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블 Jun 19. 2024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_
장미꽃차 (2)

 의자에 앉아 치료해 주신 무릎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넘어져서 까진 곳이 아팠거든요. 아프긴 해도 치료해 주신 부분에서부터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어요. 

     

 사실 카페에서 음료 나오기까지 기다리며 앉아있는 것이 너무 낯설었어요. 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거든요. 어떻게 앉아있어야 할지 어떻게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여러 가지가 신경 쓰였어요.      


 그때였어요. 멀리서부터 향기가 났는데 꽃밭에서 나는 향기 같은 게 느껴졌어요. 

     

“자, 여기 드세요.”      


 주신 차에는 장미가 피어나고 있었어요. 마치 물에서 피는 수련처럼.... 따뜻한 물을 머금은 장미는 점점 꽃잎이 벌어져 피어나고 있었죠. 저는 그 모습에 감격을 받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컵 안에는 마법이 일어나고 있었죠.     


“이게 뭐죠?”

“장미차입니다.”

“장미차요..! 저 컵 안에서 이렇게 장미가 피는 거 처음... 봐요...”    

 

장미차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었는지 점장님은 작게 웃으셨죠. 

    

“한번 드셔보세요. 맛있을 거 에요.”

“그러면... 잘 마시겠습니다.”     


 한 모금 머금어 차를 삼키자 따뜻함이 마음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처음엔 제 마음에서 느껴지는 이 따뜻함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것은... 마치 일렁이는 장미꽃잎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따뜻함은 가슴에서부터 시작되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같았어요...    


 가슴속에서 시작된 그 느낌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두 가지가 같이 존재했어요. 타인의 저를 생각해 주는 사랑과 제가 저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랑이 같이 있었죠. 타인의 사랑은... 점장님의 제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느껴졌어요. 가슴에서부터 차오르는 그 따뜻한 느낌에 말문이 탁 막혔습니다. 너무 행복해서요.     

 지금도 가끔 그때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 장미차를 우려 마시는데, 그 느낌이 잘 나지는 않네요. 점장님께서 마법을 부리신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마법사였다라든지... 농담입니다! 처음 점장님이 주셨던 음료를 마시고 느껴지는 가슴으로부터의 벅차오름... 이 느껴졌어요.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차를 마시고 제가 그랬죠.     


“차에... 무엇을 넣으.. 셨나요..?”     


 하하... 그게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던 전부였던 것 같아요. 그때 한 질문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점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더 엉뚱하셨던 거 같아요.    

 

“흐음... 들어간 재료라.... 꽃 말릴 때 도움을 주었던 바람이랑 태양빛과 제 마음이 들어가 있죠.”    

 

 평상시에 그런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장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꽃이지요. 저는 사랑의 형태가 여러 가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이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도 사랑이지만, 스스로가 본인을 아껴주고 챙겨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더욱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 말을 듣자 알아차렸습니다. 제게 이 장미차를 주신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점장님은 제게 하나하나 저에게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이미 그 말씀에 충분히 이유가 들어가 있었어요.   

   

 제 마음 안에는 일렁거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놓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되었지요. 제 자신에 대한 사랑... 제가 저 스스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동안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타인에게서 제 삶의 이유를 찾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삶의 이유라 생각하고 있었죠.     


 아니었어요. 저는 그 누군가에 의해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저는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저는 누군가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동시에 저였습니다. 제 자신을 소개하는데 앞에 다른 사람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제 자신입니다.     


 차를 마시고 제 마음속에서 일렁거림이 시작되자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것들이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어요..! 제 입 밖으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마구 튀어나왔죠. 죄송합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셨을 텐데 그때 끝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동안 지내면서 집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다 가족을 위한 거라 생각하며 나는 괜찮다 생각했는데, 실은 아니었나 봐요. 다 제 마음 안에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일부러 안 보이는 척 모른 척하고 제가 안 보고 있었던 것뿐이었죠.      


 제 이야기들을 그렇게 마치고 나니 정신이 돌아와 얼굴이 빨개졌었어요. 민망하더라고요..! 부끄러워서 저는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점장님은 제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으셨죠. 저를 계속 바라봐 주셨습니다. 부끄러워서 숙였던 고개를 들어 점장님을 바라보자 제 눈에 보였던 것은 아름답고 평온한 점장님의 눈이었어요. 

     

 제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어요. 얘기하던 도중 점장님은 제게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고 하셨죠. 슬슬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밤길이 어두워 또 무릎을 다칠 수 있다고 웃으면서 얘기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돌아갈 채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없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해 지나갔습니다. 쓸쓸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와 해방감 등이었죠.      


 매일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곁에 없으니 쓸쓸하고 외로우면서도 묘한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가족의 그림자처럼 지내왔던 시간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그 슬픔과 분노는 이 집에 없는 가족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제가 화내고 소리 질렀던 것은 아니랍니다. 가족이 없는 동안 집에서 혼자 마음껏 화도 내고 분노하면서 지냈죠.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올라와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충동적으로 미용실에 가 머리도 숏 컷으로 잘라버렸어요. 치렁치렁하게 얼굴을 가리며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가 갑자기 꼴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이제껏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하면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돌아와서 저를 보곤 반응들이 하나같이 다 똑같았어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라고 했죠. 저는 시원하게 웃으면서 가족들에게 대답했어요.


 “어서 와. 저녁밥 차리기 피곤해서 오늘은 그냥 배달시켰어. 괜찮지? 가끔은 배달시켜서 먹자고. 요리하기 귀찮은데 말이야.”     


 다들 표정이 어땠냐고요? 완전 벙 찐 표정이었죠. 하하... 그 뒤로 어떻게 지냈냐고요? 행복하게 지냈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엄청 싸웠습니다. 기존의 제 모습과 너무 달라진 제 행동에 가족들이랑 자주 트러블이 났죠.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족들의 행동에서 제가 받아주기 싫은 부분은 싫다고 주장했습니다. 화도 내고 소리도 질렀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해서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기존과 같이 제 가족들을 많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시 제 자신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것은 가족들과 제 자신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작업은 진행 중입니다. 제 자신을 잃고 살았던 만큼 균형을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기까지가 그때 카페를 다녀온 후의 근황입니다. 편지가 정말 길었죠. 점장님을 만나고 제 삶의 변화된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직접 뵈어 말씀드리면 더 좋았겠지만, 요즘 통 바빠 시간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카페에서 점장님과 함께 했던 시간은 제 인생의 축복처럼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 감사를 표합니다. 점장님도 항상 행복한 일이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제 주제넘은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예쁜 점장님이 숲 속에서 혼자 카페를 차리신 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사람들이 사회에서 상처를 크게 입으면 혼자 산에 들어가 사는 경우가 간혹 있잖아요. 만약 그러시다면, 마음 터놓을 곳이 필요할 때 언제든 제게 편지를 보내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그러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주제넘은 참견이라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점장님의 행복을 위하고 점장님의 삶에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나중에 또 카페에 들를게요. 그때는 장미 꽃다발 큰 거랑 같이요. 그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셔야 합니다. 곧..! 다시 뵈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이전 07화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_ 장미꽃차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