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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Aug 04. 2024

약속 1시간 전

“우리 오늘 만나는 거지?”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씻고 선크림까지 발랐지만, 나갈 준비를 다 했다고 해도 집 밖을 나서기가 천근만근이다. 아프다고 할까? 어디가? 점심을 먹고 체했다고? 에어컨을 오래 쑀더니 냉방병에 걸린 것 같다고?

너무 뻔하잖아.

그러면, 일이 바쁘다고 할까?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할까?

됐다 됐어.

약속을 어기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다.

“응. 좀 이따 봐~”


결국은 어기적 어기적 교통카드가 되는 신용카드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제일 편한 쪼리 신발을 신는다.

떠나는 집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여덟 시간 동안 텅 비어있을 우리 집. home sweet home.


약속이 없었다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날이었다. 노을 질 시간에 거실에서 요가도 하고, 만화책도 읽고,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서 가벼운 저녁을 먹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오늘 하루가 온통 약속에 가지 않을 이유들로 가득하다. 마치 세상이 내 약속을 취소하려고 나를 시험하는 기분.


하지만 약속이 없었더라면?

나는 알지.

약속이 없는 날의 하루를 알지.

보통 그런 날의 나는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마라탕 먹방을 보고 배달을 시킬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는 하루를 보낸다. 마라탕에 꿔바로우를 혼자 먹기는 무리라며, 나와 함께 꿔바로우를 나눠먹을 친구를 만나러 나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정말 그랬을 것 같아서 푸핫.

이거 이거 배가 불렀네.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는 못할망정!


이런 생각을 하니까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나올 거 고민하지 말 걸~

그러니까 나에게 자유를 주지 말란 말이오!

(아무도 준 적 없음. 뺏은 적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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