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15.
장식장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의 색깔처럼 하얗다고 하기에는 때 묻은 느낌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회색과 흰색의 사이의 무채색의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생각해 보면 무채색은 참 대단한 색이다. 흰색, 회색, 검은색. 무채색은 이 세 가지 색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낸다.
밝음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
선함과 악함.
때로는 상징으로, 때로는 비유로 말이다.
무채색은 색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색상, 명도, 채도 중 명도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 단순함 때문에 그 능력이 평가절하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누군가 단순함으로 무채색을 무시할 때, 무채색은 이 단순함을 무기로 세상을 그린다.
내가 매일 타닥타닥 두드리는 타자가 수놓아지는 화면과 글자가 되어 때로는 결과를, 때로는 내 마음을, 때로는 내 감정을 전달한다.
도로에서는 횡단보도와 차선을 그리며 질서를 만든다.
중요한 자리면 모두의 DNA에 새겨지기라도 한 듯이 무채색의 정장을 차려입고 단단하게 나선다.
흑과 백으로 정리되는 너의 명료함과 또렷함,
어떤 색이든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너의 관대함,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모든 것에 섞여 들어 숨게 해주는 너의 무던함.
너의 단순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성격을 단순함이란 포장지로 감싸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그때그때 우리에게 적절한 무기가 되어 우리 손에 쥐어졌다.
이런 너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