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를 돌면 라일락 나무가 있다

어떻게 봄이 안 좋냐?

by DONA



우리 집은 단지 가장 바깥쪽에 있다. 감싸고 있는 테두리 같은 동. 현관을 나서면 좌우 양방향으로 길이 뚫려 있다. 오른쪽은 버스정류장, 왼쪽은 흡연구역이 있으니 좌회전의 빈도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주말에도 코너 끼고 돌 일이 잦기 때문에. 아무튼.


이곳으로 온 지 한 해 지나 두 번째 봄을 맞았을 때다. 밤이고 낮이고 꼭 어느 지점을 지나칠 때면 진한 꽃향기가 바람 타고 풍겨왔다. 개가 흥분했을 때 귤껍질이나 레몬즙 같은 걸 뿌리면 일순간 멈춘다고 했다. 어디서 나는 향인지 찾으려고 해서 그렇다는데 나도 그렇게 된다. 그렇게 짧은 봄 내내 두리번거렸더니 비가 쏟아졌고, 낙엽 지고, 만물이 얼어붙었다.



아마도 작년 봄. 옷이 얇아질수록 코 시린 냄새가 덜 난다. 그날도 좌측 코너를 도는데 일 년 전에 맡았던 향이 났다. 일 년 전에는 왜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냅다 고개를 들어 봤다. 그 나무에서 나는 향이었다. 땅이 녹으니까 향이 난다. 꽃을 피워서 그렇다.



잎이 덜 열렸는데 벌써 피어난 티를 낸다. 딱 저만큼의 향이 나다가 만개하면 만개한 향이 난다. 일부러 나무를 마주하기 전 숨을 한가득 쏟아낸다. 스칠 때 최대한 많은 향을 콧속에 가두고 싶어 천천히 들이마시면 점막도 절여지는 것 같다. 기분이 달다.


남들 벚꽃 피어나길 기다릴 때 나는 너부터 기다렸어. 그걸 꼭 말해 주고 싶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코너에 자리한 라일락 나무가 꽃피우길 기다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몇 명은 더 있을 거라고 알려 주고 싶다. 추운 날 가고 만개할 때까지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냐고 물어보고 싶다. 반드시 피게 되어 있다고. 향이 도로를 덮을 줄 알았다고.




좋은 일이 생기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그들은 코너 뒤에서 라일락 나무를 기다렸다. 경칩을 함께 났다. 최근 종호님을 만났는데, 모임을 마치고 따로 남아 근황 이야기를 더 나눴다. 오늘도 끝나고 놀러 가요?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이 날씨에 안 나가면 중범죄인데요? 종호님이 웃었다. 보기 좋아요. 나는 종호님의 경사를 축하해 주었고, 그는 나의 안녕에 안도했다.




이제 반절은 기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