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녀 Sh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즈 Feb 11. 2024

십 년째 명절마다 하는 일



제사상. 10년째 하고 있는 어른의 소꿉놀이다. '왜'라는 의문이 싹트기 시작하면 답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제사와 관련한 기억은 명절 아침 설거지를 하는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친 적이 잘 없으므로. 그냥 일 년에 몇 번 우리 남편 기분 좋으라고 하는 상차림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 해졌다.


이번에도 그릇을 꺼내 음식을 옮겨 담고, 다시 치우며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이건  마치 소꿉놀이와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단어를 하나 매칭했다는 것으로 순간 머릿속이 반짝였는데, 내 십 년째 경험에 쓸만한 비유가 생겼다는 것으로 잠시 생기가 돌았다. 그거면 됐다.   




명절 루틴이 안 생길 리 없다. 계획에 따라 일을 착착 진행시킬 때의 쾌감을 즐기는 편이라, 대략 명절 삼주 전쯤 일정을 조율하면서 큰 일들을 미리 당겨 끝낸다. 예를 들어 대대적인 집 청소 같은 일들. 미리 해두는 것이 스스로를 롭게 한다. 설 일주일 전에는 온라인 쇼핑으로 장 볼 수 있는 것들과 직접 사야 하는 것을 가려 주문할 요일과 직접 발품을 팔 날짜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일 전쯤, 이마트 배송 예약을 걸어서 설 이틀 전에 배송되도록 결제해 두면서 3일 전, 동네 축협으로 가서 수육용 고기, 국거리, 큰 생선, 중간크기 생선 네 마리, 바지락살, 새우살을 산다. 해동이 필요한 생선을 꺼내두고 비린내가 나지 않게 환기는 필수다. 꺼내쓸 큰 프라이팬과 냄비를 꺼내둔다. 식용유나 비닐장갑, 랩, 지퍼백, 참기름, 연두 등이 바닥나지 않았는지 체크도 해두어야 한다. 음식 준비가 시작되면 온갖 재료들로 떠들썩해질 주방을 대비해 지금 당장 필요 없는 인테리어용 식물화분과 컵 등은 다른 곳으로 치워 여유 공간을 확보해 두는 일은 치트키다. 난장판이 된 주방에서 짜증 내봤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틀 전, 생선을 굽는다. 큰 생선은 큰 프라이팬을 사용해 껍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작은 생선은 세 마리씩 한 번에 구워 식혀둔다.

이걸 하는 동시에 수육을 삶는다. 된장 두 큰 술 마늘 한 줌 넣고 끓이는데 한 시간.


하루 전,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집 정돈 후. 나물 3종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참기름 연두 소금. 다듬고 데치고 양념한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특히 콩나물을 다듬는 30분의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왜 콩나물을 다듬어 안 파는지 납득이 안 가지만 콩나물 꼬리를 따면서 잠시나마 명상이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도가 튼다. 탕국. 끓는 물에 국거리용 소고기를 넣고 끓으면 거품을 여러 번에 걸쳐 걷어내고, 무넣고 반복, 바지락 넣고 반복, 새우살 넣고 반복, 두부 넣고 반복 후 불 끄기.


당일 아침. 제기 그릇을 꺼내 닦고 음식들을 소분하여 담고 그 와중에 사용되는 비닐장갑은 열댓 장인데 이거 아끼려다 화나는 순간이 많으므로 나를 위한 사치다 생각하고 이번만큼은 막 쓴다.


나오는 설거지 양이 상당하다. 이 설거지를 하면서 기분은 크게 두 가지다. 원망 혹은 안도. 왜 내가,라고 시작되는 날은 걷잡을 수 없다. 기억이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감과 동시에 지금 남편이 핸드폰 보고 있는 꼴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민족의 명절에 제사는 필요한가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나열하기 시작한다. 감정적인 여러 사건을 떠올리면서. 토론 배틀에 나갈 기세로는 충분하다.


이거라도 안 했으면 내 요리실력이 더 처참했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걸 십 년째 해내고 있다는 내 커리어에 나 스스로 인정되는 부분이 많고 어느 정도 남편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여기는 듯해 부심, 권세 같은 것이 조금 오르기도 하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삼사일 이어지는 명절 연휴를 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늘 만족스럽지가 않다. 설 당일 차례가 끝난 오전 10시에서 12시 무렵이 되면, 마라톤이 끝난 선수처럼 맥이 탁-하고 풀려버린다. 자유가 찾아올 것 같아 그 시간만을 기다렸는데도, 막상 온몸에 바닥난 에너지 때문에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낮잠에 한 번 들어 쉽게 일어나질 못해 세 시간을 이어 잤더니, 기분이 영 엉망이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는데도 나만 바빴던 느낌이고, 낮잠을 오래 잤는데도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이제, 집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조조로 영화를 예매해 뒀고, 식당에서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웃렛에 가서 쇼핑을 해야겠다. 적당한 소비는 즉각적인 치유에  도움이 되므로. 어른의 소꿉놀이는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LED 등이 고장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