 방향도 저것과 같아야 한다고, 버지니아는 생각했다. 인물의 외면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안개,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생각과 감각의 파편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

"넌 항상 그런 식이지." 토비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런던에서도, 여기 뮌헨에서도. 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네가 쓰고 싶은 소설의 한 장면으로 바꿔버려."

"그게 작가가 하는 일 아니겠어?" 버지니아가 미소로 받아쳤다. 그녀는 오빠를 사랑했다. 오빠와 그의 친구들, 블룸즈버리에서 막 싹트기 시작한 그 지적인 공동체는 그녀의 유일한 숨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오빠에게 미묘한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토비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케임브리지의 문을 통과했고, 고대 그리스어와 철학을 마음껏 탐구할 자유를 누렸다. 반면 그녀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홀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교육해야 했다. 그녀의 지식은 체계 없이 쌓아 올린 탑과도 같아서, 화려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했다. 그녀는 늘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남자 형제들 못지않게, 아니 그들보다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시선이 다시 카페 안을 훑었다. 이곳 '카페 슈테파니'는 토비의 친구가 '거대한 정신의 공동 침실'이라고 표현한 곳이었다. 온갖 종류의 예술가, 작가 지망생, 철학도,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듯 떠들어대는 곳. 버지니아는 이 소란스러운 활기가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한 연극처럼 느껴졌다. 저마다 가장 똑똑하고,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고뇌에 찬 인물인 척 연기하는 배우들. 그녀는 그들의 얼굴 아래 숨겨진 진짜 표정을, 그들의 당당한 목소리 뒤에 감춰진 불안과 허영을 꿰뚫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의 눈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카페 구석, 그림자 속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는 주변의 소음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섬에 고립되어 있는 듯했다. 몹시 마른 체구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짙은 눈썹 아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노트의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주변 공기는 다른 곳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그 자신이 하나의 작은 블랙홀이 되어 주변의 모든 빛과 소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구일까. 버지니아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온 가난한 시인? 아니, 그의 옷은 싸구려가 아니었다. 잘 교육받았지만 세상과 불화하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결핵을 앓고 있을까? 그의 창백한 피부와 예민한 분위기는 그런 병을 연상시켰다. 그는 지금 무엇을 쓰고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비극적인 편지? 아니, 그의 표정에는 낭만적인 슬픔보다는 더 근원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마치 세상의 끔찍한 비밀을 엿본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문득 그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너무나도 달랐다. 자신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논쟁하는 것을 즐겼고, 그는 침묵과 고립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 완벽하게 속하지 못하고, 현실의 표면 아래에 있는 더 깊은 진실, 혹은 더 깊은 혼돈을 언어로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는 점. 그에게도 '잉크'는 유일한 무기이자 구원일 터였다.

그 순간, 옆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나다가 실수로 꽃병을 쳤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물이 쏟아지고 꽃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카페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었고,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소란을 일으킨 남자는 당황하며 쩔쩔맸고, 웨이터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카프카는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파열음은 마치 그의 내면의 질서가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들었다. 세상의 모든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 그의 불안은 언제나 그렇게 비논리적으로 증폭되었다.

버지니아는 그 순간, 구석의 그 청년을 다시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깨진 꽃병과 허둥대는 남자를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마치 총소리를 들은 사슴처럼, 겁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거의 실존적인 위협을 느낀 듯한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저토록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어떻게 이 소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걸까. 버지니아는 연민과 함께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소동은 금세 정리되었다. 웨이터는 능숙하게 파편을 치웠고,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카페는 이전의 소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짧은 정적과 소동의 순간은 두 사람의 의식에 미세한 균열을 남겼다. 카프카는 자신의 과도한 반응에 대한 수치심으로 얼굴이 화끈거렸고, 버지니아는 그 청년에 대한 인상이 더욱 깊어졌다.

토비는 누이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음을 눈치챘다.

"무슨 생각 해? 또 소설 구상 중이야?"

"아니, 그냥... 저 사람을 좀 봐." 버지니아가 턱짓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토비는 그쪽을 힐끗 보더니 별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왜? 뮌헨의 수많은 고뇌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겠지. 저런 친구들은 슐라프록(실내용 가운)을 입고 대낮에 돌아다니기도 해."

"아니야, 달라." 버지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 사람은 연기하는 게 아니야. 저건 진짜야."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토비는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카프카는 노트에 집중하려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 카페의 소음, 방금 전의 소동, 그리고 창가의 그 여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공간은 더 이상 피난처가 될 수 없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웨이터를 불러 계산을 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 외투를 챙겨 입는 순간, 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얇은 외투 자락이 테이블 위의 노트를 스쳤다. 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낡은 가죽 노트가 테이블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노트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책장이 몇 장 펼쳐졌다.

카프카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의 가장 내밀한,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그의 갑충이, 그의 미완의 문장들이 무방비하게 세상에 노출되었다. 그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허리를 숙였다. 그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가 노트를 주우려 손을 뻗었을 때, 다른 손 하나가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희고 긴,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손가락. 그 손의 주인은 창가에 앉아 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테이블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버지니아는 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보았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신경질적인 필체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그녀가 읽을 수 없었지만, 유독 한 문장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크고 선명하게 쓰인, 방금 막 잉크가 마른 듯한 문장이었다.

‘Als Gregor Samsa eines Morgens aus unruhigen Träumen erwachte, fand er sich in seinem Bett zu einem ungeheueren Ungeziefer verwandelt.’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버지니아는 숨을 멈췄다. 이 얼마나 기괴하고, 대담하며, 끔찍하게도 독창적인 문장인가. 이 한 문장 안에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하나의 완벽한 악몽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고뇌하는 예술가'의 흔한 자기 연민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심연을 들여다본 자의 언어였다.

카프카는 그녀가 자신의 글을 읽었다는 사실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모욕감과 공포를 느꼈다. 그는 거의 동물의 본능처럼 노트를 낚아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안개와 같은 회색 눈과, 잉크처럼 검고 깊은 눈.

카프카는 그녀가 자신을 비웃거나,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자리를 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방어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경멸이나 조소가 없었다. 대신, 순수한 지적인 호기심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듯한 묘한 동질감이 어려 있었다.

버지니아는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흥분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노트를 떨어뜨리셨군요"와 같은 상투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방금 자신이 훔쳐본 비밀의 세계에 대해 곧바로 이야기했다.

"그 문장, 참으로 불안하군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진실하게 들려요."

카프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세계를 지배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튀르켄슈트라세의 카페, 그 소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그의 언어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안개가 걷히고, 잉크로 쓰인 그의 고독이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 앞에 그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두 개의 다른 테이블, 두 개의 같은 고독은 마침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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