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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Aug 11. 2024

너 T야?

MBTI가 유행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하고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힉, 2019년도부터란다. 지금이 24년이니까 5년이 홀라당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을 MBTI로 소개하기도 하고, 상대의 MBTI를 궁금해하거나, 맞춰보기도 하면서 참 잘도 놀았다. 이거 없었을 때는 어떻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을까?

그전에도 "너 혈액형 뭐야?"라는 질문을 인사치레로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MBTI는 위대하게 존재하고 있다.

MBTI 덕분에 나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게 되고, 남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게 되어 여러모로 고마운 점이 많았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5년 동안 나를 ESFJ라고 소개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엣프제입니다. 라며.

그러다가 며칠 전 인증기관에서 MBTI 검사를 받았는데 내가 ESTJ란다.

세상에. 내가 T라니. 내가 T라니!


처음에는 마냥 놀랐다.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를 보면서 엉엉 우는(선수도 안 우는데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이긴 경기였음.) 내가 T라고요?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내가 T라고요?


선생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공감력이 높다고 다 F는 아니란다. 의사결정을 할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느냐 아니면 관계를 따지느냐, 뭐 이런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와중에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진단다. 그랬나? 의사결정... 점심메뉴 정할 때 빼고는 딱히 안 해서 모르겠다.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전문가의 말은 의심 없이 수긍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엣티제입니다. 바로 개명.

얘들아 내가 T래~ 내가 로봇이래~ 내가 기계래~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다음 날부터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날아갈 듯이 방방 떴다. 마음이 가벼웠다.

대체 뭐가 떨어져 나갔길래? 나사가 떨어져 나간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 5년 동안 F로서 공감을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심연 아래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초면인 사람의 MBTI를 맞출 때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T 같아도 F라고 말했던 기억들을 돌이켜보면, F가 T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F로서의 한계를 느껴온 내가 있었다. 나는 루틴도 못 지키고, 나는 감정적이고, 나는 충동적이야... 나는 어설픈 사람이야... 의 마음. 이런 류의 나약한 마음에게는 T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MBTI에 맞춰서 살아가야 할 것 같았나 보다. 스스로를 엣프제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T니까. 나는 지독한 T니까!!!


이런, 엣티제 감옥에 갇힌 거 아닌가 문득 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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