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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Jan 03. 2024

흥보놀보 이야기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흥보와 놀보 형제가 작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어요. 흥보놀보의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네 가족이 몸을 바짝 붙여 자야만 했어요. 아직 어린 흥보는 발을 뻗고 잘 수 있었지만, 형 놀보는 항상 무릎을 굽혀서 자야만 했답니다. 심성이 착한 놀보는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홍보를 보며 매일 밤 기꺼이 불편을 감수했어요.


시간이 흘러 흥보가 놀보만큼 커졌을 때 즈음, 잠을 자려고 누운 홍보는 자신도 더 이상 발을 뻗고 잘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늘 대자로 누워 잠에 들던 흥보는 불편해서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족이 모두 잠든 틈을 타 은근슬쩍 형을 밀치고 비스듬히 누워 잠에 들었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놀보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가족이 걱정할 것을 걱정하는 놀보의 넓은 마음씨는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시장에서 시래기를 팔고 돌아오던 놀보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흥보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어요.


    "흥보야! 저녁 무러 가자!"


우렁찬 목소리에 흥보와 그의 친구들은 단 번에 놀보를 쳐다보았어요. 그때 흥보의 친구 덕칠이가 덩달아 외쳤어요.


    "니 행님 허리 와카노! 할배 아잉교!"


친구들은 흥보의 양쪽에서 푸하하 하는 웃음을 터트렸어요. 놀보의 허리는 정말이지 할아버지처럼 폭삭 굽어있었거든요. 그런 놀보가 부끄러웠던 흥보는 형과 친구들을 모두 내팽개치고는 뒷산으로 도망쳐버렸어요.


뒷산은 매번 형이랑 무를 따러 올라왔던 곳이기에 익숙했지만, 막상 혼자 걷던 흥보는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설상가상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기에 흥보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하지만 흥보는 곧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여린 흥보는 눈물이 일어 오르기 시작했고, 하염없이 헤매며 소리를 내며 울었어요.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나 형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면서요.


한참을 걷던 흥보는 어깨 뒤로 바스락, 소리를 들었습니다. 겁에 질려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는 흥보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바스락 소리를 낸 무언가는 푸드덕이며 흥보의 앞에 섰어요.


짹-


저건, 새 아니야? 흥보의 앞에 선건 몸집이 작은 새끼 제비 한 마리였어요. 흥보는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호랑이나 멧돼지처럼 자신을 잡아먹을 짐승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 줄 신의 존재를 만난 것 같다는 본능적인 안도감에 휩싸였어요. 흥보는 제비를 따라가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비는 절대 날지 않고 얇디얇은 다리로 총총 뛰어서 길에 앞장서고 있었거든요. 그 모습은 마치 흥보의 느린 걸음을 기다려주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제비를 따라 걷던 흥보는 풋,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늦은 밤 제비와 함께 일탈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방금 전까지 아기처럼 엉엉 울던 자신을 잊어버리고 환히 웃는 흥보를 놀보가 본다면 엉덩이에 뿔난다며 놀려댈게 분명했습니다.


'얼른 내려가서 혼자 산에 다녀온 걸 자랑해야지!'


앞장서 걷던 제비는 갑자기 휙 하고 뒤를 돌았습니다. 어라, 벌써 산을 탈출한 것이었어요. 흥보는 기뻐서 양팔을 벌리고 만세 하며 소리쳤습니다. 제비는 다시 휙 하고 돌더니 저 멀리 하늘로 사라져 버렸어요. 그런 제비를 보며 흥보는 외쳤습니다.


"제비야 고마워.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렴. 나도 네게 도움을 줄게!"


-3시간 전-


한편, 부모님과 놀보는 사색이 되어 사라진 홍보를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좀처럼 흥보가 보이질 않자, 세 가족은 각각 흩어져 홍보를 찾기로 하고 놀보는 아까 홍보를 만났던 시장 근처로 향했어요.


"동생을 찾는구나."


놀보에게 말을 건 사람은 바로 마을 안에서 반쯤 미쳐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할머니였어요. 평소였다면 부모님의 말씀대로 할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동생의 행방을 알고 있는 듯한 할머니를 지나칠 수는 없었어요. 놀보는 할머니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 저희 동생을 보셨습니까?"

"그렇고 말고. 오늘 죽을 운명인 것까지 보았느니라."

"예? 제 동생이 죽다니, 그게 무슨...!"


황량하고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놀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흥보를 잃을까 겁이 난 놀보는 할머니에게 동생을 살려달라고 싹싹 빌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씩 웃으며 말했어요.


"아가.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단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거라. 그럼 내가 네 동생을 살려줄 터이니."


하지만 놀보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다름 아닌 흥보였기 때문이에요.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은 흥보인데 어찌 흥보를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흥보는 너의 것이 아니지. 흥보를 향한 네 마음이야말로 너의 것 아니겠느냐."


놀보는 고심했어요. 흥보를 향한 마음만 바친다면 흥보는 건강히 돌아올 수 있고, 흥보의 그 무엇도 잃지 않을 것이었어요. 그 대가로 잃는 건 오직 놀보의 마음뿐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흥보는 앞으로도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어요. 놀보는 자신의 마음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흥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제 아무리 소중하다 할지라도, 기꺼이, 겸허히.


놀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는 한 번 더 씩 웃으며 말했어요.


"제비를 한 마리 보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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