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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Aug 08. 2024

노력형 천재

Hard-working genius

영어에서는 천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genius'라는 단어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캐주얼하게 일상대화에서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친구들끼리 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캠핑지에서 삼겹살만 구워 먹을 것이 아니라 '대창이랑 막창도 같이 구워 먹자'라는 의견을 낸다면 그 친구에게,


"That is a genius idea!"

"우왕, 굉장한 아이디어다!"

(우왕, 아이디어 개쩐다!)


정도의 의미로 쓰일 수 있어서 '천재'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가볍게 쓰일 수도 있는 단어이다. 또한 brilliant(훌륭한)라는 단어 대신 쓰일 수도 있다.


천재라는 기준은 항상 모호하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천재의 기준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잘했다고 한다. 어린이 노래대회, 글짓기 대회, 그림 그리기 포스터 대회 등 여러 대회에서 다양하게 상을 탔었지만 그 누구보다 잘하는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던 것 같다. 만화 캐릭터 그리는 것도 좋아했었지만 우리 반에서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여 교회 성가대도 열심히 다녔지만 솔로 파트는 항상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친구가 했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밤을 새 가며 노력해도 반에서 3~5등 언저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렇게 뚜렷하게 잘하는 게 없던 나는 공부만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가지만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성적이 더 잘 나왔었다. 물론 수업방식이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학업평가가 미국과 한국은 많이 달랐던 것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1등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1등이라는 타이틀로 주어지는 짜릿함은 중독 수밖에 없었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었다. 결과 미국 온 지 1년 만에 중학교를 우등졸업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서도 나는 항상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성적을 모두 올 A (straight A's)를 받았을 때, 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때, 모두가 어려워하는 문제를 풀어냈을 때 등 기회가 되면 '나는 역시 천재'라며 혼자서 셀프칭찬을 했었다. 심지어는 내가 즐겨하던 게임이나 이메일 아이디도 seanius였다. 내 영어이름 Sea와 genius(천재)의 합성어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쑥스러워서 말도 못 하는 소심한 아이였지만, 혼자서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나만의 자아존중(self-esteem)이었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총 4년이다. 고등학교 2년 차인 10학년이 끝날 무렵, 나는 졸업을 위한 모든 필수 수학 수업들을 반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마쳤다. 그리곤 12학년 선배들과 함께 대학교 수학 크레딧을 미리 받을 수 있는 미적분학(AP Calculus)을 듣게 되었는데 당시 나는 11학년이었다. 선생님은 젊고 예쁘고 날씬한 수학 선생님이셨다. 사실 한국에서 나는 수학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수학이 정말 쉽다고 느꼈고 이 느낌은 한국에서 수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거의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렇게 수학이 쉬워진 나는 조금 더 열심히 하다 보니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고 잘한다는 칭찬과 오르는 성적으로 인해 결국 수학이 재미있어졌다.


어느 날 미적분학 수업시간에 있던 일이다. 해당 AP (Advanced Placement) 수업 외에도 모든 AP 과목들은 대학교 점수를 미리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시험이 매년 있는데 전국 학생들이 이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한다. 우리 반 학생들도 이를 앞두고 열심히 수학문제들을 풀고 있었다. 문제 중에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며 한 선배가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고 선생님도 난항을 겪고 계셨는지 학생들 모두에게 같이 풀어보자고 하셨다. 새로운 유형의 문제였고 어려웠다. 조금만 시간이 있다면 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수학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모두 집으로 갔다. 선생님은 내일 수업을 위한 준비를 하셨고 나는 내 자리에서 그 문제를 계속 풀고 있었다. 이 문제를 풀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하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문제와 씨름한 끝에 문제풀이와 함께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Ms. Dalton, I solved it!"

(달튼 선생님, 제가 풀었어요!)

"Oh my gosh! You did it! I'm so proud of you. You are such a genius!"

(와 진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넌 역시 천재야!)

"No... I'm not. I'm just a person who solve this one question."

(저는 천재 아니에요... 그저 이 문제 하나 풀었을 뿐인데요.)


"There are people with heavenly talents and we call them 'gifted'. People who work hard to achieve what they want are true geniuses and you are one of them."

(물론,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재능이 있다'라고 해.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걸 이루는 사람들이 진짜 천재라고 생각하고 너도 그중 하나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다고 믿었던 단어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께 들으니 인정받은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 선생님은 그냥 캐주얼하게 '오, 대단한데?'라고 가볍게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만이 천재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주었다.


그 계기로 난 더 열심히 공부했고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우리 고등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고, 빌 게이츠 재단 외에도 많은 곳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액 무상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 후에 육아를 하며 박사공부를 할 때도 내 기준의 천재가 아닌 그 선생님을 통해 바뀌게 된 새로운 천재의 정의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였고 아직도 주어진 내 삶의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인생은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금수저는 부모님의 금전적인 풍요로움을 든든한 백그라운드, 일명 백으로 두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들은 자신의 재능을 백으로 둔다. 비록 금수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에디슨의 말대로 라면 99% 이상의 노력만 하면 천재는 될 수 있다. 그리고 노력형 천재들은 수년간 자신이 노력을 통해 얻은 경험과 결과들을 무시무시한 백으로 둔다.


나는 더 이상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집념과 끈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노력형 천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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