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법 중에는 '8 자 붕대법'이라는 게 있다. 이름 그대로 감으면 8 자 모양이 나온다. 주로 팔꿈치나 무릎 같은 관절 부위에 쓰인다. 나는 간호사 시절 이걸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정형외과 병동에서도 붕대는 주치의나 인턴의 몫이었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주사를 놓는 데까지였다. 그러니까 붕대는,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간호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학생들에게 붕대법을 가르쳐야 하니까 직접 시범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집에서 아이의 발목에 붕대를 감으며 밤마다 연습을 했다.
"이게 이렇게 되는 거구나..." 하면서.
그때는 몰랐다. 그 연습이 훗날 찜질방에서 빛을 발할 줄은. 찜질방에는 손잡이에 붕대를 많이 감아 둔다. 나무 손잡이도 뜨겁고 나사나 쇠붙이는 거의 용광로 수준으로 달궈진다. 그래서 그 위에 붕대를 둘둘 감아 '손잡이용 방열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사우나 문 붕대가 풀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즉시 출동했다. (붕대 담당자 = 나) 사우나 문에는 4인치 붕대가 제격이다. 원형으로 돌돌 감는 '환행대'를 먼저 하고 문고리 연결부는 8 자 붕대법으로 고정한다. 그래야 풀리지 않는다. 그곳은 고온다습지대이므로 기술력과 체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붕대와 싸우며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완성된 손잡이를 보면 묘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이게 내 전공이었나?'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지만 진짜 적은 불한증막 문이다. 문을 활짝 열면 열기가 다 빠져나가니까 1/3만 열고 작업해야 한다. 손님이 드나들면 그 순간 붕대를 감던 손을 멈춰야 한다.
"들어가세요. 잠시만요."
6인치 붕대는 한 번에 면적이 넓게 감겨 좋지만 그만큼 감는 사람의 땀샘도 넓게 개방된다. 그렇게 완벽히 마무리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잘 감은 붕대는 몇 달을 버티지만 서툰 붕대는 며칠 만에 풀린다. 병원에서도 그랬다. 인턴이 감은 붕대는 금세 풀리고 베테랑 의사가 감은 붕대는 묵직하게 버틴다. 찜질방도 다르지 않다. 세상은 결국 붕대 실력으로도 서열이 정해진다.
그런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한증막 문 손잡이가 빠졌어요."
나는 붕대만 감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럴 땐 남편 차례다. 한증막 문은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구멍 하나 뚫기도 어렵다. 남편은 전동드릴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문과 씨름했다. 결국 구멍을 뚫고 손잡이를 고정한 뒤 겉면을 굳히기 위해 석고 붕대를 꺼냈다.
그걸 보는데 이상하게 울컥했다. 간호사 시절 석고 붕대는 '정형외과 사람들'의 영역이었고 나는 그냥 멀리서 구경만 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그것도 찜질방 문고리에 석고 붕대가 감기고 있었다. 남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를 감고 있다.
"이건 내가 할게. 나 간호사야."
자신 있게 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붕대는 울퉁불퉁. 모양은 엉망. 결굴 남편이 다시 나섰다. 그런데 이게 또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역시 목욕탕집 아들은 다르네.'
나는 조용히 인정했다.
세상에는 붕대도 사랑도 기술도 결국 '손맛'이 있다. 붕대가 굳어가며 문고리를 감싸는 걸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제 문고리 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어쩌면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다 풀리고. 끊어지고. 또 감고. 다시 고정하는 일.
어디서 배운 기술이든. 결국 쓸 데가 있다. 심지어 그게 찜질방 문고리라 해도 말이다.
나는 간호사로 시작해 결국 찜질방 손잡이까지 치료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공 살리기란 이런 것이다.