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을 때는 그저 흘러가는 글자들로 보고 넘겼다가 어느 순간 문득문득 핸드폰을 펼치고 다시 한 번씩 읽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글 안에서 아빠를 찾아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아빠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신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로는 귀에 큰 충격을 받아 고막을 다쳐 청력이 많이 손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 대화를 할 때도 다정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아닌 쩌렁쩌렁한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 해서 누가 보면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만한 풍경이 그려지곤 한다.
그리고 몇 년 전 결핵을 앓고 나서부터는 시력도 상실이 되어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시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주변의 이런저런 소리와 시선에 멀어진 아빠가 서늘한 가을바람에 마음을 부여잡고 한 자 한 자 시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타도 보이고 맞춤법이 틀린 글자도 있지만 글 안에 아빠가 새겨 넣고 싶었던 글자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가을
형재봉 산마루가
아스라한 구름사이로 묻힐 때면
눈썹달이 파리한 얼굴을 내민다
초가집 흙담 어디선가
밤새워 울어줄 귀뚜라미는
애를 녹이고
또랑가 버들나무 그림자가
가을바람에 흐느적거릴 때면
내 어린 가슴에 서늘한 한기와
외로움
어둠이 짓누른 산골밭이랑 검은 달빛 아래
허수아비 하나가 빈 들녘을
한아름의 고독으로 지키고 서있다
한잎 두잎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아래 앉아
그대를 그립니다.
하늘 덥던 녹색구름이 꼬리를 감추면
길 위에 뒹구는 낙엽
나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뭉근한 가을바람 불어오면
창 문에 턱 괴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떨어지는 나무 잎새
하나 둘 셋 그리고
보고픈 그대여!
아빠의 시 둘.
젊은 시절 철없는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사람보다 술을 더 의지하며 살았던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