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 군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각자가 각 나이대에 맞게 짊어져야 하는 짐을 다르게 해 주고 싶다라... 굉장히 이상적인 사상이라 생각했다. 그 마음은 높게 사지만.. 이 세상은 그의 이상적인 사상과는 다르다. 세상은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더 착취하고 가만히 두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고 만약 그들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보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강약약강이라고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게 이 세상의 원리다. 그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각자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머니 속사정이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것은 관심 없다. 원래 세상은 그렇다..
그 생각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음 저편에 묻어두었던 떠올리기 싫은 것들이 올라오려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마음속에서 내 마음이 틀렸다고 얘기하고 싶은 걸까... 그런 거라면 아직도 한참 스스로 어리석구나...
“오! 다들 일찍 왔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아..! 그럼요! 작업 빨리 끝내려면 지금 시작해도 한참 걸린다고요! 당연히 일찍 나와야죠. 조금 더 주무시지 왜 이렇게 빨리 나오셨어요. 할머니.”
정체는 어제 나에게 말을 거셨던 할머니였다. 그리고 할머니 주변에는 어제 뵈었던 송이와 동현이 있었다. 그 해결사 3인방이었다.
“아니..! 어제 밤길은 조심히 잘 들어가셨나요..! 뭐, 같이 가다가 갑자기 이제 아는 길 나왔다고 가시는 분을 제 알바 아니지만요.”
동현이 앞으로 나와 내게 말했다.
“말조심..! 말조심하라고 항상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그런 그를 제지하는 송이였다.
어제의 데자뷔인가 송이가 동현의 팔을 주먹으로 퍽퍽 치는 모습을 앞에서 구경하며 생각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어제는 왼팔을 주먹으로 쳤는데 오늘은 오른팔을 쳐서 멍은 안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갑자기 혼자 그렇게 가셔서 걱정했어요... 담에는 저희랑 같이 마을 안까지 들어가셔도 괜찮아요..! 어제는 잘 들어가 쉬셨나요?”
할머니는 나긋나긋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네, 숙소 아주머니께서 저를 잘 챙겨주셔서 잘 쉬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답을 끝으로 나는 오두막 수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을 살펴보면서 물어보았다.
“이 분들은.. 다 누구이신가요..?”
“이 분들은 여기..! 이 인부가 연락해서 모아 온 사람들이에요. 이 양반은 예전에 같이 마을에서 살던 사람인데 지금은 일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가서 살죠... 얘기를 듣자마자 도와주겠다며 이렇게 왔지 뭐예요.”
“그렇군요...”
오늘은 토요일로 쉬는 주말이다. 괜히 쉬는 날에 나 때문에 여기 와서 이렇게 도와주고 계신 게 아닐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항상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당신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야.”
또다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동현이 얘기했다. 처음엔 가만히 있었는데 자꾸 듣다 보니까 슬슬 짜증이 난다.
“그러면 본인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말이죠. 본인과 다르게 저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저는 노력합니다. 그건 독립심이 높은 거 아닌가요?”
내 말이 동현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도 나를 째려보았다. 나와 동현은 한참 서로를 째려보고 서 있었다. 서로에게 쏘아보는 눈빛이 강렬한 게 그 사이에 고구마를 두었으면 그 열기에 분명 고구마가 익었으리라.
“자..! 자!! 다들 그렇게 싸우지들 말고 수리를 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거 에요. 저희가 다 끝나면 연락을 드릴게요. 그 사이 좀 마을에서 쉬고 계시는 건 어떠세요?”
우리의 유치한 눈빛 싸움을 보던 리더 인부가 당황스러웠는지 먼저 운을 띄었다. 그리고 너무 잘했다는 표정으로 할머니가 그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래요. 다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제 집에 가서 쉽시다. 지금은 저 혼자 살고 있는 곳이라 와서 쉬기에 편할 겁니다.”
할머니께선 우리 둘의 싸움을 끝내고 싶어 하시는 눈치셨다.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졌고 싸움을 멈추고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 같이 숲길을 내려왔다.
“자! 여기가 내 집이에요. 어서들 들어와요.”
그곳엔 전원주택이 있었고 큰 마당이 달려있었다. 마당에는 혼자서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많은 야채들과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꽃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내가 마당을 꾸민다면 여기처럼 꾸미리라라고 생각했다.
“와... 꽃들이 엄청 많아요. 너무 예뻐요. 이 큰 정원을 혼자서 다 가꾸시는 거예요?”
“그럼요. 혼자서 가꾸지요.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버렸고 자식들은 서울로 가서 혼자 있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아... 이 넓은 정원을 가꾸고도 시간이 남는답니다.”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건가 우리 네 명 사이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다들 이렇게 서 있지들 말고 집 안으로 들어와요.”
할머니는 빠른 화제 전환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안내해 주셨다. 할머니의 안내에 따라 다 같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깨끗이 정돈이 되어있었고 먼지하나 없었다. 그를 통해 할머니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시는 완벽주의자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