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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Dec 20. 2023

유기의 사랑

보고 싶었어요. 나 그대를 기다렸어요. 밖을 봐요. 새벽에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고 있잖아요. 난 그 순간부터 당신이 그리웠어요. 새벽 말이에요. 머리 위로 하얀 눈송이가 맺혀있네요. 당신의 첫눈이었나요?


나는, 사랑에 미숙해요. 나는, 버려져왔거든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내가 버려진 줄도 몰랐어요. 어렸기도 했고요, 처음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기에 그저 기다렸던 거예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내 기다림이 부족하였던 걸까요. 아,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나는, 나는, 미안해요. 내가 멍-청했어요. 과거의 인연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나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잖아요.


나는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잘못해서, 내가 모나서 그들이 떠나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아무도 말을 안 해주고 떠나니까,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떠나면, 그러면 나는,

정말이지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혹시 내가 싫어졌나요?


나를 안아줘요. 갑자기 찾아온 한파 때문인지, 따뜻하게 입었는데도 온종일 몸이 으슬으슬 떨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나를 꼭 안아주란 말이에요.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날 거라는 확신이 들던 날이 있었어요. 나는 끝도 없이 무서워졌어요. 그래서 해보려고 한 거예요. 당신을 버리는 것을요. 나도 당신을 버리는 것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그대 앞에 내가 있으니 그대도 결말은 알겠지만서도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요. 나는 버림을 행할 용기도 없거니와, 끝없는 미련 따위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 걸요. 그래요. 미련 따위요. 너무 안 좋게 바라보지는 말아요.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 같은 거예요. 미련은 저항해 주거든요. 음, 죽음까지도요. 그래서 내가 그대를 만날 수 있었고요. 당신은 알았나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나요?


당신이 나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었나요? 주위에서 왈-가왈-부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나요?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나요? 왜 나를 사랑하나요? 대체,


나는 그대뿐이지만서도 그대는 나뿐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당신의 손이 너무 따뜻한 거예요. 내가 그리워하는 게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따뜻한 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끔 나는 당신과, 어쩌면 당신의 손이 그리워 울기도 해요. 그러면 당신은 그때마다 어떻게 알고서는 매번 그 손을 내밀어주잖아요. 그대는 내가 울었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거죠?

나는 그 손이 좋아서 괜히 더 울어본 날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지쳐버린 거예요. 난 이제 당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데에 지쳤어요. 고작 당신의 따뜻한 손 하나로, 나는 드러누워버렸어요. 저항할 수 없는 나른한 잠이 쏟아져요. 지금이 몇 시더라, 아무렴......

나에게 내제 하던 사소한 의문조차 사라져 가요. 받아들일 수밖에.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오롯이 믿어볼 수밖에. 믿음이라, 믿음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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