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거대한 그림자

by 남킹


카페 슈테파니를 나선 프란츠 카프카는 마치 잠수부가 너무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어지러웠다. 카페 안의 소란스럽고 밀도 높은 공기와 바깥의 차갑고 묽은 안개가 폐 속에서 충돌하며 그를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외투 깃을 세우고 고개를 숙였다. 뮌헨의 가스등 불빛은 축축한 대기 속에서 노랗게 번지며 사물의 윤곽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세상은 다시 한번 그의 내면 풍경과 닮아 있었다. 혼란스럽고, 방향을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이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녹아드는 듯했다.

그는 방금 전의 대화를, 그 모든 단어와 침묵을, 시선의 교환을 머릿속에서 강박적으로 복기했다. 그것은 끔찍한 실수였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 갑충이 버둥거리는 그 어둡고 축축한 방의 문을 활짝 열어 보이고 말았다. 그는 벌거벗겨졌고, 해부당했으며, 분류되었다. 그 여인, 버지니아 스티븐의 회색 눈은 예리한 탐침과도 같아서 그의 신경 다발 하나하나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녀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는 척했지만, 그것은 지적인 호기심에 불과할 터였다. 그녀는 그의 기괴함을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쾌활한 오빠에게 완벽한 구경거리, 프라하에서 온 신경쇠약 직전의 유대인 청년이라는 진기한 표본이 되어버렸다. 수치심이 뜨거운 납처럼 그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그런데 왜, 그 모든 자기혐오와 공포의 밑바닥에서 이토록 기묘한, 거의 고통에 가까운 희열이 느껴지는 것일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가 온전히 착륙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의 단어들은 늘 허공으로 던져져 의미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돌멩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돌멩이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돌멩이가 아니라, 복잡한 지층과 역사를 품은 화석이라고 말해주었다. '진실하게 들려요.' 그녀의 그 한마디는 그의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판결이었다. 아버지가 내린 '유령'이라는 판결을 뒤집는, 새로운 법정에서 내려진 예상치 못한 판결.

내일 미술관에 가기로 한 약속. 그는 왜 승낙했을까.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계획된 만남은 그에게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그는 내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그 장소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 밤새 잠 못 이루고, 결국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자신을 경멸하게 될 터였다.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차라리 처음부터 거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시선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힘이 없었다.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중력처럼 작용했다.

그가 머무는 작은 하숙집(Pension)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의 방은 차갑고 정적이 감돌았다. 단출한 침대와 책상, 의자 하나가 전부인 공간. 그곳은 안식처가 아니라 그의 고독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무대였다. 그는 외투를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침대 가장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편지였다. 그는 오늘 아침에 읽었던 그 편지를 마치 독사라도 되는 듯 피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피할 수가 없었다. 버지니아 스티븐과의 만남은 그 편지의 모든 단어를 이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네가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견고한 미래를 설계하기를 바란다.’

헤르만 카프카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리는 듯했다. 크고, 권위적이며,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 아버지는 '견고한' 세계의 신이었다. 그 세계에서 모든 것은 명확했다. 돈, 지위, 결혼, 건강한 아이들. 그것이 삶의 기둥이었다. 아버지는 맨손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룩한 거인이었다. 그 거인의 그림자는 프라하를 넘어 이곳 뮌헨의 작은 하숙방까지 길게 드리워져, 그의 아들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오늘 그가 카페에서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나. 갑충, 부서진 논리, 영문 모를 소송, 의식의 흐름. 그것은 아버지가 경멸하는 '문학이라는 유령'들의 소굴 그 자체였다. 그는 오늘 아버지의 세계에 정면으로 반역을 꾀한 것이다. 버지니아 스티븐이라는 낯선 여인은 그 반역의 공모자였다. 내일 미술관에 가는 것은 그 반역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카프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도, 그렇다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없는 경계인이었다. 그는 두 세계 사이의 황량한 무인지대에 영원히 갇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예민함을 병으로, 그의 문학적 열망을 나약함의 증거로 여겼다.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거대한 기대와 실망이라는 조건과 함께 왔다. 그 사랑은 그를 키운 자양분이 아니라,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 무거운 돌이었다. 그는 평생 아버지라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서, 그 그림자의 경계를 넘어서려 발버둥치다 결국에는 그 그림자에 삼켜져 버릴 운명인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창문은 안개 때문에 흐릿했다. 그는 저 안개 너머에 있을, 내일 아침의 미술관을 생각했다. 그곳에 가는 것은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는 행위일까, 아니면 그저 더 깊은 혼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몸짓일까. 그는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침대에 쓰러져, 갑충처럼 몸을 웅크린 채 불안한 잠을 청할 뿐이었다.

"정말 흥미로운 청년이었어, 그렇지 않니?"

카페를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토비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유쾌함이 남아 있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미묘한 혼란과 우려가 섞여 있었다.

"흥미롭다고?" 버지니아가 창밖의 흐릿한 풍경에서 시선을 거두며 되물었다. "토비, 그건 너무 평범한 표현이야. 그는... 그는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심연을 일상처럼 들여다보는 사람."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은 방금 겪은 지적인 격전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카프카와의 대화는 케임브리지의 학자들과 나누는 점잖은 토론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험했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의 언어는 구축하는 언어가 아니라 파괴하는 언어였다. 그는 기존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현대 세계의 불안과 파편화를, 그는 온몸으로 앓고 있었다.

"글쎄다." 토비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분명 독창적이었지만, 너무 병적으로 어둡지 않니? 세상이 아무 이유 없는 재판정이고 우리는 모두 피고인이라니.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겠어? 그의 눈을 보니,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 같더구나."

"바로 그거야! 그는 믿고 있어!" 버지니아가 손뼉을 마주쳤다.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을 꾸며내는 게 아니야. 바이런처럼 고뇌하는 천재인 척 연기하는 게 아니라고. 그는 자기가 본 것을, 겪은 것을 그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야. 그게 바로 그의 글에 그런 무서운 힘을 주는 거고. 그는 우리 시대의 병을 진단하는 게 아니라, 그 병 자체가 되어버린 사람이야."

"의사보다는 환자에 가깝다는 말이구나." 토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위대한 작가는 모두 의사인 동시에 환자여야 하는 건지도 몰라."

버지니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그녀가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새로운 인간형의 원형처럼 보였다. 행동이 아니라 사유가 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인물. 외부 세계의 사건이 아니라 내부 의식의 폭풍이 그의 삶을 이끌어가는 인물. 그의 고독은 낭만적인 고독이 아니라, 우주적인 고독이었다.

마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방으로 올라갔다. 토비는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지만, 버지니아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잉크병을 열고, 자신의 두꺼운 일기장을 펼쳤다. 그녀는 오늘의 만남을, 그 강렬했던 인상을 단어 속에 붙잡아 두어야만 했다.

10월 12일, 뮌헨.

오늘 카페 슈테파니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F. K. 라고만 적어두자. 그는 프라하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그의 침묵은 다른 사람들의 소란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내가 본 그 어떤 눈보다도 검고 깊었다. 그것은 우물이 아니라, 바닥이 없는 터널 같았다.

그의 언어는 기이하다. 그는 '갑충'에 대해 이야기했고, '소송'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게 세계는 논리가 아니라 악몽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나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의 세계는 너무나 남성적이고 폐쇄적이다. 그의 인물은 방 안에 갇혀 있지만, 나는 방 밖으로 나가 세상의 모든 인상을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그의 정직함, 자신의 가장 깊은 공포를 직시하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려는 그 끔찍한 용기 앞에서 나는 경외감을 느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가, 아니면 시대의 가장 깊은 병에 잠식당한 것인가. 어쩌면 둘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프카가 말한 '죄 없이 기소된 피고인'이라는 이미지가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이 단지 그의 개인적인 신경증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보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위대한 학자이자 작가였던 레슬리 스티븐 경. 아버지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거대한 그림자처럼 그녀의 삶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카프카의 아버지가 드리우는 그림자와는 성격이 달랐다. 헤르만 카프카의 그림자가 폭압적이고 물질적인 권위의 그림자라면, 레슬리 스티븐의 그림자는 거대한 지성의 그림자였다.

아버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성과 합리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서재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질서정연하게 분류되어 있는 작은 우주와도 같았다. 그는 딸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즐겼지만, 동시에 여성의 감상적인 측면을 경계했다. 그는 버지니아가 제인 오스틴을 칭찬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브론테 자매의 격정적인 소설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언제나 명료함과 논리를 요구했다.

버지니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혼돈스러운 글쓰기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의 그 견고한 이성의 세계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녀는 아버지의 질서정연한 서재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그 서재 바깥의 안개 낀 거리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비합리적인 세계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와 카프카는 서로 다른 종류의 아버지와 싸우고 있었다. 카프카는 폭군 같은 아버지의 '명령'에 저항하고 있었고, 그녀는 위대한 아버지의 '지성'이라는 유산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한 명은 억압적인 힘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다른 한 명은 거대한 지성의 그림자 아래서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의 거대한 법정에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변호해야 하는 피고인이었던 셈이다.

갑자기 카프카의 고통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불안이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내일 그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녀는 그의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고, 동시에 그를 자신의 빛이 있는 세계로 초대하고 싶었다.

그녀는 일기장을 덮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뮌헨의 밤은 깊었고, 내일 아침의 약속은 이제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역사적인 무언가의 시작점에 서 있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두 개의 다른 그림자 아래서 고뇌하던 두 영혼이, 이제 막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카프카는 동이 트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밤새 그는 불안한 꿈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거대한 미술관의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복도는 끝이 없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은 모두 텅 빈 캔버스이거나, 아니면 그의 아버지가 비웃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초상화였다. 그는 출구를 찾아 미친 듯이 달렸지만, 복도는 계속해서 그의 앞에서 길어지기만 했다. 마침내 그는 한 문을 발견하고 열었지만, 그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텅 빈 허공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잠에서 깬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의 불안은 점점 더 거대해져 그를 집어삼킬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프라하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며 수십 번도 더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옷을 고르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고문이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 너무 차려입으면 속물처럼 보일 것이고,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그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는 옷장 앞에서 십 분 넘게 망설이다가, 결국 어제 입었던 것과 비슷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정장을 골라 입었다. 그것은 그의 갑옷이자 위장복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창백하고 겁에 질린 청년이 서 있었다. 움푹 들어간 눈, 날카로운 광대뼈, 단단히 다문 입술. 저 얼굴로 어떻게 그 지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남매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그는 거울에서 눈을 돌리고 방을 나섰다.

거리로 나온 그는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그는 미술관 주변을 정처 없이 맴돌았다. 혹시라도 그들이 먼저 와서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또한, 만약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의 거대한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은 아침 안개 속에서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대한 기둥과 정교한 조각들은 인간의 이성과 질서, 역사의 위대함을 뽐내는 듯했다. 저 안에는 뒤러와 렘브란트, 루벤스의 걸작들이 잠들어 있을 터였다. 저 완벽한 아름다움과 조화의 세계 앞에서, 자신의 혼란스럽고 추한 내면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어젯밤의 대화는 그저 카페의 담배 연기 속에서 피어난 하룻밤의 망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밝은 아침 햇살 아래, 이 이성의 신전 앞에서 그 모든 이야기는 한낱 치기 어린 감상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는 미술관 앞 광장 반대편에 서서 건물을 노려보았다. 심장이 다시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돌아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하숙집 방향으로 몇 걸음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광장 저편에서 익숙한 인영 두 개가 나타났다. 토비 스티븐의 건장한 체격과, 버지니아 스티븐의 우아하고 긴 실루엣. 그들은 안개를 헤치고 미술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버지니아는 무언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손짓을 하고 있었고, 토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카프카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는 다시 한번 도망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의 발은 또다시 땅에 뿌리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를. 그녀는 짙은 녹색 외투를 입고 있었고, 깃을 따라 부드러운 털이 달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운 아침 공기 때문에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회색 눈은 생기와 지성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이 안개 낀 뮌헨의 아침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혹시 그를 찾고 있는 것일까. 카프카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 나무 뒤에 영원히 숨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저 안개를 헤치고 그들에게로 걸어 나갈 것인가.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운 과거의 방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그의 언어를 '진실'이라고 말해준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내디딜 것인가.

그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광장을 가로질러 그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거대한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들었다.

그가 광장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버지니아가 그를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옆에 있는 오빠에게 무언가 말하더니,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단순한 손짓이, 카프카의 세상을 지배하던 모든 불안과 공포의 막을 잠시 걷어내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어색하고 뻣뻣했지만,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마침내 세 사람은 미술관의 거대한 돌계단 앞에서 마주 섰다.

"카프카 씨, 좋은 아침입니다." 버지니아가 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밤새 잘 주무셨나요?"

카프카는 차마 꿈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그의 불안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미술관의 육중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들어갈까요? 과거의 거장들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군요. 어쩌면, 우리가 어젯밤에 나눴던 이야기의 답을 저 안에서 찾게 될지도 모르죠."

그녀의 말은 예언처럼 들렸다. 카프카는 고개를 들어 이성의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안개처럼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잉크처럼 선명한 존재감을 지닌 여인을 보았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의 등 뒤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새로운, 미지의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그 빛을 따라, 거대한 청동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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