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제대로 못 잤다. 원래 다음날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거나 어디로 떠나게 되면 생각이 많아져 옅은 잠을 자게 된다. 10시간 동안 시애틀에서 프랑스로 날아가야 할 비행기 안에서 눈을 붙일 생각으로 전날 밤은 정말 대충 잠을 잤다. 아침 10시 시애틀의 Seatac공항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공항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니 세상이 코로나 전염병에서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안도감이 가득 느껴 온다.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며 온 세계로 떠나는 여행객들을 본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이제 다시 정상적인 삶이 돌아올까 모두가 우울해하고 갇혀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으로 가득한 공항을 보니 감사하다.
탑승이 시작된다. 출발할 게이트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몇 년 만에 타보는 비행기이다. 몇 시간 동안 떠날 하늘 여행이 마냥 설레기만 하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고 이륙을 하니 비로소 정말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간다는 실감이 난다. 머리는 무겁고 피곤하지만 기체의 흔들림과 소음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치킨과 밥이 곁들인 점심도 나오고...
어느덧 미대륙을 서서히 벗어나는 비행기는 중간 기착지인 프랑스 파리로 향하고 있다. 모로코란 나라를 머릿속에 계속 그려 본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걷게 될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그 나라는 어떤 향기가 느껴질까? 이 넓은 세상에서 하나의 작은 점과도 같은 삶의 터전에서 참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나의 모습들이 부질없음이 이 기나긴 여행시간 가운데 느껴진다. 삶은 점점 전쟁 같다. 살기 위해 일하고 돈 벌고 소비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남는 건 허탈함과 공허함. 비록 기체는 가끔 흔들리고 엔진 소리, 종종 들려오는 안내방송, 이따금 울어대는 아이소리, 좁디좁은 비행기 안에서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겨 앉아 가는 10시간의 비행이지만 마음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비행을 시작한 지 9시간이 지났을까? 착륙하기 한 시간 전에 간단한 아침 식사가 또 나온다. 좁은 비행기에서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거의 운동량이 없으니 소화도 더딘 것 같지만 여행 때는 잘 먹어두는 게 이득이라 생각되어 커피와 함께 가벼운 아침식사로 배를 채워둔다.
지루한 10시간의 비행 끝에 모로코로 가는 중간 기착지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에 내렸다. 공항 밖을 나가 구경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프랑스에 들른 건 작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모로코로 가는 에어 프랑스 항공으로 갈아타기 위해 7시간을 기다린다. 요즘은 핸드폰의 데이터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어느 나라를 가도 스마트폰의 인터넷이 연결이 돼 다행히 그리 지루하지 않은 7시간을 보낸다.
모로코행 비행기를 타게 될 게이트 근처 휴식공간에 앉아 일기도 끄적거리고 핸드폰도 보고 커피도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낸다. 모로코행 비행시간이 다가왔다. 게이트로 이동하여 비행기 안으로 탑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