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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Sep 16. 2023

가해자와 피해자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

   

꼭 교통사고가 일어나야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날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때 먼저 이별을 고하는 사람은 가해자일까? 아이를 키우며 훈육의 날을 세우는 엄마는 가해자일까?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아랫집은 꼭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날 속에서 나는 어느 쪽으로 향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주고받았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던 사람들의 대답은 동일했다. 바로 가족이었다. 누구는 부모 때문에, 누구는 형제자매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관계는 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때로는 끊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는 가정폭력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더니 성인이 된 이후로는 또 다른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부모. 아들이 최고라며 딸에게는 대학교에 진학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부모. 너희들 때문에 참고 살았는데 자신의 과거를 아이 탓으로 돌리는 부모. 부모가 무한한 사랑을 주었음에도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한 채 상처로 되돌려 주는 자녀. 자신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만 기억하고 정작 본인이 부모에게 준 상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자녀. 기나긴 암 투병에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위로의 말이 아닌 일상을 툭 건네는 남편. 결혼 전과 후가 너무 다른 아내.  

    

세상 그 어느 존재보다 서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함에도 가족은 서로에게 힘든 사람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눈 감는 날까지 마음속에 아른거린다. 눈에서는 지울 수 있지만, 마음에서는 지울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 어느 편에 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관계.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가 가족이다. 

     

엄마 아빠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동생으로,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사는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나’로서 온전한 오늘을 보내려 한다. 어느 편이든 선택하기 힘든 날에는 나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글다락방의 일상이 인생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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