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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용자

by 비뭉 Feb 06. 2025

2019년에 혼인 도장을 찍은 우리 둘은 5년을 단칸방에서 살았다.

요즘 결혼하는 커플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좁디좁은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그 당시에 결혼할 생각 또한 크게 없었다.

다만 왠지모르게 결혼을 다소 일찍 할 것 같다는 설명못할 느낌만 간직하고 살았을 뿐이다.


내 결혼은 남들과 다르게 약간 꼬인 편이다.

보편적으로는 결혼을 전제로 집을 구하는 순서가 맞겠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여자친구가 별 생각없이 신청한 신혼부부 임대주택에 우리가 덜컥 당첨된 것이다.

그 아파트입주하기 해선 수개월 내로 혼인 신고를 끝마쳐야 했다.


크게 환영할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예비 300번대까지 당첨이 되는 별볼일 없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고자 결혼을 결심한다?

넓은 평수라면 모를까. 고작 10평 안되는 1.5룸이었다.

덜컥 당첨은 되어버렸는데 기분이 좋아야 하는건지 나빠야 하는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고작 28살에 결혼을 해야한다고?'

처음 마주하는 결정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소식을 전하는 와이프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우린 서로 말 없이 200m 정도 이어진 산책길을 걸었다.


입주를 포기하자니 매우 저렴한 월세가 눈에 밟혔고 그 집에 들어가자니 결혼을 해야 했다.

'나 어떡하냐?'

결혼은 일찍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은 지만 그게 하필 지금이라니?

'결혼한다. 안한다. 한다. 안한다. 한다. 안한다... 에라 모르겠다! 월세나 좀 아끼자. 어차피 앞으로 헤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이참에 해치워 버리자!'

나는 직진을 선택했고 그 길로 우리는 빠르게 결혼했다.

결정은 쿨했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이 참 복잡하더라.

결혼이란 것, 한번 하면 끝 아닌가. 인생에 가장 신중해야 하는 선택일진대 이렇게 간단히 매듭짓는게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그땐 알 수 없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는 5년의 긴 시간을 여기서 살았다.

복도식으로 설계되고 층간소음에 취약하던 좁디좁은 집.

200세대 남짓한 소형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예비 300번대까지도 입주할 정도로 인기없던 집.

세상을 잘 모르던 어린 우리에게 어울리는  어설픈 집이었다.

작게 딸린 방 하나는 와이프 옷을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능을 다 했다.

나머지 공간은 거실 겸 침실, 프리랜서이던 배우자 사무실로 쓰이는 등 극한의 활용도를 보여주었다.

세월이 흐르며 어느정도 적응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싸움만큼은 난제였다.

다툼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건만 우리에겐 그만한 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저 서로 등을 돌리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뻘쭘함을 견딜 수 없어 화해해야 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1년, 2년, 3년, 4년, 5년째 되던 어느날

아! 몸도 마음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더라.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 버틸만큼 버틴것이 아닐까?"

나와 와이프 모두 같은 마음이었고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단계임을 느꼈다.

그간 저축한 돈을 긁어 모아 집을 바꾸고 15년된 차를 바꿨다.

단칸방 5년 생활 속 켜켜이 쌓인 응어리를 모조리 해소시키겠다는 듯 식기세척기를 시작으로 정수기, 청소기, 소파, 침대 등등 마음 먹고 바꿔나갔다.

더 큰 집으로 이사가던 날, 복도에 붙어 통풍이 잘 되지 않아 곰팡이로 얼룩진 옷방을 보며 외쳤다.

'이제 드디어 해방이다.'


신혼을 단칸방에서 시작하겠다는 사람이야 드물겠지만 만약 있다면 내가 한번은 말리고 싶다.

"내가 5년 버텨봤다니까? 한 명은 몰라도 둘이 그렇게 사는거 아니야."

좁은데서 살면 좋은 것? 딱 하나, 청소는 쉽다.

그것 말고는 글쎄... 싸워도 금방 화해해야하는 환경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정도?

로맨스는 딱히 없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월세가 싸니 돈이 좀 모이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그러나 애초에 여력이 되면 넓은 집으로 가셔라.

나와 와이프는 너무 일찍 결혼한 바람 앞으로 견뎌나갈 세상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단칸방 덕분에 지금의 배우자를 얻은 사실나만 간직하고 있는 낭만 포인트다.

냉정히 따져봐야할 세상의 계산서를 굳이 들여다 보지않고 사람 하나만을 바라본 것. 그렇기에 결혼도 단순하게 결정한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 단순함의 대가가 결코 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작은 집이었기에 매번 같은 공간 안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한 쪽에서는 책을 읽고 바로 옆에 누군가는 영화를 보았다.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

TV 소리가 너무 크다고, 무슨 이 시간부터 잠을 자냐고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수더분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리 감동할 만한 추억거리는 딱히 없다.

그래도 그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서로 웃기고 재밌게 사는 것 이외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만, 돌아보면 재밌었다.

5년 전 단칸방 침대에 누워있던 나와 배우자를 회상해 본다.

우리 그땐 되게 말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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