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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Sep 10. 2024

내 졸업식에 안 간 이유 1: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Why I stopped going to my commencements?

2002년에  미국에서 외국인 생활을 시작하고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나의 학창 시절 최고의 아웃풋(output)은 고등학교 졸업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부터 학창 시절 내내 꿈이었던 전교 1등의 쾌거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Corp.)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와 그의 전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Melinda Gates)의 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장학금이 나에게 정말 소중했던 이유는 보통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아도 미국 대학 학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론(loan)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금전적으로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학생들에겐 머나먼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내 기준에선" 금수저이다. 물질적으로 갖고 싶은 게 많이 없었던 내 학창 시절을 돌아봤을 때 풍족하진 않아도 충분했다. 나와 동생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으로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공부하고, 살아갈 수 있는 영주권도 얻었으니 이만하면 금수저 아닌가! 하지만 대학교 학비라는 커다란 현실의 벽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수저는 금색이 아닌 흙색이었억지로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금전적으로 더 부담이 컸던 사립대보다는 공립대를 위주로 지원해야만 했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는 현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게이츠 재단의 장학금은 사립, 공립 상관없이 학비에서 생활비까지 전액을 대학원까지 모두 지원해 줬기 때문에 나의 대학생활은 금전적인 걱정이 전혀 없음을 보장하였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장학금을 받아서 입학할 때 필요한 컴퓨터 및 가전제품, 심지어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당시 우리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금전적인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여러 신문사들 외에도 많은 매체에서 이런 나의 눈물 나는 성공스토리는 미국뿐 아니라 한인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 실어 날라졌다. 얼떨떨했고 당시에는 그런 많은 관심이 나쁘지 않았다. 용띠인 나에게 진짜 '개천에서 용 났다'며 미국에 와서 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전교 726명 중 수석 졸업.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점점 당연한 것이 되어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좋은 성과를 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나에게 아웃풋을 내기를 원했던 것 같다.




바닥에서부터 오롯이 노력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가슴 벅찬 결과를 가지게 된 나는 자존감이 높았고, 나를 너무 사랑하여 자기애많았으며, 자존심도 강했고, 무엇이든 잘 해낼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자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열심히 하면 결과로 보장받는다는 것을 대학교에서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미국에선 대학교를 입학하면 학생들이 더 공부에 매진한다. 특히 대학에선 법대, 의대, 약대등이 따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문학을 전공해도 의대 진학시험을 치러 대학 졸업 후 얼마든지 전공변경이 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교생이 서로의 경쟁상대가 될 수 다.


나는 University of California, Berekley(버클리)라는 미국 공립학교 1위인 대학교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하여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1학년 생활을 시작하였다. 기숙사도 신축으로 가장 비싸고 룸메이트도 단 1명이어서 사용료도 가장 비쌌으며, 교내 매점등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카드의 한도도 가장 높았고 이 모든 것은 장학금에서 지급되었다. 컴퓨터도 $2,500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고, 당시 스크린 터치 개념의 컴퓨터는 흔하지 않은 고가의 컴퓨터였으나 나는 플렉스 할 수 있었다. 각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교과서들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것들이 많아 중고로 구매하거나 복사본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많았으나 빌 게이츠 님을 등에 업어 백으로 둔 나는 항상 빳빳하게 코팅된 하드커버 교과서를 새것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금전적으로도 금수저가 된 것이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풍요로운 내 대학 시절은 35년 남짓한 인생 전부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시기중 하나였다.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노력하여 입학했고 그들도 나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는 더 노력을 해야 했다. '돈이 다 가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물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속된 말로 미친 두뇌암기력가진 학생들도 정말 많았다.


한 번은 전공 수업을 듣고 있었다. 나와 다른 학생들은 교수님의 수업에 초 집중하며 필기를 하고 있었지만, 맨 앞자리 구석에 앉아서 팔짱을 하고 아무것도 필기하지 않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녹음을 하고 있어서 필기를 안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친구는 모든 내용을 머리에 바로 입력 중이라 필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수업 중간쯤 그가 교수님께 한 질문 때문이었다.


"This particular signaling pathway is crucial for inducing apoptosis." (특별히 이 신호전달 경로는 세포사멸을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Professor, I have a question."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Go ahead." (그래, 질문해 보렴.)

"From the last lecture on Tuesday two weeks ago, you also mentioned this pathway and several genes while explaining cell cycle regulation. The list of genes on the slide is the same as before. I was wondering if it's a typo or are they happend to be the same genes as before?" (2주 전 화요일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세포주기조절 설명하실 때 이 신호전달 경로와 몇 가지 유전자 리스트를 보여주셨는데 지금 슬라이드에 유전자가 그때와 같네요. 오타인지 아니면 실제로 같은 유전자들이 다른 역할이 또 있는 건지 궁금해서요.)

"Good catch. You are right. It's a typo. (좋은 지적이군. 자네 말대로 오타네.)


그날, 나는 살면서 그런 암기력을 가진 사람을 처음 보았다. '몇 주 전 수업에서 교수님이 설명한 것과 슬라이드에 나온 유전자 이름 하나까지 모두 사진 찍듯이 뇌에 저장해 버리는 사람을 어떻게 이겨?'라고 현타(현실타격)가 아주 세게 왔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내가 그들과 겨루어 1등이 될 수 없는 이유였다. 정말 머리가 좋은 학생도 많았고, 나만큼이나 노력하는 학생도 많았으며, 두뇌와 노력 모두 가진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대학교 졸업할 당시에는 고등학교와 다르게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졸업식을 갈 수 없었다. 아니, 가지 않았다.

사실 미국 대학은 입학만큼이나 졸업도 어렵다. 당시 내가 전공하던 Molecular Cell Biology(분자세포학)는 4년 만에 졸업하기 어려운 전공 중 하나로 5년이 걸리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여 수석은 아니어도 4년 안에 당당하게 졸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당시 집안에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어서 졸업식이 내 삶에서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사치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 같이 내가 졸업연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졸업식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목표는 단순히 대학 졸업이 아니었거든. 너무 오만하게도 그저 많은 졸업생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 받은 많은 관심과 칭찬에 사로잡혀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졸업장, 그것도 미국 공립대 1위에 빛나는 학교의 졸업장을 졸업식이 아닌 집에서 택배로 수령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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