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아빠, 그리고 새로운 시작
대구에서의 재회
3학년 겨울방학이었는지 봄방학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구에 도착해서 전학절차를 마치고 나니 바로 4학년이 되어있었다. 하얀 피부의 키 작은 아이가 서울말까지 쓰자, 반 아이들의 호기심과 관심이 쏟아졌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관심과 인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다가왔고 여자 아이들끼리 서로 셈을 내며 다투기도 했다. 상황은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6학년이 된 오빠 역시 키는 작았지만 얼굴이 하얗고 이쁘장하게 생긴 덕에 인기투표에서 1등도 했다고 한다. 물론 가난한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그 인기는 거품 빠지듯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지만 서울에서만큼 천덕꾸러기 신세는 아니었다. 평범할 따름이었지만 그 마저도 과분할 정도였다.
우리가 이사 온 집은 서울의 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방 한 칸과 옆에 딸려 있는 작은 부엌, 그리고 연탄보일러는 물론이고 재래식 화장실까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망조차도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포기도 잘했다.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간 시간에는 오빠랑 단둘이 밥을 차려먹고 알아서 놀아야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적응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사 온 동네에서도 금방 친구를 사귀었다. 동네에서 노는 것이 서울에서만큼 재미있었다. 그러다 자려고 누우면 금주와 윤경이가 떠올랐다.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실만큼 보고 싶었다. 후회했다. '내가 아끼던 진주모양 목걸이라도 주고 올걸.. 전화번호라도 적어올걸 그랬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뚝뚝한 엄마는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밑도 끝도 없이 한마디 툭 던졌다.
"내일 아빠 만나고 와."
그러니까 내일 집 앞 사거리에 아빠가 오기로 했으니까 아빠 만나고 오란 소리였다. 분명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난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게다가 엄마도 없이 오빠랑 셋이서 봐야 한다는 게 내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나가지 않으면 이대로 아빠가 또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실오라기라도 잡아당겨서 그 끝에 아빠를 매달아 오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다시 만난 아빠는 그대로였다. 말라서 쑥 들어간 양볼과 그 아래 축 처진 어깨.. 내 이름을 부르며 양팔을 벌려주면 내가 달려가서 안겨주는 그런 모양새는 우리 집엔 없다. 원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이제 와서 할 생각은 서로 전혀 없었다. 대면대면하며 어제도 만난 사람처럼 말없이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근처 시장에 들러 오빠와 나의 외투를 하나씩 사주시고는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뒷일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엄마에게 싹싹 빌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결국 우리는 다시 네 식구가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가득 차 흘러 넘 칠 정도였다. 아빠와 엄마는 두류공원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집게와 기를 수 있는 통, 먹이, 장식용품등을 팔았다.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어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돈을 한 뭉텅이씩 가지고 들어오셨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돈을 만져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돈으로 새 옷도 사주고 내 키만큼 커다란 인형도 사줬다. 이젠 정말 행복할 일만 남은 듯했다.
그 뒤로 두 번의 이사를 거쳐서 점포가 하나 달린, 아니 방이 하나 달린 점포로 이사를 갔다. 나 모르는 기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점포에 '가옥수리'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간판 같은 건 없었지만 직접 시트지를 잘라서 전면유리에 붙이고 점포의 반은 우리가 생활할 수 있도록 합판으로 가벽을 만들었다. 뭔가 많이 어설펐지만 나름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귀에는 모나미볼펜 하나를 꽂아두고 사다리 위로 올라가서 팽이처럼 생긴 추를 실에 매달아 아래로 늘여 트리고는 나에게 바닥에 그어 놓은 선과 맞춰보라고 하며 어설픈 전문가 흉내도 냈다. 어린 내가 봐도 참 많이 어설펐다.
가끔 집의 보일러나 수도가 고장이 나면 고쳐달라고 종종 문의가 들어오긴 했으나 벌이는 시원찮았다. 아빠와 엄마가 다시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날은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서는 서로를 위협하며 몸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울음이 터졌고 함께 있던 오빠도 무서웠을 텐데 그 와중에 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기도 했다.
항상 그러하듯이 시작은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결혼상담소라는 것을 차리겠다며 어딘가에 사무실을 얻었다. 가본 적은 없어서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용은 이렇다. 중국에 사는 여자를 한국에 사는 노총각과 결혼시켜 그 수수료를 받겠다는 취지. 나쁘지 않았다. 그 핑계로 아빠는 중국을 몇 번을 오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중국에서 산 이상한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머리에 쓰고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상한 머리띠와 부채, 향수, 미니도자기 등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여만 갔다.
차도 뽑았다. '티코' 그 조그마한 차를 샀다가 어느 날은 '에스페로'라는 좀 좋아 보이는 승용차를 뽑아왔다. 그 당시 200만 원이나 하던 휴대폰도 사고 노래방기계가 달려있는 티브이도 샀다. 심지어 컴퓨터와 자동응답이 되는 무선전화기가 생겼다. 이 모든 것이 그 작은 단칸방과 점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