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블 Jun 12. 2024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_ 장미꽃차 (1)

 안녕하세요. 점장님. 접니다. 저번에 산발 머리로 카페를 방문했던 아줌마요. 후후 그로부터 벌써 한 달의 시간이 지났네요.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그때 주셨던 장미 차 생각이 나서 재료를 사다가 우려먹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점장님이 만들어 주시는 차가 더 좋은 거 같아요. 그 차는 잊을 수가 없어요... 제 인생을 바꿔준 차거든요.


 뭐가 바뀌었냐고요? 먼저 외모가 엄청 변했어요. 허리까지 늘어져 얼굴을 다 가리던 산발머리를 숏 컷으로 잘랐습니다. 펑퍼짐하게 온몸을 가리고 있는 옷도 이제는 청바지에 흰 티를 입어요. 아마 저를 만나면 누군지 못 알아보실 걸요? 후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카페를 방문하게 된 게 제 인생의 크나큰 축복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늘 속에서 살고 있었던 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요? 에이 진짜 아니에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카페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원래 남편과 아이들의 그늘 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남편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주부였죠. 매일매일 아침식사를 챙기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장보고 저녁 하고...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었죠.     


 옷 챙겨 입는 것도 너무 귀찮았어요. 그래서 항상 펑퍼짐한 홈드레스였죠. 남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건 안중에 없었습니다. 머리 안 빗고 산발을 해서 다녔죠.     


 그런 모습으로 장 보러 가면 시장의 계산대에 계신 분이 저를 힐긋힐긋 쳐다보았어요. 그 눈빛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냥 빨리 계산이나 하지..라고요.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만들면 한두 명씩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 제가 말씀 안 드렸죠. 저는 아이가 두 명이 있는데 둘 다 남자아이랍니다.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애들이나 애 아빠나 말 안 듣고 행동이 다들 비슷해서.... 집에 애만 세 명 있는 거 같아요..      


 옷도 아무 곳에나 벗고 다니고, 어떻게 다들 그렇게 뱀처럼 훌렁훌렁 옷 벗고 들어오는지. 뱀인 줄 알았다니까요.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을 하니 아이들도 따라서 현관에서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면서 들어오더라고요. 그런 행동에 화가 나긴 하지만 참았습니다. 옷들을 하나씩 주워 세탁 바구니에 넣었죠. 그리고 저녁을 차려주고 설거지하고 잠에 듭니다. 제 일상은 매일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사는 제 삶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죠.  

    

 그렇게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다가 하루 다르게 보내는 날이 있었어요. 바로 점장님의 카페를 알게 된 날이었죠.


 아침에 평소와 똑같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글쎄, 집에 중요한 서류를 깜빡했대요. 그래서 저한테 그 서류를 가져다 달라고 하지 뭐예요..! 저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서류를 챙겨 남편의 회사로 갔습니다.


 회사에 도착해 프런트 직원에게 남편의 이름을 언급하며 위치를 물어보았어요. 그이를 찾아 물건을 가져다주었지요. 물건을 남편에게 건네주고 있는데 구석에서 직원들의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 나는 쪽을 보았는데, 저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마 아무렇게 입는 홈드레스와 산발인 제 머리가 그들의 주목을 끈 게 같았어요. 직원들의 시선을 느낀 남편의 얼굴은 홍시처럼 시뻘게졌어요. 그리곤 제게 얘기했죠. 쪽팔린다고 빨리 가라고요.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제발 그 머리 좀 어떻게 해보라고 했죠. 그 얘기를 듣고 저는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데 속상하지 않냐 고요? 아니요. 저는 속상하지 않았어요. 그런 생활이 익숙했거든요.

     

 “그냥 깔끔하게 해 주세요.”      


 미용사에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현란한 미용사의 가위질에 넋을 놓고 보고 있었어요. 하나하나 잘려가는 제 머리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마치 낙엽처럼 하늘거리며 떨어지더라고요. 아니면 강아지 털이 하늘거리면서 떨어지는 거 같기도 하고요. 멍 때리며 손질되는 제 머리를 보다가 옆에 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어요.


“야. ㅇㅇㅇ 인플루엔서 있잖아.”

“아! 응. 걔가 왜?”

“걔 요즘 스타일 많이 변했다더라.”

“뭐 어떻게 변했는데?”

“예전엔 엄청 화려한 것들만 쫓아다녔잖아. 근데 요즘은 그냥 평범하게 다닌다던데. 검은색 머리에 옷도 그냥 후드티 입고 다닌다더라.”

“뭐?! 예전에 명품만 입고 머리색도 엄청 화려했었잖아.”

“그러니까.”

“뭐야..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왜 그런데...”

“얘기를 듣기론 어떤 카페를 다녀오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

“카페?”

“숲 카페였나. 숲의 카페였나.”   

  

 그 얘기를 듣던 저는 생각했습니다.

    

‘카페를 다녀오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고? 신기하네....’     


 그 순간이 점장님의 카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죠. 손님들의 이야기처럼 사람이 마법이라도 걸린 듯 한 번에 좋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손님 머리 다 되었습니다. 어떠세요?”

     

 음료를 마시고 변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던 도중 미용사 분의 말을 듣고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모습을 거울에 대충 비춰보았죠.

     

“괜찮네요.”     


 그리고 미용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짓고 있으니 남편이 돌아와서 투덜거렸어요. 본인이 얼마나 쪽팔렸는지 화를 내더라고요. 제가 가고 나서도 직원들끼리 한참 제 이야기를 했나 봐요. 저는 그 말에 아무 대답하지 않고 그냥 저녁을 만들었어요. 때마침 아이들도 집에 도착해 다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 나 이번에 회사에 워크숍이 있어서 이번 주 금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집에 없을 거야.”

 “우리도~~~!!! 우리도 엄마!! 우리 학교 수학여행 간다고 했어~! 형이랑 나랑 수학여행 가!! 우리는 언제부터 가더라?”

 “우리도 아빠랑 기간이 똑같아.”


 그 말을 듣고 이번에 꽤 긴 시간 동안 혼자 있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당신도 어디 다녀오지 그래? 집에 혼자 있지 말고.”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죠. 딱히 갈만한 곳 없는데...라고요. 평상시 집 외에 다른 곳을 잘

가지 않았던 저는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미용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숲 카페였나. 숲의 카페였나.’     


 저는 그 이름을 마치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습니다.     


 “숲의 카페였나.. 숲의 카페였나..”     


 그렇게 해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숲 안에 있는 카페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남편한테 카페 위치를 얘기했더니 본인 워크숍 가는 길이랑 겹친다고 운전해서 내려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 워크숍 가는 날 저도 같이 차를 타고 카페가 있는 숲 입구에 저를 내려주고 갔습니다. 저는 숲 입구에서 숲 위를 천천히 올려다보았죠. 후후 그때를 떠올리니까 벌써 웃음이 나오네요. 기억나시나요? 점장님 카페 마당 앞에 계셨는데 제가 점장님 쳐다보면서 걸어가다가 넘어졌잖아요. 그때 당황하던 점장님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저를 카페 안으로 빨리 데리고 가서 제 까진 무릎을 치료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소리치셨죠.

     

 “아니, 왜 이렇게 옷을 입고 올라오셨어요!!! 그러니까 넘어지죠!!”     


 아직도 그때 떠올리면 웃음이 나와요. 누가 절 걱정해서 그렇게 혼내는 것도 오랜만이었거든요. 그때 사실 살짝 감동받았습니다.      


 제 다친 무릎을 보면서 점주님은 고쳐준다고 바쁘셨는데 저는 카페 안을 바라보느라 바빴습니다. 와... 천장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이 마치 저를 다른 세상에 데려온 것 같았어요. 너무 신기했죠. 숲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점주님도 여기랑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했어요. 다 치료를 끝내신 점주님은 카페 안의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가리키셨죠.      


 “여기 카페 찾아오신 거 맞으시죠..? 메뉴판은 저기에 붙어있어요..! 저기서 하나 골라서 말씀해 주시면 만들어 드립니다. 그러면 천천히 고르세요..! 그리고 무릎은 지혈 처리가 다 끝나서 이제 괜찮으실 거 에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의문의 글을 발견했죠.    

 

“점장의 추천이라...”

“점장의 추천은..!”     


갑자기 제게 점장님이 얼굴을 가까이 내미셔서 좀 놀랐습니다.     


“점장의 추천은 딱히 뭘 마실지 생각이 나지 않으시는 분을 위해 제가 넣은 메뉴입니다. 말씀하시면 제가 보고 음료를 하나 만들어 드려요.”     


 저는 눈을 끔뻑거렸죠.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는 데 점장의 추천을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점장님께 “그렇게 하시죠.”라고 말씀드렸죠. 점장님께서 씩 웃으시는 데 그 웃음에 뭔가 장난기가 서려있는 것 같았답니다.

이전 06화 은은한 향이어도 괜찮아_귤차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