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 오르막길
“공무원 합격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일 년간의 임기제 공무원을 마치고 전업 수험생으로 돌아가면서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들에게 약속했다. 일 년간 경력도 쌓고 돈도 모으고 휴식도 갖고 나니 다시금 공부할 기운이 났다. 이번에는 정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루 12시간씩 공부해야지.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 자신을 기대하면서 힘차게 전업 수험생으로 다시 이직했다. 하지만 막상 다시 전업 공부를 시작해도 기대와 다르게 성적은 가파르게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가 더 길어지는 기분이었다. 일 년을 일하면서 영어만 팠는데도 정체가 된 점수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공부에 재능이 없는 걸까.
넌 잘될 거야. 응원할게.
항상 열심히 하니까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겠냐. 걱정하지 마.
알고 있다. 상대방이라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 말 외에는 더 할 수 있는 말도 없다는 것을. 이것보다 더 좋은 말이 과연 있기나 할까. 허나 이 말이 실패에 익숙해져 버린 내 가슴 한편을 옥죈다. 이러다가 또 실패하면 남들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될까? 운이 안 좋았다고? 너무 긴장해서 실수했다고? 나의 실패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남들의 평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준비하고 노력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것만큼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없다. 나의 성실함이 이 결과로 사실은 게으름쟁이라는 것으로 판명날까봐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일반행정 공무원 시험을 두 번이나 시도하고 실패했다. 이후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조금 더 낮은 합격선인 사회복지로 직렬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사회복지 합격선은 일반행정에 비하면 많이 낮았기에 충분히 지금 실력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기제로 일을 하는 동안 정부가 바뀌면서 공무원 티오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덩달아 사회복지 직렬의 합격선이 대폭 상승하여 일반행정과 몇 점 차이도 나지 않는다. 경쟁률은 18대 1. 지금껏 친 일반행정직 경쟁률보다 더 높은 경쟁률이다. 이제는 관운마저 없는 건가. 부모님은 경쟁률이 치솟았다는 소식을 듣고 대신 환경을 탓해주었다. “아니 정권 바뀌었다고 갑자기 티오가 줄면 공부하던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그러냐” 하지만 누굴 탓할까. 많이 뽑던 시기에 합격문을 닫고 들어가지 못한 내 탓이지. 남탓할 기운도 없다.
♪한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 줘
그러면 견디겠어
공부를 하다 보면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아무리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도 그림자처럼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또 불쑥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왠지 모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래, 한걸음에만 집중하자. 이런 말을 하면서 노래나 부르고 있는 모습이 모순적이긴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에만 집중할 뿐 끝은 보지 말자는 가사는 수험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시험의 끝을 바라보면 엄청난 양에 오히려 두려워서 책을 필 용기가 안 난다. 하지만 오늘 하루 해야 할 공부 양에만 집중한다면 분명할 만한 도전이다.
그래도 삼 년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시험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무조건 합격만을 외쳤다면 이번에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았다. 확률적으로는 그게 더 현실에 가까웠다.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 너무 뻔한 클리셰 같지만 점점 그 말을 믿게 되었다. 혹시나 떨어짐을 대비한 자기 핑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포기한다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 시험 전날, 그동안 공부한 모든 수험 책을 쓰레기통에 냅다 버렸다. 쓰레기통을 넘길 만큼 쌓여있는 문제집을 버림과 동시에 나의 삼 년의 시간들도 모두 미련 없이 보낸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내일 실패해도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내일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설령 그 결과가 실패라도 다시는 저 책들을 보지 않으리라. 동시에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아버지 제게 이 고난의 잔을 치워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기도했던 그 심정을 미약하게나마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일 후회 없이 시험 치르고 결과는 신에게 맡기자. 그동안 힘든 길 오르느라 고생 많았다. 그만 내려가자.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때문일까.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일까. 모의고사 때도 받아본 적 없는 높은 점수로 합격이란 결과를 받으며 길고 긴 취업생활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문득 궁금하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정말 다짐한 대로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갔을까. 아니면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도전했을까. 혹은 실패했다면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이런 글조차도 쓰지 않았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험 보기 전 다짐했던 그 마음대로 움직였을 거라고 믿는다.
긴 취업생활을 보내면서 깨달은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소중함이었으니까. '코로나가 올해도 올 거야' 라면서 아무 노력도 안 한 식당과 열심히 노력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망한 식당은 그다음이 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