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on is like a marathon without finish line. This marathon of lifelong learning is not easy but I will keep on running and learning which itself is victory."
(배움은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이 평생 배움이라는 마라톤이 쉽지는 않지만 나는 계속 배우고 나아가기만 하면 이기는 이 마라톤을 계속하겠습니다.)
내가 미국 고등학교 졸업연설 때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나와의 약속과도 같았다. 당시 집안에 사정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학업과 연구를 놓고 싶진 않았다. 배움이라는 마라톤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 과외교사로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면서 병원이나 제약회사에 연구직도 계속 지원하였다. 감사하게도 미국 베벌리 힐즈에 위치한 큰 병원 내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고, 평일 오전과 오후에는 연구원으로,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가정교사로 틈틈이 돈도 벌며 계속 과학 연구원으로서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학과 병원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남가주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와 빌게이츠 제단에서 대학원 과정도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2년 뒤 총 두 가지의 석사학위(교육학, 줄기세포생물학)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개의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두 번의 졸업식이 있었지만 나는 그 어느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고등학교 졸업식 때 단상에서 연설하며 했던 말과 모순되게 배움을 마라톤이 아닌 경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졸업이라는 결승선을 멋지게 1등으로 통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졸업식을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와 신랑에게선물이 찾아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 아기가 생긴 것이었다. 사실 여느 대학원 과정생들처럼 '아이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갖지 않을까?'라고어렴풋이 생각만 했었지 전혀 계획에 없었다. 남들에게는 행복하기만 한 선물일 아기가, 아직 학생이었던 나에겐두려운 퀘스트 같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랑에게도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이 선물이 두려움으로 먼저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랑은 달랐다. 기뻐해주었다. 아니, 진심으로 기뻐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더 생겼고 분명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텐데... 앞으로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일들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소중한 선물 같은아이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인생이라는 이 마라톤을 즐기며 뛰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선물로 함께 프랑스 파리로 여행 가자는약속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솔직히 당시 프랑스로의 여행에 들뜬 마음과 함께 날아오를 수 없었던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퀘스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나도 나의 인생을경주마처럼 전력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마라토너처럼 롱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그제야 나에게 다가왔던 두려움을 걷어내고 소중한 첫 아이를 주심에 감사할 수 있었고, 에펠탑을 보며 나의 인생과 나의 인생에 함께한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다시설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