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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20. 2023

지옥과 천국 사이

나에게는 그리운 그곳

서울에서의 모든 시간이 엄마에게는 지옥불 같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향수병에 걸릴 만큼이나 그리운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살던 노원구 월계동에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아파트 그 옆에는 버스정류장 종점이 있었다. 바로 옆 길가에 피어있던 해바라기꽃을 시작으로 우리 동네가 펼쳐진다. 동네의 마지막 끝에는 지철이 가로지른다. 나는 이게 기차인 줄 알았다. 이제 와서 검색해 보니 지철이더라. 하하..



하철의 철로를 따라 끝이 없을 것 같은 숲이 이어지는데 그 숲길은 사계절마다 놀잇감이 되어주었다. 봄이면 풍성한 초록빛으로 물들고 꽃과 나비가 알록달록한 색을 수놓았다. 가을에는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고 누군가 텃밭 삼아 가꾸던 채소밭의 무를 몰래 뽑아 먹기도 했다. 역시 몰래 훔쳐먹는 거라 그런지 여태껏 먹어본 무중에 제일 달고 맛있었다.



학교 가는 길은 늘 즐거웠다. 아카시아향이 흐드러진 철로의 숲길을 지나 지하차도입구에 도착하면 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준비를 한다. 지하차도를 건너서 출구로 올라오면 2층양옥집과 깨끗한 상가들이 줄지어 보인다. 그 끝에는 새로 생긴 '엘지 25시'라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기계에서 콜라와 얼음이 나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많은 계단을 올라 학교에 도착하면 비로소 내 영혼은 날개라도 달린 듯이 멀리멀리 아가버렸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촌지를 바라셨다. 나의 담임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셨지만 촌지는커녕 육성회비도 내기 힘든 형편인지라 선생님의 눈에는 내가 가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이유 없이 혼나거나 차별받는 일이 많았다. 한 날은 숙제 검사를 하다 말고 내 일기장을 집어 들고는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악필 중의 악필이긴 했지만.. 뭐 9살짜리의 일기장이 그렇지.. 그렇게까지 집어던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눈물을 흘리며 공책을 주어갔던 것만 생각이 난다. 이쯤 되면 학교에 도착함과 동시에 내 영혼이 도망을 갈만 하겠다.



러다 하교 후에 지하차도를 건너면 잊지 않고 내 영혼은 다시 돌아와 주었다.  거운 숲길을 지나면서부터는 점점 내 발걸음 빨라졌다. 신이 날 때는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금주와 윤경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항상 붙어 다녔다. 특히 금주와 나는 매일같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너무 붙어 다녀서일까. 금주에게서 시작된 이가 나와 윤경이의 머릿속까지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주며 방바닥에 우두둑하고 떨어진 이의 알을 손톱으로 톡톡 터트려가며 말씀하셨다.


"별아. 금주랑 좀 놀지 마라. 이거 봐라. 아이고 징그러라~!"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여전히 매일같이 금주를 만났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우리 집 바로밑에는 벽돌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어도 누구 하나 혼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 자주 가서 놀았던 것 같다. 벽돌 한 장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나뭇잎을 올려 톡톡 두드려 으깨서 소꿉놀이도 하고 켜켜이 쌓인 벽돌 사이로 뛰어다니며 그 가운데의 작은 공간을 아지트라 칭하며 놀았다. 벽돌이 무너졌을 때의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껏 숨 쉬고 아있으니 말이다.



동네에는 따로 놀이터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은 동네 한가운데 집을 허물고 난 빈자리였다. 그곳을 흙으로 메꾸어 놓은 건지 원래 흙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사방치기는 물론 땅따먹기와 비석 치기 등 많은 놀이를 이곳에서 했다. 어떤 날은 노란색표지의 두꺼운 전화번호책을 잘라서 '천 원', '만원' 이렇게 적어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녀석이 뿌리고 다녔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 같이 이 종이돈을 주으러 다녔다. 잠깐동안이지만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이 돈이 진짜 돈이면 얼마나 좋을까? 잔뜩 주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주면 정말 좋아하실 거야.. 그러면 혹시라도 아빠가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엄마. 아빠 밥은 먹었을까? 밖에서 혼자 지내니까 불쌍하다 그렇지?"



아빠가 보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할 만큼 나는 너무 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의 소리를 입으로 내뱉는 순간 활화산이 폭발했다. 남편의 가출과 두 아이의 양육으로 지칠 대로 지친 엄마에게 기름을 부어준 셈이다. 결국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이제부터는 엄마의 마음을 살피기로 했다.



유난히 가난했지만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어 했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더더욱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었는지도 모르겠다. 없는 형편에 동네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던 롤러스케이트를 하나 사주셨다. 오빠의 발 사이즈로 사서 같이 신으라고 했지만 오빤 거의 타지 않내가 주로 타고 다닌 것 같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스치는 바람이 좋았고 바퀴만큼 키가 커져서 좋았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온 그 길로 롤러스케이트를 꺼냈다. 롤러스케이트만 신으면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라도 신은 듯 얼굴에는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왕자님이라도 찾을 기세로  동네 이곳저곳을 신나게 달렸다. 그러다 낯선 아저씨가 우리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대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의 손에는 머리에 뿌리는 스프레이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벽에는 빨간 글씨로 '철. 거.'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그랬다. 재개발이다. 우리 동네는 주변의 아파트와 주택에 비해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었다. 재개발 승인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이사를 결정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입주권을 팔아서 약간의 여유돈을 챙길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뒤, 우리는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엄마는 이모가 있는 대구로 간다고 했다. 대구가 어디인지 얼마 큼이나 먼 곳인지도 몰랐다. 이 작은 집에서 떠난다는 것과 왠지 여기보다 훨씬 좋을 것 같은 새로운 집에 간다는 것에 마냥 즐거웠다. 친구와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보고 싶은 일인지는 대구에 와서야 알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트럭 안에서 바보처럼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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