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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발버터 Oct 27. 2024

다 지나갈 거야

원필 - 언젠가 봄은 찾아올 거야

“이야. 그쪽이 어떻게 공무원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당장 팀장 바꿔”

“선생님. 어차피 팀장님이랑 통화해도 결국에는 저랑 다시 통화하게 되어있어요. 제가 담당자니까요. 그러니까…”

“저 그쪽이랑 그동안 통화한 거 다 녹취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요?”

그러면 안 됐는데 내 마음속의 작은 발작버튼이 눌리고 말았다. 딸-깍

“잘됐네요. 그럼 녹음한 거 다시 들어보세요. 아무 문제없으니까.”

“계속 그런 식으로 하시겠다? 아니, 당신이랑 할 말 없으니까 팀장 바꾸라고!”

“팀장님 지금 자리에 없어요. 나중에 오시면 말씀 드…” 뚜. 뚜. 뚜.


또 끊어버렸다. 하. 미간에 주름 생기면 안 되는데. 이미 내 미간에는 두 개의 깊은 골짜기 자리 잡고 있다. 이 민원인과 통화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 업무는 환불 중재이다. 그런데 이 민원인은 아직 물건을 사지도 않았으면서도 업체가 구린내가 풀풀 풍겨서 구매를 못하겠다며 계속 전수 조사하라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 현장조사까지 벌여 아무 문제 없음을 확인하고 연락했지만 막무가내이다. 아니, 그럴 거면 검찰에 특검하라고 요구하세요. 권한 없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라고 할 뻔했으나 간신히 입 밖으로 빼지는 않고 있다. 


처음에는 그토록 바라는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비록 계약직 공무원이지만 공부할 자금을 다시 모을 수도 있고 경력도 쌓을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버렸다. 뉴스에서 많이 보긴 했다만 그것이 눈앞에서 벌어질 줄이야. 왜 힘들게 공부하고 합격한 젊은 공무원들이 이곳을 떠나는지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흑화 되는 가운데 요즘 특이한 루틴이 하나 생겼다. 이 민원인과 한차례 전쟁을 할 때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복도를 걷는 내내 가슴속 심장소리만 유독 크게 들린다. 화장실에 도착한 후 창 밖을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노이즈 캔슬링으로 회사로부터 유체이탈을 시도한다. 잠시나마 내 영혼을 달랠 시간이다.


♪하루하루 쉴 틈 없이

조급하게 쫓기듯 살아가

언제부터인지

고개는 아래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또 그렇게

난 살아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오늘도 날 다그치며 버텨

애써 웃음을 지으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그렇게 또 그렇게

난 살아가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하루 끝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오길

행복해질 거야

힘든 길이라 해도 지나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 웃어보자

손 꼭 붙잡고 한번 버텨보자


이 노래 가사는 나에게 마치 최면과 같다. 그래 이 민원인만 넘어가면 괜찮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이 사람 때문에 포기하면 너무 아깝잖아. 일 년만 버티자. 언젠가는 결국 해결될 거야. 임기제 공무원 잘 마치고 나중에 공무원 시험도 꼭 합격할 수 있을 거야. 창 밖으로 도로 위 차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들도 참 열심히 사는구나. 남들도 다 열심히 사는데 이게 뭐라고. 이어폰을 주머니에 넣고 깊은 심호흡을 한 뒤 다시금 사무실로 터덜터덜 들어간다.


퇴근 후에도 답답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 사람을 대체 어떻게 해야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루종일 이 사람만 생각하다 보니 이 민원인에게 정이 들 것만 같았다. 야근하면 범죄인데 생각지 말아야지. 답답한 마음에 거실에서 열심히 실내 자전거를 탄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 갑갑한 마음을 해소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오 아들 요즘 운동 열심히 하네. 그래 뱃살 빼야지 이번기회에” 엄마는 그저 아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은가 보다. 어머니. 아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다 으스러질 거 같답니다. 유튜브 검색란엔 어느덧 악성민원이라는 키워드가 입력되고 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독서실 책상에 앉아 영단어를 펼친다. 아오 민원인 때문에 짜증 나는데 공부까지 해야 하다니.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공부만 하는 수험생일 때는 그토록 직장을 갖고 싶었는데 직장을 갖고 공부를 하니 다시 전업 수험생이 부럽다. 수험생 때는 외롭긴 했지만 인간관계로 힘들지는 않았는데... 쉽게 펜이 들리지가 않는다. 눈은 영단어를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내일 아침 그 민원인과 투닥거리는 모습이 다시 한번 아른거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 어차피 말해봐야 댓글에서는 누칼협(누가 공무원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음?)이라고 조롱이나 받을게 뻔하다. 그나마 음악 가사만이 유일하게 잠시 쉴 수 있는 길이다. 오늘도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행복해질 거야

아팠던 상처들 다 잊어버리고

모두 지워 버리고

언젠가 봄은 찾아올 거야

행복해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행복해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행복해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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