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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19. 2022

고추 떨어지는데...

이상합니다. 분명 깨끗하게 한다고 했는데 저게 왜 아직 남아있을까?


태초에 조물주는 분명. 여자에게 매의 눈보다 더 날카로운 시력을 전해준 것이 분명합니다. 접시에 남아있는 굳어버린 밥풀떼기 한점. 아내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뽀득뽀득 퐁퐁두번에 따듯한 물 부어 존슨즈베이비로션 발라놓은 아기 얼굴처럼 만들어 놨었는데. 저 한점 남아있는 밥풀떼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 한점 닦아내지 못한 나보다 저 한점 발견한 아내의 눈썰미가 더 무섭습니다.


"저게 보이나..." 이 말 읊조려 보지만 집사람 한마디에 할 말을 잃습니다. "왜 저게 안보일까?"

내 생각으로는 보이는 게 더 신기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한마디 투덜댑니다. 아니 못 볼 수 도 있지. 그냥 대충 살면 안 될까? 다른 것에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설거지 후 티끌만큼 이라도 남아있는 그 "무엇"과 화장실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에 내가 보기엔 "병적인" 깨끗함을 강요하는 아내입니다. 같이 산지 20년 정도 되면 그냥 무뎌질 만도 한데, 도저히 그게 넘어가지지 않나 봅니다. 가끔 기분 좋을 때 스스로 "나 약간 병인 거 같아 그지?" 라며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긴 합니다. 알고 있으니 병원까지는 안 가도 되겠구나 방심하는 순간. 아내의 "지적"과 "참지 못함"은 시작됩니다. 나도 "신경질"이 나고 그 성격 "지적"하고 싶습니다."나 안 해!!!" 큰소리 지르지만. 마음속 외침일 뿐입니다.  


내 딴에는 이 정도 집안일 도와주면 큰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여보!"라고 부르면 또 안 닦였나? 섬찟 놀라며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그 잔소리 하나 듣고 심히 맘 편하지 않다는 남편의 불쾌감을 가득 찡그린 얼굴 표정과 "아이고야"라는 한숨 섞인 한마디로 나름 반항이라며 내뱉었습니다. 본격적인 신경전이 펼쳐지며 한마디 실수로 "전쟁"이 시작될 수 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뒤돌아서 거실로 나가다 나 혼자 "에효~"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부엌과 거실 사이 작은 화장실. 기어이 나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혹시 세면대 옆 머리카락 떨어진 건 없는지 버릇처럼 곁눈질하다 아내에게 들켜버렸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 이미 익숙해버린. 굴복을 들켜버린. 어깨 좁은 남편은 애써 아닌 척하며 터덜터덜 밀려가고 있습니다.


"아들.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져"라  웃으며 등 떠밀던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의 자장가 song by 사랑과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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