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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블 Jun 05. 2024

은은한 향이어도 괜찮아_귤차 (2)

 그 말을 뒤로 점주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녀는 재료를 가지러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고 탁,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옆의 큰 창문을 바라보았다.      


‘정말 좋은 날이다. 요즘 이렇게 조용하게 지낸 적이 별로 없었는데 너무 좋다...’   

   

 밖의 한가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가까이 사는 이유가 이런 느낌 때문일까.. 한참 밖을 바라보고 있던 중 카톡 알림음이 들렸다.      


‘여기 추천해 준 친구인가..’ 


 카톡을 살펴보려고 핸드폰을 들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카톡보다 쌓여있는 인스타 댓글이었다.     


‘요즘 새로운 카페 추천이 뜸하시네...’

‘재료거리가 떨어졌나 보지 ㅋㅋㅋ’

‘괜찮은 카페 웬만한 것은 정보가 다 퍼져있어서 잘 찾기가 힘들긴 하지...’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래 지금 여기서 내가 평온한 분위기나 즐길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인기 끌만한 요소를 찾아 인스타에 올려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지 않도록 말이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자극을 줄만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원하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나는 머리를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한 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인플루엔서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네일아트는 요새 트렌드라고 추천받은 것을 한 거다. 네일아트도 항상 그때 제일 인기 많은 것으로 선택했다. 옷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에 제일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거나 아니면 화려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걸로 선택했다.      


 손에서 폰을 놓지 않고 계속 살펴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순간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항상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트렌드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평범해서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이다.   

  

 “흐음.... 오는 길에 옷이랑 머리가 다 망가져서... 이번에는 내가 안 나오게 찍어서 올려야겠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지.”

 “왜요. 지금도 아름다우신데.”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점주가 들어오면서 얘기했다. 그녀의 손에는 차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주전자는 투명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볼 수 있었다. 투명한 주전자에 빛이 비쳤는데 황금빛이 영롱하게 빛났다. 차에서는 은은하며 상큼한 향이 퍼져 나왔다.     


 “자 여기 한번 드셔보세요.”     


 점주는 투명한 유리잔을 테이블에 놓고 거기에 차를 따랐다. 차는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그저 노란색 물이 들어있는 차로 보일 거 같은데... 예쁜 사진을 찍어야 도움이 되는 나로서는 심히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이래서는 예쁜 사진을 찍어 올리기가 어려울 텐데... 그렇다고 찻잔이 굉장히 예쁜 것도 아닌 그저 투명한 유리잔이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찍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다. 찻잔을 손에 들고 물어보았다.     


 “이건 뭔가요?”

 “귤 차예요. 최대한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청으로 만들지 않고 귤을 통으로 잘라 바람에 건조해서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로 우려냈어요.”     


 그럼 그냥 평범한 귤... 우려낸 물... 아닌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 그렇군요...”

“한번 드셔보세요.”


 그냥 잘라서 말리기만 한 귤이 뭐 특별한 게 있나.... 그래도 먹어보라고 했으니 일단 한 모금 먹어봐야겠다 싶어 컵을 들었다.     


“?!!!.... 아니, 뭐지..!!!! 너무 맛있어..!”     


 이게 뭐지... 부가적으로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너무 맛있다.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한 모금 마셔보았다. 은은하게 귤 향이 나면서 귤 본연의 상큼함과 단맛이 같이 났다.


 카페에 가면 항상 화려해 보이는 음료들만 선택했다. 크림도 올라가 있고 예쁘게 생긴 재료들이 많이 올라가 있는 걸로. 하지만 그런 것들은 먹는 당시에는 맛있지만, 몇 입을 마시고 나면 죄책감이 올라왔다. 아마 설탕이나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음료를 선택해서 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만든 음료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워요. 여러 가지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을 수가 있네요.”

“재료 본연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맛을 낼 수 있어요. 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을 최대한 살리면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런 맛을 낼 수 있답니다.”

“그렇군요...”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점주는 왜 나에게 이 음료를 주고 싶었을 까?   

  

“그런데 왜 이걸 저에게 주고 싶으셨나요?”  

   

 잠시 점장은 가만히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나와 몇 분간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귤 하나밖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본연의 맛으로도 충분하고 향기롭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 말이 왠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이 들렸다.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말로... 여러 가지로 나를 가리고 치장해서 사람들 앞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현재 있는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나 스스로 향기롭다고...      


 나는 고개를 내려 차를 바라보았다. 내가 귤..인 건가... 차를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맛있다. 나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점주는 한번 웃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귤 차와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향이 세지 않고 은은하지만 이 공간을 채우기엔 충분한 향이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입 안 가득 귤 향이 들어오고 숨을 내 쉴 때 귤 향이 코를 통해 빠져나갔다. 내가 귤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충분히 채워지는 느낌...


 거울을 들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정말 눈에 띄는 분홍색 머리와 진한 화장을 한 모습이 보였다. 거울을 들고 있는 손도 굉장히 화려했다. 옷도 신발도 전부 신상이었다. 하지만 전부 트렌디하고 좋아 보이는 것만 선택했더니 그 뭣 하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없었다. 혹여나 새로 산 신상이 망가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이게 내가 진짜로 원한 걸까...?’     


 나는 말없이 테이블 위에 있는 귤 차를 내려다보았다. 별거 없이 귤만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다. 귤 차를 보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여주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러시죠? 귤 차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귤 차 너무 좋아요.. 진짜로요.. 그냥 제가 한 가지 고민이 있어서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여쭈어 봐도 괜찮으실까요?”     


 나는 찻잔을 만지며 머뭇거렸다.     


“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관심 가질만한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머리스타일도 옷도 전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것만 선택해서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요?”

“이 귤 차를 마시고 나니... 사람들에게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닌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제 모습 그대로도 괜찮을지.. 그러면 사람들이 저를 떠나가지 않을까 고민이 돼요. 이 귤 차처럼 저 자신으로 우러나온 모습도 괜찮을지 겁나요...”     


 나는 말을 다 하고 고개를 숙여 찻잔을 보았다. 대답은 뻔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선 화려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듣기 좋은 말로 나 자신 그대로 모습으로 해도 된다고 얘기해 줄 수 있지만, 그건 그냥 허울 좋은 말일뿐이다. 둘 중에 어떤 말을 해줄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손님의 꾸며낸 모습을 좋아해 주신 분들이 그 관계가 오래가던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한 대 맞은 거 같은 충격을 받았다.    

 

“... 네?”

“손님의 꾸며낸 모습을 보고 좋아해 준 사람 중에서 손님에게 오래 남아계시는 분이 있으신지 궁금해서요.”     

 나는 눈을 끔뻑이면서 점주를 바라보았다. 나의 꾸며낸 그 모습만 보고 좋아해 준 사람이 오래갔냐니... 당황스러웠다. 점주를 바라보았는데 점주의 눈이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아니요... 제 꾸며낸 모습을 보고 좋아해 주었던 사람은 빠르게 다가온 만큼 빠르게 멀어졌어요...” 

     

 내 뒷말은 점점 흐려지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물론 손님의 영상이나 사진에 나오는 모습이 갑자기 바뀌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떠나가겠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손님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은 손님 곁에 남아 있을 거 에요. 그리고 간 사람들의 빈자리엔 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겠죠. 차이점이라면 새로 찾아오는 분들은 손님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곁에 오래 남을 분들이라는 거예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또 눈을 끔뻑이면서 여주인을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보일지 항상 전전긍긍해하는 모습도 없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핸드폰을 바라보며 항상 스크롤하는 일도 없어도 된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남은 나 자신이라.. 상상만 해도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마치 다른 부가재료 없이 바람에서 말려진 귤처럼...     


“어떤 선택을 하시든 틀린 것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끌리고 가장 행복하실 수 있는 것을 고르세요...”

“네... 감사합니다.”     


 여주인은 싱긋 웃으며 뒤로 다시 돌아갔다. 옆의 핸드폰에서 카톡 하고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나는 폰을 들고 무슨 말이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옆의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 외에 다른 마음이 없었다.   

  



“야~~~ 오랜만이다~~~!!! 헉 너 뭐야 머리색 왜 그래?? 왜 검은색으로 바꾸었어?? 분홍색 머리한 지 별로 안 되었었잖아. 그리고 너 평번한 머리색은 싫다며 항상 독특한 색으로 했으면서 이번엔 웬 검은색~~?”     


 오랜만에 저번에 카페를 추천해 준 친구와 다시 밖에서 만났다. 그때와는 다르게 검은색 머리를 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검은색 머리뿐만 아니라 네일아트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해서 했고 옷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입었다. 다 평범한 스타일이었다.   

  

“아니, 뭐야~ 머리부터 옷까지 너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근데 너한테 잘 어울린다! 왠지 너답다는 느낌이 들고 예쁘네!!”

“그래? 그거 다행이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저번에 추천한 카페는 어땠어? 사람들 반응이 좋았어?”

“네가 추천해 준 그 카페 말이지. 포스팅 안 했어.”

“어?!!! 왜?!! 거기 사람들한테 많이 안 알려져 있어서 올리면 반응이 좋았을 텐데.”

“왜 거기에 다녀온 사람들이 그 카페 후기를 포스팅하지 않았는지 알 거 같더라고.”

“왜?”     


나는 그 질문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포스팅 올리면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져서 내가 편하게 못 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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