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는 여러 꽃들이 있었다. 말리는 도중인 거 같아 보였는데 종류가 엄청났다.
사실 지금은 카페에서 꽃차를 팔지만 처음엔 꽃차 만들 줄 전혀 몰랐다. 꽃차 만드는 방법은 전부 할머니에게 배워서 알게 된 것이다. 가끔 카페에 찾아오셔서 같이 정원을 가꿔주시기도 하고 꽃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신다.
여하튼 할머니는 꽃에 대해서도 꽃차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셨다. 고개를 돌려 주변 책장을 살펴보는 데 책장에는 꽃과 꽃차에 대한 책들이 줄지어 있었다. 꽃의 신비, 계절에 따른 꽃차 추천, 꽃차 만드는 방법 등등...
'꽃에 관심이 엄청 많으시구나...'
테이블에 있는 꽃들은 정원에서 가져오신 것 같아 보였다. 간간히 집에서는 흙 내음까지 같이 났다.
“마실 것을 좀 가지고 올게요. 좀만 기다려 봐요.”
그 말과 함께 할머니는 부엌을 향해 가셨고, 나와 동현 그리고 송이만 남아 기다리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서로 말이 많던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다. 몇 분간 계속되는 침묵 속에 송이는 불편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처음에 차가 나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려고 했는데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마을 분들께 들었는데 여러분을 해결사 3인방이라고 하더라고요..! 언제부터 활동을 해오셨나요? 많이 바쁘진 않으세요? 일이랑 같이 병행하려면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요.”
운을 띄워 분위기를 바꿔줘야겠다 싶었다. 내가 말을 꺼내자 송이는 눈을 반짝이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전혀 괜찮아요! 실은 제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긴 한데... 거의 프리랜서처럼 일을 해서요..! 근무 시간이 유동적이기도 하고 일만 끝내주면 돼서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그래서 일과 같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일지도요... 그리고....”
갑자기 말이 붓 물 터지듯이 나왔다. 많이 얘기하고 싶으셨구나 조금 더 빨리 운을 띄울걸..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송이의 말을 이어 동현이 말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저는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장소의 제약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바쁠 때가 많아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합니다. 송이가 저를 대신해 현장에 더 오래 머물러 주는 편이고 저는 연락을 받고 문제 해결을 해주는 쪽에 더 가깝죠. 예를 들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분께 연락을 드린다든지 등이요.”
말을 듣고 오두막을 수리해 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활동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이는 대답했다.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저는 괜찮아요!! 왜냐면 서로 돕고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도와주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서로서로 행복해지도록 돕는다니 너무 멋있어~~!!”
그 말을 하는 송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보석이 눈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자물쇠가 채워진 것처럼 조용히 하고 있었던 마음속의 자물쇠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인생은 각자도생이에요. 그런 건 판타지라고요. 세상은 완전히 달라요.”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내가 놀랐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온 것 같았다.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인가?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내 입을 움직인 것 같았다. 내 귀를 의심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데 그 시선이 불편했다. 송이님은 나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동현 님은 무표정으로 대응했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서로를 생각하면서 행동해 준다고 하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들 본인 살기에 바쁘고 자신의 것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잖아요. 이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런 건 금방 발견할 수 있어요. 상식 아니에요?!!”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커졌다. 흥분해서 얼굴도 빨개졌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그렇게 말할걸요? 서로 같이 행복해지는 세상은..! 그런 건....!! 그런 건...”
순간 목이 메었다.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말을 입에서 나오는 데로 내뱉긴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말을 멈추자 옆에 있던 동현은 계속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송이는 고개를 고정한 상태로 눈만 굴려 나와 동현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괜히 운을 띄었다. 첨부터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차가 나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리를 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의자를 뒤로 밀어 일어나려던 순간
“지이이잉~ 지이이잉~”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동현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익숙한 손짓으로 핸드폰을 빠르게 잡아 핸드폰을 열어 귀에 가져다 대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아.. 네네..!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네, 네. 잠시 그러면 맡아서 돌보고 있으면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끊더니 우리를 쳐다보았다.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어. 잠시 아이 한 명을 좀 봐 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